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핵 2방 맞고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과는 조금 다릅니다.
일본은 사실 핵을 쳐맞고도 정신 못차렸습니다.
히로시마에 핵맞고도 일본 수뇌부는 주전파와
항복파로 나뉘여 대립했지만 핵의 피해를 감수
할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일본의 패배는 핵 맞기 전에 이미 확정되어
있었고 일본 수뇌부 역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전쟁을 무조건 항복이 아닌 강화협정을 통한
항복으로 바꾸어 한반도와 대만을 항복후에도
일본의 식민지로 유지하고 나머지 점령지만
포기하려 생각하고 있었으며 소련을 통해 연합국과
강화조약을 맺을수 있다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11월 1일(올림픽작전(큐슈상륙작전) 디데이)
까지 일본에 7발의 핵폭탄을 투하하려고 하고 있었고
일본이 7발의 핵폭탄을 다 맞을때 까지 버티지는
못했을건 확실하지만 두발 쳐맞을 때까지도 당시의
인명 경시 사상의 일본 수뇌부는 그정도 피해는 감수
할수 있다고 핵폭탄을 과소평가 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1억 총옥쇄(전국민이 일왕을 위해 싸우다
다죽자!)를 외치며 일반인도 죽창을 들고 연습을 하고
있을때 었으니까요..
핵 두발외에도 다른 요인 때문에 일본이 결국 무조껀
항복하게 됩니다.
바로 한반도와 대만의 일본 영토 유지를 조건으로
항복회담를 주선해주길 바래서 교섭하고 있던 소련이
만주로 침공한 것입니다.
강화의 꿈은 날아가 버렸고 소련군의 만주 침공에
오랜 전쟁으로 무장이 형편없었던 만주 관동군이
순식간에 괴멸되어 버립니다.
일본은 식민지 유지의 꿈이 사라져 버렸고 오히려
소련군이 북해도로 침공하게 될 경우 소련에 일본
영토를 빼앗기게 되거나 독일처럼 일본이 분할될거란
공포에 빠져 소련군 참전 4일만에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됩니다.
소련군은 다 된 전쟁에 숟가락만 올렸지만 일본에겐
식민지 유지는 커녕 본토가 날아갈 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