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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4-27 23:21
[기타] 고구려 공정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글쓴이 : 청실홍실
조회 : 1,924  


정인갑의 고구려공정 실체 해부

①"고구려 역사는 중국 것" 주장하다 흥분해 실신한 中학자

                                         ☞ [정인갑의 고구려공정 실체 해부] 전체기사 보기

정인갑 / 베이징고려문화경제연구회 부회장 겸 사무총장, 한국 한중미래재단 이사장

E-mail : zhengrj@naver.com

1918년에 중국으로 이민 간 동포의 3세다. 1947년 랴..

1918년에 중국으로 이민 간 동포의 3세다.

1947년 랴오닝(遼寧)성 푸순시(撫順)시에서 출생한 뒤 베이징대학에서 고전문헌을 전공했다.

1982년부터 은퇴할 때까지 중화서국(中華書局)에서 고서정리 및 사전편찬 등 업무에 종사하며 편집부장 담당을 지냈다.

1992년부터 칭화(淸華)대학 중문학과에서 객원교수로 종사했다.

중국어와 중국 전통관념·정치문화·사회문제 등에 대해 관심과 조예가 깊으며 신문 및 인터넷사이트 등에 500편 이상의 칼럼을 발표했다.

또 베이징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의 문화고문을 담당하며 여러 차례 강연했다.

중국어발달사와 중국문화사에 관한 논문과 저서 여럿 있다.

현재 베이징고려문화경제연구회 부회장 겸 사무총장과 한국 한중미래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베이징대 고전문헌 전공중화서국(中華書局) 편집부장 담당

 

 

 

 

입력 : 2014.12.01 07:17 | 수정 : 2014.12.01 17:02 고구려 문제에 관하여:

 

 

고구려 문제는 한중 두 나라 간 가장 큰 역사 이슈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전반적인 과정과 상황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의 이해가 부족한 듯하다. 필자는 북경대학 역사학과에서 중국통사를 배웠고 한국 국사편찬위원회의 성격을 어느 정도 띠고 있는 중화서국에서 평생을 일했다. 또 신분이 중국 조선족으로, 고구려사 분쟁에 얽힌 중국의 입장과 한국의 사정을 두루 이해하고 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 글은 11월 22일 (사)고구려역사문화보전회가 주관한 ‘고구려역사문화국제학술대회’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이다./필자

 

 

1.중국 고구려 문제의 유래와 발전

 

1949년 중공정부 성립부터 1960년대까지 중국의 모든 출판물과 역사 교과서에 고구려는 외국 역사, 즉 조선사로 돼 있었다. 역사학의 대가인 곽말약郭沫若, 당란唐蘭과 전백찬翦伯贊 등이 집필한 모든 역사책에 다 이렇게 취급돼 있다.

 

1963년 6월 28일 북한의 조선과학원 대표단을 접견할 때 주은래 총리는 동북의 요하遼河 일대와 송화강松花江 일대가 고대에는 조선의 땅이었는데 우리 조상이 침략하여 빼앗았기 때문에 조선의 땅이 좁아졌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였다. 1960년대에 중국과 북한의 고고학자들은 중국 동북 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에서 고구려 유적지에 대한 합동 발굴을 2차례 진행했다. 그때 발굴된 고구려 문화재는 모두 북한에 주었다. 고구려가 조선역사에 속한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해국지장편渤海國志長編> 등을 집필한 역사학 대가 김육부金毓黼가 1960년 경에 처음으로 ‘고구려는 중국 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나 당시의 국제정세와 문화혁명 때문에 이 견해가 학술계와 사회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하지만1978년 필자가 북경대학에서 중국통사를 배울 때 북경대학 중국통사 교과서에는 이미 고구려가 당나라 시기 중국 동북변방의 소수민족정권으로 돼 있었다. 고구려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켜 기술한 출판물은 아마 197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1979년 필자와 중국주재 북한대사관 김영남 1등 서기관(현재 북한최고인민회의 의장)이 같이 중국통사 강의를 들을 때 장전희張傳喜 교수는 고구려 부분은 건너뛰고 강의하지 않았다. 아마 김영남을 염두에 두고 한 행위일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구려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는 꺼림칙하게 생각되어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1993년 8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시集安市에서 고구려문화 세미나가 열렸을 때의 일이다. 그 세미나엔 한국인 80여 명, 북한인 4명 및 중국인 30여 명이 참가했으며 필자도 참가했다. 세 나라의 학자가 모두 고구려를 자기 나라의 역사와 문화라고 주장하는데 연변대학 조선족 교원들이 교묘하게 그런 내용을 빼버리고 통역하여 처음 이틀은 회의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중국 집안(集安, 지안)시의 위치. 이 곳은 서기 3~427년 고구려의 수도였다. 시정부 바로 옆에 고구려 역사 유물이 들어있는 박물관이 있다. 그때 집안시 서점 직원이 회의 장소에 와서 책을 팔았는데 고구려에 관한 책도 있었으며 많은 한국인들이 구입했다. 집안시문물관리국장 경철화耿鐡華가 펴낸 책도 있었다. 사흘째 되던 날 경철화가 발언할 때 큰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다. 경철화의 책에 ‘高句麗是中國歷史上地方少數民族政權(고구려는 중국 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이다)’라는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강대학의 모 교수가 한자를 보고서 그 뜻을 대충 터득하고 ‘이것 무슨 영문이냐’고 질문하였다.

 

이 질문에 대해 경철화는 “중국 역사상의 한(漢)나라 사람이 꼭 지금의 한족漢族이라 단정하기 어렵고 일본 역사상의 아이누족이 꼭 지금의 일본인이라 단정하기 어렵듯이 역사상의 고구려인이 꼭 지금의 한국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지 않은가? 고구려인이 지금의 어느 나라 사람인가에 집착하지 말고 고구려문화를 인류 공동의 문화재라고 보며 보존,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답하였다. 이 말도 다소 완곡하고 부드럽게 통역돼 그럭저럭 넘어갈 참이었다.

 

그때 줄곧 침묵을 지키던 필자가 발언했다: “내가 알기로 중국 사학계에서 고구려를 ‘중국 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결정지었는데 금방 당신이 한 말은 당신 개인의 견해인가, 아니면 중국 사학계의 견해와 결정이 변했는가? 제대로 말해 보라.” 필자는 이 말을 중국어로 한 번, 한국어로 한 번, 두 번 말하였다.필자의 질문에 경철화는 “당연히 고구려는 중국 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이다 중국 사학계의 견해는 변함이 없으며 내 개인의 견해도 그러하다”라고 답하였고, 이 말만은 완화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통역되었다.

 

그때 북한학자 박시형朴時亨이 단상에 나타나 아주 격렬한 어조로 발언했다: “당신네, 그걸 말이라고 하나? 중국학자들이 종래로 고구려를 조선 역사로 취급했는데 지금 무슨 수작을 피우는가?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략하다가 연속 패하고 그 때문에 수나라 자체도 망했지? 당태종도 고구려 침략전쟁에서 패했지? 세상에 그런 지방정권이 있을 수 있나?” 장내의 80여 명이나 되는 한국인들은 일제히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주었다.

 

이에 요녕성 사회과학원 역사학자 손진기孫進己가 단상에 올라 격하게 박시형의 주장을 반박했다. 박시형보다 더 흥분한 상태였다. “고구려는 틀림없이 중국 역사상 지방소수민족정권이다. 고구려인은 지금의 조선인·한국인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장래 과학이 발전하면 중국인의 몸에서 고구려인의 피가 검색될 수 있을지언정 조선인과 한국인의 몸에서는 고구려인의 피가 검색되지 않을 것이다.” 손진기는 너무 격동돼 부들부들 떨며 제자리로 돌아갔으며 회의는 격렬한 싸움으로 이어질 조짐이었다.

 

조선사학회 비서장(사무총장) 풍홍지馮鴻志는 부득불 휴식을 선포하였다. 조금 지나 손진기는 실신하였으며 응급차로 병원에 실려갔다. 풍홍지는 필자를 자기의 방으로 데려가 격분한 어조로 나무랐다. 필자도 항변했다.

 

“당신 때문에 회의가 파탄됐다. 다시 수습하기는 어려워졌다. 우리가 연변대학 조선족 강사들과 사전에 짜고 계획적으로 통역을 잘해 무사히 넘어갈 줄 알았는데 당신 발언 한 방에 다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면 왜 사전에 나에게 알리지 않았나? 그리고 고구려를 중국역사에 편입시키는 것이 떳떳하면 왜 한국인 앞에서 감히 말하지 못하는가? 마치 남의 예쁜 마누라를 훔쳐 살며 거들먹거리다가 그의 남편이 나타나면 뒷방에 숨겨놓고 거들먹거리지 못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역사는 과학이므로 실사구시해야 한다. 나는 당신네가 하는 행위에 동의할 수 없다.”

“사실 세계 사학계 학자들은 100% 고구려를 조선사로 취급한다. 중국 사학계 학자들도 대부분 조선사로 취급한다. 고구려를 중국 역사로 보는 학자는 김육부와 그의 제자 네댓 밖에 없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된 후 민족문제가 두드러지고 민족 간의 전쟁이 빈발하니 위의 정치하는 자들이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를 선호하는데 파리목숨인 우린들 무슨 수가 있나? 그저 함구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날 이후 고구려역사 문제에 관한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 됐다. 그러나 고구려 문제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차원에서 학술논쟁으로 밀어붙였지 중국 정부가 공식 태도를 표명한 적은 없다.

 

그러다가 2000년 10월 18일 중국의 언론 매체 총본부인 정부기관 중국신문출판총서中國新聞出版總署 산하 도서출판관리사管理司에서 <총편집통신總編輯通訊> 제5기(총47기)를 발행하였다. 그중 <사서辭書 중 올림말 ‘고구려’에 대한 해석은 역사 사실을 존중하며 실사구시해야 한다>라는 한 편의 글에서 다음과 같은 명확한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사서에 ‘고구려는 우리나라 고대 동북소수민족지방정권이다’라는 견해로 통일해야 한다.”

 

이는 중국정부가 최초로 고구려에 대한 공식 태도표시를 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반 후인 2002년 2월, 동북공정이 출범했으며 중국은 고구려 문제를 정식 국가 프로젝트로 다루기 시작했다.

 

상기 중국 고구려 문제의 유래와 발전을 요약하면,

▲1949년부터 1960년대까지 중국은 고구려사를 조선사·한국사로 보았다

▲1960년 경에 고구려를 중국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보는 견해가 생기기 시작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중국 역사교과서에 고구려를 중국 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취급하는 내용이 등장했다

▲2000년 10월 이전까지 고구려에 관한 국가 공식견해가 없었으며 중국 역사학자들은 각자 견해가 제 나름대로였다. 고구려를 중국사로 보는 자는 극소수였고 한국사로 보는 자가 다수였다

▲2000년 10월부터 고구려를 중국 역사상의 지방소수민족정권으로 보는 견해를 국가 공식견해로 규정지었으며, 이 견해의 관철을 위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는데 고구려 공정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계속>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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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tns 15-04-28 10:04
   
허~ㄹ.. 기가 막힌 내용입니다. 우리나라 정부와 사학계는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두부국 15-04-28 10:26
   
진짜 중국은 자존심이 없군요 중국역사가 찬란하다면서 왜 고조선 고구려 발해 부여 고려를 자기들 역사라고 할까요?
뚜리뚜바 15-04-28 10:58
   
그냥 국명만 봐도 말이 안되는데;; 고구려가 장수왕때 부터 고려로 불리고 왕건의 고려가 국호를 이어오면서 현재의 Corea 영어 국명이 생긴 원인인데;;
뷁쀏뺣삛뽧 15-04-28 18:11
   
근데 Goguryeo Goryeo Corea 라는 이름만 봐도 빼박아닌가,,,
분명 역사서에도 고구려를 계승한다고 여기저기 쓰여있는데 그럼 우리들이 중국의 소수민족 지방정권의 후예라는건가ㅋㅋㅋㅋㅋ

그리고 왜 1960년대까지는 한국사라고 인정하다가 어떻게 그 때부터 갑자기 본인들 역사라는 견해가 생기는거지? 어이가 없구만
그라마톤 15-04-29 01:45
   
감사합니다. 잘 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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