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는 일본 제국주의가 대한제국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한국사를 왜곡하려 만든 조선사편수회와 관련된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병도는 ‘진단학회’를 만들어, 친일적인 정체성으로 일본의 기술 방법을
이용해 한국사를 재단했습니다.
이것만으로 이병도의 죄과는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일부에서 이병도가 친일파였지만, 식민사학은 아니라고 합니다.
식민사학이 뭔가요? 일본의 정체성을 거지고 일본의 입장에서
역사를 재단한 것이 식민사관이고 식민사학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병도가 벌인 일을 다시 나열해 보죠.
1. 단군을 역사가 아닌 ‘신화’로 격하시켜, 한국사의 상한선을 낮췄다는 것입니다. 이병도는 중국의 기록을 바탕으로, 단군왕검 성립을 BC 1,000으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고문서 훼손에도 살아남은 삼국유사에 BC, 2.333년이라고 기록돼 잇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신하로 폄하했습니다. 현재 이병도의 이론의 거짓임이 드러났고, 교과서에서도 BC 2,333년으로 기술하는 상황입니다.
2. 이병도는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을 부정했고, 그 결과로 풍남토성 유적 훼손과, 임라일보부설 옹호와 같은 역사적 과오를 범했습니다. 식민사관에 찌든 이병도는 백제가 당시 국력으로 거대한 도시를 만들 수 없다고 판단했고, 이병도의 그릇된 판단으로 귀중한 유물이 아파트 공사에 파괸 된 것입니다. 그리고 비좀와라님의 말대로, 온조가 마한정복한 것을 부정하여, 그뒤로 마한이 강성하게 존속했다는 그릇된 역사를 만들어 임라일본부설을 뒷받침했습니다.
3. 이병도가 식민사관을 가졌다는 또다른 증거는, 한국의 설화, 전설, 민담을 거짓으로 폄하하여, 묻힌 역사를 바로잡는 길을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트로이유적과 같이 각 국의 설화, 전설, 민담 단순히 지어낸 얘기가 아니고, 사실일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도 전설이라 치부됐던 문무왕릉이 발견됐지요.
식민사관의 문제점은 한국의 역사를 축소시키고, 한민족의 활동영역을 줄이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친일파 이병도의 역사기술방법은 식민사학이라 불리기 충분합니다.
어디서 같잖은 몇몇이, ‘친일파이지만 식민사학은 아니다’라는 궤변을 떨어도, 이병도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