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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19 00:35
[기타] 사도세자는 뒤주에서 죽지 않았다.
 글쓴이 : 카타
조회 : 5,571  

역사 게시판이 따로 없는 거 같아서 여기에 올려봅니다.


최근 책을 읽다가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었다는 건 뻥이라는 대담하고 과감한 추론을 한 글을 봤습니다. 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어 그 글들을 참고해 근거들을 요약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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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뒤주이야기는 한중록에서만 전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뒤주이야기가 처음 나온 곳은 다름 아닌 한중록이다. 하지만 당시 쓰여진 어떤 기록을 찾아봐도 뒤주 이야기는 없고 그저 '가두었다'고만 적혀있다. 많은 학자들이 노론인 홍씨 가문 출신인 혜경궁 홍씨가 노론의 적이었던 사도에 대한 기록을 중립적으로 썼을리가 없다면서 한중록을 믿지 않는데, 이상하게도 뒤주이야기는 믿는다. 아마 오랜 세월 정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인 듯하다. 심지어 혜경궁조차도 사도가 뒤주에 갇히는 것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당초 한중록 자체도 그 당시에 바로 쓴 게 아니라 수십년이 지난 후에 홍씨 혼자 생각나는대로 기록한 글이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승정원 일기'가 불타버려 객관적인 기록을 알 수가 없다.


2. 뒤주가 놓인 곳은 휘령전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뒤주가 놓였다고 전해지는 곳은 다름아닌 휘령전이다. 휘령전은 역대 왕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으로, 조상을 소중히 여기는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궁궐 내에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그런데 세자는 뒤주에서 8일 간 생존해 있었다. 정말 세자를 가둔 뒤주가 그곳에 있었다면, 아마 처리하지 못한 똥오줌 냄새가 진동을 하였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세자는 알다시피 심각한 정신병 환자였다. 일반인도 견디기 힘들텐데, 정신병이 도진 세자는 괴성을 지르며 발광을 했을 것이다. 똥오줌이 진동하고 미친 사람이 좁은 통속에서 발광을 하는 그런 지옥이 8일이나 연출되었다고? 그것도 어디보다도 엄숙해야할 휘령전에서? 아마 '왕이 미쳤다!'며 반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반란 조짐은 커녕 신하들의 반대 상소조차 일절 올라오지 않았다.(이 상소이야기는 뒤에서 자세히 기술하겠다)


3.세자는 병에 걸린 상태에서 8일이나 생존해 있었다.


알다시피 사람이 물을 마시지 않고 살 수 있는 기간은 3일 남짓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당시 세자는 정신병은 물론이고 육체적인 병도 앓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 세자가 물도 음식도 없이 8일이나 생존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이게 말이 안된다고 보는 건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는지 "물은 빗물을 받아마셨다", "뒤주에 구멍을 뚫어 음식과 옷가지를 들여보내주었다"는 야사가 전해진다. 빗물 얘기는 그렇다쳐도, 구멍이야기는 전혀 말도 안되는 소리다. 뒤주가 얼마나 작은데 거기에 음식과 옷가지를 들여보낼만한 구멍을 뚫을 수 있었다고? 영조가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며, 그 정도 크기의 구멍이 있었다면 사실상 가둔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4.당시 뒤주 처벌에 반대하는 상소가 일절 없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반대 상소가 일절 없었다는 것도 이상하다. 여기에는 당시 사도세자의 반대파인 노론이 조정을 장악했기 때문이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건 아주 무식한 소리이다. 아무리 반대파라 할지라도 세자가 죽는데 반대상소 하나 올리지 않았을 리 없다. 설사 코웃음이 나오더라도 "세자를 죽이시렵니까, 그만두소서"라고 빈말 한마디 정도는 나와야 정상이다. 게다가 노론이 조정을 장악했다고 하더라도 소론이나 남인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조차도 상소를 전혀 올리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들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는 사도가 죽어가는데도 말이다.


기록에 따르면 사도가 어딘가에 가두어진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대체 세자는 어디에 가두어진 것일까? 아마 뒤주가 아니라 골방에 가두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건 조선시대에 왕실사람들이 벌을 받을 때 흔히 사용되던 방법이었다. 대표적으로는 인조가 소현세자의 세자빈인 강빈을 벌줄 때도 골방에 유폐시켰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까의 구멍이야기도 설명이 가능하다. 골방에 구멍을 내서 그곳으로 옷가지와 먹을 것을 들여보내준 것이 뒤주의 이야기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실제로 강빈도 그렇게 먹을 것과 옷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즉 당시 신하들에게서 상소가 없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막나가는 세자를 벌하기 위해 골방에 가둔 "엄한 꾸중"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뒤주에 가두었다면 그것은 엄한 꾸중으로 볼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것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죽이겠다는 의도가 명백한 처벌이다. 그랬다면 상소가 하나도 없을리가 없다.


5.영조는 세자에게 그런 엽기적이고 잔혹한 처벌을 내릴 이유가 없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다. 아버지가 아들을 굶겨죽이다니, 한국사는 물론이고 세계사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천륜을 거스르는 엽기적인 형벌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형벌을 내릴 만큼의 이유가 영조에게는 전혀 없었다. 정말 아들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아버지였다면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영조는 사도가 비행을 저지르기 이전에는 '아들바보'로 생각될 정도로 사도세자를 끔찍히 사랑했다. 당시 <영조실록>을 보면 알겠지만 무슨 육아일기처럼 "세자가 ~을 했다.", "세자가 무슨 책을 읽었다", "왕이 세자를 기특하게 여겼다", "세자가 병이나자 왕이 식음도 전폐하고 안절부절 못했다"는 기록이 가득하다. 영조는 세자를 처참하게 죽일 정도로 비정한 사람은 분명히 아니었다. (당초 '사도'라는 시호 자체가 영조가 직접 하사한 것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영조는 이복 형인 경종을 독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재위기간 내내 받았고(지금도 받고 있다), 그걸 떨쳐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쓴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아들을 잔인하게 죽인 비정한 아버지"로 낙인 찍힐 행위를 했을까.

("뒤주에 그냥 벌주려고 가두었는데 의도치 않게 죽었던 건 아닐까?"라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정말로 뒤주에 가두고 8일이나 방치했다면 죽으라는 소리이다.)


거기다 1999년 말에 재조명된 문서에 따르면 영조가 사도의 죽음을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다음은 1969년 처음 발견되었으나 깨친 채 잊혀졌다가 1999년 말에 복원되어 대중에 공개된, 영조가 친필로 청화백자에 적은 묘지명에 나온 내용이다.


"아아, 13일의 일을 어찌 내가 즐거이 하였겠느냐? 어찌 즐거이 하였겠느냐? 만약 네가 일찍 마음을 잡았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느냐. 강서원에 여러 날 가두어둔 것이 종묘와 사직을 위함이 아니더냐? 백성을 위함이 아니더냐? 이런 생각을 하며 진실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다. 그런데 9일째에 네가 뜻밖에 죽었다는 비보를 받았다. 너는 어째서 일흔의 아비에게 이런 경우를 당하게 하였단 말이냐." -<영조어제 사도세자 묘지명>


여기에도 강서원에 가두었다'는 말은 있지만 뒤주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진실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다"는 말도 뒤주에 가둔 게 사실이라면 웃음 밖에 안나오는 말이다. 뒤주에 가두고 8일 간 방치한 것에서 이미 죽음은 예견된 것으로, 아무일도 없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영조가 세자의 죽음을 얼마나 안타깝게 여겼는지 구구절절 드러나있다.

물론 죽게 해놓고 괜한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어차피 왕도 못될 평판을 받게 됬는데 살아서 뭐하나.... 다음 왕 발목이나 안잡게 죽는 게 낫지."라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죽이는 방법이 하필이면 뒤주에 가둬 아사시키는,조선에서는 한번도 없던 황당한 방법일 이유는 전혀 없다. 정말 죽이려 했다면 조선시대에 가장 흔하고 고상한(?) 방법인 사약을 내리는 것이 전례에도 맞고 여러모로 깔끔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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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을 정리해보면 한중록을 제외한 다른 기록에 적힌 '가두었다'는 건 바로 강서원의 골방을 말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사도세자의 죽음이 워낙 충격적인 것이었기에 여러 낭설이 만들어졌고, 뒤주이야기도 그 때 만들어진 도시전설 중 하나였을 겁니다.

이런 논란이 지속되는 건 무엇보다 당시 기록이 상세히 서술된 '승정원 일기'가 소실된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혹시 관심있으신 분은 아래의 책을 참고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것 말고도 여러가지 이유를 장황하게 써 놨거든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말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은 게 아닐까요? 아님 이 글이 단순한 억측일까요?


(자료 참고 : <왕이 못 된 세자들-잠수함의 토끼>,함규진, 김영사)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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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좀와라 15-10-19 00:56
   
뒤주형은 근세기 까지 존재 했다고 합니다. 얼마전 조선일보에서 뒤주형을 받는 여인의 사진을 독일인이 찍은 사진을 게시 했는데 유료 기사라 못 올립니다. 그 사진은 몽골에서 촬영 되었고 촬영기사는 몽골인들이 저 형벌은 만주에서 전래된것이라 했답니다.

결론은 사도세자는 뒤주형을 받은 것입니다. 뒤주형은 아사를 목적으로 한 것이고 또 사진에서 보면 팔이 나올만한 구명이 있습니다.
     
모니터회원 15-10-19 01:28
   
          
카타 15-10-19 01:44
   
사진을 보니 확실히 저 책의 저자가 지적한 부분인 구멍 이야기는 모순이 있는 거 같긴 하군요. 근데 궁금한 게 한가지 있는데, 몽골에서는 그런 형벌이 있었어도 조선에서는 사도세자가 처음으로 뒤주형을 받은 거 아닌가요?
          
비좀와라 15-10-19 02:06
   
블로그에서도 써 있듯이 조선에서는 생소한 형벌 이었던 것 같습니다.

용케도 그런 형벌을 찾았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소계창효 15-10-19 01:30
   
알다시피 사람이 음식물 없이 살 수 있는 기간은 3일 남짓으로 알려져있다

에서 신빙성이 없음...
     
카타 15-10-19 01:41
   
음식에도 물이 포함되어 있어서 음식까지 포함하는 의미를 어떻게 쓸까 안그래도 고민을 했는데 역시 음식물 보다는 물 이 더 맞는 표현인 거 같네요. 수정하겠습니다.
쌈바클럽 15-10-19 14:24
   
사실은 알수 없지만 글을 읽어보니 설득력 있게 다가오네요. 물론 역사적 지식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만약 애초에 죽음을 염두해 둔 형벌을 내리려 했다면 절차상 폐세자가 먼저가 아닐까 싶은데 제가 알기로는 세자 신분으로 죽음을 마지한것 같아서요.

세자가 개차반에 쓰레기 짓을 해서 굳이 죽이려면 세자 신분으로 죽게 하진 않았을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보통은 그정도 정점을 찍은 왕족은 평민으로 강등당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형벌이기도 한데 굳이 목숨까지 빼앗고자 한다면 그나마 왕족의 체면을 염두한 방법이 보편적이지 않나 싶어요.

막말로 그렇게 참담한 방법으로 죽게됐더라도 최대한 보편적인 방법으로 죽은걸로 미화하거나 묘사할 필요성이 있겠죠. 아무래도 왕족의 죽음은 왕에게도 영향이 있으니까요.

그런 모든 점들을 고려해 봤을때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반대파인 노론만이 진실을 전하는 것일 수도 있고, 노론이 악의적으로 서술 했을 수도 있다고 봐요.

진실은 정말 알기 어렵지만 재미있는 얘기 같아요. 글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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