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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19일 (금)

[잡담] 현 가요를 바꾼 노래들......

도나201 조회 : 2,145
목록
가끔 현재 kpop이 그냥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진줄 아는 경우가 있다. 
그렇지만 항상 그 시작은 있는것. 

1. 우리나라 ost 의 시작을 알린 노래. 


당시 드라마보다 ost가 더 인기를 끌어서 사회적인 이슈로 성장한 노래. 
이 이후 드라마에 ost 제작이 시작되고,
현재는 수많은 드라마가 ost를 제작하고 있다. 

2. 뮤직비디오 그 시작. 
사실 이전의 노래방에서 화면을 내보낼려고 대충찍어서 만든 뮤비가 대부분이였다. 
뭐 미국의 마이클잭슨의 드릴러 처럼 명작은 뮤비는 
우리로서는 언감생심이였다. 
그리고


발표당시 뮤비 제작평균이 1억미만이던 시절. 
뮤비한편에 10억을 때려넣는 대작이 등장했고 주인공도.... 심지어 가수는 한번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
인지도없는 신인가수이거니도 했거니와. 
노래역시 발라드라서 거의 모험처럼 되던 시기 
주연도 이병헌 김하늘.....(김하늘은 이뮤비로 당대 최고 여배우로 등극한다)
이 뮤비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후에 조성모의 뮤비는 당대 최고액을 돌파하는 뮤비로.....대표되게 된다. 
하지만 그후.........모든 노래발표는 뮤직비디오에 거금을 투자하는 것을 상례가 된다. 


3. 랩 최초의 앨범.    


최초의 랩앨범. 지금은 그저 예능인 홍서범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당시 홍서범 하면 천재작곡가. 
심지어 세대를 앞서는 미래우주인 취급받던 뮤지션이였다. 
물론 데뷔는 대학가요제에서 불놀이야로 대상을 받으면서 
지금 들어도 어떻게 저런 가사 와  락뮤직을 혼성시켰는지.......천재 아닌가 싶을 정도의 뮤지션이였다. 
그후 조갑경과 듀오 앨범을 내면서 2전성기를 구사하였고, 
그렇지만, 그의 음악적열정은 랩이 미국에서 유행하면서 최초로 한국어 가사에 랩을 접목 했다라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거기  랩과 가요의 혼합은 정말이지 천재적인 조합을 하면서 
굉장한 곡이지만,  랩이라는게 당시에는 남대문시장호객꾼의 장단, 약장수 손님끌기 식으로 비하되던 시기여서 그다지 대중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햇지만,  지금들어도 명곡이다. 

4.서태지와 아이들. 
물론 나와야 하는 그룹이다. 
당시 신철...(철이와 미애 그 철이 맞다.)이 괜잖은 아이들 소집해서 .
양현석, 이주노  두명은 자기 휘하에 두고 있어서 랩음반을 기획한다. 
그에 맞는 싱어를 구하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서태지다.  당시 시나위의 신입 베이시스트로서 락메탈에 빠져 있던 노랑머리에 장발.....ㅡ.ㅡ
영입해서  거기에 작곡능력까지 겸하고 있어서.. 
영입되고서 재미삼아? 아니 제대로 랩의부흥을 꾀하면서 내놓은 댄스그룹으로 발표했다. 


뭐 사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당시 랩음악이라는 것은 철이와 미애로 어느정도 알려진 상황. 이나. 
그래도 약장사 호객장단에 비하하던 시기여서 대중화에는 아직은....
그러나 서태지와 아이들....이후.  초중고  학생층을 중심으로 대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한다. 
일종의 역주행의 시초인 곡이다. 
앨범은 11월에 출시 했으나. 실질적인 인기는 6개월후에 초절정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했다. 
당시 딱 두노래만 나왔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알아요. 
김현우의 꿈

이였다.   길거리에는 이 단두곡만이 나왔다. 모든 옷가게 길보드 테이프상 등등 모든 길거리에는 단 두곡만이 흘러나오게 되었다. 

사실상 이곡으로 랩이 한국의 대중화에 안착했다라고 봐도 무방하다. 

거기에 인기를 끌기위해서 신곡주기가 3개월마다 계속해서 방송에 나와야 하는데.
그런것 없이 잠정은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방송일시 중단이라는 시스템을 가요계전반에 적용시켰다. 

그이전까지는 워낙 이미지 소모와  계속된 방송출연 등등 해서 생각보다 가수생명주기가 단명되는 상황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되고 앨범의 질이 급상승하는 계기가 된다. 


5.조피디


사실상 조pd의 혁명이다. 
아마도 it시대의 첫번째 수혜자. 
일반인이.......그냥 자신의 작곡한 노래를 인터넷에 그냥 퍼뜨리면서 가수에 데뷔한 전무무후한 사례다. 
그후 이게 일반적으로 아는 사람은 다아는  
아이디도  조pd  (당시 이러한 기상천외한 아이디를 짓는 것이 유행.. 대표적 쌈장 스타크래프트 최초 우승자)
그후 hs 미디어에서 잽싸게 계약하고 음반낸 특이 케이스. 
그뒤에 기획사에서는 혼자 저렇게 활동하는게 부담스러웠는지. 
미국유학중이던 조pd 주변에 괜잖은 인물있으면 같이 소개좀 해줘라. 
해서 주변 친구의 데모곡을 전혀주니 괜잖아서 빨리 같이 오라.......해서 봤는데. 
외모가 황!!!!~~~~~~~이였음. 
기획사사장은 첫대면 자리에서 술이나 먹으러 가자 하고... 
술자리에서 분위기띄우는 모습을 보고서 그래 데뷔시키자. 해서 데뷔시킨 가수가  싸이 였음. 
당시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많은 인력들이 급거 들어오면서 활동하기 시작햇음. 
솔리드를 위시로 여기저기서 유학생 인듯이 위장해서 데뷔하기도 했음. 

뭐 아직도 몇몇.. 가수들이 있지만, 
조회수 봐서 올리겟음

하얀사람 21-01-09 08:22
1번은
질투가 먼저라 생각 되는데
허허허~...*.*
도나201 21-01-09 08:29
ost 음반을 발표한것은 위가 먼저임.
하얀사람 21-01-09 08:41
아~
역시 질투를 모를리 없다 생각했는데
그런 이유군요~
으하하하~...*.*
미스터스… 21-01-09 08:31
다른 뮤지션은 그 다지 감흥이 없는데 홍서범은 진짜 기가막히네요 ㅎㅎ
해리케인… 21-01-09 08:49
1번 빼곤 다 인정이요.
딱히 뭔가를 바꿨단 생각이 들진않아서...
개인적으론 이상은의 '담다디' 가 나오면서 무언가 바뀌어가기 시작했다고 생각이 듭니다만
도나201 21-01-09 08:58
이상은도 다룰까하는 가수중 하나입니다.
실질적인 영향력은 ...룰라....... 더가 가중치가 있어서.
ITZY 21-01-09 09:09
4.서태지와 아이들.
당시 신철...(철이와 미애 그 철이 맞다.)이 괜잖은 아이들 소집해서 .
양현석, 이주노  두명은 자기 휘하에 두고 있어서 랩음반을 기획한다.
그에 맞는 싱어를 구하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서태지다.  당시 시나위의 신입 베이시스트로서 락메탈에 빠져 있던 노랑머리에 장발.....ㅡ.ㅡ
영입해서  거기에 작곡능력까지 겸하고 있어서..
영입되고서 재미삼아? 아니 제대로 랩의부흥을 꾀하면서 내놓은 댄스그룹으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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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앨범 준비중이던 서태지가 양현석에게 댄스 레슨비 450만원(월150, 3달치 선불) 줬는데
양현석이 말도없이 군대로 먹튀 했다가 8개월 만에 의가사 제대하고 나서 용기내어 다시 연락~
[양혁석이 힐링캠프 나와서 말하기 전까지 서태지는 20년간 먹튀사건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다고..]

이후 서태지 솔로앨범 데모버전을 듣고는 내심 기대하며 솔로+백댄서 말고 그룹을 추천했고
서태지의 제안 및 허락을 받은 후 양현석이 다른 댄서 한명을 구하다가 부랴부랴 뒤늦게
이주노를 영입해서 1집에 이주노 목소리가 녹음이 안되어 있다고 알고 있는데...

아예 그 이전 시기의 내용인건지...``
방송에서 들었던 서태지와 아이들 결성과는 조금 다른 얘기네요`
쌈바클럽 21-01-09 10:07
님이 아시는게 맞을거에요. 신철이 키운건 DOC...
도나201 21-01-09 11:19
신철이 기획한 것 맞고.

당시 둘다.. 신철밑에서 백댄서하고 있었음.

위에 뭐 사기친 이야기는 그전 일이고,(양현석이 사기친게 아니라 양현석이 이주노를 소개시켜주고 이주노가 군대에 간것임 실제로 이주노가 사기친것임.  그리고 이주노를 알고 있었고 서태지가 이주노를 알면서 그냥 받아들인것임. 그관계에서 서태지가 리더로 갈수 있었던 것이고,  어떻게 보면 참 서태지가 난놈이라는 생각이 듬. 
실제로 신철이 기획하고 자기소속? 으로 백댄서로 알고 있던  양현석을 필두로 하다가.
끌어당긴게... 서태지였음.
이주노는 양현석이 추천했지만, 실제로 이미 신철이 백댄서시절 이주노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영입한 것임.

그후 이세명이 신철에게 대항해서 계약무효소송가고 이때일로 신철은 망하게됨.
사실 신철이 혼자 다해먹긴 했었음.
허까까 21-01-09 13:33
하아.. 도대체 뭔 소리예요;; 서태지와 아이들 레이블이었던 반도음반은 신철과 관련 1도 없고요. 서태지가 누군가의 기획가수로 길러진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뭔 신철 밑에서 백댄서를 해요. 걔는 그냥 디제이였고 양/이는 문나이트 같은데에서 같이 협업하던 크루같은 사이였는데. 무엇보다 당시 이주노는 이미 KBS 무용단에 속할 정도로 프로 세계에서도 난 사람이었습니다. 신철 따까리로 있을 인물이 아니었다고요.

그리고 이주노가 사기쳤다..? 이주노는 양현석 의가사 제대하고 난 알아요 데모 나왔을 때까지도 서태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다 양현석 소개로 알게 된 거고요. 이주노 본인이 자신의 자서전에서 직접 밝힌겁니다.

그리고 이주노는 군 면제예요;; 무슨 군대를 가요..

님은 저번부터 뭐만하면 아는척을 하면서 황당한 말을 늘어놓으시는데.. 도대체 왜 자꾸 그래요? 컨셉인 거예요? 밑에서도 말했지만 님이 언급한 것들 출처 좀 부탁드립니다.
허까까 21-01-09 13:43
경향신문 | 1995.1.12
연예인 병역기피혐의를 수사해온 경찰은 11일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 이주노씨(본명 이상우·27)는 합법적으로 병역이 면제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 1994.12.13
인기연예인 병역기피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 성북경찰서는 13일 이들의 병력 진단서 등 병원기록이 보관된 국군창동병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경찰에 따르면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정현철씨(22·예명 서태지)는 91년 4월, 이상우씨(27·예명 이주노)는 86년 4월에 각각 성격장애를 이유로 병역이 면제됐다. 

한겨레 신문 | 1995.1.15 
연예인 병역기피 혐의를 수사해온 경찰은 14일 인기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 정현철(22·예명 서태지), 이상우(27·예명 이주노)씨의 병역면제와 양현석(24)씨의 의병제대는 합법적인 절차에따라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들 3명의 병역기피 혐의에 대한 경찰의 내사는 사실상 종결됐다
ITZY 21-01-09 16:49
신철이 먼저 두명을 두고 랩 음반을 기획, 이후 싱어를 영입했다라....``
이하늘`박정환` 영입 이후 마지막으로 김창렬이 들어온...
딱  DJ.DOC 결성 과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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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석과 이주노는 박남정과 친구들(프렌즈)로 백댄서들이였습니다`
[김영완(콜라) 박철우(REF) 양현석` 이주노]
뭐 누군가의 밑에 있었다고 한다면 신철이 아닌 박남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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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기친 얘기는 "양현석의 댄스 레슨비 450만원 먹튀사건"을 말하신것 같은데
양현석 본인이 힐링캠프에 나와 직접 한 얘기라 별도의 팩트체크를 할 필요도 없으며
이주노와는 아무 관련 없는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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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바클럽 21-01-09 09:56
조성모 뮤비의시작은 생각이 좀 다른게 조성모 이전에도 멋진 뮤비들은 꽤 많았죠. 조성모 등장 이후 영화,드라마 같은 뮤비에 그냥 노래까는 스타일이 한동안 유행하긴 했지만 요즘은 거의 하지 않죠. 잠시의 유행이었지 저것으로 부터 현재 K팝(한국대중가요) 뮤비의 출발선이었다고 보긴 매우 어렵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조피디 같은 경우도 일반인이라기 보단 말하자면 언더 뮤지션이 활동방식을 온라인(PC통신)으로 한 것인데 그 방식에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발굴된 동시대 가수 중 가장 성공한 것은 싸이라고 할 수 있죠. 전무후무는 아니란 얘기고...(싸이도 조피디와 함께 온리안에서 활동했던 가수 래퍼임) 그래서 1집 같은 경우는 발매전에 이미 온라인에서는 한참 전에 공개가 이미 된 기존곡이었죠. 타이틀곡만 새로 제작함.

그 이후에는 오히려 이런 온라인으로 말하자면 등업하는 사례가 훨씬 증가됐으며 대표적으로 산이 같은 경우가 온라인으로 아마추어처럼 활동하다가 JYP까지 들어갔던 케이스. 그리고 요즘은...

워낙 음원시장이 폭넓게 열려있기 때문에 무료공개형태인 여러 플랫폼외에도 정식 음원출판이 매우 손 쉽기 때문에 많은 언더 혹은 무명 심지어 취미로도 자기곡을 발표하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기본적인 방식 자체는 언더랩퍼들이 흔하게 하는 루트에요. 소규모 공연과 무료음원 공개(흔히 말하는 믹스테잎도 여기에 해당)로 이름을 알리고 인정 받으면 한단계씩 스텝업 하는 방식...

다른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조피디에 대한 평가 부분은 아주 약간은 수정될 필요는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온라인 시대의 시작점에 상징적인 인물이지만 그 뒤로는 널리고 널렸...죠. 조피디 만큼 대박 히트송이 있기는 매우 어렵겠지만...
도나201 21-01-09 11:31
조성모의 대규모 뮤비제작에 의해서 뮤비가 제작되기 시작한것은 맞음.
즉, 그전에도 뮤비는 제작했는데 분명히 위에서 거론했듯이
당시 1억미만,  .. 정도의 제작비만 들였음.
하지만 저때 10억투자했다고 하면. 거의 영화한편 찍던 거금이였음.
이렇게 뮤비에 대규모적으로 찍은것에 대성공을 거둔 최초의 뮤비라는 것임.
이때 성공으로 그뒤 뮤비가 경쟁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고
광고대행사 프로듀서가 뮤비로  뮤비에서 영화감독으로 입봉하는 루틴이 형성되죠.

조피디는 최초 입문이라는 것으로 유명하죠.
현재까지 온라인에서 인기를 끌어서  바로 데뷔하는 경우는 없죠.

그래서 전무후무한 경우라는 표현을 한것입니다.

실제로 조피디가 당시 혁신적인 유학생파를 형성해서 유학생들의 대거 유입이 시작되었다라는게 더 영향이 컷죠.

그뒤 듀스의 이현도를 비롯해서 sm hot 토니. 등등 당시 재미교포 유학생등이 많이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다라는 게 핵심이죠.  이때 데뷔한게 현재 문제되는 유승준또한.. 마찬가지고,

김조한, 이요원 이래저래 유학생 데뷔붐이 일었죠.

이게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일본표절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영향이였죠.
그전에 음악계라는 것이 군사정권시절 미국과 직접적인 교류 및 심지어
뮤비조차 제대로 보기 힘들고 거기에 음반도 검열되던 상황이라서

일본을 거쳐서 들어오는 상황이라서 많이 변형된 상황이기도 하고 거기에 표절문제까지
그러한 면을 벗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조피디의 데뷔로 인한 유학생 및 재미교포의 데뷔러쉬가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고 ,
그로 인한 일본음반계에서 완전히 탈피하는 계기가 되었죠.

뭐 시작은 룰라의 천상지애 표절사건이후 가 되겠지만,
허까까 21-01-09 13:59
다른 내용은 다 위에꺼 재탕이니 스킵하고

ㅡㅡㅡㅡㅡ

"실제로 조피디가 당시 혁신적인 유학생파를 형성해서 유학생들의 대거 유입이 시작되었다라는게 더 영향이 컷죠. 그뒤 듀스의 이현도를 비롯해서 sm hot 토니. 등등 당시 재미교포 유학생등이 많이 데뷔하는 계기가 되었다라는 게 핵심이죠.  이때 데뷔한게 현재 문제되는 유승준또한.. 마찬가지고"

ㅡㅡㅡㅡㅡ

도대체 이건 또 뭔소리인지;; 이현도 72년생이고 93년 데뷔예요. 이 때 조피디 고삐리였는데 뭔 조피디 덕에 데뷔를 합니까.. 더군다나 이현도는 재미교포도 아니고 그냥 한국인입니다.

참고로 토니안도 95년 스엠 들어갔고 96년 가을 데뷔입니다. 유승준도 97년 데뷔로 조피디보다 빨라요.

조피디가 데뷔한 건 99년 1월이고(pc통신까지 친다해도 98년 가을) 이 시기 이현도는 이미 프로듀서로 날리고 있었고 에쵸티, 유승준은 가수로 최전성기였는데 무슨..

그리고 김 뭐요? 김조한이요? 김조한 한국 온 게 92년이고 솔리드 데뷔가 93년이에요. 아 진짜 좀 ㅋㅋ;;
허까까 21-01-09 13:23
쌈바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결국 그것이 케이팝의 지속적인 모멘텀이 되었는가가 중요한데 저기 언급된 것들은 죄다 한 때 잠깐의 유행이었죠. 전부 상위 티어의 모델들이 있고요.
청호님 21-01-09 11:44
신신애 김흥국 아님꽈 ㅋ
드뎌가입 21-01-09 11:59
김삿갓 별로 대단한 거 같지 않던데
예전부터 홍서범 대단하다 하는 사람들 가끔 나올 때마다 낯선 느낌임

조성모 뮤비 대박으로 뮤비업계 커진 거 인정
서태지 인정
ost는 잘 모르지만 그럴 거 같긴 함 그래서 인정
조pd도 잘 모르지만 그런 가보다 싶긴 함 노래도 좋았음 그래서 어쨌든 가마니 있어야지싶긴 함
근데 김삿갓은 뭐? 뒷 사람들에게 뭔가 영향을 주긴 했어요? 하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싶음
도나201 21-01-09 12:49
당시 상황으로 절대로 나올수 없는 음반이였음.
한마디로 가창력미달로 음반자체가 나올수 없는 상황에서 음반을 냇다라는 자체가 대단하다라는 것임.

검열이라는게 어떤것인지 당시 사회상이 어떤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저게 얼마나 대단한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함.

거기에 불놀이야 가 당시 발표했을때 나타난 센세이션은 락음악자체를 한국어로 저렇게 맞출수 있는지 신기할정도의 작곡이였음.

노래가사도 마찬가지고 사랑타령의 트롯트 가사가 주구장창 판치던 상황에서 .
쥐볼놀이를 빗대어서 사회상을 타파해가자라는 노래가사가 나올수 있는배경과.
그걸 강렬한 락사운드로 했다라는 자체가 놀라울 지경임.

홍서범이기에 가능한 작업이였음. 항상 선도하는 듯한 인상의 작곡가였음.
민폐형 21-01-09 12:19
김삿갓이 시기는 빨랐지만 갠적으론 육각수 추천..

흥보가 기가막혀~
도나201 21-01-09 12:49
차후에 쓸예정임. ㅡㅡ.ㅡ
순헌철고… 21-01-09 12:36
조피디 - Break Free
이게 진짜 그당시 센세이셔날 했었지..
허까까 21-01-09 13:21
제가 서태지 관련해선 이주노, 최진열 저서까지 읽어봤지만 신철 얘기는 금시초문입니다. 신철이 그 정도로까지 중요한 인물이라면 당연히 기술되어 있을텐데 전혀,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설령 님 말대로 관련있다해도 본문/댓글에서 설명한거 다 사실과 맞지 않고요. 출처 좀 부탁드립니다.
낭만시대 21-01-10 01:04
서태지의 등장으로 음악의 판도 바뀐 건 인정 하는데, 또 한편으론 샘플링등등 하며 표절 논란이 끊임없어 논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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