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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0-04 03:11
[기타] 임진왜란 전 조선의 생산력은 일본의 1.6배
 글쓴이 : 바람따라0
조회 : 5,863  

150만결, 임진왜란 전 조선의 총 식량 생산량을 가리킵니다.

 

결이라는 단위는 고려시대 면적을 의미했으나,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생산량의 단위가 됐습니다.

 

세종때부터 임진왜란 까지는 1=300두를 의미했고, 조선 후기 농업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된 후, 1=600두가 됐습니다.

 

두는 1말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150만결 * 300=> 45천만말,

1= 15

45천만말 = 3,000만석

 

임진왜란 전 조선의 생산력은 3,000만석이었습니다.

반면, 일본의 생산력은 1,850만석에 불과했지요.

조선의 생산력이 1.6배 높았습니다.

 

임진왜란의 피해로 조선의 결수는 30만결 수준으로 줄었지만,

그 후 꾸준한 복구 노력으로 조선 후기 다시 150만결 수준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생산성이 증가하여. 6,000만석의 생산력을 가지게 됐습니다.

 

일본이 6,000만석의 생산력을 가지게 된 것은 메이지유신에 들어서입니다.

 

, 조선의 생산력은 임진왜란과 같은 전란의 시기를 제외하고, 메이지유신 전까지 지속적으로 앞섰던 것입니다.

 

이런 생산력의 차이는, 경지면적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일본의 경지면적은 임진왜란 전후 160만 헥타아르에 불과했습니다.

18세기 이후, 적극적인 경작지 확장 노력으로 메이지유신 당시 302만 헥타아르로 늘어났습니다.

 

반면, 조선의 경작면적은 400만 헥타아르를 넘었습니다.

1910년 일본의 조사자료에 다르면 한반도의 경작면적은 422만 헥타아르였습니다.

 

일본이 조선의 생산력을 앞선 시기는, 홋카이도를 본격적으로 개발한 이후입니다.

 

일부에서 일본이 국력이 조선초기부터 앞서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근거 없는 주장입니다.

 

또한 조선인은 1인당 평균 240kg 수준의 식량을 소비할 수 있었습니다. 1인당 평균 100kg 대의 식량 소비가 가능 했던 일본인보다 월등히 윤택한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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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윙픽시 15-10-04 06:53
   
하지만 기형적으로 농업을 장려하고 상업을 천시해서 정작 중요한 재정, 자금력은 부족하지 않았을까요? 쌀이 돈을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굿잡스 15-10-04 11:51
   
당시의 면포,쌀,비단, 금,은 등도 다 엄연히 상품화폐들이군요. 오늘날 석유등도.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나 신용카드등은 신용을

전제한 대용화폐이고 가치 자체가 화폐가 되는 이런

것들은 본위화폐의 종류로 장점은 인플레이선 유발

이 적고 단점은 휴대에 불편.
          
솔로윙픽시 15-10-04 23:55
   
그렇군요!
냠냠돌이 15-10-04 07:34
   
전국시대 전쟁때문에 경작지 확충이 힘들어을텐데요
농사지을만한 젊은이들은 전쟁에끌려가고 전란에
수탈당하고 이런게 반복되다 도쿠가와시대에서 전란이
사라지고 경작지가 늘어다는게 제생각
Banff 15-10-04 09:59
   
통계라는 개념이 희박하던 시대의 수치인데, 이런글엔 소스라도 있으면 좋겠군요.
     
바람따라0 15-10-04 12:23
   
한국사를 보다 4
글 박찬영, 정호일|그림 문수민|리베르스쿨 |2011.11.25
87페이지 참조하세요.

----------------------------------------

경제학자가 본 한국사
(13) 조선시대의 인구 -장기 변동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51670741
     
구름위하늘 15-10-05 13:13
   
통계라는 개념이 희박하던 시대 == 조선시대 인가요?
조선시대는 기록문화가 활발해서 통계가 엄청나게 많은 시대인데요?
굿잡스 15-10-04 12:02
   
지금의 북한 조차 가공할 핵무기를 보유하고도 쌀

생산량이 부족해서 국가 기반이

흔들리는 판에 과거야 식량생산이 차지 하는

비중부터 전쟁도 먹을 식량 보급이 개판나면

이미 패배는 거의 기정사실에

산업혁명이라는 것도 화학농법의 발달로 비료, 기

계화등의 농업혁명에 근간 하는 것이지 아무리 금덩어

리 안고 있어도 먹을 식량이 없다면 도루묵.(잽강점기

잽의 수많은 수탈중에서도 이런 대대적 식량수탈

역시 공업화 진행을 위해서는 빠지는 대대적

농업 인력부족분을

대한제국을 자신들의 식량생산전초기지화를

통해서 메운 것임)

사람들이 언뜻 조선은 농업만 중시 어쩌고 단편적

으로 생각하시는데 고려말 극심한 혼란기와 여러 전란

에서 인구부양과 안정화의 직결은 다름 아닌 농업생산

성 향상과 인프라 구축이였기에 농업을 본으로 했지

만 한양과 이전 고려의 수도 개성은 상업의 양대 중심

지로 공무역이나 사신 접대등을 이유로 상업을 상당히

용인했고 이 때문에 특히나 정치적 제한이 있던 개성은

양반까지 상업에 뛰어들어 개경 성내의 사람은

거의가 상업종사자일 정도로 활발했군요. 이후

조선 후기는 인삼의 개발 성공부터 광업도 본격화

되기 시작했고. 면포 생산력 차이만 봐도 고려보다

조선이 5배 이상 높던 시기군요.  그기에 조선 초부터


세종대왕에 의해 농업 기술과 서적등 연구개발과

보급장려로 인구도 임진전란 아니였으면 계속해서

더 꾸준히 불어났을 거였고.(조선의 쌀 저장 수준은

인구대비 서토에 비해 거의 5배에 이를 정도로 세계적으로

도 탑레벨).
굿잡스 15-10-04 12:17
   
그리고 저게 당연합니다.

사람들이 자꾸 현재 모습으로 과거를 단순 투영해서

고정관념에 쌓이고 잽극우도 이걸 이용 자신들의

과거를 왜곡 미화하는데

엄연히 관동의 뻘진창 평야의 본격 개발은 도요토미 패망 후

도쿠가와의 17세기 에도시대에 가서 점진적으로 개발되었고 독립국인

류국인 오키나와나 원주민들 살고 있던 홋가이도등은

근대 메이지 시대에 가서 무력 복속에

15세기 전국시대 왜는 앞서 본토 우리 백제가 망하기 전에

의자왕과의

형제간 권력 싸움에 밀려난 부여교기가 열도에

이미 세력을 잡고 있던 곳에 천지천황에 오르고

구원군도 보내지만 백촌강 전투에서 박살 이후

일부 백제계 도래인이 서열도에 모여 본격적 우리나라 할때

나라현에서 나라헤이안 시대를 열고 이후 쿄토가

에도 이전까지 수도.  그기에 전국시대는 수십만 자국

여성들 인신매매 수출질등으로 조총 수입하면서

지들끼리 약탈경제를 하던 시기군요. 농지도

관통평야가 제대로 개발되던 시대도 아니였고.
굿잡스 15-10-04 12:25
   
1740년(영조 16년)경 강계산 자연삼은 상등품 1

근당 은 100냥, 중등품은 80냥, 하등품 은 60냥이

었지만 1752년(영조 28년)에 이르러서는 상등품

1근에 은 200냥, 중등품 은 160냥, 하등품 은 100

냥으로 12년 사이에 가격이 2배로 치솟 았다. 이러

한 환경은 개성상인들의 자본 축적을 촉진시켰다.

이 시기 연행사(燕 行使)를 통해 중국에서 판매된

인삼의 가격은 은 350냥에서 700냥 사이에 거 래

되었는데, 조선에서 거래되는 가격의 최대 7배에

이르는 가격으로 매각.>

조선 후기의 조선이 다시 발명 재배에 성공한

인삼은 동북아 주변국 심지어 태국등

동남아에도 유명 거래될 정도의 당시

은보다 훨씬 고가의 오늘날로 치면 바이오 의학품

이자 국제적

상품화폐용으로 부르는게 금값이였군요. 그기에

엄연히 쌀,면포등도 왜에 주력 수출 상품.

그외 조선은 서토와 왜간의 중심지라 중계무역을

통한 이익도 상당했습니다. 예를 들면 서토 비단

을 왜에 더 비싸게 팔고 은은 서토에 더 고가로

쳐주어 상당한 중계 이익을 올린. 지금의 네덜란

드나 홍콩도 중계무역으로 이득을 크게 얻고 있죠.
굿잡스 15-10-04 12:28
   
그리고 대한제국 시기 고종은 백동화부터 근대적

지전 즉 종이 화폐에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큰

3대 금광등을 통해 중앙은행의 금본위제도로 이행

중이였지만

잽의 방해와 러일전쟁 이후 대한제국의 조세권을

강탈하고 잽강점기 동안 천문학적 조세까지

수탈질을 하는데 그걸 떠나서 조선도 이미 17세기

중엽부터 광산개발에 개인의 참여를 열면서 광업

개발이 본격화되기 시작했군요. 설점수세제(設店 收稅

制)로 이런 상업에서 자본을 축적한 이들등에 의해 광업

개발을 개인에게 허용하면서 세금을 걷으면서 이

미 전국적으로 70여개가 성행했군요.

이는 당시 조선이 중계무역등으로

은의 수요 또한 필요해지고 국가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광업개발도 열지 않을 수 없던 시대 상황이였고

이게 성행하다 보니 통제가 안되는 잠채나 이쪽으

로 인력이 빠지면서 농업생산인력에 대한 우려도 있

었지만

하여튼 이로 인해 대자본 축적 상공인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게 되는 이유이군요

그리고 조선의 송도사개치부법이라는 서구보다 2

00여년 앞선 세계 최초의 현대적 회계복식부기의 등장과 근현대적 금융

거래장과 사용이 보편화.

조선의 근대적 자본주의 경영을 입증한 이런

자료들이 나온 시대적 배경입니다.
꼬마러브 15-10-04 12:29
   
일본열도의 인구가 한반도보다 많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충 어땠을지 감이오죠
굿잡스 15-10-04 12:30
   
참고로 왜는 조선의 은제련술을 배워 후기에 본격

적 은광개발에 박차를 가하지만 이게 넘 무분별해서

에도 말기로 가면 현격하게 줄게 됩니다.

이 때문에 화폐의 질이 나빠지면서 고인플레이션

으로 농민반란이 급격히 일어나고 막장화되는 가운데

미 흑선의 대포 몇방으로 불평등 문호개방까지 되

자 더욱 악화. 이에 대한 극도의 불만으로

지들끼리 칼질하면서 나온게 메이지 유신 어쩌고

였군요.

이 메이지 시대 사진보면 왜구 얘들 일반인들 사는

모습보면 무슨 저기 아프리카 토인 같은게 다 이유

가 있군요 그기에 외국인의 모습에 에도 도시가 무슨

동네 수준 어쩌고도 그냥 나온게 아닌.

이런 이들이 다시 자국여성인신 매매수출에 농민

고혈 빨아 근대 서양무기 도입과 군 근대화에 관치

주도로 몰빵하고 영,미등이 대규모 차관으로 근대

함선을 주고 교련을 시키면서 대리전으로 맞붙은게

러일전쟁.
비좀와라 15-10-04 12:31
   
뻘글 같지만요.

예수가 많은 이적을 행했지만 오병이어의 이적 후에야 왕으로 불리웁니다. 역시 정치는 잘 먹이는 사람이 장땡이지요 옛날이나 지금이나요.
세끈한펭귄 15-10-04 12:54
   
조선시대가 문제인 것은
농업에 지나치게 중시된게 아니라 상업을 천하게 보는 인식이 강해서겠죠
조선 후기에는 일본보다 인구는 적은데 쌀 생산량은 4배가 넘어서 대마도는 조선 쌀 수입에 식량을 전부 의존 일본 역시도 자국 생산량의 부족으로 조선에게 식량 공급을 의존할 만큼 농업기술이 발전한겁니다
상업이 이루어지되 천하단 인식 때문에 과거 고려시대처럼 크게 번성하긴 힘들었고, 이런 점이 폐쇄적 성격을 가져오게 됩니다
조선 후기에 영조 정조대왕 때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이유는
뛰어난 농업생산을 통한 안정적 기반과, 실학 바탕의 개방적 인식의 결과지요. 나라라는게 인식이 개방적이지 못하면, 금세 뒤떨어지는 겁니다
요즘 쪽바리의 갈라파코스화와 이슬람 사회를 보면 알 수 있죠
박뺑itback 15-10-04 12:57
   
쌀생산량으로 국력을 논하는건 바보 같은 일아닌가요??
그럼 쌀생산량이 대단한 태국은 세계 최정상나라인가요??
나라와 나라에 무역에서 쌀로만 무역함???
그 당시 돈으로 사용했던 은이나 철 생산량이나.화약생산등...
그걸 다 포함한 국력이면 몰라도 고작 쌀 생산략으로 국력 타령??? 이건 무슨 논리...
그냥 지기 싫어서 쌀생산량으로 한국은 대단했다 라고 하는건 그냥 바보같은 소리..
     
꼬마러브 15-10-04 13:09
   
국력에 대해서는 많은 학설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군사력, 정신력(정치), 경제력 등으로 국력을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시대상을 보았을 때 쌀생산량으로 당시의 경제력을 짐작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국력과도 이어집니다.
     
바람따라0 15-10-04 13:12
   
고대에는 식량이 국력의 가장큰 잣대였습니다.

돈이나 은은 부수적인 것이었지요.
     
굿잡스 15-10-04 13:32
   
빡> 바보소리 어쩌고는 본인 수준이고.

쌀는 과거나 지금이나 경제기반과 생활의 충분조건에

과거는 더욱 비중이 높았고.  그리고 단순히 자원팔이랑


가공 상품이나 중계무역은 무시하시남??


그기에 엄연히 지금의 미국 이전에 명,청의 경제규모가


단일 시장으로서는 가장 큰 마당에 동북아 중심지로


명부터 여진,왜,동남아까지 공무역과 중계무역까지


훨씬 유리하게 하고 국제적 네트워크와 영항력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면서 황제,황상으로 왜나 류큐등에

불리고 살았는데 뭔 어쩌고임?  세조는 대놓고

여진과 왜는 조선의 신민 어쩌고 했고. 그리고 잽의

은광개발도 조선의 제련술을 훔쳐 16세기말에서

에도 초기에 본격화 되었구만. 전국시대는

제대로된 교환상품도 없다보니 자국 여성 수십만을

인신매매 노예수출질 쳐하면서 조총수입에

내부에서 전쟁질 하기 바빴고.


여기서 어쩌고 말고 조선왕조실록에 명,여진,왜,

류큐등과 거래한 품목까지 다 나와있으니 함 찾아나

보길. 조명간에 공무역(일명 조공무역)에 무슨 명는 일반적 3년에 한번 하자는걸

조선은 1년에 3번 하자고 우겨서리(정도전등

요동정벌까지 획책)  성사시킨거나

조선의 세력권안에 있던 여진족 말을 받아

명에게는 선불로 10배나 우려먹는 막대한 장사등.


명나라 <대명회전> 권105 예부편- 오키나와 류국 2년에 1번

안남(베트남)·섬라(태국)는 3년에 1번, 왜국은 10년에 1번. 공무역 거래. 이에 반해

조선에게는 이런 1년에 3번이라는 파격적 그리고 막대한 무역을 안겨 준 배경에는

여전히 건재했던 북방의 북원 세력과의 충돌뿐 아니라 후방의

여진족의 도발등에 대해 현실적으로 조선의 군사력과 정치, 외교적 안정의 협력이

절실했던 명이였기에

이런 잦은 공무역을 통해 조선에 막대한 무역 이익을 안기였고 조선은 실리를

취하면서 나름 체면을 세워준게 일명 조공무역의 실상임.( 그기에 위치상

조선은 중계무역까지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던 나라였고. 그만큼 군사력과 정치

외교력등의 실질적 국력 뿐 아니라 세종대왕 위시한 조선의 전반기 근세 조선이

이룩한 문화적 업적은 당대 세계사적으로 선진강대국의 위상을 보였던 나라였음.

이런 상황에서 극동에 치우진 왜가 뭔 제대로 된 교환 상품이고 일부 서구와의

협소한 창구를 통해 교류 어쩌고 해도 근거리 가장 큰 시장에 가장 높은 빈도의

무역거래를 했던 조선과 비교해서 국제 무역에서도 따라 올 수 있었다고 보심?
     
구름위하늘 15-10-05 13:17
   
알고 쓰셨다면 대단한 의견이지만,
뉘앙스를 보면 아주 모르시는 것을 당당하게 쓰신 것 같습니다.

쌀 생산량은 저 시대 국가의 중요한 지표입니다.
지금과는 달리 인구가 국력이고, 인구 증가의 가장 중요한 제한사항 중에 하나가 식량이거든요.

요즘 환경을 그대로 가져가서 과거에 투영시키는 일은 상당히 실수하기 쉬운 것 입니다.
굿잡스 15-10-04 13:21
   
영국 경제학자 앵거스의 보고서 내용을 보면

대한제국이 잽 보다 문호개방이 늦었지만

1900년 1인당 지디피를 보면 별 차이가 없었단 말이

죠.

대한제국(850불), 잽(1135불)

영국 옥스포드대 역사학자인 제임스 루이스 교수의

연구 내용에 따르면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사이

조선 숙련공의 하루 임금은 쌀 8.3킬로그램 이탈리아

밀라노 빵 6.3. 영국 8.13

결코 이때도 조선이 못사는 국가가 아니였군요

곡물 저장량도 인구 대비로 서토의 5배에 이를 정도

였고.

구한말 선교사들이 조선의 대식문화에 기겁한 일화

들이 그냥 나온게 아니였다는.

이런 대한제국을 기형적 관치 군수에 몰빵하면서

러일전쟁으로 한해 1억엔 예산을 운용하던 잽이

러일전비로 20억엔을 소모하고 영미등에 자체

함선 건조 기술이 없다보니 고가의 함대수입에

막대한 돈을 써면서 차관으로 빌린게 12억엔으로

수개월 항해에 찌든 러사 함대를 박살내고도

전쟁배상금 한푼 못받고

쓰러지기 직전의 잽이 강탈 쭉쭉 빨아쳐먹으면서

310억엔에 이르는 천문학적 조세수탈부터

각종 막대한 산림,어로,금광,자원,식량 강제노역등을

통해서

공업화에 본격적으로 올라가게 된것.

6여년간의 2차 대전에서 나치가 유럽권등에서

강제동원한 노역자가 대략 천만을 좀더 상회하는데

이 잽10발 놈들이 35년동안 악랄하게 동원한

울 나라 사람들이 7,800만에 이를 정도였으니

알만하겠죠. 이런 악랄한 수십년 노동착취 임금과

이자만 해도 지금까지 산출해본다면 천문학적 금액.
     
경영O근혜 15-10-04 13:33
   
그 천문학적인 금액을 좀비들이 반인반신으로 모시느는분께선 3억불로 퉁 치셨으니....
     
해달 15-10-04 14:58
   
오늘도 굿잡스 님의 명쾌한 지식의 저의 부족함을 느낍니다.

죄송합니다만, 저도 님처럼 관련 지식을 쌓고 싶은데,

일제의 310억엔의 조세수탈은 어느 자료를 인용한 것인지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굿잡스 15-10-04 19:56
   
해방이후 1954년 외무부가 발표한 대일 '배상 요구 조서'에 따르면 1949년까지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남한에서만 받아야 할 배상액이 174억엔에 이르며, 실질적인 유출금액에 따른 배상액수는 약 310억엔에 이른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금액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국내 총생산액(GDP)인 550억엔의 55%에 이르는 금액으로 북한을 비롯하여 그 외 확인되지 못한 금액까지 추산하면 국내 GDP 중 7~80% 정도를 일본에서 수탈해 갔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은 독립 이후에도 미 군정에 들어오지 않은 틈을 이용하여 자국에 최대한 많은 재산을 가져가고자 대규모로 화폐를 남발하는데, 이것이 바로 50년대 인플레의 주역이 된 일본의 전후 화폐남발 사건이다. 우선 1945년 12월에서 48년 12월까지 약 3년간 통화량은 6배로 증가하였으며, 정부대상금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무려 36배에 이르게 되었다. 동시에 물가는 1947년을 100으로 기준하여, 서울 지역의 소도매 물가를 비교해보면 1951년에는 이 수치가 무려 555.8% 증가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당시 누적된 인플레이션 양상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준 자료이다.

- 김대준 <고종시대의 국가재정연구>

이 310억엔의 천문학적 조세수탈도 남한에서만 어느 정도 확인되는 부분의

그나마 금액이군요.



김대준씨 <이조말엽의 국가재정연구>를 보면 이미 잽의 위조화폐 조작질은 1901년

궁핍한 잽이 러일전비 마련을 위해 이때부터 대한제국에 위조화폐를 쳐남발합니다.

당시 잽은 전쟁 수행을 위한 무기 구입 비용으로(잽은 자체 함대 건조

기술이 없다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영국등에 막대한 고가로 함대를 구입. 영국은

이런 러일전쟁의 대리전을 통해 극동의 러샤 남하를 막고 경제적으로는 잽에게 고가의

무기과 훈련 교련을 통해서 경제 이득등 이중으로 챙겨 먹은 거죠)

내채 6억엔에 외채 7억엔을 합쳐도 전비 마련이 어려워지자 대한제국의 돈을

대규모로 위조지폐를 쳐하는데 이 때문에 백동화가 악화되었고 이후

잽강점기 막대한 조세수탈 이후에도 다시 대규모 위조 지폐를 남발 수많은

문화재 불법 반출등 악랄한 행위를 쳐하면서 해방 이후 울 경제를 고사직전까지

가져간 파렴치한 주범이지요.  무식하고 전형적 매국사관인 식근론 어쩌고는 동네 똥개가 웃을 일.

그기에 전범 후예 아베와 그 떨거지들의 퍽하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었니

개소리면 우리도 받은 만큼 잽에게 은혜갚기 위해 지금이라도 똑같이 그대로 베풀어

주든지 해야겠지요.(아베와 그 측근 및 추종 떨거지들에게 지들이 행한 그대로

수시로 전기 고문질에 악랄한 강제노역,

그 부인과 자식들도 우민화 식민 교육에 성노예부터 강제 노역, 강제 징집

학도병에 관동, 간도 우리 한인 대학살 및 각종 잽의 자원 조세등 막대한 수탈

등 고대로 은혜를. 이자까지 쳐서.)
스코티쉬 15-10-04 23:18
   
왜구 << 한마디로 설명가능하죠. 백성하나 제대로 못먹여서 다른나라에 강도질이나 하게 내모는 나라라니
오투비 15-10-05 00:01
   
굿잡스님 당신이 생각하는 조선의 문제점과 단점은 무엇입니까??
그것도 한번 이야기해 봅시다. 설마 '없다' 라고 말하진 않겠죠?
     
바람따라0 15-10-05 06:40
   
왠 동문서답인가요?

조선시대의 문제점과 단점을 '설마 없다'라고
말하는 방식은, 토론이 아니고 시비거는 거죠.

댓글 하는 방식부터 배우기 바랍니다.
     
구름위하늘 15-10-05 13:19
   
스스로 논리없는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논법이네요.

나는 잘 모르지만 니가 하는 말을 듣고 딴지 걸어보겠어...
     
유리수에요 15-10-05 13:38
   
이게 무슨 개소리야?
갑자기 조선 문제점이 없냐는 뜬금포나 날리고?
     
오투비 15-10-05 17:13
   
굿잡스 같이 동해번쩍 서해번쩍 나타나 조선대백과사전 같은 지식을 늘어놓는 사람이
정작 조선의 문제점에 대해서 쓴 글은 단한번도 본적이 없어서 그럽니다. 쉴드 치는것도 적당히 해야죠. 조선이 기술직 천시한건 자명한 사실인데 기어코 그것도 아니라고 우기질 않나 ㅉㅉ 
그래서 반대로 본인이 생각하는 조선의 문제점은 무엇이냐고 물어본겁니다.
          
바람따라0 15-10-05 17:30
   
지식이 많기 때문에 비판을 해야 한다는 것은 궤변입니다.

조선시대에 대해 비판하고 싶으면 스스로 하세요.
     
만법귀일 15-10-05 23:09
   
단점과 문제점이 산처럼 많은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것인데..
하물며 님께서 몰라서 질문하시는 것 입니까?

공부 하시길 권합니다.
귀찮구만 15-10-06 01:45
   
조선 석고는 일본 석고보다 부피가 작습니다. 대충 21/40정도 크기고요. 가토 기요마사가 남긴 기록 따르면 함경도 지방 석고 같은 경우는 일본 석고 3분의 1도 안됩니다. 단순히 조선 석고가 일본 석고보다 숫자가 크다고 생산량이 더 많다고 보면 곤란함요.
     
바람따라0 15-10-06 07:59
   
반대로 알고계시네요. 조선의 1석은 144kg 입니다.

일본의 1석고는 114kg 이지요.

일제시대때 일본이 도입한 1가마 80kg 2배 정도를 1석으로
여겼다는 것을 아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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