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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7일 (토)

[육군] 월남전 한국군 진지 구축 "파이어베이스" ~

블루하와이 조회 : 13,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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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jpg.


Ciel 13-07-27 00:19
이런 기지를 공략하려면....
압도적인 병력을 내세워서 재정비할 틈을 주지않고 물량웨이브를 하던지,
아니면 그냥 보급로를 끊고 고사하기를 기다려야겠군요.
우리랑 13-07-27 00:27
대국 상태로 보급로를 끊고 기다리다간 지원때문에 도로 죽을거같네요 ㅋㅋ  요즘은 미사일이 워낙 좋아서 포격도 있고...  힘들게 공략하진 않을거 같아요
Ciel 13-07-27 00:35
뭐, 요즘은 포탄들 위력도 속된 말로 ㅎㄷㄷ 하니 예전보다는 덜 고생하겠네요.
그래도 저때는 베트콩들이 치를 떨었겠어요. 제가 공격측 지휘관이라고 생각하면...어휴..
우리랑 13-07-27 01:25
그렇겠네요 ㅋㅋ
참치 13-07-27 02:04
베이스를 중대급으로 나눠서 서로 포격엄호를 할 수 있게 해놓은 것이 요점이군요.

문제는 최소화력의 분산배치로 중앙이 깨지면 각개격파 당하는... 원거리 타격무기를 배제한다면 지상전에서는 매우 훌륭한 전술인듯 싶음..
쿠르웰 13-07-27 03:07
왠지 보방의 성형 요새가 생각나네요...
별모양부터 해서 다른 측면으로 화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원형진지라던가 말이죠...
물론 상대방이 기동전으로 회피하면 그냥 요새 특성처럼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특정 지역을 방어하기엔 충분한 듯...

(그런데 베트콩들이 미군처럼 강력한 포병세력들이 있다고 치면... 그냥 학살이 될지도...)
허각기동… 13-07-27 04:28
적 포병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것이 주전장이 월맹 정규군이 포진한 분단선이나 이북의 월맹지역이 아닌 자유월남지역이었고 따라서 포병전을 전개하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지요.
알려져있다시피 전면전이 아닌 거점을 통한 게릴라전 위주로 상황이 전개되다 보니 대병을 수용하는 거대 기지 하나와 그것을 베이스로 하여 헬기와 장갑으로 나와바리를 카바하는 즉 기동력을 강조하는 미국식보다 방어에 수월한 전방 거점을 미리 점령하여 포병대의 사거리안에 소수로 분산 배치를 해둠으로써 베이스를 벗어나면 제대로된 방어시설물 없이 야간전투에 매우 취약할수 밖에 없던 교전지역 미 보병대보다 적은 자원과 인원으로도 매우 효율적인 방어임무 수행및 수색정찰활동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물론 적보다 낮은 고지에 기지를 건설했다가 박격포 공격에 노출되 희생자를 다소 배출했던 전투도 있습니다만. 

당시 상황에 있어선 아주 맞춤한 선택이라고 볼수 있겠는데 물론 미군의 막강한 물자보급과 우리 포병대
의 현란한 사격술이 있었기에 큰 전공을 세우는게 가능하기도 했겠지요.
암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해보면 우리 국군의 리즈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만약 그정도로 미군과의 협업과 합동전술등이 준비된 상태에서 김일성이 남침을 해왔다면 낙동강까지 떠밀려 내려갈일도 없었을거고 역사는 바뀌었을수도 있었겠다 싶습니다.
없습니다 13-07-27 12:13
채명신 장군이 625때 북한에서의 게릴라 활동시 얻은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낸 파이어베이스전술은 대게릴라전술이지 정규전 전술이 아님. 끊임없는 수색정찰로 주변지역을 장악하는게 필수.
일빠싫어 13-07-27 13:59
그러고 보니 저거 아예 게임 제너럴에서는 미군 진영 방어건물로 나오더군요(가운데 포 있고 보병 4명 집어넣는) 하긴 그러고 보니 거기서 미군이 상대하는 GLA도 테러리스트 집단이긴 했네요.
떼루루루 13-07-27 17:26
음..게시글엔 짜빈동 전투 (1967) 이후 미군이 한국군으로부터 이 전술을 배워가서 교리에 쓰기시작했다고 나오는데

방금 위키피디아에서 보긴 했습니다만 파이어베이스에대해 한국군에 관한 설명은 전혀 나와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미군은 이미 1965년부터 사용했다고 나오는거 같습니다.

"One of the first fire support bases constructed by U.S. troops was built in October 1965. Designated Bill, it was built by the First Cavalry Division in Pleiku Province soon after the division arrived in South Vietnam"

http://en.wikipedia.org/wiki/Fire_support_base

정말 한국군에서 개발한 전술이 맞나요? 혹시 이미 존재하던 전술을 단순히 한국군에서 사용한게 아닌지?

한국측 자료들에선 파이어베이스가 한국군이 발명했고 미군에서 배워갔다고 나오는거 같고

영어자료에선 그런 말은 없는거 같은데 혹시 영어자료에서도 이에관한 자료가 있나요? 누가 가져다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허각기동… 13-07-27 19:18
중대전술기지는 당시 사령관이던 채명신 장군의 아이디어가 맞아요.

이건 당시 미군이 하지 않던 방식이고 차이는 주둔군의 철학과 큰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하자면 길고 간략히말해 공산도배와 주민의 분리전략을 위한 대비책으로서

육이오에서 처절하게 배운 한국군의 선무공작 우선정책의 실전적용사례지요.

암튼 중대전술기지는 이후 미군 보병학교에서 교리 연구과제로 채택한바 있다고는 들었으나

미군이 실전사례에서 적용했는지 여부는 잘모르겠네요. 찾기도 귀찮고. ㅋ
zzag 13-07-28 01:35
아무나 편집가능하고 자료가 채워진지 얼마안되는 위키보다 월남전관련 전사나 사료들 보는게 더 흥미롭고 제반적인 시대적 상황이 눈에 들어올듯 하네요.
베트남 부수상이 여의도 국회와서 파병요청한거며.. 박정희대통령이 파병까지 걸리는 준비시간 물었을때 각군 사령관들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파병되는 국군작전권을 미국이 달라고 했을때 국군지휘관들이 얼마나 극력반대했는지 그 결과로 월남현지에서 국군이 어떻게 성공적인 활동을 벌일 수 있었는지(상기 중대독립기지 운용 포함).. 등등 시간 아깝지 않을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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