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월
나는 동료들과 일본 배낭여행하면서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일본인의 질서, 일본 문화의 우수함, 그리고 110볼트 쓰는 전력
사우나탕에서 내가 옷장에 옷 넣는 5분여 시간을 내 뒤에서 줄서서 기다리는 노인을 바라보며 얼마나 놀랐는지? 고래로 한국인의 피가 섞였다지만 일본인은 우리의 DNA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러시아 전대통령 보리스 옐친이 "일본이야말로 진짜 사회주의 국가"라고 했던 말이 실감났다. 그리고 저렇게 무서운 나라 옆에 있는 우리나라가 갑자기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끊임없이 외부지향적이다. 그 말은 침략적 근성이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번 지진, 쓰나미, 원전이라는 트리플 재난을 보면서 일본인 DNA의 숨겨진 비밀을 알았다.
1. 일본도 국운이 다해간다는 것.
일본은 눈치보던 조선이 17세기말 정조 때 국운이 다함을 알았다. 그래서 깍듯이 예우하던 조선통신사를 본토가 아닌 대마도까지 오게 하고는 찬밥 대우했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 이후 20-30년 사이에 세계 열강대열에 합류했다. 일본패망 후 좌절의 늪에 빠져있던 그들은 한국의 6.25전쟁 특수를 타고 다시 급부상했다. 그러나 이번 국가적 대재앙 앞에선 어쩔줄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특히 대재앙의 주인공들은 모두 노인들이다. TV속에는 거의 노인들만 나온다.
2. 질서만이 살 길이다.
일본사를 보면 온통 전쟁의 역사이다. 조그만 섬나라에서 민초가 살 길은 오로지 질서뿐이다.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강한 사무라이에게 죽임을 당한다. (사무라이가 공격을 쉽게 하기 위해 좌측통행하던 습관이 자동차 문화로 굳어져 있다.) 지금도 그들은 국가가 시키면 하지만 국가가 침묵할 땐 질서에 의존한다. 어떤 일본의 지성인은 이번 질서 의식을 보면서 운명에 순응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3. 재난시에는 외부로 눈을 돌려라.
임진왜란 당시 일본 국내 정치는 복잡했다. 꼬이고 꼬인 상태를 푸는 길은 외부로의 진출이었다. 지금 일본은 무척 어려운 처지에 있다. 독도로 눈을 돌리면 국민의 반감을 무마시킬 수 있다. 국민적 저항을 받는 수구세력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독도 문제가 불거져야 한다. 한국의 반발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역사적으로 얼마나 지진 쓰나미에 질렸으면 외부 진출을 원했을까.)
일본은 110볼트 전기를 쓰면서도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재앙으로 기세가 다소 수그러들 듯하다. 자연 재앙이 다소 덜한 한국이란 나라를 부러워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반성해야 할 점 몇 가지.
1. 일본 원조는 계속돼야 한다.
아무리 친구 사이가 나빠도 상대 친구가 부모 상을 당하면 조의금 갖고 문상 가는 게 한국인의 정서이다. 이런 철학과 정서가 없으면 국가와 민족은 존속할 수 없다.
2. 하지만 원조 속도를 늦춰야 한다.
일본인들은 국가가 어려워도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외국 원자력 기술 거부, 물량 지원 거부-돈으로 요구 등. 우리는 대일적자가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나치게 일본 일본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수준에서 할 만큼 했으니 이 정도에서 속도를 늦춰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경제는 일본보다 뒤져도 한참 뒤져 있다.
3. 우리 문화 우수성의 자긍심을 지니자.
일본 질서에 감동하지만 무질서하면서도 정이 많은 우리 문화도 자랑거리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IT시대에 각광받고 있다. 한국이 인터넷 시대의 선봉에 서는 힘이다. 정신대할머니의 눈물어린 성금이 진정한 우리 문화의 진수임을 보여주고 있다.
4. 독도 대응은 늘 하던 대로
지진 성금을 줄 때 독도카드를 내미는 건 인륜상 도리가 아니다. 일본은 그런 나라이다. 외부로 침략을 꿈꾸는 자들에게 어떤 빌미도 제공해 주어서는 안 된다. 침착하게 대응하자.
5. 대재앙프로젝트를 만들자.
일본 재앙을 잘 연구해서 국가적 재앙을 대비해야 한다. 차세대 인재를 법대로 보낼 게 아니라 이공계로 보내야 한다. 국가 및 인류 재앙에 대비해야 한다.
위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국력을 기르자"이다.
어느 날, 토론을 하면서
만약 한국이 재앙을 맞으면 일본을 어떨까? 했는데
우리는 모두 "필요하지 않으면 원조해 주지 않는다"에 동의했다.
일본인은 철저히 이코노믹에니멀(경제적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