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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5-25 22:24
[일본] 일본 인구가 많은이유좀 알려주세요
 글쓴이 : vaculty
조회 : 7,723  

일본이 영토도 우리와 비슷한 크기의 면적인데 왜 인구수가 거의2배 우리의 두배되는걸까요? ?미국같이 이민으로 늘어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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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투비 15-05-25 22:28
   
영토가 우리랑 비슷하다구요 ?
인구수도 2배가 아니라 3배 가까이 됩니다. 그리고 영토크기도 3배 이상이구요.
     
vaculty 15-05-25 22:29
   
지진같은 재난때문에 사용할수있는면적이 비슷하다고 들었는데요
          
vaculty 15-05-25 22:34
   
제가 잘못말했네요 남한영토말고 한반도와 일본의 크기가 비슷하다고 들었습니다
런데이 15-05-25 22:35
   
일본 면적 377,915㎢ 일본의 인구는 약 127,103,388명
대한민국 면적 99,720㎢  대한민국의 인구는 약 51,395,238명
북한 면적 120,538㎢ 북한의 인구는 약 24,851,627명
총 한반도 면적 220,258㎢

면적대비 오히려 우리나라가 인구밀도가 높은편이죠.
     
굿잡스 15-05-25 23:59
   
홋카이도 면적이 제법 컨데 비해 실제 사람이 살 조건은 그리 못되죠.
          
여시 15-05-26 10:16
   
홋카이도가 시베리아동토지대도 아니고 알고보면 일본의 주요곡창지대입니다.
물론 일본의 다른지역보단 춥지만 같은위도의 대륙지역보다  추운지역이 아닙니다.
겨울에 눈이 많이오는것 말고는 농사짓는 땅으로는 아주 훌륭한 지역입니다.
               
굿잡스 15-05-26 17:33
   
요즘이야 만주일대도 혹독한 추위에 이겨낼 벼품종 개발로

짱국의 최대 곡창지대 중 하나로 고대

발해시대에도 북쪽에 일부 벼농사에 기본 콩의 원산지등 잡곡류 생산지.

고대 당시 동열도를 주요 근거지로 둔 원주 조몬인들은  에도시대까지도 수렵생활을 할

정도로 미개.
꼬마러브 15-05-25 23:01
   
근데 일본 면적이라는 것이 훗카이도와 같은 근대에 합병된 섬을 포함시킨 건데 이런 섬들이 포함된 것은 140년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이런 섬들을 제외하면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면적은 대략 엇비슷해지는데.. 일본이 조선의 인구를 넘었다고 예측되는 시기는 대략 임진왜란 전후입니다. 임진왜란 전에도 일본이 약소하게 더 많았다 생각하지만 일단 임진왜란 이후로 조선과 일본의 인구차가 차이나기 시작하죠.. 조선같은 경우는 농경지의 3분의 2 가량이 손실되었으니.. 게다가 조선은 그 전후에도 몽골이나 청나라 등과 같은 이민족들과 전쟁을 벌였던 데 반해 일본 같은 경우는 사면이 바다로 막혀있어 그럴 일이 없죠
옥토29 15-05-25 23:03
   
한반도 기준으로도 일본열도가 약 2배정도 큽니다. 남북한 인구 합치면 땅크기 배율하고 엇비슷해요.
일본이 재난이 잦아 쓸수있는 면적이 적다고 하는데, 한반도는 딱히 재난은 없지만 북한지역은 평지보다 산악지역이 더 많고, 개마고원처럼 사람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추운지역이 대부분입니다.
경작가능지역 대비로 생각하면 우리나라 인구가 지나치게 많다고 봐야합니다.
Centurion 15-05-25 23:17
   
한반도 인구는 대략 삼국시대에 고구려 70만호, 백제 76만호 정도로 봤을 때..
삼국은 총 210만호 정도로 추정되며.. 이걸 1호 당 5명이라 잡으면 인구 1천만 정도에 달하죠.
그런데 이후로도 고려나 조선시대 때에도 대략 이 1천만 내외를 유지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반도는 쌀농사에 있어서 사실 동남아 같은 온난다습하고, 덥고 일조량이 쨍쨍한 환경에 비해 불리한 편입니다.
베트남 같은 곳은 일년에 3모작을 한다고 합니다.
거기에 비해 한국은 나름 열심히 연구하고 노력해서 2모작을 조선시대 쯤에야 가능하게 되죠.

결국 먹는 식량 = 인구 부양력 = 인구 숫자이기 때문에.. 식량 문제 해결되지 않는 이상..
인구를 대폭 늘릴 수가 없게 되지요.

거기에 비하면.. 일본은 일단.. 한반도가 대규모 외세 침공을 막아주는 성벽 역할을 해왔고,
일본은 그런 고마운 한반도의 통수를 치며, 부족한 식량을 노략질해가는 상습적인 강도질을 해왔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성진국이었죠.
지들끼리 아웅다웅하는 내전을 벌이면서도 그 와중에도 인구를 늘리기 위해,
과부들을 범하거나, 길거리의 여자들을 범하는 짓을 무수히 저질렀고..
이런건 일본 사회지도층에서도 인구증가를 위해 장려하는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시절은 딱히 콘돔이나 피임약도 없던 시대라 애를 순풍 순풍 낳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한반도는 거란, 몽골, 여진족, 홍건적, 왜구 등의 싸움에 대규모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했고,
이런 전란기에는 농사짓기도 사실 힘들어 농경지가 황폐화되고, 많은 인구가 약탈과 살인 강도에 죽어나가고,
포로로 끌려가다 보니, 나라가 휘청이고 인구가 늘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거죠.

게다가, 지도층이 부패하여 권문세족이니 탐관오리니 이런 부류가 설치면,
살기는 더 팍팍해지고, 굶주리거나 굶어죽는 사람이 많이 생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정치가 막장이면 인구가 안 늘어납니다.

그래서 중국의 인구가 대폭 늘어난 시기가 청나라 강건성세라고 하는데..
강희제와 건륭제의 치적으로.. 중국 인구가 3배로 뻥튀기 되는 시절이지요.

일본은 거기에 비해, 외세의 침략이 아닌, 내전 양상이라..
지들끼리 지배계급 사무라이급들은 죽이고 죽여도.. 피지배계급 농민들은 또 막 죽이진 않았죠.

얘네들도 칼로 막 농민을 심심풀이로 썰어죽이곤 했지만,
농민=세금 + 병력이라 또 그렇게 막대한것만은 아닙니다.
전국시대 패권 경쟁을 위해서 자기 영지 내 주민들에게서 어느 정도 충성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반면, 중앙집권제가 정착된 중국, 조선의 경우엔..
관료들이 자기가 자리에 앉아있을 때 최대한 뽕을 뽑자는 개념으로 주민을 달달 볶는 그런 케이스도 상당했지요..

게다가 아무래도 반란이 일어난 경우가 아니라면,
딱히 경쟁할 상대가 없는 중앙조정과 왕, 왕족, 대신들이 백성들을 가볍게 보는 감도 있구요.

그래서 창업군주는 인심이 좋고, 덕망이 넘치는 사람, 카리스마와 포용력을 갖춘 사람이 꽤 있지만...
그 뒤에 혈통으로 물려받은 군주들은 개막장들이 많죠..
대기업을 일궈낸 재벌1세랑 그걸 물려받은 재벌2세, 재벌3세를 비교해 보면 그런게 딱 보입니다.

게다가, 조선의 경우는 대체로 대식가였습니다. 밥을 많이 먹었다는 소리죠.
반면, 일본의 경우는 대체로 소식가였습니다. 밥을 적게 먹었다는 소리죠.
같은 농사를 지어도, 조선 사람이 한그릇 먹을 분량을 일본인들은 절반도 안되게 먹는다고 생각해 보시면..
왜? 인구가 일본이 많은지 답이 나오겠지요..

왜인이라는게 왜소하다할 때의 왜인데.. 일본인들 체격이 조선인들에 비해서도 훨씬 작은 편이었죠.
조선 사람들이 대략 160대 중후반이었다면, 일본은 한 130~140대 수준의 난쟁이들이 많았으니까요.
이런건 결국 영양상태도 무시못한다고 봐야겠죠.

일본이 나름 체격이 많이 커진 것도... 육식과 영양섭취가 좋아진 근현대 들어서라고 하죠..
(얘네들은 불교에 심취한 일왕이 육식을 금지시켜, 생선만 먹고 살았습니다)

어쨌든 다양한 원인을 꼽을 수 있겠는데..
정리하자면...
첫번째.. 한반도보단 좀 따뜻하고 강우량이 많은 온난한 기후..(쌀농사에 유리)
두번째.. 외세 침략이 없음..(내전은 있었지만, 지배층간의 싸움이라 농민들 피해가 크지 않음)
세번째.. 성진국.. 섹스에 미치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음.
네번째.. 밥을 적게 먹는 편.. 그러니 쌀생산량에 비해 인구를 뻥튀기하기에 유리함..
다섯번째.. 개항이 빨라서 메이지유신 이후로 인구가 대폭 늘어남.. 조선은 개항이 늦어서 인구가 늘어나는 시기가 조금 늦어짐..
     
국산아몬드 15-05-25 23:57
   
도데체 한반도 왕조의 군왕중에서 개막장 군주는 누구를 말하는 건지?  게다가 고구려가 한반도 내의 국가였나요? 삼국 인구가 천만이라고 하면서 한반도 내 국가로 한정하는 이유는 뭐죠?

일본의 인구가 많은 이유는 정치를 잘해서가 아니라 근친상간뿐 아니라 성윤리가 없어 남녀간의 성교에 제한이 없어 출산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애도시대 일본인구가 가장 많았지만 신장은 일본 역사상 가장 작은 140cm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남녀 성교를 열심히 해서 출산은 많이 헀는데 먹을 건 없었단 말이죠

반면에 한반도 내 국가는 유교 질서를 중요시 하고 남녀 교제에 규제가 엄했기 때문에 인구가 많이 증가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전근대시기 인구증가가 부진한 이유는 한반도 지도층의 부정부패때문이 아닙니다.
한반도 국가 중 막장 군왕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리 수준이 나빠도 중국황제에 비해선 성군소리를 들을 만한 자질을 갖추었습니다. 왜냐하면 거대국가 중국과 강력한 무력의 북쪽 유목민족에 둘려싸여 막장짓 했다간 민족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중국황제중에는 까막눈이 부지기수입니다. 인간을 인간취급안하는 인간 백정 황제도 부지기였습니다.

한반도 국가의 인구증가율은 타 대륙의 인구증가율과 비슷했습니다.
오히려 타 대륙국가보다도 인구밀도가 높습니다

글을 막 싸지르면 안됩니다.
          
Centurion 15-05-26 00:48
   
난독증이신거 같은데.. "막 싸지른다" 운운하기 전에..

글쓴이의 의도는 잘 파악하시기 바랍니다.

"반면, 중앙집권제가 정착된 중국, 조선의 경우엔..
관료들이 자기가 자리에 앉아있을 때 최대한 뽕을 뽑자는 개념으로 주민을 달달 볶는 그런 케이스도 상당했지요.. "

=>중앙집권제가 정착된 중국, 조선을 언급했고, 거기서 부패 관료(지방관)를 언급..

"그래서 창업군주는 인심이 좋고, 덕망이 넘치는 사람, 카리스마와 포용력을 갖춘 사람이 꽤 있지만..."
"그 뒤에 혈통으로 물려받은 군주들은 개막장들이 많죠.."

자, 여기서 비교대상은 엄연히 창업군주와 다른
혈통상 군주직위를 세습한 후대의 군주를 말합니다.

=> 중국과 조선의 중앙집권제를  동시에 말하는 것으로.. 조선 한정이 아닙니다.

일본전국시대 상황에서 농민은 그냥 단순한 농민보다는..
일종의 다이묘의 가신개념이었기 때문에.. 땅을 분배받아 농사짓다가,
농번기에 전쟁에 동원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너무 괴롭히면 군사력 약화 혹은 반란, 세력이탈 등으로 이어집니다.
(즉, 일본통일한 상태에서 쥐어짜는거면 모를까. 다른 세력과 경쟁하며
 패권 다투는 전쟁 중에 민심을 이반시키는 건.. xx행위라 이거죠.)

=>예를 들어 삼국, 후삼국 시대에 이런 막장짓한 케이스? 잘없습니다.
있긴 한데.. 고구려 간첩 도림한테 놀아나 국력을 함부로 낭비하다 침공당해 죽은 개로왕..
자기 아들들 좌평자리에 무더기로 앉히고, 막장으로 과장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방세력의 지원을 얻지못하고, 나당연합군에 망해 끌려간 의자왕.
후삼국 시대에 자기 신하들에게 막장짓하다 반란으로 죽은 궁예 정도.. 역시나 xx행위.

즉, 경쟁상황에서는 함부로 쥐어짜기를 못하는겁니다.

하지만, 중앙집권화된 왕조국가에선 이런걸 두려워하질 않습니다.
구한말 민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된 고부군수 조병갑이가 백성들을 존중하고, 무서워하던가요?

그리고 탐관오리 지방관 위주로 말한거긴 하지만..
한반도 군왕 중에 막장 군왕이 없다니요. 연산군 있잖습니까?
자기 사냥한답시고 민가를 헐어버린 사람 말이죠.

재벌 2세, 3세는 대접만 받고 자라고, 갑질만 익숙한 사람들 많습니다.
세습군주의 문제점이 바로 그런데 있는거구요.
세종대왕 같은 케이스는 왕조초기에나 잠시나타나는 특이 케이스인겁니다.

그리고 폭군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존재감 없이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제위기간을 흘러보낸 평범한 군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사이에 백골징포니 조세제도의 문란이니.. 일어나고 나라가 막장되고, 백성들이 고통받고,
군사체계가 부실화된 걸 성군의 치적이라 볼 수 있나요?

연산군이 중국 황제 막장 케이스보단좀 성군 소리 들을만한 케이스였는지는 잘모르겠군요.
뭐.. 상상 초월하는 북제 황제들 케이스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중국의 거대국가와 북쪽 유목민족들한테 눈깜빡할 사이에 사라질 수 있었던 시절도..
조선시대는 빼줘야 됩니다. 사실상 그건 고려시절까지만 해당되고.
명나라와는 그런 관계도 아니었고, 여진족도 누르하치 이전까지는 그렇게 심각한 위협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대륙국가와의 비교도 아니고, 한-일 인구비교하는 자리에서 타대륙국가를 논하는건 논점이탈이군요.

본인부터 남보고 "막 싸지르지" 않으셔야 될거 같습니다.
               
국산아몬드 15-05-26 20:32
   
난 난독증이 아니오.
 "창업군주는 인심이 좋고, 덕망이 넘치는 사람, 카리스마와 포용력을 갖춘 사람이 꽤 있지만... 그 뒤에 혈통으로 물려받은 군주들은 개막장들이 많죠.:"
이라고 분명히 말헀소. 도대체 그 개막장 군주는 누구를 지칭하는 거요?
영조? 정조? 내가 알기로는 조선왕중에 연산군빼고는 개막장 군주는 없었소. 근거도 없이 개막장 군주 운운하니 말을 싸지른다고 한거요. 내가 틀린말 했소?
          
오투비 15-05-26 01:19
   
정신승리는 아무 도움도 안되요...

조선왕들을 성군으로 만들려면 더욱더 개막장인 중국황제들과 비교해야 한다니 너무 구차하지 않습니까 ?

얼마나 쉴드치고 싶으면 비교대상의 수준을 그토록 낮춥니까.. 어떻게 보면 참 슬픈역사네요 ...
     
굿잡스 15-05-26 02:58
   
그런데 조선 말기 세도정치와 맞물려 삼정문란에 따른 탐관오리들이 득실하던 때로

조선을 전체적 그림으로 비교하기도 넘 일부에 지나친 부분이 없지 않군요.

조선이 오백년을 간 배경에는 그 시스템의 정교함이 들어다보면 사실 만만찮게

정비된 행정력입니다. 이미 고려시대 수령 오사를 더욱 보완 경국대전에서 더욱

구체 법제화해서 수령칠사라고 하여 수령이 행해야할 중요한 칙무와 이에 따른

1년에 두 번에 걸쳐 감사해서 상중하 세 등급으로 조정에 보고되는 등

결코 수령이 혼자 함부로 전횡하게 두었던 조선이 아니였다는 말이죠. 물론 그렇다고

지금이나 과거나 부정부패가 완전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당시 명나라 역시도 우수한

관리를 과거제로 등용 이후는 재량에 크게 좌지되었지만

조선은 이런 관리 등용에서부터 이후 체계적 승급심사까지

현대의 공무원 제도가 이미 조선시대에 웬만한게 다 나올 정도로 행정관리가

남달랐던 국가였군요. (이것도 말기가 되니 세도정치로 권력이 편중되면서

부정부패가 심화되니 막장들이 나온건 사실)


그리고 왜국의 경우는 전국시대에 보면 지들끼리 인신매매, 약탈 경제식이라

어디서 보면 에도시대 이전이 세금 징수도 낮았다는 말도 있긴 한데

그 당시 조총 수입질 한다고 제대로된 수출 물품도 없고 하니 자국 여성 수십만명을

다른 영주지역에서 약탈식 인신매매 수출했을 정도로 막장질까지 하던 시기라 조선

백성에 비해 좋았다고는 전혀 보기 힘들죠. 그나마 에도 초기에 자작농이

돌아가고 화폐경제등이 살아나면서

조선과의 무역도 이루어지자 경제가 제법 돌아갔지만 후기에

가면 은이 부족해지면서 화폐의 질도 낮아지고 세금징수도 악랄해지면서 자작농

붕괴에 따른 농민 반란이 수천회에 이르게 되는. 조선의 경우는 임진왜란의 전란

으로 경작지의 황폐화나 이후 세계적 소빙기등이 조선의 인구의 감소와

성장세의 감퇴에 결정타로 작용.
nyamnyam 15-05-25 23:31
   
인구가 많은것엔 그다지 이유가 없을듯 합니다.
걔네도 우리랑 비슷한 시기에 베이비붐이 있었고 지금은 우리랑 똑같이 인구가 줄어들고 있죠
뭐 인구가 줄어드는 데는 이유가 있을 수 있죠
일본같은 경우는 결혼도 안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체로 경제적인 이유에서죠
지나가던이 15-05-25 23:59
   
영토는 일본이 더 크다고 알고 있는데요.
멀바띠꺄 15-05-26 00:11
   
영토면적 남한이 10만 북한12만 일본이 38만으로 남한의 3.8배, 한반도의 1.7배.
인구 남한5000만 북한2400만 일본이 1억2천7백만으로 남한의 2.54배, 남북한의 1.7배.
영토면적에 비해 많은인구도 아님. 밀도를 보면 상당히 높은비율이지만 우리나라에 비해 면적은 3.8배차인데 인구는 2.54배 차이니 면적에 비해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더 적은 비율이네요
豊田大中 15-05-26 01:29
   
일본은 땅크기부터가 우리보다크고 기후도 고온다습하며 땅도 화산토양이라 농사짓기알맞음 간토평야면적은 호남평야의 10배 통일신라초기부터 일본인구는 한반도를 추월했죠
     
굿잡스 15-05-26 02:13
   
통일신라초기부터 일본인구는 한반도를 추월했죠 >???

뭔소리인지?? 관동평야라는게 도쿠가와에 의해 17세기 에도시대부터 본격 개발되기 시작했고

조선시대 류큐왕국인 오키나와나 북해도는 쳐다도 보지 못했던 시대에 뭔?? ㅋ

삼국시대 고구려만해도 보수적으로 잡아서 호당 5명 정도로 대략 350만, 백제도 이정도.

(구당서에 근거 고구려 멸망기 민호(民戶)의 수가 69만7000호

태종춘추공조(太宗春秋公條)에 의거 백제는 대략 76만호)

그러나 삼국유사 <가락국기 駕洛國記>에 기록된 “구간자시추장령총백성구일백호칠만오천

인(九干者是酋長領總百姓{{%310}}一百戶七萬五千人)”이라는 구절의 호당 평균인구는 8.2

명이라는 기록이나 일본 동대사(東大寺)에서 발견된 8세기 중엽 신라시대의 4개 촌락의 촌적

부에 관한 호당인구는 10.3명으로 대략 못해도 호당 8명은 넘었다는 걸 알 수 있음.

즉 이말은 백제만해도 인구가 600만명은 되었다는 소리임. 그기에 고구려,신라등

또한 고분시대에 열도 유적을 보면 우리 소수의 귀족 군벌 수백개가 난립하면서

열도를 개척하던 시기의 상황을 보면 인구희박으로 제대로된 도시촌락 유적은 찾아보기도

힘듦. 그러면서 백제 무왕의 둘째 왕자인 부여교기가 의자왕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나자

열도로 지지 고관과 장수들이 쫓겨나면서 그곳에서 세를 불려 나가면서 천지천황으로

일본서기편찬부터 백제 본토 멸망에 구원병 파병이나 기타등을 하다 결국 본토가 망하자

이후 백제의 동쪽 지리 명사로 사용되었던 일본이라는 명칭을 국호로 사용하면서

광개토태왕 이후 발려 버린 가야나 백제의 일부 도래인들이 재차 본국이 망하면서 들어

오기 시작.

이때부터 서열도를 중심으로 일본이라는 국호와 왕성등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던 시기인데

무슨 이런 시기에 열도의 인구가 우리를 넘어섰다는 말인지???
          
豊田大中 15-05-26 03:09
   
               
굿잡스 15-05-26 03:23
   
본인 올린 영어 해석 안되심??  잽 국가 인구 조사에 대해 타당하게 볼 근거는

1721년 즉 18세기 어쩌고부터라고.

그리고 보니 울나라 대해서는 제대로 된 것도 없군요.

<≪삼국유사≫ 권1 칠십이국조(七十二國條)에 인용된 ≪후한서 後漢書≫에 의하면 “사한(四漢)이 조선사지(朝鮮四地)에 처음으로 사군(四郡)을 두었다가 …… 법령이 번거로워 칠십팔국(七十八國)으로 나누었으며, 각 만호(萬戶)”라고 기록돼 있으며, 그 중 서쪽의 마한이 54읍, 동쪽의 진한이 12읍, 그리고 남쪽의 변한이 12읍으로, 각기 나라라고 불렀다고 돼 있다.

또한 고구려조에 보면, “고구려 전성기에 21만500호”라는 구절이 있으며, ≪구당서 舊唐書≫의 고종건봉3년(高宗乾封三年) 계사조(癸巳條)에는 “고구려 멸망 때(668) 민호(民戶)의 수가 총계 69만7000호가 되었다.”고 부기하고 있다.

변한·백제조에는 “백제의 전성기에 15만2300호”라고 나와 있으며, 태종춘추공조(太宗春秋公條)에는 “백제가 멸망할 당시(660)에…… 약 76만호였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진한조에는 “신라 전성기에 경중(京中)의 호구수는 17만8936호”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삼국유사≫에서 삼국시대의 인구분석에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기록으로는 <가락국기 駕洛國記>에 기록된 “구간자시추장령총백성구일백호칠만오천인(九干者是酋長領總百姓{{%310}}一百戶七萬五千人)”이라는 구절이 있다.

물론, ‘百姓{{%310}}一百戶’라는 대목에서 ‘{{%310}}’자가 ‘凡’자냐 ‘九’자냐, 또한 ‘{{%310}}一百戶’가 ‘9,000백호’를 의미하는 것이냐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 합리적으로 추정하여 본다면 이 구절은 호당 인구수를 계산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310}}’을 ‘구(九)’로 하여 ‘구일백호’로 하면, 백호(百戶)가 91개라는 뜻이 되므로 총호수는 9,100호에 인구수가 7만5000명으로 호당 평균인구는 8.2명이 된다.

한편 ≪삼국사기≫는 편제상 이 시대의 인구분석에 도움을 줄만한 기록이 없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삼국유사≫의 단편적인 기록과 거의 동일하다.

다만, 본기(本紀) 9의 6면(六面)에 신라 경덕왕 16년(757) 행정구역을 개명(改名)하여 9주(州)가 관할하는 경(京)·군(郡)·현(縣)의 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통일신라시대의 행정구역이 9주·5경·117군·293현으로 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있어 현당 평균호수를 추정할 수 있다면 이 시기의 개략적인 인구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단편적인 기록들을 종합해서 고대의 인구규모를 재구성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다. 당시기록들의 정확성여부도 문제려니와 당시에는 백성들이 병역기피나 조공부역을 포탈하기 위하여 신고를 허위로 한 일이 많았으며, 더욱이 여자나 유년·노년 인구는 부분적으로밖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 당시의 인구수 파악에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록을 통하여 개략적으로 살펴본다면, 우선 ≪삼국유사≫ 칠십이국조의 78국각1만호(七十八國各萬戶)의 시기를 삼한시대 초기인 서기 1년으로 잡고 이 시기의 호당 평균인구수를 앞서 계산한 8.2명으로 가정하였을 경우, 마한 54개 국이 54만 호에 인구 약 443만 명, 진한과 변한이 각기 12개 국으로 각각 12만 호에 인구 98만 명씩 있게 되므로 서기초 삼한에는 모두 78만 호에 약 640만 명의 인구가 있었던 것이 된다.

한편, 기록에 따르면 백제멸망기 및 통일신라시대가 전개되는 7세기 중엽, 백제의 인구가 76만 호에 약 623만 명이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매우 개괄적이기는 하나 삼한시대의 마한을 삼국시대의 백제와 동일한 지역으로 가정한다면, 서기초의 마한인구와 660년 경의 백제인구를 대비하는 데에서 이 지역의 연평균인구증가율을 추정해볼 수 있다.

이를 계산하면, 그 치(値)는 연평균 0.0518%가 되는데, 이 성장률은 서기 이후 17세기 중엽까지의 세계인구의 연평균증가율인 0.04∼0.05%의 수준과 비슷하여 그 타당성이 높다.

따라서 그 타당도를 고려하여 역으로 근대적 인구조사가 실시된 1906년 일본관헌에 의해서 조사된 우리 나라의 인구수를 기수(基數)로 이 성장률 0. 0518%를 대입시켜 고대의 인구수를 추정하면, 통일신라시대를 전후한 7세기 중엽 우리 나라 인구는 약 675만 명이 되고 서기초 삼한시대의 인구는 약 482만 명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1933년 10월 일본 도다이사(東大寺)의 쇼소원에서 발견된 8세기 중엽 신라시대의 4개 촌락의 촌적부에 관한 인구통계학적 분석은 한정된 사례수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발견된 4개 촌락의 호수는 모두 43호에 지나지 않으며, 기록상의 총 인구수도 442명으로, 이 기록에 의한 호당인구는 10.3명이다.

이는 앞에서 삼한 및 통일신라시대의 호당평균인구 8.2명보다 높다. 기록에 따른 이들의 성별·연령별 인구구조는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선 전체인구의 성비(性比)가 78.2로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특히 정수(丁數:15∼59세의 생산연령인구)에 있어서는 68.3으로 매우 낮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95387&cid=46634&categoryId=46634
                    
豊田大中 15-05-26 04:04
   
학자들을 바보로아나 그런거 다 고려해서 계산하고 통계내서 OECD에서 출판한건데 불만있으면 논문을 쓰시던가

http://www.oecd.org/dev/developmentcentrestudiestheworldeconomyamillennialperspective.htm


국가                 0   1000      1500       1600       1700       1820       1870

일본(Maddison) 300   750  1,540 1,850 2,700 3,100 3,450
일본(Hayami)         1,000 1,200 3,000 3,100
한국                 160   390    800         1,000 1,220 1,380

출처 : from the 2007 monograph 'Contours of the World Economy, 1–2030 AD' by the British economist Angus Maddison. (China, India, Japan, Korea, Indonesia, Indochina, Other East Asia)

한반도는 기후나 토질자체가 일본보다 딸리기때문에 인구가 작을수밖에없음

http://passel.unl.edu/pages/informationmodule.php?idinformationmodule=1130447033&topicorder=7&maxto=7

그리고 간토평야를 17세기부터 개발했다고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호남평야도 조선시대,일제시대때 개간 삼국시대때만해도 호남평야 절반은 바다였다는거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2&mbsIdx=1078402&cpage=1&mbsW=&select=&opt=&keyword=
                         
굿잡스 15-05-26 16:23
   
학자들을 바보로아나 그런거 다 고려해서 계산하고 통계내서 OECD에서 출판한건데 불만있으면 논문을 쓰시던가 >?? ㅋ

영어로 뭐 나오면 그게 정확한 역사적 팩트와 분석에 마냥 받아 들어야할 바이블이

되는 것임?? 이분 뭔 논문이고 학설이 어떻게 상호 비판에 뒤집어지고 변천하는지

전혀 이해를 못하시구만. 아래에도 보면 뭔 쭝,잽은 자신들의 국가역량과 입지를 이용해

우리쪽 역사에 대해서 자국 유리한

정치적 해석하에 국제적으로 왜곡된 입지 강화 어쩌고 이야기도 나오더만

이건 실제 잽이 근대 식민 강점을 하면서 제국주의 사관에 입각한 잽 어용학자에 의해

우리의 역사들이 대단히 왜곡 비틀린채 서구쪽에 그릇된 데이타들이 흘러들어갔고

이건 지금도 알게 모르게 서구권에서도 국내에서도 암약하고 있는게 실정.

국내 고구려사 대표적 전문가인 김용만씨의 경우도 고구려만해도 북방을 아우르는

인구가 최대 천만 정도는 되었을 거라고 보는 입장인데 이런 사람들은 뭔 본인 말처럼

뭐 모르는 초짜라서 이런 소리 함??(실제 저 구당서의 고구려 민호만해도 당시 당나라는

고구려 만주 동북방이나 한반도 동북지역은 애초에 밟아보지도 못했고 요동일대도

점을 따라 일부 지역에 한해 빠르게 치고 들어오면서 고구려 전역을 제대로 통치도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기술된 것하며. 최근의 고구려 관련 도시 성곽의 갯수역시

이런 서토사서에 의지한 기록보다 훨씬 많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고 고구려가

수당 전쟁 100여년동안 보면 기본 상시 병력수가 30만에 최대 50만 이상을 가용하는등

도저히 기존 보수적 관점에서 로마 이상가는 3경 5부 욕살 도시체재

하에서 고작 350만 정도로 거대 도시문명을 이룩하면서 그런 과다

병력을 유지했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인구 추정하며 당시 호당 인원수도 보수적 5명

보다는 못해도 7,8명 이상으로 봐야하는 기록근거에)

그리고 당시의 상황에 대한 기초가 없이 그냥 저런 거 하나 달랑 들고와서 어쩌고

소리만을 하는데 본인이 말한 통일신라시대 즉 8세기 우리의 남북국(발해 신라)시대인

열도의 우리나라 할때 나라 헤이안 시대에 관동일대가 제대로 지배 영역으로 관리

되었는 줄 아시남요?ㅋ(뭔 17세기 가서야 도쿠가와에 의해 본격 개발 어쩌고 하니 엉뚱한

소릴 하는. 그기에 이미 호남일대는 6세기 백제 무령왕 의해 본격 개발된  김제 벽골제를

모르심?이건 백제 비류왕 서기 330년에(삼국시대 이전 삼한 시대로 까지 거슬려 추정됨)

시작 어쩌고 하는 마당에) 이 나라 헤이안 시대 당시를 보면 열도는 궁성이라는 것도 기와

도 아니고 판자궁 형태에 성벽도 국력이나 재정이 딸려 석성 형태가 아니라 무슨

드라마 셋트장 같은 목책성곽에 관동 일대로부터 방어하는 식인건

아심??

예전에도 말했지만 우리야 이미 고조선 말기 열국시대에 저기 요하 일대의 북만주의

부여부터 아래 삼한까지 그기에 대동강 일대만 해도 전기 팽이형 토기 시대에 이미

1만 4천여개의 대형 고인돌에 이런 청동기 취락 유적이 30여개나 발견될 정도로 이미

이른 시기 상당한 밀집 취락 형태로 이런 밀집 청동취락 유적은

남부 일대도 특별하지 않게 이미 나오고 있고.(대표적 진주 남강 유적의 경우는 이미

3600여년 전에 전체 면적이 3.6㎢에서  옥방 1지구의 일부 발굴에서만 이미 520개의 주거

지가 발견될 정도) 이런 풍부한 잉여 인구력땜에 해양개척 역사가 빠른 시기에 이루어지

면서 서열도에 농사와 청동 철기문명을 동시에 전파하는 우리 남부쪽 도래인의 시대를 야

요인시대라고 명명한 것이고.

당시 우리쪽 고조선 말기는 이미 요하부터 서열도까지 이런 생활 문화권이 삼국시대에

가면 더욱 완연해지는 상황이지만 열도의 경우는 백제 멸망후 열도의 백제 세력을 중심

으로 나라 헤이안 시대를 거치면서 이것도 지금같은 일본 열도 전역을 제대로 관리

다스렸던게 아니란 말. 일본의 인류학 권위자인 고야마슈조교수도 8세기(우리의

남북국시대)에 가서야 겨우 5백만 그것도 우리쪽 도래인에 농사를 보급하면서 급증

했니 어쩌고 하는 상황에서 뭔 마냥 용자심을 보이시남요??(그리고 뭐 하나

딸랑 들고 오면 그게 신주단지 역사의 마냥 팩트인줄 아심?? 지금 짱개 어용학자들

동북공정 관련 쏟아 내는 논문집들 함 찾아 보길. 도대체 한해에 몇개가 쏟아지는지.)
                         
豊田大中 15-05-26 20:01
   
고구려인구가 천만? 하하핳하ㅏ 조선시대 중종때가되서야 이모작시작하고 16세기초에야 겨우 천만찍는데 1925년 통계를봐도 이북지역인구 다합해봐야 600만정도밖에안되는데 뭘로 고구려가 인구 천만명을 먹여살린다는건지 ㅋㅋ 고대보다 농사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기대수명도 늘어난 6.25때 북한인구가 1000만 남한인구가 2500만인데 고구려시대때 화학비료라도 발명하지않는이상 고구려 인구 1000만명은 웃기는소리
                         
굿잡스 15-05-26 22:11
   
??? ㅋ 豊田大中> 윗글에도 전혀 시대적 기초 지식이나

인지도 없이 어쩌고질 하더만.

왜 고구려가 최대 천만 어쩌고가 이상하다는 말이시남요??ㅋ

엄연히 고구려는 단순 강대국이 아니라 동방문명권의 패자로 제국을 이룬

나라였고 아우른다는 개념 자체를 모르시남?? 기본적으로 고구려는

475년 남으로 수십만명의 백제 수도였던 한성백제를 멸망시켰고 신라를

신속관계에 479년 유연과 내몽골의 지두우를 분할, 요서일대의 북연의 인구와

물자를 그대로 내지로 데리고 왔고 또한 북만주의 부여를 흡수 그외 거

란, 실위, 말갈등 여러 북방의 세력을 아우러고 있던 나라. 그기에 순수 고

구려인 정도야 대략  5,600만정도라고 해도 그게 웃을 일인가?? 본인의 사

고가 정말 딸리는 머리가 아니라면 평소 군사력의 가용 능력이라는게

일반적으로 기본 그 나라 인구의 5프로 정말 많이 해줘도 10프로를

넘기면서 어쩌고 했다가는 한번 전쟁질로 그 국가는 골로 가는 성향인데

(유목민도 인구 비율적으로 10프로 넘기 힘든 상황) 고구려가  고당 전쟁시

기 중요한 수도 방어 병력과 더불어 요동 밀집 중대형 각 성곽들에

서 수만의 병력을 운용하면서 대치 상황일때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가 15

만 대군을 급파, 이끌고 오는 등 30만의 대군 운용과 전시에 최대 50여만 정도

도 가능했을 걸로 보는 입장에서 기본 고구려인들만해도 못해도 5,600만

정도는 전혀 지나친 부분의 추정도 아닐 뿐더러 위에서도 제시한 가락국기

나 촌적부의 기록만 봐도 당시 호당의 기준이 5명보다는 7,8명 이상으로

봤을 개연성이 높은 상황에서 뭔 혼자 제대로된 근거 없는 논조로 어쩌고

하시남?? (그리고 당시 열도의 지배나 현황조차 제대로 인지 못해서 어설

픈 소리나 하면서 호남 평야 운운하군 쯧) 그외 고구려는 요동성만 50만

석, 개모성에도 10만석 이상의 대규모 비축분을 쌓아 둘 정도로

식량 생산력이나 그외 북방 지역이나 해상을 통한 상업 활동도 대단히

활발했던 경제력을 가졌던 게 고구려라는 나라였고(무슨 돈덩어리

대규모 중장기병이나 통일왕조 수당과 100년 전쟁이 단순 우연?의지로만

가능했다고 생각하면 무식의 단면이나 단순 사고 수준)

그리고 도대체 잽 강점기 시절 즉 구한말 시기 전후로

요동일대등을 포함하지 않는

대한제국 백성의 수를 당신은 얼마로 보고 있어 어쩌고 하시남??

(계속해서 논조를 보니 마치 우리 고대의 지배 생활 영역이나 인구수는 딱

남북한 넘으면 아니다식으로 이건 뭔 의도적인지 기초가 없어

무지한 건지??)
                         
굿잡스 15-05-26 22:47
   
『舊唐書』卷75, 「列傳」, 第25, 〈韋雲起〉, pp2631~2632 "會契丹入抄營州, 詔雲起護突厥兵 往討契丹部落 啓民可汗發騎二萬…雲起旣入其界, 使突厥詐云向柳城郡 欲共高麗貿易. 勿言營中有隋使, 敢漏泄者斬之. 契丹不備"

"거란이 영주지역에 들어와 노략질을 하니 위운기에게 명을 내려 돌궐의 병사를 이끌고서 거란부락을 토벌하도록 보냈다. 돌궐의 계민가한이 병사 2만명을 동원했다. (중략) 운기가 거란의 경계에 들어갈 때에 돌궐의 병사 2만을 상인단으로 위장시켜 유성에서 고구려와 교역하러 간다고 거란에게 속이고, 무리 가운데 수나라 사신이 있다는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감히 말하는 자는 죽여버렸다. 거란이 방어를 하지 않았다."


이 구당서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고려무역으로 신당서는

고려시장으로 나오는데  요서 유성일대의 고려 무역이라는게 2만명의 위장병력이

상인으로 들어와서도 이게 일상일 정도로 대규모에 활발해서 별로 의심하지 않았을

정도로 고구려는 상업 활동도 대단히 활발했던 대국의 나라이자

규모의 경제력을 가진 국가.
굿잡스 15-05-26 01:46
   
사람 살기 힘든 추운 북해도(홋가이도)가 83,453 ㎢, 거의 남한 크기 그런데 도시는 190만 정도

가 삶.(전체 대략 600만)

그기에 산림면적 비율도 우리 이상으로 높음. 즉 실제 주거하기 좋은 면적은 열도도 별로 높지 않음.

단지 기후의 영향으로 2모작하기 유리하고 고대부터 실제 성생활이 난잡했던 부분도 크게 작용해서

에도시대 본격적으로 관동일대가 개발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
Centurion 15-05-26 02:00
   
사실 그런 점에서 우리 조상들이 참 근면성실한거지요.
1모작 밖에 안되는 북쪽에서 모내기법을 통해 2모작을 실현하고..
일제시대엔 간도와 연해주에서 쌀농사의 북방한계선을 넓혀간 사람들이니..

단순히 땅크기로 보면 러시아가 쩔지만,
왜 러시아 인구는 중국이나 인도보다 적은가를 생각해 볼 문제죠.
어쨌든 인구와 식량 문제는 워낙에 밀접한 문제라서..

요즘같이 농산물 수입과 기술발전으로 식량난 해결하는 시대에도..
왜 한국은 고령화사회로 가고 있고, 젊은 층의 결혼기피와 출산율 저하가 두드러지는지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결국 살기 팍팍하면 애 못키운다는 소리죠. 조선시대처럼 피임없이 애 많이 낳던 시절에도..
힘들다 싶으면 화전일구며 숨어살던 인구들도 많았었고..(인구에 안잡히던 사람들)

결국 정치, 경제적 문제가 인구엔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죠.
물론 쌀농사의 기후 문제, 경작면적 등의 문제도 있지만..

한국(조선)보다 몇십배 크다는 중국(명나라)도
인구에 있어선 고작 10~15배 수준인 1억 5천만 수준이었구요.

그런 의미에서 아무래도 한국사의 전성기가..
중국이 분열되고, 인구도 5천만~8천만 수준을 맴돌던..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즉 한국의 삼국시대가 리즈시절일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봅니다.

중국에 비해 인구 차이가 5~8배 정도 밖에 안나던 시절이라..
한반도 세력이 분열된 중국을 상대로 힘을 떨치기 좋은 시절이었죠.
Banff 15-05-26 06:01
   
그냥 원질문에 간단히 답하자면, 원래 인간은 추위에 약해서 수천년전 인류는 따뜻한 남쪽나라로 이동들합니다.

지금처럼 난방잘되는 주거시스템으로 생각하면 안되고, 난방없던 시대엔 많은 사람들이 음식도 풍푸한 남쪽으로 내려갈 수 밖에요.

문명이 따뜻한 지역서 시작한 이유고, 고대 역사의 주무대는 다 따뜻한 나라들에서 시작합니다.

단, 일본은 섬나라라 역사가 늦게 시작은 했지만, 먹고 살기위해 내려들 오니 인구는 많을 수 밖에요.
나도좀살자 15-05-26 18:29
   
그러게요...  중국은 넘사벽이라 그렇다치고 일본의 인구와 우경화는 걱정스러운 수준이죠...  자위대가 얼마 안된다고 안심하시는 분도 있는데 일본이 군 입영체제를 어떻게든지 바꾸게 되면 그 자위대가 모두 하사관급 이상으로 편제되어 시스템이 잡히는데 몇년 안걸립니다. 한 두달의 기초훈련과 일년 이년을 오로지 군사훈련에 매달리는데 저질 체력이며 정신이며 다 날이 서지요.  거기다 알게 모르게 단순한 위계질서가 스며든 문화가 있어서 군대식 사고방식에 금방 전염될걸요... 매일 김정은 죽일놈이라며 속빈강정만 만드는 안보의식에 가려 일본 우경화와 그 이후에 대한 염려는 참 한심한 수준이죠...
에로영감 15-05-27 11:19
   
ㅇ 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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