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5-09-03 13:46
[통일] 자금성(紫禁城)의 성(城)과 경복궁(景福宮)의 궁(宮)의 개념 정립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8,858  

평양_~1.JPG

기사에도 한번씩 심심하면 나오는 무개념, 무식한 조족 가이드들이
 
조선 경복궁은 자금성의 화장실 크기 어쩌고 드립부터(경복궁 면적
 
만 해도 자금성의 절반 이상) 가끔보면 꾸준히 나오는 비교가 자금
 
성(紫禁城)의 성(城)과 경복궁(景福宮)의 궁(宮)의 개념 자체를 이해를
 
못하고 단순 비교하는 부분이 있어 이참에 명확한 개념 정립을 위해
 
한 글  올립니다.
 
 

성곽(城郭)이란 기본적으로 신석기시대부터 점차 정주문명화 하든

이들이 외부의 동물이나 외적을 방어하기 위해서 왕국시대 완연한

성곽에 두르던 해자(신석기 시대 만주 요하일대의 발해문명에는

적봉일대의 홍산문화뿐 아니라 동쪽으로 앞서 대릉하 일대의 조양

북쪽에 흥룡와 문화(기원전 6000년~5200년)가 나오는데 짱개들은

무슨 중화제일촌 어쩌고 드립치지만 전혀 이질적 고조선 선대 문화

권으로 빗살무늬토기부터 정교한 옥기 심지어 이미 이때 해자까지

두르고 온돌 아궁이에 신석기 시대 상당한 밀집 취락의 정교한 도시

형의 발달한 촌락이 이미 나오고 있는. 이 요하 일대 신석기 문화와

고조선이 어떤 식의 고리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나중에 시간날때 구

체적으로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군요)가 형성되기 전의 일종의 원시

적 도랑부터 흙축, 목책성 외 점차 문명수준이 올라가면서 정교화되

는 가운데 대규모의 인력 동원이 가능해지는 국가 체계가 이루어지

면서 토성,자연석을 이용한 석성 및 벽돌형의 전축()등 사용되는

종류에 따라 크게 나뉘고 성의 성격에 따라 크게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구분. 저 위의 서북한일대의 고구려의 장안성(일명

평양성)의 경우는 전체 길이는 약 23㎞에 성안의 넓이는

자그만치 1,185만㎡. 그중 내성은 130만㎡, 중성은 300만㎡, 외성은

730만㎡에 저기 모란봉 어쩌고 하는 글자가 보이는 곳이 북성으로

25만㎡으로 좀더 복잡한 체계를 갖춘 당시 도시문명 수준이나 지금

에 봐서도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크기입니다.(이건 아래 언급하겠지

만 후대 중세 프랑스 중심 도시인 파리의 성곽 크기만 비교해봐도

금방 확인 가능. 그리고 고구려는 이런 장안성 외에도 황해도의

한성(10.5㎞으로 남평양으로 부르는) 그리고 국내성 및 요동일대 16

㎞의 대형 오골성(오늘날 북평양으로도 거론)등의 다중 수도 체재와

대도시문명을 구축  )

다시 성곽(城郭)이라는 사전적 단어로 들어가서 이때 성이란 다름

아닌 국가의 통치자가 생활하고 행정을 담당하는 궁(宮)을 보호하고

있는 내성을 의미하고 곽이란 다름 아닌 인근 백성까지 거주하고

생활할 수 있는 외성을 지칭하는 말로 내,외성을 함축하고 있는

뜻입니다. 프랑스 시민혁명의 주축인 된 부르조아(Bourgeois)의

부르(Bourg)라는 말이 중세시절 성안에 있는 사람으로 이런 부유한

공인들을 부르면서 나온 말로 한마디로 동,서양간에도 이런 기본

외성 안에 머무는 사람들이 고대 도시민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위의 설명을 토대로 자금성과 경복궁이 뭐가 다른지 이제는

이해하기 쉬울 듯 하군요.

한마디로 자금성은 내성(城)개념 안에(내성 안에서도 별도의 또다른

임금이 생활하는 이중 구조도 존재) 건청궁(乾清宫), 곤녕궁(坤寧宮),

어화원, 동륙궁(东六宫), 서륙궁(西六宫),자녕궁 등이 

들어가 있는 구조입니다.

그럼 궁궐(闕)이란?

우선 궁은 임금과 그들 가족 및 보필하는 이들이 거주

하는 건축물에 궐이란 이런 대궐문이 합성화된 공간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이런 내성안에 궁궐은 반드시 들어가야 할 공간이란 의미>

그런데 조선의 한양도성(18.6Km) 은 이런 고구려나 고려시대같이

따로 내,외성을 구분하지 않고 외성만 두른 형식입니다. 경복궁의 담

장이 넓은 의미로는 궁성에 해당할 수도 있지만 자금성처럼 여러 궁

을 거느리면서 해자와 방어에 용이하게 성곽형태를 두른 내성으로

보호된 형태는 아니라는 것이죠. 이 때문에 사람들이 단순히 자금성

과 경복궁의 궁의 차이를 인지못하고 단순 비교하는 식으로 이야기

합니다만 정확히 비교할려면

자금성과 한양도성 내에 내성의 필수 공간인 조선 5궁을 합쳐서 함

비교해야 그래서 합당한 것입니다.(다음 부터는 굳이 자금성과 비

할려면 조선 5궁을 함께 비교)

 

조선 내성(內城)(경복궁 +창덕궁 +경희궁+창경궁+경운궁)

43만㎡+ 43만㎡+ 23만㎡ +21만㎡+6만㎡ (아래 단위는 생략)
=136만㎡

자금성(내성(內城)) 면적(건청궁+곤녕궁+어화원+ 동륙궁+서륙궁+자녕궁)
=72만㎡


조선 내성(內城: 조선5궁)>>자금성(내성(內城)

 

a0053134_4d530c1618dd9.jpg


그리고 이건 서북한 평양 일대의 성곽들인데 앞서 장안성은 왼쪽의

한성 평양이고 그 동북쪽으로 보면 별도로 안학궁과 인접한 셋트형

의 도시형 대성산성등 여러 성곽들이 확인 가능할겁니다.

고구려는 이런 중대형 거대한 성곽등 확인되고 있는게 100여개 이상으로

특히나 서토의 평지 장방형의 토성 위주의 성곽과는 달리 지

형을 이용한 유선형의 굴곡 있는 성곽형태에 특히나 산성이 도시형

규모로 매우 발달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면 수도의 경우는

평시에는 평지성에 유사시를 대비해서 도시형 산성을 셋트형으로

구축하고 이런 전통은 조선시대 한양도성 외에도 남,북한 거대 도시

형 산성을 축조해서 셋트형으로 두고 있다는 점도 우리만의 독특한

성곽문화이자 유구한 고대 도시문명의 전통입니다. 보통 짱국 학자

도 그래서 만주일대의 중대형 산성들은 삼국시대쪽이면 기본 거의

고구려의 성곽으로 인식할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고 그래서 이전에

번게에서도 고조선 관련 잠시 이야기를 했지만 요서일대

오한기 지역의 기원전 20세기 경의 하가점 하층문화권에서 나오는

성자산산성에 그래서 자연스러운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단

말이죠. 특히나 고구려,백제의 치(雉)의 원형으로 보이는 외성에 반

원형의 ‘마면식(馬面式·치)’ 석축이 발견되었는데 이 치라는

게 뭔가 하면 우리 성곽 문화에서만 독특하게 보이는 형태 중 하나

로 외적이 공성전으로 성벽을 타고 기어 올라 올때 외벽에 튀어 나

온 성곽구조물을 이용해서 정면뿐 아니라 양 사이드에서도 공격을

쉽고 원활하게 하는 구조입니다. 이외에도 치는 이런 기능적 면뿐

아니라 산성의 가파른 지형을 이용하다 보니 성곽 자체가 무너지는

걸 방지하기 위한 지지 기반의 건축 공학적 역할도 합니다.(고구려는 가파른

산지 지형에서도 거의 8~10여미터에 이르는 높이의 석축에 도시형

산성을 축조) 이 성자산 산성은 이외에도 우리 성곽의 독특한 옹성

(성문 내부에 이중 성벽을 둘러 적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고 공략하

기 쉽게 한) 형태의 별도의 치와 깊은

해자까지 두른 형태까지 발견되는데 우리의 전통적 산성 축조술과

원형의 특징들이 고스란이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게

합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는 이런 치라는게 왜 우리쪽에서만 유독

독특하게 발전했을까 생각해보니 이런 산성 성곽이 오래 전부터

발전하고 구축하면서 이런 자연석을 이용해서 어떤 접착물도

없이 석축을 쌓는 과정에서 가파른 지형에 우선 성벽축을 지대하기

위한 현실적 고안형식으로 발전하다보니 점차 이후 전쟁이 빈번해

지는 철기시대로 가면서 더욱 정교해지고 공성전에서 적의 방비를

위한 더욱 원활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보군요.

 

기원전 20세기 하가점 하층 문화의 삼좌점 고구려 치의 원형 석성으

로 보이는 방어형 성곽.(사진)

http://daily.hankooki.com/lpage/culture/201410/dh20141025100423138640.htm

2084134987_9c3a7354_sdewsfdfs.jpg 

이건 고려시대 4경중 수도인 개경으로 현종(992년 ~ 1031)

때가 되면 외성 밖으로까지 도시의 중요 건축물 중 하나인 사찰들이

뻗어 나가 있는 걸 알 수 있군요.(남북국시대, 고려시대는 국교가

불교라서 이런 사찰은 도시 중심가의 중요 건축물로 자리잡은.

이를 보면 도시가 외곽으로 계속해서 팽창을 알 수 있는.)

1948932169_3c4d9176_wqsaswq.jpg


이건 13세기 중세 유럽을 대표하던 프랑스 파리도시입니다.

 
파리의 성곽 내부 면적은 2.4㎢에 실제 시가지가 형성된 면적은 약 1.5㎢
 
정도에 불과(우리나라 중세 고려는 남북국시대 세계 4대
 
국제적 대도시라는 과장없는 100만의 거대 서라벌을 동경으로 흡수
 
하고 수도인 개경이 50만의 거대 도시를 주축으로 서울 남경과 더불어
 
경(평양)의 4경 대도시문명과 중소 도시를 거느린 시기였는데 이
 
서경만해도 도시시가지 면적이 11.85㎢)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굿잡스 15-09-03 13:56
   
고구려 초기 2대 유리왕시절 축조되기 시작한 환도성

앞 궁궐 건물지 무려 90미터.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343393



고구려  5세기
 
<안학궁 남삼문(南三門) 중 남중문(南中門) 38m 앞면 7칸

안학궁 남궁 1궁전(정전) 62m 앞면 11칸

안학궁 중궁 1궁전(편전) 87m.  앞면 19칸 >
 
 
7세기에 세워지고 확장된 당나라의 최대궁전인 대명궁의 정전인 함원전 정면 길이가 67.33m
 
북경  자금성에서 가장 큰 건물 태화전 정면 64m


동대사 크기는 높이 48m, 가로 57m, 세로 50m라오. 안의 대불은 15미터  =>백제인에 의해 건립.



인도의 타지마할의 기단 크기 94m, 건물 크기 57m

발해의 상경용천부 제2궁전 기단 크기 120m, 건물 크기 93.5m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6234&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3%80%EC%A7%80%EB%A7%88%ED%95%A0&sop=and


 
고구려는 안학궁으로부터 750m 떨어져 있는 유사시를 대비한 배후 산성이
 
대성산성으로 전체 9km가 넘고 둘레는 7km가 넘으며 남문이 있는 골 안에서는 2
 
중으로,주작봉과 국사봉 골 안에서는 3중의 겹성에 내부에는 연못이 자그만
 
치 170여개가 존재.
 
http://blog.naver.com/bestchoi21/20018007630 -> 대성산성 사진
굿잡스 15-09-03 14:05
   
왜 고조선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인 천하관으로 독자적 문명권(文明圈)을

구축하며 하늘의 아들인 천자와 천손을 자처했는지(이미 고조선 건국 신화가 천손강림,

광명 사상에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시대를 초월한 대단히 발전적 국가 이념 체재이자

고조선의 천하관)

서토가 아닌 이곳이 우리의 고구려인들이 보든 세상의 중심, 중원으로 보았는지

이런 발달한 거대 도시문명을 보고 느낄 수록 더욱 가깝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이런 천하관은

이후 남북국시대 고구려 5부의 도시문명을 이어받은 5경의 발해 도시문명과 신라 서라벌을

중심으로 하는 남국의 5소경 체재로 이어져 다시 후기 남북국시대라고 할 수 있는

후발해와 신라계황제 및 (후)발해민 연합의 금나라와 고려로. 금나라는 결국 요,송까지 멸망시키고

고구려계 장호가 북경에까지 중도를 건설하면서 이런 우리 고구려, 발해의 도시문명의 기반을 받아

서 북방 몽골의 원이 북경에 들어가서 터를 잡고 세계경영을 하게 됨. 북방의 요나라 역시 이런 우

리 고구려계의 도시문명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아 5경 체재로 운용.)
굿잡스 15-09-03 14:40
   
(5월 3일) 술시(戌時) 조선의 도읍 동대문으로 진입, 거기서 황성(皇城)의 모습을 바라보니 옥루금전(玉樓■x殿) 늘어선 기와집, 널따란 성벽들의 조형미는 극치에 달하고 수천만 헌(軒)과 늘어선 대문들, 보귀로운 모습은 이루 말로 다할 길이 없다. 그런데도 막아 싸우려는 병사들은 보이지 않고 대문은 굳게 닫혀 있어 온통 적막하였다. (중략) 내리(內裏) 안으로 들어가 보니 궁전은 텅 비었고 사대문은 제멋대로 열려있었다. 그제야 전각을 자세히 살펴보니 궁궐은 구름위에 솟아있고 누대는 찬란한 빛을 발하여 그 아름다운 모습은 진궁(秦宮)의 장려함을 방불케 하더라. (중략) 후궁(後宮)에는 화장품 향기가 감돌고 산호의 대상(臺上)에는 화려한 거울이 덧없이 남아있다. 난 향기는 전각 밖까지 풍기고 사람 살던 자취도 그렇거니와 하염없는 구슬로 장식한 침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건물마다 문이 열려 있고 궁문을 지키는 자 없으니 어디를 보아도 처량하기 짝이 없다. 그토록 용맹한 고니시도 천자(天子)의 옥좌(玉座)에 절을 하고 신성하고 고아한 분위기에 휩싸여 두 눈에 눈물이 괴니 소오스시마, 아리마, 오무라도 따라 눈물을 흘리었다.

-에도시대의 문헌 "조선정벌기 (朝鮮征伐記)"에서-

天順三年,邊將奏,有建州三衛都督私與朝鮮結,恐為中國患

명사

천순3년(1459년 조선세조 제위당시) 변경장수가 보고하길 건주삼위의 도독이 몰래 조선과 결탁하였습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중국이 병이 나다.


세조실록
 
야인과 왜인들은 모두 우리의 번리이고 우리의 신민(臣民)이니 왕된 자는 똑같이 대우하고 차별을 없이 하여 혹은 무력을 사용기도하고, 내가 즉위한 이후에 남만, 북적, 이것은 하늘의 끌어들이는 바이지, 나의 슬기와 힘이아니다. 흑룡강, 속평강, 건주위, 올량합, 이만주 동창등 심처 야인과 삼위 달자가 관문을 두드리고 입조하기를 청하거든, 그 종인을 줄여서 후대하여 올려보내라


세조 40권, 12년(1466 병술 / 명 성화(成化) 2년) 11월 2일(경오) 3번째기사
 
시무8조에 관한 대사헌 양성지의 상소문
 
우리 나라의 인민(人民)은 무려 1백만 호(戶)나 되는데 그 중에서 활을 잘 쏘는
 
병졸이 30만 명이고, 정예(精銳)한 병졸이 10만 명이며, 용감한 군사가 3만 명입
 
니다.

근자에 고려가 표문을 상주하는데 언사가 많이 부실하여 짐이 이미 담당 관청에 이를 규명하도록 명했다. 듣자하니 그들은 수도 개경으로부터 압록강에 이르기까지 요충지에 비축하는 군량이 매 역마다 1, 2만서 혹은 7, 8만석 혹은 십수만 석에 이르며 사람을 보내 동녕부의 여진을 유인하여 국경을 넘어오게 하고 있으니, 이는 그 뜻에 반드시 깊은 음모가 있는 것이다...(중략)...지금 요동은 군량이 모자라 군사들이 굶주리고 고단한데, 만약 즉시 사령창의 식량을 내어 그들을 구휼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고려로 하여금 도망병을 꾀어 드이려는 마음을 일으키게 할 것이니 좋은 계책이 아니다. 만일 고려가 20만 군대를 내어 쳐들어오면 여러 부대는 어떻게 막겠는가. 이제 건축과 보수를 잠시 정지하고 임시 막사를 지어 10년 간 거주한 후에 다시 공사를 시작하라. 옛 사람의 말에 사람이 수고로우면 화란의 근원을 막을 수 있다고 했으니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태조고황제실록 1395년(위화도 회군 7년후) 4월.



이전에도 이야기 한적 있습니다만 최근에 복기대 교수가 철령위의 위치를 요동쪽으로 이야기한 연구

결과를 발표해서 학계에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는데 이는 명쪽에서 보든 철령위가 요동쪽으로

보는 사료가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명 초기만 봐도 이런 조명간에 군사적 긴장도가 높았고

조선은 자신의 몫을 명이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을시 여차하면

요동정벌 계획으로 보급등 준비가 착실히 준비되고 훈련을 강화하면서 대군을

운용하던 시기라 명도 조선에 대해 우려와 껄끄러운 상대로 여기고 있던 상황에서

당시 명의 내지는 산해관 이서 그리고 요동변경의 실질적 관할

지역도 바로 압록강 넘어서가 아니라 요동 고구려 봉황성 이서쪽으로 보는.

그리고 이런 조선 전중기의 세조등은 동만주의 여진족과 왜등 주변 동천의 제번 세력

을 조선의 신민(臣民)으로 당당히 이야기하고 아우르는 조선만의 세력권과 독자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그걸 명도 암묵적으로 인정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비록 근세 조선에 와서 우리가 요동을

완전 장악하지는 못했지만 고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오든 발달한 문명과 역사성, 그리고 국력이

뒷바침 되었기에 나온 사료들이군요.
빠셋 15-09-04 09:45
   
경복궁은 주변환경을 포함해서 디자인했다고 들었어요
앞에는 계천이 흐르고 뒤로는 산맥이 아름 답죠 공터에 딥따크기만한 중국 성들과 비교불과
지나가던이 15-09-05 23:25
   
자료 감사합니다. b
 
 
Total 9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9 [중국] 中사드보복의 부메랑…중국 항공사에 더 큰 타격 (16) 굿잡스 03-07 5292
8 [통일] 트럼프 “중국이 북한 문제 해결 안하면 우리가 한다… (14) 굿잡스 04-03 3983
7 [중국] 美 中의 韓사드보복 비판 "비이성적이고 부적절…우… (23) 굿잡스 03-03 3947
6 [중국] 中, 한반도 겨냥 미사일 1,000여기 배치...사드는 보복 (7) 굿잡스 03-04 3780
5 [한국사] 동아시아에서 독보적 경지에 올랐던 고구려 고분벽… (12) 굿잡스 11-07 3443
4 [일본] 日 후쿠시마 원전서 오염 물질 유출…"고농도 방사성… (3) 굿잡스 10-07 3066
3 [통일] 동북아 핵무장의 시대와 대한민(大韓民)-천손지후(天… (6) 굿잡스 09-16 2871
2 [중국] 창업의 나라 미국이 중국 땜에 뿔났다 굿잡스 04-12 2355
1 [통일] 동북아역사재단 김호섭 새이사장,뉴라이트 100인 선… (2) 굿잡스 07-12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