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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14 22:43
[한국사] 사서 분석을 통한 고죽과 부여의 위치 비정 (3부)
 글쓴이 : 비좀와라
조회 : 1,786  

사서 분석을 통한 고죽과 부여의 위치 비정 (3부)
실제 고죽의 위치는 현 하북성 노룡현이 아닌 산서성 서남부
 
심제 이진우 박사  기사입력  2014/12/31 [15:36]


Ⅲ. 사서 분석을 통한 고죽과 부여의 위치 비정     
  
    기원전 2세기 이전의 사서『관자』소문편에 "桓公北伐孤竹未至卑耳之谿十里"라고 기록된  지명 비이계(卑耳谿)는 제환공이 고죽국을 정벌하고 비이계 십여리를 남겨두었다고 기록된 지명으로, 여기서 비이계는 발음상으로 부여와 관련된 강이라고 볼 수 있고, 같은 책의 경중갑편의 "寡人欲北擧事孤竹離枝"라는 기록은 제환공이 북쪽의 고죽국과 리지(離支)를 정벌하려는 내용으로 지리상 리지는 고죽의 북쪽에 위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사기집해』에서는 고죽국의 위치를 요서의 영지(令支)에 있다했고,『정의괄지지』에서는 고죽국이 평주(平州) 노룡현 십리에 있는데 은나라의 제후국이었다고 하였고, 『통전』에서 평주는 지금의 노룡현(盧龍縣)이며 은(殷)나라 때는 고죽국으로 춘추시대에는 산융(山戎)과 비자(肥子) 두 나라의 땅으로 노룡현에는 옛 고죽성(故孤竹城)이 있는데 백이(白夷)・숙제(叔弟)의 나라로 기술하여 후대 학자들 사이에서도 고죽국의 위치가 요서와 요동설로 나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죽국의 위치와 관련된 "孤竹國의 성립과 古朝鮮 후국의 지위"라는 연구에서 신용하는 고죽국에서 고구려가 발생하였다는 『배구전』의 내용을 참고하여 고추가라는 관직명이 고죽의 중국고어(中古語)인「kuchu」라는 사실과 동명의 탁리국이 중고어「Tari(Dari)」로서 제나라와 전쟁을 벌인 고죽국왕의 이름 답리가(答里可)에서 기원하므로 부여에서 가장 강성했던 종족이라 밝힌 것은 성과로 볼 수 있으나, 기존 연구자들의 논지와 유의차 없이 현 하북 영평부로 보았다. 

고대 영,평주(營,平州)의 위치와 관련된 논의에 대하여『한서』 요서군조 및 『후한서』지리지 등을 근거로, 그 지역 또한 후대에 사서 개정에 의한 위치변이가 있었다는 연구와 아울러 고죽국이 여러 사료에 근거하여 제나라의 남단에 위치하여 북으로 부여로 추정되는 리지 혹은 영지가 위치했음을 보이도록 하겠다. 이에 따라 본 연구자의 관심인 고죽의 지리비정을 위하여, 우선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위치가 어디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참고로 <한서지리지>의 요서군에 대한 기록은 아래와 같다.
(辽西郡 요서군) 秦置。有小水四十八,并行三千四十六里。属幽州(속유주)。户七万二千六百五十四,口三十五万二千三百二十五。县十四:且虑,有高庙。莽曰鉏虑。海阳,龙鲜水东入封大水。封大水,缓虚水皆南入海。有盐官。新安平。夷水东入塞外。柳城,马首山在西南。参柳水北入海。西部都尉治。令支,有孤竹城(고죽성이 있는 영지현)。莽曰令氏亭。肥如,玄水东入濡水。濡水南入海阳。又有卢水,南入玄。莽曰肥而。宾从,莽曰勉武。交黎,渝水首受塞外,南入海。东部都尉治。莽曰禽虏。阳乐,狐苏,唐就水至徒河入海。徒河,莽曰河福。文成,莽曰言虏。临渝,渝水首受白狼,东入塞外,又有侯水,北入渝。莽曰冯德。絫。下官水南入海。又有揭石水、宾水,皆南入官。莽曰选武。
 
  첫째, 『사기』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의 전쟁기록에 근거하면 춘추 초에 풍패(豊沛)지역을 무대로 활동한 기록과 고죽을 정벌한 기원전 7세기인 환공시기에는 하남성 맹진(孟津) 유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나타나는바, 이를 뒷받침할 근거로「중국사회과학원 주초봉건도」에는 제나라가 시대에 따라 이동된 위치를 표시하였다. 이는 태공 때 하남성 남양(南陽)에 위치하다가 기원전 6세기 영공 때 래국(萊國)의 정벌 혹은 기원전386년 강제(姜齊)에서 전제(田齊)로 정치주체가 바뀌면서 산동의 임치(臨淄) 부근으로 도읍을 이동한 것을 나타낸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제환공시기인 기원전 7세기경에 『관자』의 기록과 같이 고죽의 북쪽에 이미 리지(離支)라고 불리는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고, 리지는 불리지로 은상(殷,商) 시대부터 사서에 등장하였던 고조선 일파인 고죽국과 같이 존재하고 있었으며 위치적으로 이 나라들 보다 남쪽에 있었던 제나라의 정벌에 의해서 기원전 664년 고죽국이 망하였다는 기록에 근거하므로 고죽국의 위치는 현 하북성 영평부가 아닌 제나라가 위치한 하남 북방인 산서성 남단지역으로 추정된다.
      

▲ (그림 1)  하남 남양 이후 산동으로 이동한 제나라. (주초봉건도.1978년)     © 편집부

   둘째, 18세기 청나라에 의해서 제작된 「대청광여도」에 근거하면 고죽국의 위치를 말해주는 증거로 산서성 서남단인 해주(解州)에 고죽국 왕자로 알려진 백이와 숙제의 묘(伯夷叔齊墓)가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이 지역 답사 결과 운성(運城)에 그의 묘가 있으며 시정부(市政府)등에서도 그곳을 백이숙제의 고향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로서, 『사기』백이열전(伯夷列傳) 내용과 당나라 전후 중국사서에 기록된 하북성 평주에는 백이숙제묘가 위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평주가 고대에는 하북성 노룡현 인근이 아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 일수도 있다.
   
▲ (그림.2)  산서 서남단에 표기된 고죽국 백이숙제묘.  (대청광여도,청,18C)                    © 편집부
▲ <대청광여도>에 그려진 실제의 백이숙제의 무덤     ©편집부

참고로 대청광여도(大淸廣與圖)는 제작 연대가 청나라의 1603~1867년 중이다. 대청광여도는 <우공일통지>의 편재를 근거하여 참고하고 청나라의 2개 직할경과 13개도 및 주,부,현을 표시하고 도 경계이상을 먹선으로 표시한 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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