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직전 일본인 고위인사들은 일본인들을 버리고 대부분
일본으로 도망갔습니다.
해방하고 미군이 주둔하기전 1주일간 전국적으로 267건의
폭행이나 살인등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이중 다수의 피해자는 친일파 조선인이였고 일본인 경찰,
군인, 공무원들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남은 일본인들은 조선인들이 몰려다니며 만세를 부르짖는
해방 정국의 입장이 바뀐 상황에서 보복을 당할까봐 공포에
떨었지만 대규모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소련이 점령한 북한과는 다르게 남한의 일본인들은 큰 문제
없이 철수 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은행에서 돈을 대량으로 인출하고 재산을
일본으로 마구 반출하자 미군정이 일본인 개인당 가지고
갈수 있는 돈을 1000엔으로 제한을두고 화물도 중량에 제한을
두어 더 이상은 반출할수 없도록 명령을 내립니다.
그래서 상당수 일본인들이 안전한 송환선 대신 몰래 재산을
반출하기 위해 밀항 어선들을 타고 일본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철수한 민간인 70만명중 20만명이 안전한
송환선 대신 많은 돈을 가지고 소형 어선등으로 불법 밀항을
시도 하면서 당연히 사건 사고도 많이 일어 났습니다.
며칠이 지나 미군이 주둔하고 생각과는 달리 별다른 보복도
없자 남은 일본인들 상당수가 한반도에 거주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차피 재산 반출이 막힌 상황에서 공습으로 박살난 일본으로
가봐야 더 답이 안나오기 때문이었죠.
이들은 한국에 살기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거주하다
625가 터지자 일본으로 철수하게 됩니다.
소련이 점령한 북한은 상황이 아주 달랐습니다.
소련이 점령하자 식량등을 현지 조달하려는 소련군이 부유한
일본인 거주지역들을 약탈해 먹었습니다.
거기에 소련군은 기술자와 고급인력이 많은 일본인들이
일본으로 돌아 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소련군의 눈에는 조선인과 달리 일본인들은 모두 포로였기
때문이죠.
소련군이 재산도 빼앗고 상업활동도 막았기 때문에 북한에는
해방전과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재산을 약탈당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의 상점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거나 소련군에게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거나 굶주리는
상황이 되어 버린거죠.
일본으로 돌아간 귀환자들은 세를 얻을 돈이 없어 수용소에서
장기간 거주하였고 가난했기 때문에 범죄율이 높았으며 그로
인해 차별과 왕따의 대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