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0-23 22:22
[몽골] 고려의 반원 정책(중학교 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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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9,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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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 항쟁과 반원 자주화 노력
- 01
- 몽골의 침략에 맞선 고려
- (1)
- 고려와 몽골과의 접촉
- ①
- 몽골의 성장 : 13세기 초 칭기즈 칸의 몽골족 통일
- ②
- 고려와 몽골의 첫 접촉 : 강동성 전투(1218)
- ③
- 고려와 몽골의 대립 : 몽골의 과도한 공물 요구와 고려에 왔던 몽골 사신이 국경 부근에서 피살 → 국교 단절
- (2)
- 몽골의 침략과 고려의 항쟁
- ①
- 1차 침입 : 귀주에서 박서 항전, 최우 정권의 강화도 천도
- ②
- 몽골의 지속적인 침입과 대몽 항쟁
- ㆍ
- 처인성에서 몽골군 대장 살리타 사살
- ㆍ
- 백성과 천민들의 항전 : 충주성, 처인성 등
- ㆍ
- 팔만대장경 조성 :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 격퇴 희망
- ③
- 전쟁의 피해 : 수많은 백성이 죽거나 포로가 되거나 굶주림,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과 초조대장경 판목 등 소실
- (3)
- 몽골과의 강화와 삼별초의 항쟁
- ①
- 몽골과의 강화 : 최씨 정권의 항몽 의지 상실 → 최씨 정권 붕괴 → 몽골과 강화 추진 → 개경 환도
- ②
- 삼별초의 항쟁 : 개경 환도 반대(강화도 → 진도 → 제주도로 이동하며 4년간 항쟁) → 고려인의 자주 정신 표출
- 02
- 원의 간섭과 고려 사회의 변화
- (1)
- 원의 내정 간섭과 부마국 고려
- ①
- 영토 상실 :
- 쌍성총관부
- 1258년 원나라가 고려의 내정 간섭을 위해 화주(함경도 영흥) 지방을 점령하고 설치한 관청으로 1356년 공민왕 때 탈환하여 폐지되고 화주목이 설치됨. 이때 지역 유지이던 이자춘(이성계의 아버지)의 공이 있어 이를 계기로 이성계 일가가 정계에 등장하게 됨
, - 동녕부
- 원이 자비령 이북의 고려 땅을 직접 다스리기 위해 서경에 두었던 관청으로 1270년 설치되어 충렬왕 때(1290)에 반환함
, - 탐라총관부
- 원이 삼별초의 난을 진압한 후 제주도를 직접 다스리기 위해 설치한 관청으로 충렬왕 때 반환함
설치
- ②
- 정동행성 : 일본 원정 실패 후 고려의 내정 간섭
- ③
- 정치 제도 및 왕실 호칭 격하
- ④
- 인적·물적 수탈 : 공녀와 환관 제공, 특산물 진상
- ⑤
- 문화 교류 : 고려에 몽골풍, 원에 고려양 유행
- ⑥
- 독립국 유지 : 원의 부마국이 되어 독립국 지위 유지
- (2)
- 권문세족의 성장
- ①
- 특징 : 친원적, 고위 관직 독점, 음서, 대농장 소유 등
- ②
- 폐해 : 농장 확대, 몰락 농민의 농장 편입 → 국가 재정 궁핍
- ③
- 충선왕·충목왕의 개혁 : 원의 강력한 내정 간섭, 개혁지지 세력 미비, 권문세족의 방해 등으로 실패
- 03
- 공민왕의 개혁과 새로운 정치 세력의 성장
- (1)
- 공민왕의 개혁 정치
- ①
- 반원 자주 정책
- ㆍ
- 몽골식 복장과 변발 금지
- ㆍ
- 정치 제도와 왕실 호칭 복구
- ㆍ
- 정동행성 폐지
- ㆍ
- 친원 세력 숙청
- ㆍ
- 쌍성총관부 공격으로 철령 이북 회복, 요동 지방 공격
- ②
- 내정 개혁 : 왕권 강화,
- 전민변정도감
- 고려 후기 토지와 백성을 올바르게 바로잡는다는 기관으로 권문세족들이 불법적으로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거나, 자신들의 노비로 만드는 것을 바로 잡고자 한 관청
설치(신돈 등용)
- ③
- 개혁 정치의 실패 : 권문세족의 반발, 외적의 침입으로 국내외 정세 불안, 공민왕의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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