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전자] “삼성전자와 한국 반도체, 대만에 뒤처지는 것이 냉정한 현실”

“삼성이 옛날 같지 않다는 게 문제”
“한국 반도체, 원초적인 기술력을 회복해야”
“애플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회사 중 하나였던 삼성이 지금은 모든 분야의 경쟁력이 뒤처졌고, 마지막 보루인 메모리반도체에서도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대단한 위기에 처해있다.”
삼성전자가 흔들리고 있다. 기술 경쟁력과 거버넌스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자 지난해 하반기 외국인은 18조원 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치우며 코스피 지수를 끌어내렸고, 기술기업인 삼성전자의 기업가치는 청산 가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추락했다.
25년간 반도체 시장을 분석한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10일 서울 여의도 유진투자증권 본사에서 진행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이 옛날 같지 않다는 게 문제”라며 “삼성전자가 기술력을 회복하지 못 하고 내부 간의 알력 다툼이 심해지면 그땐 더 큰 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삼성이 HBM의 퍼스트벤더(최우선공급자로)로 SK하이닉스, 마이크론 그 다음이라는 것은 굉장히 뼈아프다”며 “삼성이 (여기서 더) 삐끗하게 된다면 암담하다.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본원적인 위기에 직면한 삼성전자
-한국의 반도체 산업의 현 위치는 어디인가.
“반도체 공급망 전체를 조망해 매출액을 계산해보면, 미국이 (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 정도, 대만 22% 한국은 10%가 안 된다. 냉정하게 보면 한국은 (매출이) 대만의 절반 정도다. 그게 한국 현재 실력이다. 정부나 업계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만큼 우리 반도체가 강하지 않다.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 현실이고 바꿔 말하면 삼성전자가 위기라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최고치를 찍었던 2018년 당시 전 세계에서 삼성전자보다 돈을 많이 번 기업은 사우디 아람코, 애플, 중국공상은행 총 3개에 불과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도 삼성보다 밑에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이후 삼성전자는 급속도로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고 지금은 모든 사업 분야의 경쟁력이 뒤처졌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4분기 잠정실적도 예상치에 미치지 못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의 대응 실패로 메모리 반도체가 타격을 받았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가 있는 비메모리에서도 수율 부진과 고객 확보 실패 등이 겹치며 대규모 적자가 났다. 특히, 비메모리 부문은 지난 2년간 누적 적자가 약 8조원이다.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비메모리 부문 세계 1위를 하겠다고 얘기했는데 막대한 투자를 했는데도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의 경쟁력이 낮은 이유는.
“삼성이 정말 파운드리를 제대로 하고 싶으면 파운드리 사업은 분리를 해야 된다고 오랫동안 얘기를 해왔다. (파운드리가) 대고객 서비스인데, 고객과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못했다. 전략적으로도 실패했다. 충분히 센 고객들을 확보한 다음에 기술을 뒷받침해야 하는데, 삼성은 숫자로 보이는 ‘3나노’ 등 기술만 강조했다. 2011년 애플의 전 제품을 삼성이 만들어줬지만 애플은 ‘우리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TSMC로 파트너를 옮겼다. TSMC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들과 일을 계속하면서 수율이 갈수록 좋아지고, 고객을 잃은 삼성전자의 수율은 더욱 낮아진다. 수율을 잡는 게 중요하다. 될 때까지 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해 상반기 ‘10만전자’를 내다봤던 증권가의 전망과 달리 하반기 주가가 추락한 이유는.
“삼성에서도 HBM에서 해낼 수 있다는 얘길 했었고 늦어도 3분기엔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해 납품할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론 안 됐다. 우리가 아는 삼성은 해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D램 자체도 문제가 있었다. 설계가 잘못돼서 예컨대 발열 이슈 등이 계속 생긴다는 것이다. 당시 외국인이 주식을 대거 매도하며 주가가 떨어졌다.”
-삼성의 거버넌스가 무너진 것이 영향을 주지 않았냐는 의견도 많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이 회장으로선 삼성의 큰 의사결정을 하기 어려웠던 부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술의 변화에 맞춘 기업 전략보단, 재무팀이나 관리팀의 영향력이 세졌을 것이다. 조직문화 자체도 상당히 느슨해지고 나태해진 측면도 있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규제에 따른 국내 기업의 영향은.
“미국의 반도체 규제는 부담이 된다. 그것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 자체에 있다. 삼성이 옛날 같지 않다는 게 문제다. 삼성이 기술만 단단하면 중국과 미국이 조치한다고 해도 ‘우리 없이 무엇을 할 수 있나’라는 식이 될 것이다. 지금은 문제가 크다 보니 (외부 영향에)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고 민감하게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원초적인 기술력을 회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삼성전자가 기술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내부 간의 알력 다툼이 심해지면 그땐 위기가 될 것이다.”
-중국의 창신메모리가 HBM에서도 빠르게 추격하는 것은 아닌가.
“10년 전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현재 15~20%로 10년 전보다 조금 올라간 수준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창신메모리에 떠는 이유는 냉정하게 보면 삼성이 과거처럼 압도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른 산업도 사실 대단히 큰 위기다. 중국은 계속 쫓아올 것이다. 2차전지는 이미 역전했고 신재생에너지도 중국이 전 세계 최고다. 석유화학과 철강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굉장히 만만치 않은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삼성전자 실적과 주가의 반등 시점은 언제가 될 것으로 보는가
“전체 디램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기준 30% 정도다. 70% 이상이 기존 PC와 스마트폰 등인데 상황이 좋지 않다. PC와 스마트폰 제품은 혁신이 떨어져 제품 차별화도 없으니 교체 수요가 생기지 않았다. 상반기 재고 조정이 일단락되면 하반기부터는 사이클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적은) 대략 바닥권으로 본다. 주가는 미리 움직인다. 실제로 외국인은 작년에 무자비하게 매도했지만 올해 들어선 오히려 조금 매수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는 시점은 언제가 될 것으로 보는가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품질 인증은 받겠지만 문제가 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납품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마냥 기다릴 수 없는 엔비디아가 올해 필요한 물량을 이미 SK하이닉스에 할당했다. 납품이 된다 해도 삼성전자가 엔비디아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제한적이란 의미다. HBM의 퍼스트벤더(최우선공급자로)는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삼성전자는 그 다음이라는 것은 뼈아프다. 보통 위기가 아니다. 삼성이 따라가지 못하고 삐끗하게 된다면 암담하다.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 된다. 반도체 특별법 등도 필요하지 않겠나.”
-브로드컴과 엔비디아의 AI칩 대결 구도가 국내 반도체 산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는가
“올해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지만, 장기적으론 반 엔비디아 진영에서의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고 우리로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메모리 업체에 부정적인 상황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상황 판단을 잘못해 막대한 투자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신문에 (메모리반도체) 대규모 투자 계획이 발표되면 펀드매니저들은 주식을 판다. 투자하면 공급이 늘고 가격은 폭락하기 때문이다. TSMC는 투자를 굉장히 빠듯하게 한다. 엔비디아가 급하다고 하면 용량은 한정돼있으니, 가격을 2배를 내라고 한다. 메모리반도체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공장은 365일 24시간 100% 완전 가동을 해야 한다. 수요가 없어도 물량은 쏟아져 재고가 쌓이게 되면 가격을 내려 물량을 공급해야 한다. 투자는 물량 공세가 아니라 기술투자를 해야 하는 것이고,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우직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