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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16 23:33
[일본] 송서의 왜5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쓴이 : aghl
조회 : 3,786  

일본 역사책과의 비교[편집]

중국의 사서에 기록된 왜왕의 이름들은 일본서기의 천황의 이름들과 매우 달라 어느 천황이 어느 왜왕인지 논쟁이 계속되어 왔다. 이나리야마의 칼 에다 후나야마 칼의 금석문을 근거로 왜 무왕이 유라쿠(웅략) 천황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나머지 왕들에 대해서는 중국 사기의 기록을 어림잡아 다른 천황에 비정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들 왕이 5세기경 야마토 조정(현재의 일왕가의 조정)이 아닌 다른 왕조의 지배자들이라고 보고 있으며 이 왕조들은 현재 일왕가에 의하여 멸망되었다고 보고 있으나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는 않다.

조공 기록[편집]

찬(贊)[편집]

  • 晉安帝時,有倭王贊 遣使 朝貢。[1]
진 안제때, 왜왕 찬이 사신을 보내 조공함
  • 高祖永初二年,詔曰:「倭贊萬里修貢,遠誠宜甄,可賜除授。」[2]
고조 영초2년, 조서에 이르길 : 왜찬이 만리먼길에서 (송에) 조공을 보내옴. (송나라 무제가) "멀리서 온 정성이 크므로, 마땅히 제수(除授)를 내려야 할 것이다."라고 함
  • 太祖元嘉二年,贊又 遣司馬曹達 奉表 獻方物[2]
태조 원가2년, 왜왕 찬이 또 사마 조달(曺達)을 사신으로 보내 표를 올리고 방물을 바침

진(珍)[편집]

  • 贊死,弟珍立,遣使貢獻。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왜왕 찬이 죽고 그의 동생 진이 계승하여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스스로 칭하길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왜.백제.신라.임나.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國王(왜국왕)이라 함.
  • 表求除正,詔除安東將軍、倭國王。
정식으로 임명해주기를 요청함. 하지만, 진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송나라 문제는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이라는 관직만을 제수함.
  • 珍又求除正 倭隋等 十三人 平西、征虜、冠軍、輔國將軍號,詔並聽。[2]
송나라 문제는 왜수(倭隋)등 13인에게 平西(평서)征虜(정로)冠軍(관군)輔國(보국)將軍(장군)이라는 관직을 정식으로 임명해 달라는 요청을 허락함

제(濟)[편집]

  • 二十年,倭國王濟 遣使 奉獻,復以爲安東將軍、倭國王。[2]
20년, 왜국왕 제가 사신을 보내어 봉헌하므로,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으로 삼음
  • 二十八年,加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將軍如故。並除所上 二十三人軍、郡。[2]
28년, 왜왕 제가 安東將軍(안동장군)과 더불어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에도 임명됨. 아울러 23인의 신하들도 군(軍)과 군(郡)을 제수함

흥(興)[편집]

  • 濟死,世子興 遣使貢獻。[2]
왜왕 제가 죽고, 세자 흥이 사신을 보내 조공함.
  • 世祖大明六年,詔曰:「倭王世子興,奕世載忠,作籓外海,稟化寧境,恭修貢職。新嗣邊業,宜授爵號,可安東將軍、倭國王。」[2]
세조 대명6년 조서에 이르길 : 왜왕세자흥 역시 安東將軍(안동장군)倭國王(왜국왕)에 임명함

무(武)[편집]

  • 興死,弟武立,自稱 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七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2]
왜왕 흥이 죽고 그의 동생 무가 위를 이음. 무는 스스로 칭하길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百濟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백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七國諸軍事(7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國王(왜국왕)라 함
  • 順帝升明二年,遣使上表曰:「封國偏遠,作籓於外,自昔祖禰,躬擐甲胄,跋涉山川,不遑寧處。
순제 승명 2년, 사신을 파견하여 왜왕 무가 표문을 올리기를 신의 나라는 구석지고 먼 곳에 봉 받아 밖의 번신이 되었습니다. 옛 조상 때부터 몸소 갑옷을 입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편히 쉬지 못하였습니다.
  • 東征毛人五十五國,西服衆夷六十六國,渡平海北九十五國,王道融泰,廓土遐畿,累葉朝宗,不愆於歲。
동쪽으로 모인 55국을 정벌하고, 서쪽으로 중이 66국을 복속시키고, 바다 건너 북으로 95국을 평정하여 왕도가 무륵익어 태평하고, 땅은 서울에서 멀리까지 넓혔으며, 해마다 세공을 어긴 적이 없었습니다.
  • 臣雖下愚,忝胤先緒,驅率所統,歸崇天極,道遙百濟,裝治船舫,
신이 비록 어리석지만, 선대를 이어 나라를 평안하게 통솔하고 있으며, 천극으로 가는 길은 백제를 통해 가야하기에 배를 타고 가야합니다.
  • 而句驪無道,圖欲見吞,掠抄邊隸,虔劉不已,每致稽滯,以失良風。
그러나 고구려는 무도하여 우리나라를 집어 삼키려하고 변방을 침략하고 약탈하여 근심이 적지 않습니다. 이렇게 늘 일이 막히고 거슬리는 바람에 어진 풍속을 잃고 있사오니,
  • 雖曰進路,或通或不。
비록 나아갈 길은 있지만 그 길이 혹은 통하기도 하고 혹은 통하지 않기도 합니다.
  • 臣亡考濟實忿寇仇,壅塞天路,控弦百萬,義聲感激,方欲大舉,奄喪父兄,使垂成之功,不獲一簣。
신의 죽은 아비 제는 고구려가 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천자에게 자주 문안드리지 못함을 분통히 여겼으며, 활을 당기는 백만의 의로운 소리에 감격하여, 바야흐로 군사를 크게 일으키고 싶었으나, 갑자기 아비와 형을 잃어, 이루려는 공이 흙 한 삼태기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 居在諒暗,不動兵甲,是以偃息未捷。
신은 양암(빈소)에 거처하였기에, 군사를 움직이지 못하였고 그 때문에 그들과 싸우지 못했습니다.
  • 至今欲練甲治兵,申父兄之志,義士虎賁,文武效功,白刃交前,亦所不顧。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병기를 연마하고 군사를 훈련하여, 부형들의 뜻을 펴보고자 하옵는데, 의롭고 용맹스러운 군사들이, 문무를 가릴 것 없이, 공을 나타내려 합니다. 눈앞에 흰 칼날이 번쩍이는 다급함이 있더라도, 또다시 되돌아다볼 필요는 없사옵니다.
  • 若以帝德覆載,摧此強敵,克靖方難,無替前功。
만일 황제의 덕을 입는다면, 이 강한 적을 꺾어 없애고, 어려운 무리들을 이기시어 조용하게 하시면 전대의 공에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 竊自假開府儀同三司,其餘鹹各假授,以勸忠節。」
삼가 스스로 임시로 개부의동삼사의와 그 나머지 모두에게도 관작의 제수를 원하였다.」
  • 竊自假開府儀同三司,其餘鹹各假授,以勸忠節。」
무가 스스로 開府儀(개부의)同三司(동삼사)라는 문관1품 관직을 임시로 제수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적당히 가수(假授)한 관직을 정식으로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함.
  • 詔除武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2]
순제가 무를 使持節(사지절)都督(도독)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六國諸軍事(6국제군사)安東大將軍(안동대장군)倭王(왜왕)에 제수함

  • 建元元年,進新除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武號爲鎮東大將軍。[3]
  • 齊建元中,除武 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鎮東大將軍[1]
고제가 왜왕 무를 鎮東大將軍(진동대장군)으로 승격시킴
  • 梁武帝即位,進武 號征東大將軍。[1]
무제가 왜왕 무를 征東大將軍(정동대장군)으로 승격시킴
  • 順帝升明二年,遣使上表曰:「封國偏遠,作籓於外,自昔祖禰,躬擐甲胄,跋涉山川,不遑寧處。東征毛人五十五國,西服衆夷六十六國,渡平海北九十五國,王道融泰,廓土遐畿,累葉朝宗,不愆於歲。臣雖下愚,忝胤先緒,驅率所統,歸崇天極,道遙百濟,裝治船舫,而句驪無道,圖欲見吞,掠抄邊隸,虔劉不已,每致稽滯,以失良風。雖曰進路,或通或不。臣亡考濟實忿寇仇,壅塞天路,控弦百萬,義聲感激,方欲大舉,奄喪父兄,使垂成之功,不獲一簣。居在諒暗,不動兵甲,是以偃息未捷。至今欲練甲治兵,申父兄之志,義士虎賁,文武效功,白刃交前,亦所不顧。若以帝德覆載,摧此強敵,克靖方難,無替前功。竊自假開府儀同三司,其餘鹹各假授,以勸忠節。」詔除武使持節、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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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숭국 학자들은 저걸 일본천황증권의 증거이며 임나일본부설의 증거로 삼고 있는데요..
、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王。(도독왜신라임라가야진한모한육국도군사,안동대장군왜왕)'
지금 일본 교과서에도 임나일본부설이 다시 등장했는데요.. 이것에 대해서 아직 결론이 안난걸로 아는데 이쪽분야 아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김석형이나 김현구의 글도 읽어봤습니다만 영 시원치가 안네요. 천황정권은 허구라고 주장하는 쪽인 제 입장에서는 일본학자들의 주장도 개소리에 불과한데요... 혹시 의견 가지신분 계신가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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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miky 15-07-17 01:02
   
왜왕 무를 비롯한 5명의 왜왕이 5세기 대에 걸쳐 송에 지속적으로 "도독왜백제·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등 7국의 군사권을 관장하는 관작을 내려줄 것을 청하였는데, 송은 계속해서 안동대장군·왜국왕의 작호를 내렸을 뿐이었으며, 결국 이를 허락하되 끝까지 백제를 제외하는 등 백제에 관련된 관작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즉 당시 백제와 교류를 하던 송으로서는 백제가 왜에 군사적·정치적으로 속한다는 말이 터무니없는 사실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외에 신라나 가야 등은 중국 측과의 직접적인 교류가 드물어서 이러한 사정을 잘 몰랐던 탓에 나머지의 관작은 순순히 허락을 해주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왜왕 무 이전에 왜왕들이 제수받은 "안동대장군"은 백제의 왕이 제수받은 "진동대장군"과 견주어 볼 때에 같은 2품이기는 하되, 서열은 진동대장군보다 하위였으며, 이후 479년에 왜왕 무가 받은 안동대장군도 결국은 백제왕이 받은 안동대장군과 같은 것이다.

『송서』 왜국조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이러한 안동대장군의 관작은 왜왕이 스스로 청한 것인데, 스스로 백제에 대한 군사적 지배권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송에 청했던 관작이 백제보다 하위라는 사실은, 마찬가지로 왜가 백제와 비교해 볼 때 딱히 우월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왜가 스스로 6국제군사 운운하며 스스로를 과장한 것은 당대의 외교적 수사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으며, 다분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양서나 양직공도 등의 기록에서 백제가 마치 신라와 가야 등을 자국의 부용국인것 처럼 과장해서 중국 측에 전하고 있다거나, 혹은 같은 『송서』 등의 기록에서 백제가 중국 지명으로 생각되는 지역에 분봉을 받았던 일과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mymiky 15-07-17 01:03
   
이렇게 왜가 송에 한반도 남부 일대에 대한 군사권을 주장하는 등 다소 무리한 관작을 청한 것은 고구려의 남진에 따른 위기의식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5세기 경에 고구려 장수왕의 맹공으로 백제가 한강 유역을 잃는 등의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광개토왕 이래의 전쟁 결과로 인하여 신라와 가야 등이 고구려의 세력권에 들게 되었다.

 그에 따라 왜와는 오랜 동맹관계를 이어왔던 백제가 치명타를 입었고, 문물교류의 대상이었던 한반도 남부의 여러 세력에까지 고구려의 입김이 닿게 되자 왜는 이에 적지않은 위기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즉 고구려가 백제를 도와 고구려를 공격했던 일이 있었던 왜에 대하여 한반도 남부 간의 교류를 끊어서 국제 문물 교류의 루트에서 고립시킨다거나, 혹은 군사적 행동 등을 통해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을까 염려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이러한 상황을 그 타파해보고자 나름대로의 발악을 했고, 그러한 절박한 위기의식이 당시 중국 송에 보낸 표에 드러난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환쟁이토벌 15-07-17 02:56
   
저기서 언급하는 내용은 한반도 남부가 왜의 문물교류의 대상이아니라 그들의 영토였던것입니다 고구려의 주적은 백제위에 왜 였던것입니다. 왜국에게 백제는 동맹국으로써 대륙의 신문물과 해상교통의 하나의 중심축이였을뿐 그이상 그이하도 아닙니다. 호태왕 비문의 내용과 중국 역대 왕조의 문헌들 추가로 고려시대 김부식의 삼국사기 조차도 그 내용 으로써 알수있는 부분이죠 고구려 남하 이전까지 한반도 남부의 실질적패권은 백제도 마한도 가야도 아닌 왜 였습니다. 이런 해석이 세계에서 통용되고있는 진짜 역사입니다.
          
mymiky 15-07-17 03:20
   
반어법을 쓰시는지?
아님 진지하게 떡밥을 날리시는건지?

하여간, 왜의 정체에 관해서, 가생이 동아판에서도 여러번 나왔으니까
찾아보세요.
               
환쟁이토벌 15-07-17 03:31
   
무엇을 찾아보라고하시는건지..? 왜의 정체가 뭐라고생각하시는데요?ㅎ
전부 님의 추측을 사실인냥 왜곡 설파 하지마시고 진실을 진실로써 있는그대로 받아들이세요^^
과거 역사를 혼자 바꾼다고 세상에 뭐가 달라지나요?
                    
mymiky 15-07-17 03:41
   
~라고 주장하는, 어느 왜그로의 깝치는 희망사항을 여러분은 보고 계십니다.
쉰소리는 일기장에나 적으시면 되고
망가는 적당히 보세요-.-
가끔식 현실과 망상이 오락가락 할수도 있으니까요 ㅋㅋㅋ
뭐, 님의 머릿속에서 왜가 혼자 깝치던 말던 내 알바는 아니지만요 ㅋㅋㅋ
                         
환쟁이토벌 15-07-17 03:52
   
중2병이세요? 님에 머릿속에 잠식하고있는  공상 역사 판타지가 현실에서는 차단되니까 혹은 님생각이 정상적인 일반인들과 다르기때문에 열폭하시는겁니까?
안쓰럽네요,, 전쟁게임 같은거 적당히 하시구요  어젯밤 꿈속 님 머릿속에 백제는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를 지배한 대제국이였나요.?ㅋㅋ
                         
mymiky 15-07-17 03:5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enturion 15-07-17 04:16
   
환쟁이 토벌 왈:

한반도 남부의 실질적패권은
백제도 마한도 가야도 아닌 왜 였습니다.

이런 해석이 세계에서 통용되고있는 진짜 역사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그로상 또 닉바꿔서 왔나보네.
               
환쟁이토벌 15-07-17 04:24
   
한.중.일 각국의 모든 고서와 현재 남아있는 한반도 남부의 유적등등이
진실을 말해주고있네요 부정의 표현으로 왜그로상이란 표현은
참 귀엽네요ㅋ 역사는 님에 상상력으로 쓰는 일기장이 아닙니다
괜한 엄한소리나 해쌋지 마시고요^^
                    
뚜리뚜바 15-07-17 12:23
   
꿈같은 소리좀 그만하세요 ^^
                         
환쟁이토벌 15-07-17 12:27
   
환쟁이들만 난무하는 이런데서 사이비글만 찾아읽지마시고 진짜 고서의 내용을 찾아읽어보세요 당신이 기존에 갖고있는 역사와 민족이란 개념의 생각이 제대로 트일겁니다 한민족이니 뭐니 하는것두 결국 역사 정치놀음이구나 이해하실겁니다.
                    
Centurion 15-07-17 15:39
   
어이 왜그로상 또 倭aggro奴? ㅋㅋ
               
mymiky 15-07-17 04:35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ㅂㄷㅂㄷㅂㄷㅂㄷㅂㄷ 빼애액~~

아. 존나 귀엽네 ㅋㅋㅋㅋㅋㅋㅋㅋ
mymiky 15-07-17 01:12
   
송서(위진남북조 시기, 남조 송제양진 할때 송/ 조광윤의 송나라 아님)은  중국의 남부의 제한적인 지역을 지배했을 뿐으로 통일왕조와 같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으나 정통왕조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예로, 백제의 경우에 송에서 받은 관직을 보면

[서하태수, 좌현왕, 우현왕(흉노족을 통괄하는 칭호), 정로장군(북방을 토벌하는 장군직)] 등등을 받았는데
실질적으로 모두 남조가 아무리 팔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지역의 지위입니다.

백제가 요서를 공격해서 진평군, 진평현을 설립했다는 사료 역시 송서에 나옵니다.
 이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나?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물론, 이걸 근거로, 우리나라 민족주의 사학계열에서는 백제 요서 경략설 근거 중 하나로 보기도 합니다)

일본왕의 경우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는데, 왜가 이러한 나라의 왕으로 중국측에서 추인해달라고 요구하고 남조는 들어주는데,
여기서 일본왕이 스스로 칭한것과 내린 벼슬의 차이를 보면 백제가 빠져있는데 이는,  백제는 남조와 통교를 하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라/임나/가라/진한/모한 등의 7국이라는데 사실, 7국도 아니고, 별칭으로 쓰여져, 겹치는 나라 이름들이 많지요.

결론만 말하면,

관직이나 타이틀이란게, 별거 아니라도
길고, 뽀대나면 괜히 있어보이고, 듣는 사람도 기분이 좋은 법이고,

남조도 큰형님으로 체면이 있으니까
뭐랄까? 자기능력이 되든지 안되든지간에
옛다 기분이다~하고 막 던지고 본다고 해야하나?

뭐, 그런면이 일부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조공과 책봉이란 관계가, 상국으로 체면을 차리면서, 아래 제후국들을 살펴주는게 의무이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니가 짱이라면서? 그런데 이것도 못해주냐? 실망이다 ㅉㅉ 이런 말 들으면,
대국으로써 체면이 붕괴되기에
제 살 깍아먹기지만, 중국의 강점인 물량빨로 돌아가던 관계다보니..

왜는 왜대로 명목상이지만, 신라외 7국왕이 되어 존심 챙기고
남조는 남조대로 왜로부터 조공도 받고, 큰형님 대우도 받으니까
뭐, 둘의 이해관계가 맞았다고 볼수 있을거 같습니다.
단, 백제는 남조와 관계가 좋았기에, 백제왕까지 주면, 외교문제로 비화될까봐
백제는 빼놓고, 신라야 한반도 동남부에 치우쳐져 당시만해도, 짜져-있던 나라라..
무관심한것도 있고, 내알바 아니다는 면도 다분하고, 뭐 그런거 같네요.
사실, 신라가 알았다면, 무척 기분 나빠 할일이죠-.-
우리 국왕은 버젓이 따로 있는데, 우리를 누구한테 주고 마네 지들끼리 ㅈㄹ한다고
얼척없어했을일..
Centurion 15-07-17 04:50
   
뭐 이 부분에 대해서 동아게에 제가 써놓은 글도 있긴 한데..

여기에 대해 이런 저런 썰들이 많아요.
동아게에서 이런 저런 썰을 종합해서 추리해 본 결과..

1. 백제는 일본 열도로 사실 뒤늦게 진출한 세력이었다.

(오히려 삼한 세력 때 이미 왜와 교류한 후한지 동이열전 기록이 있고,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 시절부터 왜의 침략 기록이 존재함)

다만, 왜라는 존재가 현재의 일본인보다는
중국 혹은 한반도 남부의 문신을 하고 다닌 섬 주민(해양세력)일 가능성도 배제못함..

영산강에서 나온 현대일본인에 가까운 유골은 1500년 전 유골이라고 하니..
시대적으로 근초고왕 이후의 광개토대왕한테 신나게 털리던 4~5세기 무렵 인골임.

하지만, 근초고왕은 후발주자였지만, 일본열도로 진출해 일본열도를 차지하고,
백제왕족을제후왕 형태로 왜왕에 임명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영국 국왕이 왕위계승권자인 태자를
프린스 오브 웨일즈(웨일즈 대공)에 임명하는 것과 비슷한 관계라고 보면 될듯..

2. 그런데 왜 왜왕은 저런 무리한 직책을 요구한 것일까?

이것도 저번에 제가 써놨지만.. 간단합니다..
본국 백제가 고구려의 말발굽에 짓밟혀서 거의 멸망 수준에 이르렀던게 당시 상황입니다.
그래서 백제 왕실이 개판이 되죠. 암살과 반란의 연속..

그러니, 근초고왕의 일본열도 장악 이래
왕위계승권을 가진 왜왕(백제왕족)이 백제왕이 되기 위해 복귀를 하기도 하는데..
상황이 너무 개판이 되다보니 본국 백제의 권위가 바닥을 기었던 거죠.

그래서 분국의 제후왕인 왜왕이
본국 백제왕실의 감투까지 자기들이 겸하게 해달라 요청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상 근초고왕 이래 백제는 북으로 고구려, 남으로는 마한,
동으로는 신라, 가야, 일본 열도까지 차지한거대 해양세력이었기 때문에 그 모든 관작을 주장할만한 존재였죠.

헌데, 백제가 고구려 광개토대왕한테 밟혀서
본국 백제왕이 고구려의 신하국을 자처할만큼 망가진게 당시 상황입니다.

이게 비슷한 상황이 국제적으로 벌어진게..
포르투칼 국왕과 브라질 제국의 관계죠.

나폴레옹 전쟁 시기 프랑스군에 유린당한 포르투갈 왕실이 자국 식민지 브라질로 망명해,
여기서 아예 포르투칼-브라질 연합왕국 형태로 나라를 이루다가,
아예 나중에 브라질제국이라고 따로 떨어져나가버립니다.

당시 광개토대왕한테 침공당한 본국백제 꼴이 프랑스군의 침공을 당한 포르투갈 왕실상황과 거의 똑같죠.

고려의 경우에도 고려왕이 고려, 심양왕을 겸했다가, 작위를 나눠서 계승시켰다가..
심양왕이 고려왕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런거랑 비슷한거에요.

일본 역사를 봐도,
정식 영주인 수호 다이묘가 아닌 그 대리인인 수호다이묘 대리가 힘이 쎼져서
영지 찬탈을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고, 종가보다 쎈 분가가 종가를 무너뜨리거나 대신해 영지를 차지해
이어나가는 시마즈 가문의 예도 있습니다.

영국도 미국을 식민지로 삼았지만, 지금 모습은 영국이 미국의 시녀라고 조롱당하는 모습이죠.

그런 상황이 백제 본국-왜 분국 사이에서 일어난게 광개토대왕 시절 상황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왜왕이 근초고왕 시기에 누렸던 감투자리를 왜왕의 이름으로 받길 원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이야기가 착착 맞아떨어집니다.

3. 그리고 왜 5왕의 경우 한 계보인지.. 아니면 다른 세력의 왕들을 묶은것인지 확실치 않은데..
저게 뭐 한쪽은 백제왕 계보, 한쪽은 고구려나 다른 계보의 왕이라 추정하는 썰도 있더군요.

다만, 근초고왕 세력이 한창 전성기 때
일본 내 다른 가야, 신라, 마한 등등.. 일본열도의 기존 도래계 세력들을 싹 제압하고
백제왕족이 왜 왕가를 차지한 것은 거의 확실한거 같습니다.
     
aghl 15-07-17 08:50
   
일단 님의 글을 봤습니다만.. 님의 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님의 글은 어디까지나 설뿐인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여러 논의로 된 이야기 전제도 좋고 저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일본학자들에게 주장한다면 필요한 철저한 증거가 필요합니다. 혹시 저런 기록이 적혀있는 중국이나 그밖의 역사서가 또 있나요? 그렇게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갔다면 분명히 당대의 기록이 넘칠텐데요..혹은 금석문이라든지, 철검등 유물이라든지, 역사서라는 확실한 근거가 필요합니다.)

우선 일본내 분국을 가정하신걸 보면 북한학자 김석형의 이론을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김석형의 논리 자체도 거의 삼국의 이민자들이 삼국을 그리워하여 일본내 분국을 만들었다는 설(즉 미국에 영국인들이 지은 지명이 많듯이..)을 전제로 논의를 시작하는데요. 물론 제가 볼떄 진한이나 모한이라는 나라가 이미 저때(5세기)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저런 명칭을 쓰는 것을 보면, 또 님얘기가 맞는것 같기도 하구요.

역시나 석연치 않은 것은, 왜,신라,임라라는 부분입니다. 이부분이 가장 걸리는 부분인데 그렇다면 왜는 당시 존재하고 있던 왕조인 신라도 그리워하며 분국을 만들었던 걸까요? 또 임라라는 거짓의 왕국을 그리워 한 걸까요?

일단 저의 경우 위 천황들은 일본서기에서만 존재하므로 가짜이고(각 천황의 묘도 메이지유신이후 정부가 임의로 지정함..) 일본학자들이 송서의 내용과 억지로 묶으려 하는데 사실 송서의 왜5왕과 위 천황들은 시기상으로도 맞지않고 어느 유사점도 발견하기 어렵다는 대전제는 깔려 있습니다. 즉 저같은 경우에는 일단 일본의 천황이라는 존재 자체를 완전히 허구로 보고 있기 때문에..(어떤 식으로든, 천황이라는 존재를 인지하는 거 자체가 식민사학의 영향..) 그 이상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Centurion 15-07-17 15:37
   
신라왕자 천일창 신화가 일본에 남아있습니다.
연오랑 세오녀 설화도 고대로 일본에 남아있구요.

일본열도에서 신라계의 분국(식민지)이 존재했다는 소리지요.

그리고 왜의 존재라는게 신라 건국보다 오래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삼한시절부터 이미 문신을 한 사람들이 마한, 변한에 돌아다녔으니까요.
이게 유행인지 왜인과의 교류 때문인지 삼한인들 일부도 하고 다녔죠.

당연히 일본 열도 내에도 삼한세력이 삼국보다 먼저 진출해 세력을 형성하고,
분국 수준의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했을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습니다.
(이미 삼한인들과 왜와의 빈번한 교류, 왕래 흔적이 후한지 동이열전에 나와있죠.)

즉, 본토의 마한은 근초고왕 때까지 남아있었고,
진한은 여전히 신라에서 일부 복속이 느슨한 일부 지역
혹은 일본열도의 진한계 이주민들이 세운 소분국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죠

어쨌든, 우리가 도래계를 계속 백제에 한정해서 보려고 하는데..
일본열도와 한반도는 너무나도 가깝고, 한반도 도래계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
그 이상의 이른 시기와 규모를 갖고 있었다고 봅니다.

사실상 왜 열도조차.. 천황가가 만세일계를 주장하고 있지만. 이건 허황된 주장이고..
실제로는 수많은 소국들의 난립과 충돌, 분열과 통일을 겪은 것이죠.

이 소국들의 형태를 보면,
삼한의 지방 단위인 (소)'국'과 몹시 유사하죠.
삼한인들의 도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을겁니다.

어쨌든 이러한 세력분열과 난립도 결국 백제의 전성기를 맞이해..
마한의 잔당을 복속시키고, 전라도 남부에서 동쪽으로 가야와 연결되어,
다시 해양을 건너 우세한 군사력으로 일본열도의 패권을 확 틀어잡은
근초고왕 시기 이후 일본 열도가 백제계 천황가의 분국으로 통일되었다고 봅니다.

어쨌든 신라로서도 일본열도에 원정을 보낸 흔적이 있고,
당시 일본열도의 상황은..
마치 제국주의 시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과 비슷한 분위기였다고 볼 수 있을거 같습니다.
왜5왕 중에서도 일부 왕은 갑자기 활동이 뚝 끊기는게 있는데,
이게 본국 백제왕으로 즉위한 상황이라 그렇다죠.

백제를 때렸는데, 왜왕이 부모잃은 원수의 감정으로
고구려를 욕하는 편지도 남조에 보내서 원병과 책봉을 요청했고 말이죠. ㅋㅋ
KNVB 15-07-17 08:36
   
무에 보시면, '천극으로 가는 길은 백제를 통해 가야하기에 배를 타고 가야합니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당시는 왜에서 중국으로 가는 직항로가 없었습니다. 고대에는 항해술에서 나침반이 없었기 때문에, 왜에서 중국으로 가려면 쓰시마 섬을 거쳐 경남, 전라 해안선을 따라, 육지를 확인하면서 항해했기 때문입니다. 즉, 중국과 교류하기 위해서는 백제와의 우호가 왜에게는 필수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금관 가야가 낙랑군이 멸망한 시기부터 쇠퇴한 것도 낙랑을 통한 중국과의 중계 교역이 끊겼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왜에서 중국에 사신을 보내서 저런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것부터가 백제의 협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백제는 고구려와 맞서기 위해, 왜의 군사적 지원이 필요했고, 왜는 선진 중국과 교류하기 위해서라도 백제와의 우호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aghl 15-07-17 08:59
   
님의 글은 일단 그럼 당시 왜가 백제와는 전혀 다른 세력이지만,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 백제를 이용했다고 보시는 건가요? 그리고 제가 궁금한것은 님이 말한 '무'라는 왕은 도대체 정체가 무었일까요? 유랴쿠 천황일까요? 아니면 개로왕일까요? 아니면 일본내 소국의 왕인걸까요?
비좀와라 15-07-17 09:08
   
문제는 위의 기록된 왜왕들이 누구냐 입니다. 그들을 모르고서 아무런 가설을 만들 수 없어요.

그들이 누구냐에 따라서 기록 오류인지 아닌지 알수가 있는거고 어떤 정치적 군사적의도에서 사신을 파견하고 그들이 소속된 집단이 누구인 줄 알죠. 저 기록은 저 기록상의 왜왕의 정체를 어느 정도 알고서야 저 기록이 가지는 의미를 알 수가 있는 겁입니다.

먼지 저 왜 5왕의 정체부터 규명해야 지요 그 전에 저 기록은 확인 안된 신뢰성이 떨어진 기록일 뿐입니다.
아비요 15-07-17 10:04
   
애초에 천황이라고 주장하는게 말이 안되죠. 천황이라는 말은 그들의 국토와 주민이 어쨌든 스스로 천자로서 제일 높은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거기에 왜왕으로 타국에 봉작을 받는것 자체가 정통성에 심각한 타격이고, 일본자체가 왜라는 이름으로 한반도일대의 왕국들과 활발하게 교류를 했는데 천황이라고 주장한다는것은 말도 안되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저 시기에 천황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아마도 백제 멸망후에 백제의 역사를 자기것으로 하면서 일본서기를 작성하며 일종의 새로운 개국으로 천황으로 모두 올린것이죠. 조선 건국시에도 보면 태조가 선조들을 모두 상왕으로 올려봉하듯이 말입니다.
Windrider 15-07-17 11:19
   
천황은 무슨. 일왕이나 왜왕이 맞는거죠.
조봉준 15-07-17 12:02
   
현재 일본에서 임나일본부라는 명칭은 폐기됬습니다. 당대에는 일본이라는 명칭이없었고, 통일정부가 수립된것도 아니었기때문에 중앙정부가 府를 설치했다고 볼수 없기때문입니다. 그럴지언정 일본열도집단이 한반도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것은 삼국의 문헌,금석문이 공통적으로 입증하는바인데, 분국설같은 나오자마자 벌집되고 폐기된이론이나 들먹이는걸 보니, 여기 사람들은 어지간히 학계에 관심없는것같네요.
     
aghl 15-07-17 12:14
   
ㅋㅋ 그럼 폐기됬다는 논문이나 증거를 보여주시죠 ㅋㅋㅋ
          
조봉준 15-07-17 12:33
   
무슨 그 분국설 주장한 김석형이라는 사람은 광개토대왕릉비가 조작이라고 헛소리하다가 쳐발린지가 수십년인데 도대체 무슨소리를 하고있나 모르겠습니다.
밥밥c 15-07-17 12:11
   
가장먼저 봐야하는것은 , 남조의 기록자체가 제대로 된 것인지의 여부입니다.

 애초에 남조의 특성자체가 올바르게 기록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이죠.

 불과 50-60년전인 문화대혁명시기만 보더라도 최소한 2000만이상 굶어죽었는데, 이때 굶어죽은 이유가

 쌀이 하나도 없음에도 충분히 많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관할지역에서 사람들이 굶주리다 못해,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먹고 있는상황에서조차 쌀은

 충분하다고 허위보고를 했기에 수천만이 그자리에서 굶어죽었죠.

  하지만 언제나 그들은 정직하면 손해본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지금도 동북공정이니 뭐니하며 계속

 부풀리기 거짓말을 합니다.

 이러다보니 멀쩡히 지냈던 왕조 자체가 드물며, 그들의 사서에서 가장많이 보이는 문구가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내용이죠.
     
aghl 15-07-17 12:16
   
그래도 고대사에 있어서 중국사서의 중요성이 감소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시각이고, 그 기록들이 연결성 없이 산재되있습니다만.. 중국사서도 매우 중요한 기록들입니다. 왜구들 글과는 차원이 다르죠. 예전 중국은 지금 짱개들하고는 ㅣ교조차 할 수 없죠(예전중국이 잘났다는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말입니다)
     
환쟁이토벌 15-07-17 12:32
   
중국사서의 내용중 유리한것만 골라먹고 불리한건 위서취급한다 이말인가요? 우리나라 사서는 가장오래된 사서가 고려시대 편찬된 삼국사기인데 그것들에 내용은 무엇을보고 참조했을지 생각해보았나요?
밥밥c 15-07-17 12:52
   
가장 중요한 것은 남조의 기록이 과연 정직하게 기록된 것인가의 여부입니다.

즉, 그들의 사서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대부분 확인한번 안해보고, 그대로 믿어버리기 때문입니다.
     
aghl 15-07-17 12:53
   
그러고 보니 님말도 구구절절 일리가 있네요. 단지 몇십년 존재했던 남조의 역사서에 대해서 왜곡까지는 아니라도 그들의 역사서가 정확한 것일까 하는 점 말이죠.
Centurion 15-07-1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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