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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에 보면 고수전쟁에서 수양제의 2차 침공때의 침공규모는 이렇게 나오더군요
제2차 고구려-수 전쟁
기간 : 612년 2월 ~ 612년 9월
규모 : 육군 113만 3800명 치중대 200만, 수군 5만
제3차 고구려-수 전쟁 613년 3월
규모 : 육군 40만
2차와 3차의 병력차이가 78만(118만 3800 - 40만) 입니다
이 숫자가 고-수전쟁에서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수군들이라고 추측됩니다
왜냐하면 2차와 3차사이의 기간이 4개월에 불과하니 군대를 양성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양성해도 5~10만 정도 되지 않을까요?
수양제는 이를 갈면서 고구려를 침공하려 했으니 2차 침공때 동원한 군인을 포함해서 3차 침공때 가용한 인원을 죄다 동원했을 겁니다
그 최대한의 숫자가 40만이란 거죠. 즉 2차 침공때 118만에 육박하던 군대규모가 40만으로 쪼그라들었다는 거고 차이가 나는 78만의 군인들은 동원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즉 죽거나 불구가 되었던 거죠
왜 최대한의 병사인지를 알수 있는 또하나의 사례가 양현감의 난입니다
양현감의 난
모병에 응한 젊은이까지 합쳐 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가담해 10만의 대군이 되었다.
낙양 공격이 난관에 봉착한 것은 낙양 유수인 번자개가 완강히 버텼기 때문이다.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494860400604296230
양현감은 최초 1만의 병사로 반란을 일으켰고 낙양을 공격했습니다
즉 준수도인 낙양의 수비대가 채 1만이 안되었다는 거죠
수도조차 방위할 군대를 최소한만 남겨두고 출병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박박 긁어모은 군대가 40만 입니다
때문에 수양제는 고작 1만명으로 시작된 반란이 두려워 철병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2차 침공때 수나라의 피해규모는 70~80만명 이라고 추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