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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5-13 18:43
[일본] 고대 일본이 한국 보다 경제력이 높았었다는 헛소리
 글쓴이 : 미신타파
조회 : 7,306  

고대 일본이 한국 보다 훨씬 경제력이 높을 수가  없는게
일본은 지진, 화산,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일단 너무 많아서
쓸모 있는 땅이 일단 한국 보다 훨씬 적다는거야

미국 CIA World Factbook 에 나온 데이터에 기초한 나라별 영토
크기 대비 경작지 면적을 비교한 자료를 찾아보니

일단 미국이 경작지가 제일 많고 의외로
인도가 중국 보다 경작지가 더 많음ㅋㅋㅋ

인도 영토의 50% 가 경작지
중국 경작지 면적은 국토의 16%

그리고

일본 경작지는 46,993km^2, 전체 면적의 12.5%
한국은 남북한 합쳐서 47,225km^2, 전체 면적의 22%

일본 경작지 면적이 한국 보다 작고 또 일본은 지진, 화산,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많은데 고대 일본이 한국 보다 경제력이
높았다는게 말이 안됨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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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니응 15-05-13 19:02
   
고대 국가의 경제를 살펴보는건, 사실 농작지 면적 이런건 알 길 없구..
문헌을 통해 어떻게 무역을 살펴보는건데,
당시 고부가가치 상품 자기나, 또는 쌀같은 농작물은 주로 일본에서 수입하는 입장이었는데.
     
미신타파 15-05-13 19:12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지진, 화산,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많고요
지진, 화산 폭발, 쓰나미 생기면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고 농작물 피해, 사람, 동물 시체가
부패할 때 생기는 질병, 노숙자들 생기고, 도적들, 해적들 생기고 사회 대변혁을
가져 오죠. 1990년대 땐가 있었던 한신 대지진 때 4십만명이 넘는 노숙자들이 생겨서
일본 정부가 골치를 썩었다고 해요. 그게 현대 기술이 발달한 일본에서 생긴겁니다.
고대 일본에서 그런 일 생겼다면 전부 다 죽었겠죠
     
국산아몬드 15-05-13 19:19
   
고부가가치 자기나 쌀을 일본에서 수입했다고? 안드로메다에서 오셨나
     
뚜리뚜바 15-05-13 19:21
   
그거 자료좀 주실래요;;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라 자료좀 보고 싶네요
     
처용 15-05-13 20:38
   
먼소리를 하는 것인지 일본(지방 정권)과의 무역이 뜸한 고려 부터 후진국인 일본으로 부터 수입한 품목은 유황과 수은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변함이 없었고 세종 때 와서야 대마도 정벌하고 회유책으로 삼포를 개항하고  쌀을 적당히 수출함으로 일본을 통제하려 했지요

대부분 고려시대부터 사치품에 속하는 서적 문방구 약재 자기 같은 경우 중국으로 부터 수입하고
우리같은 경우는 이를 여진 거란 왜로 농기구 문방구 서적등 현대로 치면 공산품을 수출해서
중계무역으로 재미를 봤지요

후진국이 선진국에 고부가가치 상품을 수출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습니다.
확인해 보시길...
     
기억니응 15-05-13 21:02
   
아놔 글 잘못썻어여 - - ..................

수입>> 수출인데.

죄송합니다.
국산아몬드 15-05-13 19:21
   
북한이 한국보다 경작지가 많다니 표가 잘못된 것 같은데요
indeahotel 15-05-13 20:49
   
밥을 종지에다 먹었던 일본과 대접에 고봉으로 먹었던 한국...너무나 당연한 얘기지요.
indeahotel 15-05-13 20:51
   
조선시대만 해도 대식문화 때문에 얘기가 나올정도로 한국은 예전부터 밥을 많이 먹었습니다.
doroomook 15-05-13 21:09
   
성군이라는 세종때도 조선은 일본보다 못했음.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이미 문명이 뒤지기 시작
조선 500년은 암흑시대
그 놈의 성리학이 민족을 망쳤다해도 과언이 아님
     
기억니응 15-05-13 21:37
   
세종때면 무로마치 시대인데,
그때 일본이랑 세종때를 비교한다고요? ^^
그 당시 일본은 완전 원시인 수준임.

조선과 일본의 국력이 역전된건 에도시대 와서 이루어짐.

그리고 조선시대를 암흑으로보는건 현대인간이 지금 기준으로 바라보는 오류죠.
          
오투비 15-05-13 22:29
   
무로마치 시대가 원시인 수준이라고 하시는데.. 뭐 얼마나 차이나길래 원시인 거리시는 건가요 ? 그렇게 따지면, 왜정시대때 제복입은 일본인들이 가슴 내민 한복입고 있는 조선여자들 생활상을 보고 원시인같다고 하면 되려 할말없는거 아닌가요? 세종때보다 무려 수백년이 흘렀으나 옷차림이 그 지경이면요!
               
남궁동자 15-05-14 16:51
   
가슴 내민한복 : 일제의 조작 사진
실제로는 당시 일본인들이 그런 옷 입고 다녔습니다. 일본 서민이 옷 제대로 갖춰입은건 서양에서 값싼 직물이 들어오고 나서부터 입니다.
     
기억니응 15-05-13 21:47
   
흠; 너무 원시인이라 말한고 제가 생각해도 비하고..
그냥 말하자면, 세종때 조선과 일본 관계는 조공관계였습니다.
조선이 명에 조공하듯, 일본이 조선에 조공하는 관계였습니다.
     
룰루정수기 15-05-14 11:11
   
ㄴㄴ 일본이 우리를 따라잡고 역전하기 시작한건 에도시대가 맞죠.
아름사태 15-05-13 21:39
   
한민족이 인도땅에 살았으면 초강대국이었을 듯...
인도 경작지비율 어마어마하네요 ㄷㄷ
가상드리 15-05-13 22:33
   
고대의 기준이 좀 애매한데...영토와 경작지만 따지면 일본이 더 많았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착각하는게 자꾸 조선시대 영토를 기준으로 하는 거죠. 통일신라나 고려의 영토를 기준으로 하면 이야기가 또 틀려져요. 물론 일본은 홋카이토를 빼야겠지만...국력이 단순히 경작지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기때문에 판단하긴 어렵지만 단순 경작지만 보면 거의 비슷했을 거라고 봅니다.
북한의 경작지는 밭까지 포함이니까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봐요. 산업화가 덜 되고와 도심이 적으니 경작지가 많은 게 정상이죠.
     
기억니응 15-05-13 23:11
   
조선의 세율이 20~25% 일본의 세율이 70%가량이고,
당시 조선의 걷은 세미량과 일본 영주들이 걷은 세미량을 비교하거나,
혹은 당시 조선과 일본의 쌀값등을 비교하면
쌀 생산량은 조선이 조금 많거나, 혹은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되네요.
     
기억니응 15-05-13 23:24
   
뭐 여튼;; 정확하게 계산은 안해봐서 (어디서본듯한데,,,) 국가 총 식량생산량은 확실치않으나,
확실한건 1인당 쌀생산량은 조선이 위 였습니다....
근대 이전 조선사람이 일본사람보다 평균 신장이 큰 이유도 잘먹었기때문입니다.;
서양의 기록도 있구요. 조선인이 엄청난 대식가라는..
     
딪이 15-05-19 07:04
   
그렇게 따지자면 일본도 에도 막부 전까지는 홋카이도, 혼슈 북쪽은 아예 개발할 엄두조차 못냈었구요,

혼슈 중부가 개척되기 시작한 것도 에도 시대부터죠...

저도 경작지 자체는 비슷비슷 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nyamnyam 15-05-13 22:52
   
일본은 지형특성상 현대화된 농업기술이 도입되기 전까진 농사가 잘 되지 않았을 겁니다.
해상무역이 주업이었죠
즉 농업만 가지고는 그들의 경제력을 따질 수 가 없다는 겁니다
Centurion 15-05-14 02:14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96121&sca=&sfl=mb_id%2C1&stx=diehard05&page=2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조사한 조선의 쌀 생산량이 대략 1200만석 수준이죠.(조선으로 치면 90만결)
그리고 일본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사한 쌀생산량이 대략 1850만석
세종시절에는 160만결이었기 때문에 대략 일본식으로 계산하면 2천만석 정도 예상됩니다.
그러다 에도시대 이후 일본은 2천~3천만석으로 올라가게 되면서 농업생산량이 많이 늘어납니다.

즉, 세종시기까지는 조선이 앞섰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이후로 일본이 앞섰다고 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쌀농사는 기온이 따뜻한게 유리하죠.

일본 인구가 삼국시대까지는 한반도가 위였고,
고려시기까지는 엇비슷했다가, 조선시대 들어오면서 인구가 추월합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또 대식가여서 쌀생산량에 비해 밥을 많이 먹었습니다.
이게 일본에 비해 3배~5배 수준으로 먹어댔던 탓에.. 조선통신사들이 일본애들 밥먹는 거 보고..
저리 적게 먹느냐고 혀를 끌끌차는 일도 생깁니다.

반면, 얘네들은 섹스에 환장한 성진국이어서, 피임도 없던 시대에 애를 많이 낳는 편이었죠.
그래서 인구에 비해 쌀생산량은 조선 세종 시기로보면 오히려 낮은 편이라.. 조선의 절반쯤 되는 양밖에 못먹었죠.
근데 그것도 위에 다이묘들이 최소 40%~50% 이상을 세금으로 받아갔고,
다시 중간에서 사무라이들이 빼돌리는 양이 많아서 실질 조세가 50~70% 수준이었습니다.

거기 비해 조선은 세금이 상당히 가벼운 편이었죠.
다만, 조용조제도라고 해서, 토지세, 공물, 병역 따로 납부 받았기 때문에..
많게는 세금이 한 40% 이상을 넘어가게 됩니다.
게다가, 중간에 장난질치는 관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은결(누락된 농지)이나 그 유명한 백골징포나 여러 비리들 때문에 실제보다 더 뜯기는 경우도 많았고, 조선백성들이 그런 이유로 먹고 살기 힘들어지기도 했죠.
게다가 부유층인 양반들은 여러 의무에서 면제다 보니.. 면세혜택을 보기 때문에 세금이 적어질 수 밖에 없구요.
     
미신타파 15-05-14 08:42
   
근데 저 링크에 나온 데이터를 그대로 받아 들이는데 문제가 있어요. 왜냐하면 쪽국은 사무라이들이 통치하던 군사정권 입니다. 군바리들이  군량미, 병력수 부풀려서 세력 과시를 해야만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군바리들을 제압할 수 있지요. 현대도 마찬가지죠. 북한, 중국, 러시아, 미국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나라들 끼리 군사력 부풀려서 세력 과시 합니다. 일본은 기업들도 그런게 있어요. 돈도 안되는데 기술력 과시할려고 돈 쏟아붇다가 망하죠ㅋㅋㅋ 일본은 군사정권이 통치하던 나라고 현재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어요. 군바리들은 많은 군량미와 많은 병력수로 힘을 과시해서 상대방이 대항하려는 의지를 꺽으려고 하죠. 그래서 일본 군사정권이 기록해 놓은 데이터는 사실 기록이라기 보다는 세력 과시를 위한 기록일겁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일본의 경작지 면적이 한국 보다 작은데 한국 보다 경제력이 컸을리가 없죠. 뿐만 아니라 경작을 하려면 소, 말 같은 짐승들의 힘도 이용해야 하고 농기구 만드는 기술과 농기구 만드는데 필요한 철 같은 자원도 필요한데 섬으로 고립된 국가 보다는 대륙에 연결된 반도 국가인 한국이 소, 말 같은 짐승들 수입하고 철 같은 자원과 농기구 만드는 기술을 수입해 오는데 훨씬 유리 했겠죠. 쪽바리들이 고대 한국 보다 경제력 높았다는건 개소리 밖에 안됩니다ㅋㅋㅋㅋ
          
Centurion 15-05-14 13:08
   
뭘 잘못아셨나 본데.. 전 고대한국 말하는게 아닙니다.
저 위에 조선시대 세종 운운하며 말하는 분 참고하라고 글올린겁니다.

그리고, 간단하게 말해서..
삼국시대까진 일본보다 한반도쪽이 인구가 많았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인구 각각 350만 정도씩 잡으면, 거의 1천만에 달하죠.

근데 이게 쭉 삼국시대-고려-조선까지 쭉 그 수준을 유지해온겁니다.
이미 한반도는 뭐 그냥 삼국시대 때 최대 부양인구에 도달한거죠.

고려시대 인구를 고려도경에서 210만명이니 뭐니 하지만,
실제론 인구에 포함안되던 노비가 많던 시절이기도 했고, 고려도 전쟁때마다 30만명씩 막 뽑아내서 계속 쏟아붓던 시절이라, 외세 침공에 인구 팍팍 줄어가던 시절이긴 하다만.. 그렇게까지 적진 않았다가.. 다시 조선시대 들어서 1천만 가까이 유지를 하죠.
호구조사 된건 500~600만인듯 하지만.. 이것도 솔직히 미등록 인구가 상당히 많은 편이고..

그리고, 쌀농사는 사실 농기구, 소, 말, 이양법, 이모작 이런 농사기술도 중요하고,
장비도 중요하지만, 철제농기구나, 소, 말이야 삼국시대 때도 쓰이던거라 말할것도 없고,
문제는 조선시대쯤 되면 일본이나 조선이나 철제농기구로 농사짓긴 마찬가지라..
이제부턴 농기구의 우열보다 강수량과 일조량의 문제라는겁니다.

예를 들자면..

순위 국가 생산량(MT) 1인당 벼생산량

1 중국 204,236,000 153
2 인도 157,800,000 133
3 인도네시아 69,056,126 295
4 방글라데시 50,497,000 307
5 베트남 43,661,569 509
6 태국 37,468,903 590
7 미먄마 28,080,000 556
8 필리핀 18,032,422 192
9 브라질 11,549,881 60
10 일본 10,654,000 84
11 파키스탄 9,400,000 55
12 캄보디아 9,290,940 693
13 미국 9,051,265 29
14 한국 5,934,000 119
15 이집트 5,911,086 75
16 네팔 5,072,248 170
17 나이지리아 4,833,000 28
18 마다가스카르 4,550,649 215
19 스리랑카 3,845,950 189
20 라오스 3,489,210 537 

* 자료출처 :쌀생산량  FAO STAT (http://faostat.fao.org/site/339/default.aspx);
국가별 인구 : http://www.worldatlas.com/aatlas/populations/ctypopls.htm

5 베트남 43,661,569 / 509
6 태국 37,468,903 / 590
7 미먄마 28,080,000 / 556
10 일본 10,654,000 / 84
14 한국 5,934,000 / 119

일본이 아직도 쌀농사 많이 짓는건진 모르겠지만,
쌀생산량이 한국의 두배 좀 안되죠. 근데 1인당 쌀생산량으로 치면 한국이 일단 많네요.
아무래도 한국인구는 5천만이고, 일본인구는 1억 5천만쯤 되니까.. 쌀생산량은 우리가 높은 편이죠.

경지면적 및 농가인구 1인당 경지면적은 주요국에 비해 크게 작은 수준
- 경지면적 (‘10)  : 중국 158.1백만ha, 미국 170.1,  프랑스 18.3,  한국  1.6,  일본 4.3
- 농가인구 ('10)  : 중국 828.1백만명, 미국    5.3,  프랑스  1.3,  한국  2.2,  일본 2.7
- 1인당 경지면적 : 중국 0.19ha,        미국  32.08, 프랑스 14.08, 한국  0.73, 일본 1.59
* 출처 : 농림수산식품통계연보 2010 (FAOSTAT STATISTICS DATABASE에서 인용)

그리고 뭐 우리 경지면적이 일단 중국의 1/100, 일본의 1/2.7 수준이군요.
어쨌든 경지 면적에 비해 쌀생산량이 상당히 높은 편이긴 하다만..
경지면적이 쌀농사 면적은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비교는 생략합니다.

그래도 중요한건.. 쌀농사는 사실상 철제농기구와 소,말로 농사짓는게 보편화된 시점에선..
기후환경이 더 중요해지죠.

위의 동남아를 보면 알겠지만, 얘네들은 1인당 쌀생산량이 동북아를 씹어먹습니다.
쌀농사는 물이 들어오는 수전에서 짓고,
따뜻한 햇살과 따뜻한 온도, 즉 일조량이 많아야 됩니다.
당연히 기후조건은 북쪽지방이 남부지방에 비해 딸립니다.

(베트남은 3모작이 기본인거 아시죠?)

그래도 조선시대 조상들은 대략 세종시절에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 통일시점보다..
쌀 생산량이 높았다 이거고.. (대략 일본 도량형 기준 2000만석 추정)

이후 일본도 안정기에 접어드는 도쿠가와 때는 히데요시 시절 1850만석 보다
훨씬 많은 2천만석~3천만석까지 쌀생산량이 올라가게 됩니다.

근데 지금 이런 설명하는데 뭔 고대한국 타령이 나오고 개소리 타령이 나옵니까?

그리고, 이렇게 쌀 생산량이 많긴 한데.. 문제는.. 조선 사람들이 대식가라는 점..
일본인들보다 보통 3배 이상을 먹었기 때문에, 쌀생산량에 비해 인구부양 효과가 적었다.

즉, 밥을 많이 먹으니, 쌀 2천만석으로 인구가 1천만 정도를 유지했는데...
일본은 쌀 1850만석일 때, 인구가 조선의 2배~3배 정도에 달했다 이겁니다.

그래서, 임진왜란 터지니까, 나름 군적에 올라와있는 병력은 30만명이지만..
대략 27만명정도까진 징병 및 의병으로 활용했으나,

일본 같은 경우는 편성된 병력이 대략 30만명이었고,
그 중 한 10~15만명 이상 죽은걸로 추정되는데.. 그렇게 죽고도 전쟁 끝나고 2년 뒤인
세키가하라에서 양측 16~18만명이 동원되고, (다른 전장에서 몇만이 더싸움.)
또 몇년뒤에 오사카성 전투에서 양측 30만 정도가 격돌함.
그래서 대충 봐도 얘네들은 인구가 조선 2배 이상된건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고..

간단히 봐도.. 1910년 무렵 한일합병 때,
조선이 1300만~1600만, 일본이 5천만 수준으로 대략 인구 3배 이상.


일본 전국시대 석고(쌀생산량)
http://hyukjunseo.egloos.com/v/2956846

조선, 일본 인구 추이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bullpen&mbsIdx=870286

그러니, 남의 댓글과 의도를 잘못읽고, 중세시대 말하는데..
이상한 고대한국 타령하지 맙시다.

그리고 제 댓글에다 개소리 타령하시던데 제가 개란 소립니까?
가만있는 사람 기분 긁지 맙시다.
               
미신타파 15-05-14 14:21
   
아 먼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 인데요 님 말씀이 개소리 란게 아니고 쪽바리 경제력이 고대 한국 보다 높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개소리 한다는 거였습니다.

님 말씀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요 또 내가 실수한게 제가 고대 한국이라고 한건 조선시대도 포함한거 였는데 어쨌든 제 주장은 삼국시대, 조선시대 전부 일본이 한국 보다 경제력이 높았었다고 말하는게 말이 안된다는 겁니다.

일조량이 중요하긴 한데 일본 경작지 대부분이 한국 위도하고 비슷하고요 물론 아랫쪽에 일조량 많은 지역이 있긴 한데요 그런 지역을 동남아 지역과 비교하긴 머하고요

일본 옛날 기록을 문제 삼는 이유가 일본은 군사정권이 지배해왔기 때문에 군바리들이 기록해 놓은 쌀생산량과 인구수는 경쟁자들에게 세력 과시용일 가능성을 배제 못한다는겁니다. 옛날이나 현재나 군바리들은 세력과시 해서 경쟁자들 제압하려고 애를 쓰죠.

현재 남북한 인구를 합치면 8천만 정도로 거의 1억 가깝습니다. 고대나 조선시대 때 한국, 일본 인구 차이가 몇배나 차이 났을거란게 한국이 경작지가 더 많고 일본은 지진, 화산,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가 맨날 있는데 인구가 몇배나 차이 났을거란게 말이 안됩니다
                    
Centurion 15-05-14 15:38
   
참고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타이코검지(태합검지)를 실시한 시기는.. 임진왜란 바로 직전인데..
위에도 적어뒀지만, 님이 말하는 세력 부풀리기, 허풍용으로 장부작성할 시기가 아닙니다.

왜냐면, 그런 세력 부풀리기를 할 시기가 아니거든요.
전국시대는 애시당초 몇만석 다이묘라고 허풍떠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병력 몇명 더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했던 시절이라.. 그게 무의미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시점에선.. 그런 허풍이 무의미했습니다.

왜냐면.. 히데요시가 오다 노부나가 사후 오다 가문을 가로채고, 그 병력을 최대한 동원해 대략 20만 대군을 이끌고, 서쪽의 큐슈를 굴복시키고, 동쪽의 호죠씨를 정벌하면서..
사실상 서쪽과 동쪽 모든 다이묘가 히데요시의 압도적 군사력 앞에 복종하게 됩니다.
여기서 버티면 그냥 호죠 가문처럼 10만대군 동원해 농성전으로 버티기해도 망하는거였죠

즉, 호죠 정벌로.. 당시 일본내에서도 탑클래스급 세력 중 하나인 호죠가문이 멸망하고,
더 이상 히데요시한테 대들 놈이 없어졌다는 소리죠.

그 후, 히데요시는 다이묘들의 근거지를 바꿔서 이동배치시키는 전봉, 감봉을 감행합니다.
그 말은 즉슨, "너는 이 땅 몇만석 버리고, 저기 저 땅 몇만석으로 옮겨가!", "너는 본래 이 땅 10만석 영지인데, 저 쪽 50만석으로 옮겨가!" 이렇게 승진 인사발령을 내렸다는 소립니다.

즉, 전국시대 다이묘들이 자기 고유의 근거지를 버리고,
여기저기로 인사발령 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여기서 거짓말을 하면 안되는 상황인 셈이죠.
게다가 이미 거기가 대충 식량생산량이 얼마다는게 이미 파악된 상황이기도 하구요.

일본 전체가 히데요시한테 쫄아있던 상태였고, 몇만석, 몇만석 이걸 속일 수가 없는 상태라는거죠.
그리고, 그 영지에 대해 검지(토지조사)를 실시한 통계가 저 1850만석이라는 겁니다.

한마디로 히데요시한텐 이미 경쟁자가 없었어요.
나름 고마키-나카쿠테전투에서 히데요시을 물리친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이땐 이미 꼬리내린 상태였구요.

심지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으로..
자기 가문 대대로 본거지였던 미카와지역을 포함해 150만석 영지를 다내어놓고,
도쿄쪽으로 250만석으로 전봉됩니다. 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을 끝장내고,
에도 막부를 세우는 당시 2인자 취급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런 꼴입니다.

그리고, 사실.. 임진왜란 같은 경우도..
잘 알려진 가토 기요마사 같은 인물이.. 영지가 25만석으로 그리 큰 편은 아닌데.
계산상 1만석당 250명으로 잡으면.. 얘는 6250명 정도 밖에 못 끌고 갑니다.
그런데 얘가 끌고 온 직속 병력이 1만명이에요. 상당히 무리한 편이죠.
히데요시가 자기 군대를 나눠준건지 몰라도..

당시 일본의 경우 영지가 10만석이면, 이중에 세금은 실제로 5만석 정도였고..
가신, 무사들에겐 그만큼 다시 몇천석 영지, 몇백석, 몇십석 단위로 영지를 내립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또 자기 할당된 영지를 바탕으로 병력을 끌고 자기 다이묘한테 합류하는거죠.

그런씩으로 체계화되어있기 때문에,
석고라고 불리우는게 군사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허풍을 치면 계산이 꼬입니다.

그래서 이걸 구라로 보기가 힘든겁니다.

그 이전의 시대엔 나 100만석이요.이렇게 떠들어봐야 끌고 나오는 병력이
2만5천명 안되면 걔는 허풍이니 안통했고, 히데요시 시절엔 이미 히데요시의 무력에
눌려 영지 재배치를 하던 시절이라 허풍을 칠 상황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경지면적 조사를 보면,, 조선이 487만보, 일본이 484만보로 나오는데..
당시엔 조선이 근소히 앞서는게 맞습니다. 그런데, 인구는 1870년 기점으로 봐도 일본이 2배, 1910년 기준으로 보면 3배가 넘게 차이가 난다는 점이죠.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history&no=19797

http://m.ppomppu.co.kr/new/bbs_view.php?id=history&no=1314

http://blog.naver.com/lord2345/50179739160

http://m.todayhumor.co.kr/view.php?table=total&no=8008258

위에 링크 한번 읽어보세요. 일본인구가 많은거 부정하는 사람없습니다.

애시당초, 일본이 조선이랑 인구가 동급인데,
갑자기 구한말에 일본인구가 2배 3배로 불어나 한일합방 때
조선보다 인구 3배를 달성했다 이건 말이 안되는겁니다.

메이지유신 시점으로 1870년 기준으로 조선인구를 1700만 정도로 추정하고,
일본인구를 비교해도 3500만명 수준으로 두배가 넘어갑니다.

그리고 덤으로..

다테 마사무네의 일화..

도요토미 사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붙었다. 이에야스는 자신의 편에 서는 대가로 100만석을 약속했지만, 세키가하라 전투가 끝난 뒤 약속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마지막에는 아예 약속을 백지화 시켰다. 본인은 이 일을 못내 아쉬워 했고, 결국 평생 개간 사업에 열중한 끝에 말년에는 100만석 영주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인간 승리라고 해야 할지 안습하다고 해야 할지(……). 어쨌건 에도 막부 설립 이후로 마사무네의 야망은 종지부를 찍게 되고, 막부의 유력한 다이묘로 남게 된다.

https://mirror.enha.kr/wiki/%EB%8B%A4%ED%85%8C%20%EB%A7%88%EC%82%AC%EB%AC%B4%EB%84%A4

보면 알겠지만 속이기는 커녕, 100만석을 넘어보려고 개간까지 해가며 발버둥치는게 보이죠.
자기가 체면상 100만석 다이묘로 우기고 싶어도 허풍이 안통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주석을 보면 얘는 명목상 영지가 64만석인데, 실질수입은 100만석 근처였다고 하네요)
                         
미신타파 15-05-14 16:09
   
자세한 정보 감사하고요 지금까지 쓰신 글 다 잘 읽어 봤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쪽바리들은 사무라이들이 통치하는 군사정권 체제하에 있었고 군바리들은 세력 과시를 위해서 문서조작도 서슴없이 합니다. 역사와 기록을 신성시 하는게 군바리들의 체질에 안맞죠. 군바리들은 니가 쎄냐 내가 쎄냐 이런식으로 단순합니다. 이건 그 때나 지금이나 전시 때나 평화시나 똑같습니다. 군바리 기록은 이걸 염두해두고 분석해야 되고요


애시당초, 일본이 조선이랑 인구가 동급인데, 갑자기 구한말에 일본인구가 2배 3배로 불어나 한일합방 때 조선보다 인구 3배를 달성했다 이건 그 때 당시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 때 당시는 의료, 보건위생을 조금만 개선해줘도 수명이 늘어나고 유아 사망율도 확 떨어져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산업, 의료 기술도 기하급수적으로 짧은 기간에 발전해 나가던 시기여서 인구폭발이 생길 수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 유럽, 미국 자료들도 확인해 보시면 나올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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