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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6-02 11:39
[일본] 미국 vs 일본 제국
 글쓴이 : 미신타파
조회 : 3,789  

2차 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 제국을 비교해 보니 사실
미국이 핵폭탄 없이는 일본을 이기기 힘들었겠네요

독일, 이태리가 일본 제국 보다 훨씬 약했네요ㅋㅋ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한거도 사실 무리수가 아니라
그걸 뒷받침할 충분한 덩치가 됬기 때문이었군요

일본이 끝까지 전쟁을 할 수 있었던거도
일본 제국이 워낙 덩치가 컸었기
때문이었군요

참 가슴이 아프네요
왜 우리 조상님들은 한국을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지도 못하고
치욕적인 일본 식민지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안겨 준건가요?
참 원망스럽군요


미국:
영토: 9,000,000 km^2
인구: 1억3천만

일본 제국:
영토: 8,000,000 km^2
인구: 1억4천만

독일 제국:
영토: 4,000,000 km^2
인구: 7천만

이태리 제국:
영토: 4,000,000 km^2
인구: 7천만

1942_Map_of_Japanese_Empire.jpg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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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5-06-02 11:52
   
ㅋㅋ 그동안 입이 근질거려 어찌 참았을까? 왜그로상. ㅋ

밥도 좀 먹고 쉬엄쉬엄 하길ㅋ(지면 낭비질은 그만 쳐하고. 한심해서리. 쯧.)
     
미신타파 15-06-02 11:55
   
단지 역사적 사실과 현실을 쓴거 뿐인데요
          
굿잡스 15-06-02 11:58
   
미신> 집에선 이러고 노는 걸 아시남?(쉰소리는 본인 일기장에나. 할일 없으면

낮잠이나 자길.)
땜남 15-06-02 12:15
   
님.그런 소리 역사좀 아는 사람들한테 하면 비웃음 당합니다.
그럼 당시ㅈ국민당은 일본제국만한 영토에 수억 넘는 인구ㅈ가지고 있는데 왜 박살났죠?
초기 소련도 독일한터 개박살났고.
당시ㅈ미국 전력 투입 규모나 전략 확인하고 오세요.
독일이 일본보다 약했다?
개가 웃습니다
이쉬타르 15-06-02 12:17
   
몽골 ->성공한 케이스
일본. 나치독일 ->실패한 케이스...수법은 같았는데도 불구하고..닥치고 침략 전쟁 일으키기
북창 15-06-02 12:19
   
ㅋㅋㅋㅋㅋㅋㅋㅋㅋ한번 왜구로로 몰리니까 에라 모르겠다~!! 커밍아웃 쩌네 ㅋㅋㅋㅋ
땜남 15-06-02 12:19
   
일본이 끝까지 싸울 수 있었던 이유 두가지에요.
첫째 나치우선 정책.
둘째 가미카제.땅굴 벙커러시
미군 교환비가 ㅎㄷㄷ 합니다.
실제 보통30:1 이 넘어요.
근데 그게 이오지마 오키나와 부터 비슷해지죠.
이쉬타르 15-06-02 12:24
   
일본이 전역을 지나치게 확장시켜서 무리한 전쟁으로 자멸한 유형인데 욕심을 자제 하고 점진적 팽창을 추진 했다면 미,영하고 전쟁을 회피가 가능 그러면 독일 패망후에도 군국주의 일본이 성공한 제국주의의 하나로 자리 잡았을것이라 ...그냥 순간 판단 혼미의 잘못이라고 봐야
원래가 영국이나 미국이나 유사한  대외팽창 전략으로 커지거나 태어난 존재인지라
이쉬타르 15-06-02 12:27
   
대영제국은 성공을 해서 옥을 안듣고(사실 전세계에다 대고  식민지 침략을 하면서 나쁜짓도 무척 많이 한 나라가 영국임).... 일본은 실패해서 나락으로 떨어진 케이스이고 제국주의적 속성은 심지어 미국도 별로 다르지 않음..미국은 유럽국가들이 거의 비워진 대륙을 무력으로 정복을 통해 유럽출신들로 해서  태어난 나라 였으며
이쉬타르 15-06-02 12:36
   
음 그런데 19세기 말 당시 조선은 너무나 군사력을 안키워서 일본에다가 먹히고한게죠..조선이 제국주의 국가 까지도 안가도  조선을 좀더 부흥 시키고  군사력만 키우고 주변 국가 도움을 받고 했다면 일본 침략을 막아 낼수가 있었죠
조선은 근대화의 거부 군사력 건설에서 거부..총체적 내정의 실패인데 혁명이 나든 해야 하거늘..기존권력이 안망하고 유지되어 온 결과 나라가 통체로 외세에다 먹혀버린게죠
유일하게 권력을 쥔 보수 기들권 양반들을 제거 해야 만이 당시 조선이 살아 날수가 있었죠 그런데 최후의 희망이랄 갑신 정변이 실패되면서 근대화가 조금이라도 진척된것이 완전 마비 증세가 온검니다..
굿잡스 15-06-02 12:39
   
애초에 왜구들은 제국이라는 걸 정립해본 역사가 없음이 정론. 가장 최장 기간이라고 하는게

대한제국의 잽 강점기라고 해봐야 겨우 35년. 이 정도 강점 체재는 지금이야 감정적 짦은 현대사에

잽의 전범 후예의 정치적 부분과 맞물려 어쩌고지 수백년 지나면 이런 기간은 지배 체재로 넣어 주기도

뭐함. 하물며 다른 지역은 유럽에서 독일과의 전황에 따라 아시아권에서 제대로된 적수도 없이 불완전하고

일시적 저런 무분별한 전선 확대를 제국의 지배 어쩌고 역사 자체가 망상임.(제국이 땅만 밟으면 제국이

형성??? 쥐랄합니다.)

우리 고조선,고구려가 천년 사직동안 동방문명의 패자로 동방문명권의 천자로 우리식의

고유 문명권을 정립하고 직,간접 지배 영역을 곤고히하며 더 나아가

낙양을 장악한 북조의 북위까지 정치적 투사력을 보였던 오랜 기간의 제국의 역사와는 비교 자체가 넌센

스. 로마제국이나 기타 유럽의 제국주의 체재도 그렇고.(지금의 신생 미국 역시도)

몽골의 원 제국 역시도 그런 제국주의 체재 아래에 동,서양간의 상업과 문화 교류를 촉진 시킨 역사적

의의가 있다면 그냥 잽은 섬에 쳐박혀 외부와 단절된 시간속에 그마저도 지들 내부에서 온전한

국가 운영 체재 하나 제대로 유지 못해본 비루한 역사.

약탈 경제식의 전국시대 100년 . 이후 토요토미 뻘짓에 켁,

에도 얼마 가다 켁, 근대 채재에서 저런 뻘짓하다 핵쳐맞고 켁, 현대에도 몇십년 안되서 세계최악의 국가 재

정 악화와 국가 신용등급의 추락 지속에 후쿠시마와 각종 재난과 온갖 사회문제하며.

마치 국가 운영을 하루살이 불나방처럼 머리도 딸리고 몸도 난쟁이 똥자루 만한 왜구들이 주제 파악은

못하고 저열한 탐욕만 많아 일시적 무분별한 전선확대를 제국주의 체재를 정립해 봤니??

망상에 캐소리하군.(이건 그냥 똘아이 양아치들이 약빨고 인성

상실 한채 칼질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역사일뿐)
이쉬타르 15-06-02 12:47
   
그란디 진주만 기습전에 일본의 경제력은 미국에 비해 1/10로 바위에다 대고 달걀 날리는 만용으로서 바보 같은 전쟁 였죠
본문 그림에서 일본이 직접 경영이 된 영토는 만주하고 한반도 대만 이라 ..경제력이나 부존 자원이 타 열강에 밀리는등 약한 국력으로 맞상대 하기에 빈약 했고 심지어 이 일본이 단독으로 소련하고도 전쟁을 해도 패배 한단 학자들 연구도 있었죠

한데 그 당시 일본은 미국/ 소련 /유럽주요국/중국 에다 선전 포고하거나 교전 상대 였었던지라..가장 미련한 전쟁을 벌인 나라로 역사에 기록이 될만 하죠
굿잡스 15-06-02 12:51
   
여기서 어그로들이 까는 조선이 도리어

근대 잽보다 오랜 그리고 제대로된 세련된 제국주의 체재의 운영을 한 나라이고 역사인건 아시남?

바로 옆에 명이라는 나라에 대한 친명적 실리적 사대의 관계는 보였지만

15,6세기 조선은 엄연히 대조선으로

동만주 일대의 여진족부터 아래 류큐,왜, 동남아등에 정치,문화,무역, 외교등에서 독자적 황제적 질서를

구축하고 다스렸던 나라.
     
이쉬타르 15-06-02 12:54
   
이 사람 무신 노무 헛소리 하는겨??... 대조선이라니??
어이 역사 날조는 그만좀 하그라

독자적 질서를 구축을 해??누가???
          
굿잡스 15-06-02 13:06
   
이 사람 무신 노무 헛소리 하는겨??... 대조선이라니??
어이 역사 날조는 그만좀 하그라

독자적 질서를 구축을 해??누가??? >

??? ㅋㅋㅋ

이쉬> 본인 무지한 머리이면 날조에 헛소리임???ㅋ

이 사람은 학계에서도 실제 15세기 세종대왕이 이룩한 전후의 조선이 대조선으로

독자적 황제적 질서로 동북방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황상이나 황제소릴 듣었다는걸

전혀 모르시남요? ㅋ(조선이 임진왜란 이후 전란과 이를 틈타 만주일대 여진족의

발호로 세력이 약화된 것이지 그 이전의 조선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으시구만.)
     
이쉬타르 15-06-02 12:58
   
이사람은 조선이 얼매나 허약하고 무능한지 ..명나라 섬기기에만 지극 정성 였고 ..백성들 굶기에만 유능한 건지고 모르고..참으로 답답
인구 1000만명을 가지면서도 인구 150만명의 만주 여진에다 침공,  두방에 나라가 항복을 허지를 않나,,
          
굿잡스 15-06-02 13:08
   
이사람은 조선이 얼매나 허약하고 무능한지 ..명나라 섬기기에만 지극 정성 였고 ..백성들 굶기에만 유능한 건지고 모르고..참으로 답답
>>?? ㅋㅋ 어이없는. 전혀 조선에 대한 기초 상식 없는 쉰소리하군.(요즘도

이런 무식한 소릴 하는 사람이 있음? )
     
땜남 15-06-02 13:01
   
추하다.
대조선?
대체역사 ?
당신이 하는게 역사왜곡.
정신승리 자위질은ㅈ혼자 하시길
          
땜남 15-06-02 13:03
   
까놓고 보면 그 대조선이 청 건국 일등 공신.
명나라  경제재재+누르하치 전사로 궁지에 몰린
여진족이 조선 약탈+백성 노비확보로 숨통을 텃으니
야 조선이 대륙의 주인을 바꿨네!..
대.조.선
          
굿잡스 15-06-02 13:15
   
?? ㅋㅋ 이건 뭔 나보고 하는 말이심??

땜남> 무식한 쉰소리는 본인 일기장에나  쳐하시고.

도리어 지금의 대한민국 보다 15,6세기 전후의 조선이 실제 대조선으로

조선의 군주는 황상이나 황제로까지 불렸다는 실록 기록도 한번 본적 없음??

만주일대의 여진족부터 왜,류큐, 동남아등에 영향력을 더 행사한 게 실체인데

이 당시 조선이 지금 대한민국보다 못했을 것 같음?? 정신 자위질 어쩌고 쳐하기 전에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이 어떤 국제적 위상과 모습인지나 제대로 알고 어쩌고질

하길. 이건 뭔. 기본도 안된 쉰소리 작렬하군. (조선이 오백년 가니 무슨 임진왜란

이나 이후 병자호란 말기에 털린 것만 보임?? 한심한.  천년 사직 고구려가 군림

하고 있을때 실위(몽골)은 일개 고구려의 부용세력으로 같은 휘하 부용세력였던

거란에 조차 깨갱 존재감도 없었고 조선이 임진왜란의 전란으로 정신 없지 않을 앞시

기에 여진족이 조선에 어떻게 털리고 통제되었는지 기본이나 알고 어쩌고질 하길.)
          
굿잡스 15-06-02 13:50
   
땜남> 그리고 이사람 이전 글들 보니 아주 가관이구만.

식근론 어쩌고부터 역시나. 쯧.
     
shrekandy 15-06-02 13:15
   
위의 두분 (이쉬타르, 땜남님) 께선 굿잡스님께서 명시하신 15,16세기란 글이 안보이시나 봅니다. 병자호란? 15,16세기 이야기 하는데 병자호란이 왜 나옵니까? 그리고 인구 대국이 인구수가 훨씬 적은 나라한테 털리는 일은 세계사를 보면 허다합니다.

사람들이 조선이 워낙 역사가 길다 보니, 15-16세기 200년 가량을 지역 최고 강대국중 하나로 군림한걸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명사:

천순 3년 변경 장수가 보고하길 건주삼위의 도독이 몰래 조선과 결탁하였습니다. 이에 두려워하여 중국이 병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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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야인과 왜인들은 모두 우리의 번리이고 우리의 신민臣民이니 왕된 자는 똑같이 대우하고 차별을 없이 하여 혹은 무력을 사용기도하고, 내가 즉위한 이후에 남만, 북적, 이것은 하늘의 끌어들이는 바이지, 나의 슬기와 힘이아니다. 흑룡강, 속평강, 건주위, 올량합, 이만주 동창등 심처 야인과 삼위 달자가 관문을 두드리고 입조하기를 청하거든, 그 종인을 줄여서 후대하여 올려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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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

누가 조선을 일컬어 예의를 아는 나라라고 하였는가? 이 일은 태산을 끼고 북해를 건너뛰는 따위가 아닙니다. 어찌 무례하기가 이와 같습니까?
(명나라 사신이 조선한테서 박대받고 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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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 10권, 2년(1454 갑술 / 명 경태(景泰) 5년) 1월 6일(무오) 5번째기사
김우을두합 등이 야인들이 세조를 알현하고자 원함을 아뢰다

요동 도사(遼東都司) 왕상(王祥)이 말하기를, ‘요동사람들이모두말하기를,

「수양대군(首陽大君)은 대장(大將)의 의모(儀貌)가 있었는데, 이제과연 발란 반

정(拔亂反正)2142) 하였다.’ 하고 탄상(嘆賞)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그때 세조(世祖)가 농사에 힘쓰고 학교를 일으키고 군사를 양성하기를
일삼아서, 궁병(弓兵) 백만을 길러 오랑캐[夷狄]를 제압하려고 결심하고 진법(陣
法)을 익히고 군사를 훈련하니, 왜인과 야인들이 모두 위덕(威德)을 흠모하여 다
투어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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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 40권, 12년(1466 병술 / 명 성화(成化) 2년) 11월 2일(경오) 3번째기사
시무8조에 관한 대사헌 양성지의 상소문

 
우리 나라의 인민(人民)은 무려 1백만 호(戶)나 되는데 그 중에서 활을 잘 쏘는
 병졸이 30만 명이고, 정예(精銳)한 병졸이 10만 명이며, 용감한 군사가 3만 명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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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들 조금만 찾아봐도 일본이랑 여진족, 유구국이 조선한테 꼬박꼬박 조공 바치면서 신하국으로 있던건 알텐데요. 세조실록에선 아주 대놓고 식민지 취급하고요. 저기 사용된 신민臣民 이란 단어가 한자사전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뜻: 군주국에서 왕이나 군주를 제외한 신하와 백성을 아울러 이르는 말)  거의 걍 일본을 조선의 직할 영토로 보는 수준의 발언입니다...물론 실제로 일본이 조선의 직할 영토는 아니였지만 그정도로 조선은 패기가 있었고 또 그걸 서포트해줄 국력이 있었죠. 세계 최초의 규격화된 화학무기를 쓴 국가가 조선이라죠? 대놓고 여진족등의 북방 이민족들과 일본을 대놓고 식민지 취급하고, 그리고 이것에 일본등이 강격하게 대들기는 커녕 꼬박꼬박 조공이나 바치는데 (여진족이 가끔 개기긴 했지만 얘넨 허구한날 조선이 쉽게 밟아줬고요) 이걸 나름대로 꽤 독자적인 질서를 구축했다고 할수 없는겁니까?

동남아도 초창기 조선에게 조공을 바쳤죠. 왜구들이 하도 레이드를 자주 펼쳐서 결국 중단되었지만. 

조선까들하고는 하두 키베를 하다보니 이젠 지칩니다. 바뀌지도 않는 레파토리로 계속 오는게...
굿잡스 15-06-02 13:12
   
15세기 전후의 대조선으로 불리든 시기에는 조선은 지금의 대한민국보다 훨씬 직간접적이고

넓은 세력권을 구가했음.(만주일대부터 열도를 아우르는 )

기본적으로 주변 여진족부터(명보다 조선의 직접적 관할권에 있던 세력임. 이때문에 여진족 말을 가져와서

선불로 명에 10배로 후려 팔아먹음), 열도의 왜, 오키나와의 류큐왕국이고 조선의 통치자를 황상

황제등으로 실제 불렀고 우리만의 독자적 국제적 외교채널을 구축하고 조율.

아래 섬라곡국은 오늘날 태국.


태조 3권, 2년(1393 계유 / 명 홍무(洪武) 26년) 6월 16일(경인) 1번째기사
섬라곡국에서 소목·속향·토인을 바치다
 
섬라곡국(暹羅斛國) 에서 그 신하 내(乃)【내(乃)는 그 나라 관직 이름이다.】 장사도(張思道) 등 20인을 보내어 소목(蘇木) 1천 근, 속향(束香) 1천 근과 토인(土人) 2명을 바치니, 임금이 두 사람으로 하여금 대궐 문을 지키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3권 12장 A면
【영인본】 1책 45면
【분류】 *외교-동남아(東南亞) / *무역(貿易) 


○庚寅/暹羅斛國遣其臣乃【乃, 其國官名也。】 張思道等二十人, 來獻蘇木一千斤、束香一千斤及土人二名, 上令二人守闕門。


태조 11권, 6년(1397 정축 / 명 홍무(洪武) 30년) 4월 23일(을사) 2번째기사
왜인에게 잡혔다 도망온 섬라곡국 사신들에게 옷을 하사하다
   
 섬라곡국(暹羅斛國) 사자(使者) 임득장(林得章) 등 6인이 왜인(倭人)에게 잡혀갔다가 도망하여 왔으므로, 득장(得章) 등 4인에게 각각 옷 1습씩 하사하고 종인(從人)에게도 주었다

○暹羅斛國使者林得章等六人, 爲倭所虜逃來, 賜得章等四人各衣一襲, 以及從人。


태조 11권, 6년(1397 정축 / 명 홍무(洪武) 30년) 4월 26일(무신) 1번째기사
근정전 조회에 투항해 온 왜인 나가온과 섬라곡국 사신들도 서열하다
   
 
 

임금이 근정전(勤政殿)에 앉아 조회를 받으니, 항왜(降倭) 나가온(羅可溫)은 조반(朝班) 동8품(東八品) 반두(班頭) 조금 뒤에 서열(序列)하고, 섬라곡국(暹羅斛國) 사람은 서8품(西八品) 반두 조금 뒤에 서열하였다. 나가온에게 단자(段子) 옷 1습(襲)과 세포(細布) 옷 1습과 사모(紗帽)·은대(銀帶)·목화[靴]를 하사하고, 그 당류 12인에게도 각각 베옷 1습씩을 하사하였다.


戊申/上坐勤政殿受朝, 以降倭羅可溫, 序於朝班東八品班頭稍後, 暹羅斛人, 序於西八品班頭稍後。 賜羅可溫段子衣一襲、細布衣一襲, 幷紗帽銀帶靴, 其黨十二人, 各賜布衣一襲。
굿잡스 15-06-02 13:23
   
아래 실록 기록을 봐서도 알겠지만 조선은 여진족에서 받은 말의 10배로 그것도 선불로 명에게

팔아먹고 있음. 이는 기본적으로 여진족을 조선이 통제아래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면 이런 여진족을

세력권 아래 두고 명과는 실리적 외교와 무역을 보였던게 당시 조선.


태종 3권, 2년(1402 임오 / 명 건문(建文) 4년) 1월 26일(기유) 1번째기사
사신 단목지가 먼저 가져온 말값으로 말을 더 달라고 청하다

 

임금이 태평관 에 가서 사신에게 소요산 에 간다고 말하였으니, 태상왕을 뵙기 위한 뜻에서였다. 단목지 가 말하기를,
 
“내가 말값으로 먼저 보내 온 숫자만치 말을 바꾸어 가지고 돌아가려 합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불가합니다. 벌써 축공(祝公) 과 약속을 했는데, 이제 변경한다면, 이것은 신의(信義)를 잃은 것이오.”
 
하였다. 임금이 일찍이 축맹헌 과 약속하여 말하기를,
 
“말값이 다 오기를 기다려서 말과 바꾼 뒤에, 차례로 운(運)을 지어 들여보내리다.”
 
고 하였던 까닭에, 이렇게 말하였던 것이다
 


 

 

태종 2권, 1년(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10월 3일(무오) 2번째기사
의정부에서 무역할 말값을 정하다

 

의정부(議政府)에서 무역하여 바꿀 말값을 정하였다. 큰 말[大馬] 상등 값[上等價]은 상오승포(常五升布) 5백필, 중등 값은 4백 50필, 하등 값은 4백필이고, 중말[中馬] 상등 값은 3백필, 중등 값은 2백 50필, 하등 값은 2백필로 하고, 명나라 말값의 단자(段子)상품 1필은 상오승포 90필에, 중품 1필은 80필에, 하품 1필은 70필에, 관견(官絹) 1필은 상오승포 30필에, 중견(中絹) 1필은 25필에, 면포(緜布) 1필은 20필에 준(準)하고, 또 여러가지 약재(藥材)로 아울러 주게 하였다. 임금이 판승추부사(判承樞府事) 조영무(趙英茂) 에게 명하여 진헌할 마필(馬匹)을 택하게 하되, 위로 제군(諸君)으로부터 아래로 9품에 이르기까지 품질(品秩)에 따라 말을 내게 하여 태평관 에 보냈더니, 감생(監生)이 말의 털빛을 기록하고, 수의(獸醫) 두 사람이 말 4척(尺) 이상을 뽑아서 중마(中馬)로 하고, 3척 이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세종 31권,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1월 7일(임인) 2번째기사
호조에서 말을 바친 야인에게 답례품을 차등있게 내려주는 기준을 정해 올리다

 

호조에서 계하기를,
 
“말[馬]을 올린 야인에게 답례로 내려 주는 물품은, 큰 말로서 상등은 면포 45필, 중등은 40필, 하등은 35필로 하며, 중질 말로서 상등은 30필, 중등은 25필, 하등은 20필로 하며, 작은 말로서 상등은 15필, 중등은 10필, 하등은 6필로 하여, 정한 규례가 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굿잡스 15-06-02 13:37
   
(조선)황제 폐하(皇帝陛下)의 수(壽)가 남산(南山)처럼 높고, 덕(德)은 동해(東海)에 젖으

시어...


성종 28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3월 13일(계묘) 3번째기사
일본국 경극전 경조윤 좌좌목씨 등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를 바치다

일본국(日本國) 경극전(京極殿) 경조윤(京兆尹) 좌좌목씨(佐佐木氏)와 강기운 삼주 태수(江岐雲三州太守) 태선 대부(太膳大夫) 입도(入道)2907) 생관(生觀)이 사람을 보내 와서 토의(土宜)를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 이르기를,
“황제 폐하(皇帝陛下)의 수(壽)가 남산(南山)처럼 높고, 덕(德)은 동해(東海)에 젖으시어, 부상(扶桑)의 물이 조회하고 계림(雞林)의 들[野]이 성대하기를 빌고 빕니다. 신(臣)은 선조 이래로 대대로 일역(日役)에서 사사(士師)2908) 가 되니, 마치 진(晉)나라의 범자(范子)와 같은 자2909) 이므로, 오로지 궁마(弓馬)를 맡아 부조(父祖)의 업(業)을 실추시키지 않았습니다. 본조(本朝)에서는 정해년2910) 이래로 중원(中原)에 난리[風塵]2911) 가 나서 전쟁이 사방에서 일어나매, 신의 고을도 함께 싸움터 안에 들어가서 적을 많이 대하게 되니, 요역(徭役)에 나가느라 농상(農桑)을 폐기하여 피륙이 가장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사졸(士卒)들이 타지(墮指)2912) 의 재앙에 많이 곤고(困苦)하여 마치 백등(白登)의 포위2913) 를 당한 것과 같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귀국의 명주와 무명의 은혜를 내려 주시면, 삼군(三軍)에서 얼어 죽는 것을 구제하고 황제의 은혜를 만세토록 우러를 것입니다. 변변치 않은 토산물 몇 가지를 별폭(別幅)에 갖추어 적으니, 살펴주시면 다행으로 여기겠습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5책 28권 4장 A면
【영인본】 9책 13면
【분류】 *외교-왜(倭)



성종 32권, 4년(1473 계사 / 명 성화(成化) 9년) 7월 26일(을묘) 2번째기사
일본국 인백단 삼주 태수 원교풍이 양영서당을 보내어 선물과 글을 올리다
 

일본국(日本國) 인백단 삼주 태수(因伯丹三州太守) 산명전(山名殿) 소필(少弼) 원교풍(源敎豐)이 양영 서당(亮瑛西堂)을 보내어 와서 토의(土宜)를 바치고, 아울러 사서(四書) 각각 1건(件)씩을 바쳤다. 그 서계(書契)에는 이르기를,
“공경히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皇帝陛下)께서 보위(寶位)에 오르시어 천운(天運)을 이어받으시니, 구방(舊邦)이 유신(維新)하며, 덕(德)이 하(夏)나라·은(殷)나라의 초정(初政)보다 뛰어나시고 도(道)가 요(堯)임금·순(舜)임금보다 위에 짝하시니, 지극히 축하하고 지극히 축수합니다. 신은 선조(先祖) 이래로 가세(家世)에서 상국(上國)3198) 에 빙문(聘聞)을 통하지 아니한 적이 없기 때문에, 경인년3199) 가을에 일개 암자승(菴子僧)과 석도문(奭都聞) 등을 차견(差遣)하여서, 옛날의 맹세를 닦으며, 또 토의(土宜)의 미미한 정성을 바쳤습니다. 다행히 금상 황제(今上皇帝)3200) 께서 왕위(王位)를 이어받으시는 초정(初政)을 만나서, 눈으로는 한(漢)나라 관리의 위의(威儀)를 보겠고, 귀로는 주(周)나라 시(詩)의 가송(歌頌)을 듣겠으니, 아아, 성대(盛大)합니다. 실로 문무(文武)의 나라인지라 영우(榮遇)하기가 너무나 크옵니다. 전사(專使)3201) 가 일을 끝마치고 동쪽으로 돌아오게 되매, 화로 동반(火爐銅盤) 1개와 동경(銅磬) 1개를 더하여 내려 주시니, 이미 후한 은혜를 받았으므로, 감격하고 기쁜 마음이 지극함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만복사(萬福寺)의 주지(住持) 양영 서당(亮瑛西堂) 등을 보내어 바다를 건너가서 박(薄)한 폐물(幣物)을 바치어 오로지 황제께서 왕위를 이으신 것을 배하(拜賀)하게 합니다. 신은 비록 먼 하늘, 먼 바닷가의 땅에 있어서 위궐(魏闕)3202) 아래에 달려가 마음을 바치지는 못하나, 구구(區區)한 단성(丹誠)3203) 을 엎드려 예찰(睿察)하여 주시기를 빌며, 그리하여 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신의 봉지(封地) 안의 백주(伯州)에 만복 선사(萬福禪寺)라고 하는 옛 사찰(寺刹)이 있는데, 허물어져 무너진 지가 세월이 오래 되었으므로 장차 다시 영조(營造)하려고 하여, 저번 때에 상국(上國)에 조연(助緣)3204) 을 구(求)하였으나, 너그러이 용납하여 주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바라는 바는 대왕께서 관인(寬仁)으로써 포금(布金)3205) 의 봉시를 속히 행하여 주시면, 불각(佛閣)과 승방(僧房)을 일시에 다시 옛날처럼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길이 성수(聖壽)가 만안(萬安)하시도록 봉축(奉祝)하는 일단이 될 것입니다. 하정(下情)3206) 은 지극히 황공함을 이기지 못하여 변변치 않은 방물(方物)을 별폭(別幅)에 갖추었습니다.”
하였는데, 그 별폭에는,
“활[弓] 2장(張), 백시 동대(百矢同臺) 1대(對), 대도(大刀) 10진(振), 관자 풍로(罐子風爐)·건명분(健茗盆) 2매(枚).”
이었다.
【태백산사고본】 5책 32권 15장 A면
【영인본】 9책 42면
【분류】 *외교-왜(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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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3198]상국(上國) : 조선(朝鮮)을 말함. ☞


[註 3199]경인년 : 1470 예종 원년. ☞


[註 3200]금상 황제(今上皇帝) : 성종(成宗)을 말함. ☞


[註 3201]전사(專使) : 특사(特使). ☞


[註 3202]위궐(魏闕) : 임금의 궁궐. ☞


[註 3203]단성(丹誠) :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성. ☞


[註 3204]조연(助緣) : 절을 지을 때에 돈이나 재물로 도와 주어 인연을 맺는 일. ☞


[註 3205]포금(布金) : 베나 돈. ☞


[註 3206]하정(下情) : 윗사람에게 대하여 자기의 마음이나 뜻을 낮추어 이르는 말. ☞
굿잡스 15-06-02 13:28
   
무슨 근대 잽처럼 무분별하게 전선 확대해서 땅만 밟고

몇년도 못가서 패망하는 이런게 제국의 정립인줄 아시남??

물론 직접적 무력 투사를 통해서 일정한 체재 곤고와 문명적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지속성을 가지는

제국주의가 있지만 현대에 와서 영국등은 영연합에 대해 더이상 정치 외교적 간섭을 하지 않고

서로 상생과 독자성을 유지하는 가운데 협조속에서 협력 체재를 이룩하기 위한 방식으로

세련되게 변화된 모양새는 15,6세기 조선이 이런

여진족이나 왜에 대한 일정한 무력적 투사의 채찍과 당근을 통해서 동만주와 열도를 세력권으로 동남아등에도

독자적 조선만의 네트워크와 질서를 구축한 형태 역시 어찌보면 지금에 봐도

상당히 세련된 제국주의 통치 방식의 연장이라는 말.
상도실어 15-06-02 16:00
   
개 뿔뜨먹는 소리여, 오판한거지 미국 건들이지 말았어야지
해상절력 다털리고 미국 본토 상륙직전에 원폭 투아하고 일본에 사람들 씨을 말리기 작전할려고 상륙직전에 항폭하고 서 먼 개소리여
요동 15-06-02 16:37
   
일본인이었구만. 그것도 질 나쁜 쪽의
오투비 15-06-02 17:00
   
바보 아님 ?? 그 1억 4천만의 식민지인이 전부 일본인인줄 아시나요 ㅎㅎ
오투비 15-06-02 17:04
   
그리고 조선 좀 그만 쉴드쳐주세요 제발 ..

그런 정신승리는  비건설적이고 비생산적인 망상일 뿐입니다.

조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건 현재 한국 정치인들의 무능함도 칭찬하는거나 마찬가지에요.
     
mymiky 15-06-02 22:39
   
님이나 좀 닥치세요 ㅋㅋㅋㅋㅋ
꼴갑도 가지가지 한다 정말 ㅋㅋㅋㅋㅋㅋ
     
부르르르 15-06-03 00:22
   
'조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건 현재 한국 정치인들의 무능함도 칭찬하는거나 마찬가지에요.'

이런 결론은 어떻게 도출 되나요?
          
오투비 15-06-03 00:58
   
왜냐면 한국 정치인들 하는꼴이 조선 지배층 하는 꼬라지랑 오버랩되니까요. 옛부터 이 나라 지배층을 이루는 dna들은 버릇이 그렇게 들여졌나봅니다
               
굿잡스 15-06-03 17:23
   
왜구 전범 지배층의 저열하고 무분별한 삽질 DNA만할까. ㅋ.

자국민 총알받이 소모품에 인명경시 사상의 반자이 돌격 만쉐~,

약빨고 객기에 뻘짓하다 얼마 못가 국가 폭망 패턴~(무슨 잽은 국가 운영이 롤러코스터, 불나방질)
가리지 15-06-03 08:21
   
뗀노 헷까이 만자이~~~~ ㅎㅎㅎㅎㅎ
남궁동자 15-06-03 13:31
   
본색들통ㅋ
옥토29 15-06-13 16:27
   
다른나라 영토이야기 할때는 가장 작을때 기준으로 하는데 일본영토 이야기할때는 가장 클때는 물론이고 식민지영토까지 죄다 포함해서 이야기한다는데서 잣대가 어디있는지를 엿볼 수 있죠. 우리는 흔히 이런 인간을 "넷우익"이라고 부르죠. 일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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