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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13 11:33
[한국사] 타자의 눈으로 본 한국사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3,279  

주은래(저우라이언,周恩來) 총리의 중국-조선관계 대화
주은래(저우라이언,周恩來) 총리의 중국-조선관계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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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6월28일 주은래 총리는 조선과학원 대표단 접견시 중국과 조선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중국과 조선, 두 민족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지 될 때까지 3, 4천년 이상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이러한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졌다. 먼저 양국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중국 일부 학자들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그다지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조선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 경백호 부근은 발해(渤海)의 유적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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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다. 따라서 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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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6월28일 주은래 총리는 조선과학원 대표단 접견시 중국과 조선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중국과 조선, 두 민족 관계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중지 될 때까지 3, 4천년 이상 매우 긴 시간이었다. 이러한 역사연대에 대한 두 나라 역사학의 일부 기록은 진실에 그다지 부합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국역사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대국주의, 대국쇼비니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이 주요원인이다. 그리하여 많은 문제들이 불공정하게 쓰여졌다. 먼저 양국민족의 발전에 대한 과거 중국 일부 학자들의 관점은 그다지 정확한 것은 아니었고 그다지 실제에 부합하지 않았다.
 
조선민족은 조선반도와 동북대륙에 진출한 이후 오랫동안 거기서 살아왔다. 요하(遼河), 송화강(松花江)유역에는 모두 조선민족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이것은 요하와 송화강 유역, 도문강(圖們江)유역에서 발굴된 문물, 비문 등에서 증명되고 있으며 수많은 조선문헌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조선족이 거기서 오랫동안 살아왔다는 것은 모두 증명할 수가 있다. 경백호 부근은 발해(渤海)의 유적이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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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다. 따라서 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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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있고, 또한 발해의 수도였다. 여기서 출토된 문물이 증명하는 것은 거기도 역시 조선족의 한 지파(支派)였다는 사실이다. 이 나라는 역사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존재했다. 따라서 조선족이 조선반도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도 오랫동안 살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다만 분명한 것은 조선족 일부가 원래부터 한반도에서 거주하였다는 것이다. 도문강, 요하, 송화강 유역에서 거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역사기록과 출토된 문물이 이미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고 또한 이 지방에 가서 현장조사하고, 비문과 출토문물을 찾고, 역사흔적을 연구하는 것은 또한 권리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당신들을 돕도록 하겠다. 이렇게 긴 역사문제에 대해서는 역시 문자로 기록된 역사자료도 연구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자료를 연구하려면 중국과 조선 두나라 동지들이 반드시 하나의 공통된 관점을 세워야 한다. 항상 봉건대국의 태도로 당신들을 무시'모욕하면서 당신들을 침략할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중국역사학자들은 반드시 이런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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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여러분들의 머리위에 조선족은 "기자자손(箕子之后)" 이라는 말을 억지로 덧씌우고, 평양에서 그 유적을 찾아 증명하려는 무리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어떻게 이렇게 될 수가 있단 말인가?
 
진, 한나라 이후 빈번하게 요하유역을 정벌했는데, 이것은 전쟁이 실패하자 그냥 돌아왔을 뿐이지 분명한 침략이다. 당나라도 전쟁을 치렀고 또 실패했으나 당신들을 무시하고 모욕했다. 그때, 여러분나라의 훌륭한 한 장군이 우리 침략군을 무찔렀다. 이때 바로 발해가 일어났다. 이후 동북에는 바로 요족(痢), 금족(金族)이 발흥했다. 그때 중국이 맞닥뜨린 문제는 요족과 금족의 중국본토 침입문제였다.
 
 

다음은 몽고족이 문제였는데, 원나라도 역시 당신들을 침략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마지막으로 명나라는 조선과 직접 합동작전을 전개했으나 만주족이 매우 빨리 흥기하여 장백산(백두산) 동쪽에서 요하유역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점령했다. 이러한 시기에 한족(漢族)또한 일부가 동북지역으로 옮겨 거주하게 되었다. 만주족 통치자는 당신들을 계속 동쪽으로 밀어냈고 결국 압록강, 도문강 동쪽까지 밀리게 되었다.
 
만주족은 중국에 대해 공헌한 바가 있는데 바로 중국땅을 크게 넓힌 것이다. 왕성한 시기에는 지금의 중국땅보다도 더 컸었다. 만주족 이전, 원나라 역시 매우 크게 확장했지만 곧바로 사라졌기 때문에 논외로 치자. 한족이 통치한 시기에는 국토가 이렇게 큰 적이 없었다. 다만 이런 것들은 모두 역사의 흔적이고 지나간 일들이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질 일이 아니고 조상들의 몫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이런 현상은 인정해야만 한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는 당신들의 땅을 밀어부쳐 작게 만들고 우리들이 살고 있는 땅이 커진 것에 대해 조상을 대신해서 당신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래서 반드시 역사의 진실성을 회복해야한다. 역사를 왜곡할 수는 없다. 도문강, 압록강 서쪽은 역사이래 중국땅이었다거나, 심지어 고대부터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황당한 이야기다.
 
 

중국의 이런 대국쇼비니즘이 봉건시대에는 상당히 강했었다. 다른 나라에서 선물을 보내면 그들은 조공이라 했고, 다른 나라에서 사절을 보내 서로 우호교류할 때도 그들은 알현하러 왔다고 불렀으며, 쌍방이 전쟁을 끝내고 강화할 때도 그들은 당신들이 신하로 복종한다고 말했으며, 그들은 스스로 천조(天朝), 상방(上邦)으로 칭했는데 이것은 바로 불평등한 것이다. 모두 역사학자 붓끝에서 나온 오류이다. 우리를 이런 것들을 바로 시정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중국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분들 과학원 분들이 중국'조선관계사 문제에 대해서 공동으로 연구하면서 우리의 잘못을 지적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 자신이 읽을 때는 종종 부주의하거나 무시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읽었던 여러 서적을 그대로 접수하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고, 책속에서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 바로 좋은 일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 연극중에 당나라 사람 설인귀가 있는데, 그는 바로 동방을 정벌해 당신들을 침략한 사람이다. 우리 연극에서는 그를 숭배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사회주의국가이며 여러분 나라도 역시 사회주의국가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연극이 다시 상연되는 것을 불허하고 있다. 이 연극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또한 중국에는 베트남을 정벌한 두 영웅 즉 마원과 복파(伏波) 장군이 있다. 베트남의 두 재녀(才女)는 용감하게 항거하다 실패하자 강물에 뛰어들어 자진했는데, 장군은 그 목을 잘라 낙양으로 보냈다. 나는 베트남에 갔을 때 두 재녀의 사당에 헌화하면서 마원을 비판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는 마원을 극구 찬양하고 있다. 그래서 해야할 일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고학자들이 문물과 비석같은 유물을 발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적과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들 2,3천년에 걸친 관계를 제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 될 것이다. 주은래(저우라이언,周恩來) 총리의 중국-조선관계 대화중에서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韓甲洙) 선생이 미국 공군지휘 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때, 같은 입학생인 중국학자 서량지(徐亮之)교수가 한 박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귀국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를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서량지)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의미로 절을 하렵니다.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큰 절을 올렸다 한다.
 
서량지(徐亮之) 교수는《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1943년 10월 초판) 에서 이렇게 썼다. “4,000 여 년 전 한족(漢族)이 중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苗族:東夷)이 점령하여 경영하고 있었다. 한족이 중국에 들어온 뒤에 점점 서로 더불어 접촉하였다.” "은(殷)과 주(周) 이전과, 은나라 주나라 대에도 동이의 활동무대가 실로 오늘날의 산동, 하북, 발해 연안, 하남, 강소, 안휘, 호북지방, 요동반도, 조선반도의 광대한 지역을 모두 포괄하였는데「산동반도」가 그 중심지였다."
 
“중국의 책력법(冊曆法)은 동이(東夷)에서 시작되었다. 책력을 만든 사람은 희화자(羲和子)이다. 그의 혈통은 은(殷)나라, 상(商)나라의 동이족(東夷族) 조상이다. 동이가 달력을 만든 사실은 실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 “역법(曆法)은 사실 동이(東夷)가 창시자이며, 소호(小昊) 이전에 이미 발명되었다.” -曆法實倉始於東夷 而且小 以前便已發明.

중국 역사학자인 왕동령(王棟齡)은《중국사(中國史)》에서 “한족(漢族)이 중국에 들어오기 이전에 현재의 호북(湖北), 호남(湖南), 강서(江西) 등 지방은 본래「苗族(東夷)의 영속지였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이(九夷)인데 임금은 치우(蚩尤)였다.” 묘족(苗族)은 오늘날 양자강을 중심으로 한, 호북 호남성 등지에 분포되어 있는 소수민족이며, 위의 기록에 따르면 이들도 고대에는 동이족의 한 지류였음을 알 수 있다. 구려(句麗)는 구려(九黎), 구이(九夷)를 말하는 것으로, 이 구이의 군주가 치우(蚩尤)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黎東夷國名也 九黎君號蚩尤是也 蚩尤古天子 三苗在江淮荊州 (史記, 五帝本紀).
 
“4천년 전 (…) 현재의 호북성, 호남성, 강서성 등지를 이미 묘족(苗族)이 점령하고 있었으며, 중국의 한족(漢族)이 들어오면서 차츰 이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이 민족의 나라 이름은 구려(九麗)이며, 군주는 치우(蚩尤)이다.” 《중국민족사(中國民族史)》
 
대만학자 노간(勞幹)은 중국문화론집(中國文化論集(2), 中韓關係論略)에서 “우리들은 동방사람들을 동이(東夷)라고 부른다. 이(夷)자와 인(仁)자는 통용된다. 인(仁)자와 인(人)자 또한 한 근원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에 있어서 인(人)자를 일컫는 것은 그 근원이 동방에서 나왔으며, 만약 동이족이 문화적으로 선진이고, 후대에 와서 서방사람들이 이를 빌어 쓴 것이다.”
 
俄們常常把 東方的人稱爲東夷  而夷字和人字是通用的仁字和人字也是出於一源  那魔漢語中 ‘人’的稱謂 支於還有出於東方的可能…. 假若夷人先成文化的先進  夷人先用了‘人’字作爲全人類的名類 西方候起的部族  可能再爲借用的(中國文化論集(2), 中韓關係論略).

일본 학자 고꾜 야스히꼬(오향청언, 吾鄕淸彦, こきょうきやひこ)는 “사마천의《사기(史記)》25권은, 단군 조선이 중원 대륙을 지배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거꾸로 뒤집어 가지고, 마치 중국이 단군 조선을 지배한 것처럼 힘겹게 변조 작업을 해 놓은 것이다.”

 
러시아의 역사학자 유 엠 부찐도 그의 저서《고조선(古朝鮮)》에서 "한대(漢代) 이전에 현토와 낙랑 지역에 이르렀던 조선의 영역은 한 번도 중국의 제후국(諸侯國)이 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연(燕)나라나 주(周)나라에 예속된 적이 없다." 그리고 기자조선(箕子朝鮮) 설은 주왕(周王)이 자신의 지배 하에 있지 않은 영토를 마치 통치한 것처럼 꾸민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고 있다. 또 "중국의 역사가들은 연나라가 중국의 동북쪽 변방에 있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나라의 역할을 과장해서 표현해 왔다." 그러며, 당시 국력으로 보아 연나라가 조양에서 양평에 이르는 장성(長城)을 쌓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소련의 역사학자요 인류학자인 시로코고르프(シロコゴルフ)는《중국사》에서 "주전 3,000년경 동이족(東夷族)은 이미 황하 양자강(揚子江) 서강의 중류이동(中流以東)의 중간 지역에 살았으며, 지나족(支那族)은 이보다 1,500~2,000년 후에 동방천자 치우(蚩尤)가 다스리는 동이족(東夷族)의 나라인 강회(江淮)지방에 진출하였다."고 하였다.
 

일제의 대륙침략에 따라 중칭(重慶)으로 후퇴한 장개석(蔣介石) 총통은 함께 피난 온 상해임시정부의 김구 주석 일행을 위로하기 위해 만찬에 초대했었다고 한다. 이때 장 총통은 자기 고향이 옛 백제 땅이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우의를 다졌다고 한다. 장 총통은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는 동지적 입장에서 이런 역사인식을 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들은 김구 주석은 충격과 함께 자괴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고 뒷날 술회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제가 중국 땅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김구 주석은 전혀 알지 못했었다고 한다. 장개석의 고향은 양자강(揚子江) 남쪽 절강성(浙江省)이므로 옛 백제는 양자강 이남지역까지 지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서량지나 임혜상 같은 양심있는 중국사학자들은 중국역사의 상고사는 한민족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가시마 노보루같은 일인학자는 한(漢)족은 기껏해야 한(韓)을 흉내내어 이름붙인 것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식자층은 양자강 유역이 전통적으로 동이 9족의 것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장개석은 이 사실을 너무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해 임시 정부의 이시영 부통령에게 역사는 제대로 알고 독립운동하시는가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에는 어느 한구석에도 이런 기록이 없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기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하게 왜곡되었음을 반증해 주는 하나의 예증에 불과하다. 고대역사를 다룬 사서 삼국사기,삼국유사 두 책은 중국이나 일제는 굳이 수거하지 않아도 될만큼 주체성을 상실한 책이었기에 이 두 책만은 남겼다.
  

일제는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을 만들어 호적제를 도입하자 항일 운동가들은 "일본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등록을 거부하고 무국적자로 살았는데 1947년 ‘과도법령 11호’를 통해 일제 호적에 등재됐던 국민들에게만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함으로써 많은 애국지사들이 국적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머나 먼 타국에서 목숨을 바친 항일 독립투사들은 대한민국 국민에서 배제시켜 버린 것이다. 반면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그들에게 충성을 다하고 독립운동을 방해하던 자들의 후손들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친일부역을 합리화 시키며, 지금껏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관용의 나라 프랑스의 경우 4년간 나치에 협력한 반민족자 100만명을 체포하여 1만명의 넘는 사람을 즉결처형하였다. 자신의 민족을 배신하고서 백성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호의호식하며 살던 친독에 있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단한명의 친일파도 처형당하지 않고 친일파가 그대로 기득권을 유지하며 친미파가 되었고, 그들은 반공을 외치며 민족주의자들을 빨갱이로 몰았다. 때문에 어떤 사학자는‘우리나라는 친일청산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친일파에 의해 민족주의자들이 청산당했다’라고 말한다.
 
이병도와 같은 식민사학자들도 해방과 더불어 추방은 커녕 서울대 사학과 초대교수가 되고, 60년도에는 문교부장관까지 한다. 주류 학계를 장악하게된 그들에게 우리나라는 70년간 역사 교육을 그들의 손에 맡겨 왔던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병도같은 식민 사학자가 우리나라 학계의 주류가 되었을까?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 독립운동을 하던 대부분 의식있는 사람들은 정식적인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했고, 일제에 편승한 친일파는 제도권안에서 많은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해방과 동시에 2년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미국은 미국의 입장을 대변할 한국인 정치가를 물색했고, 그 적임자는 이승만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던 김구 선생이나, 여운형 선생 등은 강력한 민족주의자로 미국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반면 이승만은 친미주의자로,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지지세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친일파를 대거 등용하게 된다. 해방직후 친일파 숙청의 건의가 거세게 들어오고 반민족 행위자 특별 처벌법을 만들어 반민특위를 만들었지만, 이승만 대통령 직권으로 테러를 하며 1년만에 유야무야 없던 일로 해버린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백남운 같은 사회경제학자 계열의 사학자들이 월북하고, 안재홍, 정인보 등 민족사학의 거목들이 납북되자, 이병도와 그 제자들은 식민사학을 실증사학으로 위장시켜 한국 역사학계를 독차지한다. 그러한 이병도도 죽기 직전인 1989년에는 조선일보에 단군은 신화가 아닌 실존했던 조상이라고 기고를 하게 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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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arHead 15-11-13 12:25
   
주은래 선생,,,,텐진의 자랑... 역사를 알고 염치를 아는 중국의 지성이죠.

현재 중국에는 이런 지성은 찾아볼 수 없고 패권주의에 물든 아귀들뿐이네요.
그래도된다 15-11-13 13:34
   
이런게 진짜 영양가 있는 소스지.. 근데 출처는 어디죠 ?
     
만법귀일 15-11-13 22:01
   
출처가 안보이십니까?

정독을 해 보시죠..
          
그래도된다 15-11-14 13:44
   
어디서 퍼왔냐 이말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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