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삼국통일이 대대적으로 홍보되고 독재정치의 역사적 이데올로기로서
박정희의 반공정책과 함께 대구 경북을 기반으로 하는
그들의 지역역 패권주의와 관련있다.
일제는 신라의 삼국통일론을 철저히 부각 시켜서 한민족의 고대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한반도 그곳도 한강 이남의 역사에 제한 시키는 식민사관의
주목표가 바로 신라의 삼국통일이다.
신라가 삼국통일 한것이 되어야 한민족의 역사는 고조선과 별개의 초라한 역사가 되고
만주의 역사와 아무 관련없는 조그마한 소국의 역사가 된다.
역사는 기술하는 자들의 관점에서 편집 또는 조작 되는것은 어느 나라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 했지만 신라의 삼국통일은 일제와 박정희의 독재정치에
그들의 이익에 부합되게 강조된것이 크다.
과연 신라가 대구 경북의 역사 일까?
물론 고구려도 부여에서 나왔지만 별개의 역사로 보는것과 마찬가지로
신라도 가야에서 나왔지만 역시 별개의 역사이다.
그러나 최소한 고구려가 부여에서 나왔음은 기록하고 있지만
신라는 그런것이 없다.
신라는 가야의 식민지 시절 파견된 가야 김씨 후손이 나중에 정권을 잡았고
신라 경순왕까지 김해 김씨, 경주 김씨 구분은 없었다.
그리고 김수로왕의 후손인것은 경주 김씨 족보에도 나와 있다.
그 뿐인가,, 가야의 패권을 두고 싸웠던 석탈해는 서라벌의 왕이 되었는데
석탈해는 원래 가야 사람이다.
신라시대에 경주가 포함된 행정지역의 대부분은 지금의 경주 지역과 경남의
동남권 해안 지방이지 박정희의 지역 기반인 대구 지역이 아니다.
오히려 대가야의 중심지역인 고령지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리고 경주의 많은부분은 박정희가 경북으로 편입하기 전에 경남의
관할하에 있던 땅이었다.
신라와 가야의 역사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구분되어졌고 신라의 역사도 가야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기에 신라를 대구 경북의 역사로만 인식되어 그들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이용된다는것은 일제의 식민사관과 무엇이 다르냐?
신라는 가야에서 나와 주 지역 기반도 낙동강 동쪽의 한반도 동남지역의 역사이지
지금의 대구 경북의 역사라니,,,
그리고 신라는 통일을 한적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것인데 통일이라는것은 원래 하나였다가
갈라져 있는것을 다시 하나로 합치는것을 말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신라의 통일은 원래 하나였던 고구려를 이민족 중국에게
팔아 넘긴것이 된다.
그러나 박정희 독재 정권은 부끄럽지도 않은 낯짝으로 신라의 삼국통일을
일제에 이어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역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반공으로 점철된 독재정권의 역사적 정당성을 신라의 삼국통일론에서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