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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12 01:40
[대만] 부여(扶餘)로 불렸던 대만(臺灣) 역사의 ....
 글쓴이 : 비좀와라
조회 : 2,543  

부여(扶餘)로 불렸던 대만(臺灣) 역사의 눈팅....
                                                                                                             글쓴이:  상선거사| 

* 이글은 2002년 대만의 오남도서출판사에서 나온 '대만사'를 참고한 것중의 일부 임을 밝혀 둡니다.

대만의 역사를 이해하면 대륙 남방조선(신라,고려)의 이해도 달라지고 많아 집니다.

 

1, 지금의 대만(차이니스 타이페이)이 역사에서 대만으로 처음 불려지게 된 것은 淸의 강희제 23년(1684년)이며

남명(南明) 추종자 이자 복건의 해적이었던 정성공(鄭成功)에 의해서 였다.대만으로 불리게 된 연원은 원주민들의

이곳 호칭인 태와만 (Tayovan:臺員)에서 유래 했다고 한다.지금도 대만인들은 대만(臺灣)을 臺灣으로 읽지 않고

臺員으로 읽기를 좋아한다.

대만은 漢代에는 이주(夷洲; 동방의 섬)으로,隋와 唐 그리고 宋代에는 유구(琉球)로, 明代에는 구(求)또는 소유구

(小琉球)로 불리다가 명나라 가정년간(1522~1566) 이후에 조금씩 대만으로 불리기 시작했는데,청의 강희제 시대

때 대만이란 명칭이 서서히 고착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지금의 오끼나와를 역사의 유구 전부로 했다는 것은 대만

유구의 일부를 차용한 것으로 보면 된다.대만 역시 명의 가정년간에 왜구(倭寇)의 출몰이 역사의 조선침공 만큼이나

많았다고 대만사는 쓰고 있다.이점은 역사의 왜구 전유물이 지금의 열도가 아님을 반증하는 역사의 근거도 된다.

 

명의 가정22년(1543년) 마카오를 거쳐 대만으로 진출했던 포루투갈 해적들은 대만을 경유하면서 '아름다운 섬' 이란

뜻으로 '포모사(Formosa)' 로 불러 서양인들에겐 오랫동안 포모사의 대만 이기도 했다.그러다 명의 만력 32년(1604년)

에 네델란드 해적들이(그들은 동인도회사 무역선) 인근의 팽호도를 무력(개방요구) 점거 하려다가 거절 당했으나,

다시 만력 48년(1620년)에 대만의 남쪽을 무력으로 점령해 식민통치를 실행했다.또 숭정 5년(1632년)에는 스페인

해적들이 대만의 북쪽을 침략해 네델란드와 대만 쟁탈전쟁을 벌리다 실패하면서 대북지역도 네델란드 식민통치 지역이

된다.결국 대만이 본래 중국(중화)의 영토였다는 것은 근대의 정치적 산물이기 쉽다.또한 역사의 중국 그 정체도 많이

오락가락하고 수시로 많이 이동하고 있음을 중화사를 통해 알수 있는 것이다.

 

2, 네델란드를 뒤이어 대만에 발을 들여 놓은 외세는 바로 청의 본토(복건)에서 復明(명을 되찾자)을 벌리던 명의 추종

세력이자 해적인 정성공(1624~1662) 이었다.그는 복건의 당왕을 받들며 늘 복명멸청을 외쳤다.또 남경 침공이라는

북벌을 단행했다가 실패한후 갈곳이 없어 20세기의 장제스 처럼 대만으로 도망했던 인물이다.그는 이곳을 본토와 비등

한 지역이라는 소문에 대만을 '海外의 扶餘(夫餘)'라고 찬탄까지 했었다.그러니 역사의 정성공이란 인물과 그가 살았던

복건지역이 조선과 고려의 일부란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마침내 청의 순치 18년(1661년)에 2만5천 의 병력(사병:그가 통치하던 고을 주민들 모두를 이주)으로 대만에 진입해

네델란드 해적정부를 물리쳐 38년간의 네델란드 통치를 종식시켰다.정성공은 대만을 東都란 명칭으로 바꾸고 이어 팽호도

에는 안무사 두고 관리를 맡겼다.

정성공이 말한 대만에 대한 별호인 '해외의 부여'란 말은 본토(천하:대륙) 밖의 동국이자 동방을 말하는 것으로 역사의

조선이나 동국 의미와 다르지 않다.조선의 다른 표현이 부여다.이런 역사 국명의 사용은 동방이나 동국 어디에도 통한다.

부여는 열도 일본에 놓아도 부여와 조선과 일본과 동국으로 상통한다.

 

3, 이후 강희 원년(1662년)에는 정성공의 아들인 정경(鄭經)이 자리를 계승하고서 동도를 동녕(東寧)으로 바꾸는데,이들은

여전히 복명만을 외치는 허당 세력들 이었다. 망해 없어진 나라인 남명의 영력왕 년호인 '永曆' 년호까지 썼다.웃기지도

않는것이 이런 영력년호 사용은 한말의 화서학파 조선 유학자란 세력들(유인석과 최익현등)이 남긴 문적들에서도 발견된다.

즉 역사 조선말(19세기 말)의 유학자들도 멸청복명의 구호를 외친것과 다르지 않은데, 이때의 조선은 청의 속국이었다.

현실과 다르게 조선의 유학자들은 대만의 정성공과 정경의 경우처럼 망해 없어진 영력년호를 정부와 다르게 그들끼리

사용했다.명이 없어진지 200년 이나 지났는데 망한 나라의 년호를 쓰면서 명을 받들겠다는 것은 정성공 이상으로 멍청한

한말 조선유생들이 아닐수 없다.복건의 정성공 일파는 남명의 영력왕과 잔존세력들을 섬겼기 때문에 복명상징인 영력년호를

사용한다 할수 있지만,19세기 말의 조선유학자들은 복건지역에 있었었던 남명세력들을 본적도 없는데 영력과 남명을

거론한다는 것은 정말 반도 뿐만이 아니고 어디의 조선역사와도 어울리지 않는다.당시 조선정부는 청나라에 굴복해 책봉을

받는 직접 종속국 이었으며 청의 년호와 책력을 받들러 새해 벽두부터 청의 조정을 들락거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된다.

 

성공의 아들인 정경이 영력35년(1681년)에 죽고 아들 정극장도 암살 당하는 혼란을 겪고있는 와중에 청이 군사를 보내

대만을 평정하는데 여기에 남겨져 있던 자칭 남명의 영정왕인 朱術桂는 xx을 하고 마침내 청에 편입된다...이후 대만은

대체로 복건성의 일부로 존재하게 된다.그러다 약 200년 후인 1875년(광서1년)에 대북부가 신설되고,광서 11년(1885년)에

청불(淸佛)이 끝난후 북건순무 관할을 대만순무로 바꿔 마침내 대만을 복건에서 독립시켰다.

 

4,  이후 청일전쟁에서 청이 패하자 '대만과 팽호열도'를 일본이 점령한다(1895년, 명치28년). 역사의 조선인이나 대만인들의

의견(정부 의견도)과 관계없이 일본것이 된다(시모노세끼조약에 의해). 이에 대만인들은 대만민주국(臺灣民主國)을 선포하여

대만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무력항쟁을 했으나 5만 병력을 투입한 일본 군부를 당해낼수 없었고 복건에서 독립된지 10년만에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일본의 대만 총독부가 건립된다.일본인들은 반도에서 한것 처럼 내지연장주의를 제창하고 황민화

운동을 전개했으며, 대만인 고유생활 방식과 전통을 포기케하고 일본어를 상용화 할것이며, 일본식으로 성명을 바꿀것도 강요

했다.이에 대만도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민족주의적 정서가 팽배해져 항일운동을 전개했다.한편으로는 무장투쟁,한쪽으로

평화적 항일운동을 국내에서 격렬히 전개했으나 역 부족을 절감해야 했다.

 

대만의 해방역시 자력에 의한것이 아닌 일제의 패전에 의해 왔다.1943년 카이로 선언에서(미,영,중 3국 대표가 서명) 왔다.

이선언에는 '일본은 1914년 제1차세계대전 개시 이후 태평양 지역에서 탈취한 혹은 점거한 일체의 도서,일본이 중국에서

절취한 만주,대만,팽호열도등의 영토를 중국에 반환해야 한다'란 선언이 천명되어 있었다.여기서도 반도는 빠져있다.

이때는 일본도 패전의 기색이 완연했을 때였고, 반도도 미국과 소련은 아니래도 열강 제국들에 의해 분할점거의 계획이

잡혀 있었던 것으로 봐야한다.

 

이를 근거로 1945년 장개석 휘하의 진의(陳儀)가 대만성 행정장관및 총독이 되어 오면서 진의는 일본군의 제10 방면군

사령관의 항복도 받아낸다.대만의 주권은 다시 중국것으로 옮겨진 것이다.그런데 진의를 포함한 중국인들 역시 한국에 

온 미군들 처럼 점령자로 대만에와 점령군 행세를 했다.그들의 악행은 이루말할수가 없었는데 같은 중국인이 아닌 다른

민족과 국가의 점령지를 유린하듯 하여 당시 장개석 군대를 향해 '개가 가고 돼지가 왔다' 라 할정도로 원성이 높았다.

마침내는 장개석 점령군과 원주민 들간의 참혹한 충돌인 2.28 참극이라는 대만 최대참극이 벌어지게 된다.중국과 대만

이라는 이질성 때문에 일어난 이 사건의 전말은 1997년에 건립된 '2.28 기념비' 비문에 장개석 휘하의 진의 점령군들

잘못을 잘 지적하고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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