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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14 21:33
[몽골] 고려출신인 기황후가 어떻게 원나라 황후자리까지 올라갔죠?
 글쓴이 : purenature
조회 : 7,024  

기황후 1.png


고려가 원나라 황실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 쎘나 보죠?


단순히 신분이 높다거나 공녀로 황실에 들어갔다고 해도


황후자리까지 올라가기에는 그를 뒷받침해주는 정치세력이


원나라 내에도 형성되어 있다는건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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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게임 15-10-14 21:43
   
공녀는 원래 궁녀나 높은 신분의 남자에게 주려고 데려가는 거죠.

중국 땅에도 하녀는 썩어남을 정도로 많은데 뭐하러 그런 자원을 고려나 조선에 요구하나요.

공녀로 가서 높은 신분이 되는 경우가 꽤 많아요.
     
mymiky 15-10-14 22:22
   
원나라는 몽골왕조입니다.
지배층인 몽골인들은 인구가 적었습니다.
적은 인구의 지배층이, 무력으로 다수의 피지배층을 다스리던 나라였어요.

애초에, 초원생활을 하던 애들이라, 정착생활같은데 익숙칠 않았는데,
농경지대인 중원을 손에 넣고, 자연히 중국의 영향도 받아들였죠.

그래서, 벽돌로 황궁도 짓게되고,
몽골의 대칸이면서, 중원의 황제라는 양면성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황궁에서 부릴 노동력이 필요해지게 되는데
그렇다고 한족들을 궁에 채워넣고 부리자면, 제일 쉬운 방법이겠으나

몽골인들은 한족들을 견제했고, 걔들이 음식에 독을 넣을지도 모르는거고..
별로 믿질 않아서,
차라리 한족들보다 몽골에 협력한 색목인들이나 고려인들을 부리게 됩니다.

특히, 고려는 부마국이기도 하고, 
친척인 고려왕이 엄선해서 보내준 사람들이라고 여겨졌기에
원에서 평가가 나름 좋았습니다.

또,
한족이 아니면서도, 고려가 한자 문화권이라 일석이조라고
한자를 잘 모르는 몽골인들의 고충을, 원조정에 출사한 고려 관리들이
한자로 올라온 문서처리, 행정일 등을 해주니 쓸만하다는 평가를 했죠.

이래저래, 원은 제국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세력을 얻어서 잘 굴려먹은 거라고 보면 됨.

물론, 운이 좋으면 후궁도 되겠지만, 공녀 대부분은 타향에서 죽을때까지 일하다 죽었겠죠..
대신, 황궁에 줄이나 인맥을 댈수 있다는 이유로, 고려 친정에는 약간의 이득이 있긴 했을 겁니다.
 
물론, 한번 가면 다시 고향으로 못 온다는걸 각오하고 가는거라
그런 점에서 강제성은 있었고, 가족들간의 헤어짐을 비관해 xx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게 고려말 사회문제가 된 공녀의 폐단중에 하나죠.
mymiky 15-10-14 21:45
   
첫번째 질문의 답은, 고려가 원 황실에 미치는 영향보다,
당연히 원나라가 고려에 미치는 영향이 더 쎘습니다. 
애초에, 고려가 원에 항복하고, 부마국된거니까요.

글고, 기황후 이전에도 원 인종의 2황후, 3황후 모두 고려인이였습니다.
후궁들까지 합치면 더 있었을꺼구요,,
애초에, 원나라 황실에는 고려출신의 공녀(운이 좋으면 후궁도 되고), 환관,
원나라 과거에 합격해 출사한 관리들, 등이 있었구요.

(원나라가 유목민족인 몽골계 국가라서 상당히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의 왕조였음.
다양한 민족이 부용 민족으로 속해있었고, 한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중앙아시아 계통의 색목인들과 고려인들을 중간관리로 두었습니다.)

다만, 기황후가 유독 유명한건, 정실황후까지 올라가본 유일무일한 고려여자였고,
태자의 생모인데다, 원과 - 고려 양국에 깊은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죠.

원과 고려 양국의 황족들이 통혼을 하기 시작하니,
자연스럽게 양국의 상류층의 귀족들도 정략결혼을 하기 시작했어요.
권력을 나눠먹기 위해서랄까?

그들만의 카르텔(담합 집단) 같은 것입니다.
     
purenature 15-10-14 22:18
   
한마디로 고려나 원나라 황실과 상류 귀족층들이 서로 혼인관계를 맺어 양국의  정치적 파워와 스탠스를 유지했다는거네요.
mago 15-10-15 01:22
   
맞습니다 고려왕실이 원 황실의 일원이였으니 영향이 있었죠 몽골에서 고려왕을 임명했듯이 고려왕실도 황가의 일원으로 원황실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어느정도냐면 황제승계에 영향을 미칠정도로요. 일반적인 패전국의 스탠스는 아니였던것이  고려는 몽골에게 패한것이 아닙니다  원에게 항복했죠 할아버지조차 굴복시키지 못한 고려를 복속했다는 위엄은 쿠빌러이에게 몽케의 뒤를 잇는 차기 황권을 위한 엄청난 뒷배로 작용했고 쿠빌라이도 그런  고려왕실을 패전국의 왕족이 아닌 저신의 딸을 시집보내 황가의 일족으로 대접합니다.원황실에 비하면 밀리지만 원나라에서는 몽골일족과 같은 대접을 받죠 어느정도냐면 몽고가 고려를 통치하기위해 보낸 총독 다루가치가 고려왕실에게는 찍소리도 못하죠
     
mymiky 15-10-15 02:37
   
당시, 쿠빌라이와 원종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는 부분이 있어서,
서로 사바사바를 한거죠.

원종은 고려의 국체보존과 무신정권에 추락한 왕권을 회복하고자 했고,

쿠빌라이는 아릭부케와의 싸움에서 승점을 얻고, 장차 원나라 동쪽의 위험요소를 차단하면서
동맹을 하나 얻는 모양새가 되었으니까요. (물론, 일본원정이란 삽질이 있긴 했지만 -.-;;)

충렬왕이 몽골 공주랑 혼인하면서, 부마가 되어, 황족일가로 들어간거라

고려에 다루가치가 있을 필요가 있음?
그냥. 고려왕이 하던데로 알아서 하라~고 해서

대몽 항쟁기부터 고려쪽에 보내던 다루가치를 안 보내게 됩니다.
그뒤 행정관이 아니라, 주로 고려에 사신으로 보내는 형태이고

고려왕 본인 스스로가
원의 부마왕-이란 작위를 가졌기에, 걍- 귀족신분인 다루가치가 나댈수가 없었죠.

전에, sbs 대풍수에서,
원나라 다루가치가 고려왕을 막 우습게 깔보던 장면이 나오던데 -.-
황당하더군요;;; 

물론, 주인공이 반원정책의 대명사인 공민왕이여서,
공민왕 띄워주려고, 그런 원나라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의기있게 일어난 우리 전하..
뭐 이런 캐릭터로 그려지기 위해서 그렇게 묘사한거 같지만?

다루가치가 그리 날뛰다간 목 날라가기 쉽상임.

(공민왕때는 고려왕보다 직급이 낮은 다루가치보다,
고려의 실세로써,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날뛰는 스토리가 사실에 맞음 )

(단, 유일하게 다루가치에게 걷어차인 고려 왕이 한분 계시는데, 그 양반이 충혜왕-.-
그게 다루가치 본인이 뜻이였다기 보다,

충혜왕의 패악이 원나라에까지 알려져(  과부가 된 원나라 공주 출신인 젊은 계모를 강제로 덮침;;)
폐위당하면서, 원 순제가 그 미친놈을 니가 내 대신 한방 갈겨줘!
뭐 이래서, 다루가치가 황명을 따라 고대로 행해준 것임.

여러모로, 충혜왕은 역대급임;;; 이런 인물을 괴황후에서 미화했지 ㅋㅋㅋ
비좀와라 15-10-15 02:18
   
고려와 몽골의 결혼동맹은 양국간 굉장한 의미를 부여 합니다. 왕실간의 혼인에 있어서 부계사회와는 달리 모계사회에서는 여성의 권한도 남성 못지 않습니다. 몽골의 공주가 고려 왕과 혼인을 하더라도 몽골 공주의 권리 (재산이나 영지등)는 그대로 가지고 갑니다. 고려 왕 입장에선 절대로 손해나는 입장이 아니고 몽골로서는 굉장히 고려왕을 우대하는 것 입니다. 지금 재벌간의 결혼을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몽골과 고려가 모권이 강한 사회다 보니 친손만이 왕위를 이울수 있는 것이 아닌 외손도 왕위를 이울수 가 있는 사회 구조이고 더군다나 몽골은 부계문화인 세습보다 쿠릴타이을 통한 선출(모계문화)로 왕위 계승을 하던 사회에서 고려왕을 사위로 들임은 몽골이 고려에게 대단한 특혜를 준 것입니다. 고려왕의 권력이 강화되어서 몽골 황제가 되어도 황제의 정통성에 문제가 되지 않는 구조라 보시면 됩니다. 실제로 고려왕의 왕위 계승 서열은 꽤 높았습니다.  사실 이건 몽골 만의 풍습이 아니고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나라가 다 있는 사회 구조입니다.

소수인 몽골이 다수인 한인들을 통치하기 위해 타 민족과 전략적 제휴를 하는데 고려는 동계로서의 인식도 있었던 바 좋은 전략적 파트너 였다고 봐야 합니다. 위그르와 투르크는 몽골과 혈연과 문화에서 상당히 가까운 존재 였으니 처음부터 전략적 파트너 였고 고려 역시 많은 이들은 부정하나 몽골, 위그르와 투르크 등과 당시에는 상당히 가까운 존재로 교류하고 있었다고 봐야 하니 몽골의 좋은 전략적 파트너 였었다고 봐야 합니다.

동맹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통혼이상 가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점령하고 양 민족 귀족가문 끼리의 통혼을 권장 한데서 알 수 있듯이 통혼이란 과거에는 가문과 민족 그리고 국가간에 굉장한 의미를 가졌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몽골은 한족과의 통혼을 법률로 금했는데 고려는 허용 함에서 몽골의 고려에 대한 인식을 알 수가 있는 겁니다.

더군다나 다음 황위를 이울 자의 어머니에 고려인 황후를 임명한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이라 봐야 하는 것 입니다.
     
mymiky 15-10-15 03:04
   
고려왕과 혼인한 몽골공주들이 재산(예물을 빵빵하게) 챙겨온건 사실임.
뭐, 그걸 해줄만큼 중국대륙의 물량빨이 되기도 했었고..

대신, 재벌간의 결혼이 흔히 그렇듯,
정략결혼으로 인해 행복했던 공주들이 거의 희박하죠 -.-;;
노국공주만 빼고, 다 결혼생활이 파탄, 별거, 걍 왕실 행사때만 서로 얼굴 보는 사이,
충숙왕비 하나는 부부싸움중에 구타로 사망. 또 하나는 의붓아들에게;;; 더이상 패스~
충혜왕비는 남편에게 마음을 비우고, 대신 측근들을 애인으로 두고 바람폈다는 ㅋㅋㅋ

난, 왜 이 시대 사극을 방송국에서 안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ㅋㅋㅋㅋㅋ
막장드라마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ㅋㅋㅋ 이런 막장 소재를 그냥 뭍어두고 있으니 -.-

단, 모계권을 말씀하시는건 약간 오류가 있는거 같네요.
몽골이 유목민 특유의 모계권이 강한건 맞는데,
중원에 들어와선 좀 달라지기도 하고 그러한 부분은 있어요.

초기에 유목민 특유의 쿠릴타이로 가장 강한놈을 선출하던 것이,
점차 아들에게 세습적으로 이어나가게 되거든요.
물론, 원나라가 적장자 상속제를 강하게 한건 아니라지만..
후대왕들은 쿠릴타이로 올라간 케이스가 거의 없습니다.

외손도 왕위를 이을수가 있다는 것도 좀 잘못된거 같네요.
당연히 몽골 또한 남자후계 우선입니다. 남계가 끊어진적도 없구요.

고려왕의 왕위계승 서열?이 뭘 말하는건지 모르겠군요 -.-;;
충선왕의 어머니의 경우, 쿠빌라이의 막내딸이였습니다.
이미, 위로 오빠들도 많았는데, 충선왕이 외손으로
원나라 보르지긴 집안의 황위에 낄 자리는 없습니다.

본인 충선왕과 그 후손들은
당연히 고려왕가 王씨 집안의 자손으로, 고려국의 왕위계승권자이지.
원나라의 황제 계승권자는 아닙니다.

그것과는 별개입니다.
 
다만, 충선왕이 친척이다보니, 원에 있을때,
원의 황위계승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자기와 친했던 카이샨(원 무종)을 옹립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건 있었는데,

이것을 다소 오해하시는듯 하네요.
mymiky 15-10-15 03:44
   
글고, 기황후가 잘한건, 뭐니뭐니해도,
황제의 장남을 보란듯이 낳아줬고, 또 그 아들이 요절하지 않고,
성인까지 잘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데는 여러가지 운이 따랐고, 황제의 총애도 있었지만요.

훗날, 기황후도 나이를 먹고, 점차 총애를 잃었어도
아들이 있기에 황후로써, 계속 황궁에서 파워를 행사할수 있었습니다.

사실, 원순제 후기엔 둘의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기황후가 궁중 쿠테타로 지 아들 앉히려고 해서, 원순제가 노발대발하며 냉대함)
그래도 황제가 아들 때문에,  또 기황후와의 옛 정을 봐서 참아준게 크죠..

원순제가 어릴때부터 고아가 되서, 고려로 유배도 오고, 황족이지만 권력투쟁 속에
어렵게 어린시절을 보낸 사람이라 애정결핍이 좀 있었거든요...
기황후가 황제의 이런 약한 심리를 잘 파고 들었고요.

기황후쪽이 연상이여서, 다정하게 어린 남동생을 다독여주는 예쁜 누나 컨셉으로//
(광해군- 김개시랑도 이런 관계였다죠?  김개시 얼굴은 별로였다지만.. )

원 순제가 어렵게 황제에 올랐는데,
사실 태후(타환의 숙모) 드라마에서 김서형씨가 했었던 역활- 원래는 이분의 아들이
원순제 다음번 황제로 올라가기로 미리 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근데, 아직 아이라서, 당시 초딩은 되었던 원순제가 땜방으로 오르고,
사촌동생이 어느정도 자라면
태자로 만들어서 후계 황제가 되기로 했었죠,,

어느덧, 원순제는 청년으로 자랐고, 또 첫사랑인 기씨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으니 생각이 바뀝니다.
자기 아들에게 다음 보위를 주고 싶은게 부모 맘이고,
외롭게 자랐던 원 순제는 가족이란 관계에 상당히 애뜻함이 있었기에

이대로 있을수 없다며
숙모인 태후랑 사촌이랑 정치적으로 숙청해버립니다.
물론, 거기엔 아들의 미래를 위해  기황후도 지지했구요.

사실, 한나라 무제나 조선의 숙종, 영조 같은 왕이였으면,

아들이라도 반역하다 걸린 장남을 그냥 처형해버리고, 그 모후도 폐비 만들어 쫒아내고
뭐 그랬어도 할말 없었을 상황;;

하지만, 원 순제 본인이
원나라 명종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어릴때 고생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자기 아들(특히 장남인 아유시리다라)가 본인처럼 고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거 같습니다.

기황후 모자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끝까지 버리진 않았던걸 보면요.

그래서 막판엔
태자의 생모로써, 정실황후로 만들어주고, 그래도 아들에게 황위도 물려준걸 보면
이 정도면, 좋은 황제는 안 되었지만,
좋은 아버지나 남편은 되었던거 같네요..

뭔가, 약삭빠른 기황후는 황제를 잘 이용한거 같고
의외로 순정파에 예민하고 감성적인 성향의
원순제는 평생 코가 꿰인 것 같은? -.-;;
     
purenature 15-10-15 05:13
   
기황후가 실제로도 원순제보다 연상이었고, 원순제가 이민족인 고려여인을 정실황후로 책봉한 것을 보면 상당히 기황후를 총애했다는건 맞는거같네요?
물론, 거기에는 황위를 이을 아들을 낳아줬다는 당위성이 가장 크게 기여했겠지만
넌몰라도되 15-10-15 09:01
   
원순제가 태자시절
고려에서 귀양살이했다가 황제로 책봉되어 귀국할 때 고려에서 정을 통했던 기황후를 같이 데려간게
가장 큰 이유 아닌가?
     
mymiky 15-10-15 10:39
   
이분 괴황후 드라마를 너무 심취해 보신 분인듯 ㅋㅋㅋㅋㅋ

먼저, 원순제는 태자시절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일단, 원 말기에는 난세였기에, 막 왕위가 왔다 갔다해서 좀 복잡한데

아버지 원나라 명종황제가 엘테무르(연철)에게 독살당한뒤,
연철은 명종의 동생(문종- 순제의 삼촌)을 등극시켰고, 그가 죽은뒤에 문종아들
(드라마의 김서형씨가 바로 문종의 황후였음. 너무 어려 거절하자)

꿩대신 닭이라고 역시나 꼬맹이인 원순제의 동생 영종(당시 6세)을 꼭두각시로 세우는데,
애가 40일만에 그만 요절해버림;;;

당황한 연철이, 할수없이 유배중이던 원 명종의 아들 원순제를 불러들임.

원순제가 고려에 유배왔을때 고작 10살(1320년 생)입니다.
고로, 기황후랑 만난적도 없고, 정을 쌓고 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원순제도 10살 꼬맹이였지만
아버지가 독살되고, 정치싸움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한 조숙한 아이였던 그는
묵묵한 인내심으로 그후, 조용히 버텨서,
연철이 죽자, 그제서야 겨우 황제노릇을 제대로 할수 있었습니다.

기황후와 사이에서 장남 아유시리다라(1338)를 낳은 나이가 19세니, 아마?
그때쯤 차를 따르던 봉차궁녀인 그녀와 만난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는 기황후가 약간 연상이였으니(위키에선 1315생으로 나오는데, 소스가 어딘지 모르겠음)
13살에 즉위한 원순제니까, 적어도 기황후는 5살이내로 잡아도, 기황후는 18살 안팍이고
황제의 측근에서 어여쁘고 다정한 누이 컨셉으로, 눈도장을 찍었다가

원순제가 18,19세가 되자 승은을 내려준 것일수도 있고요.
아무튼, 기황후가 왕자를 낳을때 20대 초중반이였음.

둘은 대청도가 아니라, 원나라 황궁 안에서 만났습니다.
     
purenature 15-10-15 10:54
   
드라마랑 역사적사실이랑 완전 달라요.
기황후는 차따르는 궁녀로 원 황실에 가서야
황제랑 만나는거지, 드라마처럼 고려 유배지에서
처음 만났다는건 완전소설.
          
mymiky 15-10-15 11:59
   
첫 만남도 그렇지만..

드라마상의 괴황후가 모국인 고려를 위해 열심히 발벗고 뛰고
불쌍한 고려백성들을 위해 눈물도 흘리고 ㅋㅋㅋㅋㅋ

잔다르크형 애국자 캐릭터로 그려진거 부터가 고증에 어긋나죠.
그래서, 욕을 쳐먹었고..

기황후는  고려 백성들이 굶어죽든 얼어죽든
고려에 있는 자기 친정 식구들만
잘먹고 잘 살면, 그것으로 충분히 만족했던 여자였는데 ㅋㅋㅋ

고려가 모국이라도 딱히 해준것도 없었고
(열렬 불교도라, 고려의 유명사찰에 시주는 많이 한게 업적이 되려나?)

신데렐라인건 맞는데, 그게 다임.
검은머리 외국인.

원나라 황후니까,
원의 국익에 따르는게 뭐, 맞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ㅋㅋㅋ

공녀제 폐지/ 입성론 반대는

반원정책과 부원배 숙청작업으로
공민왕 업적인데
인터넷 상에서, 
 
기황후 업적인양 잘못 알려진 정보고-.-;;

위에 고려사찰에 시주 많이 해준거랑
고려양 유행시킨거 정도가
모국 고려에 관련된 그녀의 사실적인 업적임.

그외엔, 드라마 작가들이
주인공을 민족영웅 캐릭터 만들고자
미화시켜서 꾸민거..

그래도, 마지막 화에 작가가 욕을 먹어서 그런지
꼽사리로, 덕흥군 보내 고려침략한게 대사로 나오긴 했음ㅋㅋㅋ
               
purenature 15-10-15 12:12
   
드라마에서는 원순제가 기황후 없으면 죽고 못사는 애처가로 나오는데, 실제로도 그정도였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ㅋㅋㅋ
그리고 충혜왕이 왜 고려를 위한 애국군주로 나왔는지 정말 다른건 다 수용하고 볼 수 있는데, 그 부분이 최악의 왜곡이었죠.
                    
mymiky 15-10-15 12:37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원순제 후궁 많습니다 ㅋㅋㅋㅋㅋ

위에서도 말했지만.
기황후도 나이 먹고, 미색이 흐려지면서
황제의 흥미가 시들해졌고,
자연히 주변에 젊은 여자들이 황제를 유혹하는데,
걍.. 여느 중년부부와 다르지 않게
그저 황제와 황후 부부로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더더욱 기황후는  아들에게 기대를 걸고, 아들만 보고 살았고요.

태자라도 없었다면? 또는 공주만 있었더라도
걍 뒷방에서 조용히 늙어갔을테지만..

그녀에겐 태자가 있었기에, 태자의 생모로써 권력을 놓지 않았죠.
그것이 권력의 원천이기도 했으니까,, 

쿠테타가 발각되어, 원순제가 됫통수 맞은거에 부들부들 떨었지만
어쨎거나, 태자를 봐서, 그리고 옛정과 의리를 생각해서 봐준거라니까요 ㅋㅋㅋ
쿠테타가 실패하자, 기황후가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던 것도 있지만..

-.- 뭐 하여튼간에..
여자들은 많았습니다.
일부다처제 시대였고, 황제가 많은 후비들을 거느리는건 전혀 이상할게 없습니다.

동시대,
고려의 공민왕 같은 왕이 정말 희귀한거죠-.-
     
비좀와라 15-10-15 14:53
   
공민왕은 특이한 케이스라 할 수 있습니다.

노국공주가 대단한 절세미인이라기 보단 보이시 한 스타일 이었다고 하네요.

노국공주 사망 후에 공민왕이 남색에 빠진 것도 아마도 공민왕이 게이적인 습성이 있었지 않나 합니다.
          
mymiky 15-10-15 23:09
   
노국공주가 어찌 생긴지는 자료가 없습니다.

보이시한 스타일?이란 글도, 어느 신문사 칼럼에서
공민왕 말년기록을 볼때( 님 말씀처럼 공민왕이 남색했다?는 기록을 볼때)

노국공주가 보이시한 중성적인 매력의 소유자이지 않았을까?라는 뉘앙스의 글을
칼럼으로 실은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시고, 님이 잘못 아시는 듯 합니다.

이제까지 노국공주의 생김새에 대해 내려져오는 기록은 전무(全無)합니다.
따라서, 보이시- 하니 어쩌니? 그건 우리가 알수 없죠.

전, 공주 사후 공민왕이 남색에 빠졌다?는 고려사 기록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우왕도 신돈의 아들이라고 적고 있으며,

사실상, 공민왕 말기 기록은,

조선시대 들어와, 조선의 개국공신들이
고려사에 어느정도 손질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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