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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7일 (토)

조선시대 서민들이 먹던 3첩 5첩 반상

굿잡스 조회 : 2,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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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현대 섬나라 급식을 보고 떠오른게

조선시대 일반 서민 기준의 3첩 5첩 반상보다

못먹구나 싶더군요 ㅋ

3첩 반상이라는게

이게 단순히 3 가지수를 말하는게 아니고

밥 국 김치 장은 기본이라 제외였군요.

12첩 임금님 수라상으로 첩수가 올라가면서

기본에 찌개 전골 등도 기본에 다시 추가되면서 여기에 다시 추가되는 가지수에 따라 첩수가 올라가게 됩니다.

역적모의 21-02-17 19:01
지금 식판 시스템이 3첩 반상 ㅇㅅㅇㅋ
인왕 21-02-17 19:03
왜인들은 저렇게 먹고도 웃고 앉았으니
배 타고 왜구질이나 하러 왔던 모양입니다. 난쟁이 그지시키들...왜구가 아니라 왜개구먼...
모니터회… 21-02-17 19:12
조작된 영상이네요.
무슨 양반이 쩝쩝 거리면서 나물반찬만 먹고, 밥을 다 흘리면서 먹는지...
그리고 국에 밥말아 먹던 양반은 없었음.

후반에 바보짓 하는 장면까지 나오네...
변딸기 21-02-17 19:15
웃으라고 올린건데ㅠㅠ
턀챔피언 21-02-17 19:16
우리나라 역사중에 자료가 제일 방대하게 남아있는게 조선시댄데
어설픈 조작하다 니 모가지 날아갈수있다
변딸기 21-02-17 19:19
ㅋㅋㅋㅋㅋ 하 ㅋㅋㅋㅋㅋㅋ 당장 신고해서 모가지 날려봐 반말하는 꼬라지 꼴보기 싫네
턀챔피언 21-02-17 19:22
조작질을 하지말던가 ㅋ
변딸기 21-02-17 19:24
조작은 니미  웃으라고 적은글이라고 분명 적었놨는데 니눈은 사시야?
턀챔피언 21-02-17 19:27
팩폭당하니까 그냥 웃으라고 올린거라고 얼버무린거 티나는디?
변딸기 21-02-17 19:40
하 팩폭이란다 최소한 영상을 보고 판단해라
팩폭은 참나 ㅋㅋㅋㅋㅋㅋㅋ 아휴;;
웃으라고 만든영상에 웃으라고 올린거라고 해도
무슨 팩폭드립까지 정떨어지네
Y금강불… 21-02-17 19:20
휴대폰 나오는 자료라 엄청 귀한듯.....
턀챔피언 21-02-17 19:18
단순 가짓수만 따져서 3첩이니
요즘으로 봐도 고급식단이네
sangun92 21-02-17 19:43
임금 수라상이 12첩이라는 것도 후대의 헛소리.
잘 사는 양반이 9첩 반상을 차려 먹었다니까
왕은 이것보다 더 잘먹어야 한다는 선입견으로 12첩 반상이라고 쓴 것.
실제로는 왕도 5첩 또는 7첩 반상을 먹었다고 함.
굿잡스 21-02-17 19:55
왕의 일상식사에 대한 표현은 『조선왕조실록』에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다. 

상선(常膳: 평상시의 식사. 법선(法膳)), 수라(水刺: 조수라, 주수라, 석수라, 죽수라, 별수라(別水刺), 어반(御飯)), 어선(御膳: 임금에게 올리는 음식, 임금에게 진상하는 음식), 시간에 따라 조선(朝膳), 석선(夕膳), 주선(晝膳) 또는 오선(午膳)이라고 했다. 주방(廚房)의 음식에서 만든 음식이라 하여 주선(廚膳)이라고도 하였다.

일상식의 관련행위로는 음식을 드시는 일로 식선(食膳), 음선(飮膳), 진선(進膳: 임금에게 수라상을 바치는 것. 임금이 어선을 드시는 일), 그리고 임금에게 드릴 수라상의 음식과 기구들을 미리 검사하는 것으로 사옹원 제조 임무를 받았던 감선(監膳)도 있었다. 또한 왕이 대비의, 왕비나 왕세자가 임금의 수라상을 손수 보살피던 시선(視膳)이 있었는데, 어른들을 위한 효성스런 음식수발을 친히 들었다. 왕들은 절제와 검소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음식을 줄이는 감선(減膳)이나 육선(肉饍)을 금하는 소선(素膳)을 통해 검박정신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감선(減膳)의 이유로는 검소함 이외에도 한재, 수재, 천둥, 난리, 상중이나 기일에도 음식이나 식사의 수를 줄이기도 하였다.

궁중의 일상식을 가장 잘 나타낸 기록은 18세기 대표적인 궁중의 식문화기록인『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이상인 것은 없다.『원행을묘정리의궤』는 정조 19년(1795)에 모후인 혜경궁 홍씨(사도세자빈)의 갑년(甲年, 회갑)을 맞아 화성(華城)의 현융원(顯隆園)에 행차하여 잔치를 베푼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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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의 수라상은 13기 또는 15기를 흑칠을 한 다리가 있는 원반(元盤)과 협반(俠盤)으로 2개의 상에 차리는데, 원반에는 은기에 담은 12기(器) 음식을 차리고, 협반에는 화기 그릇에 담은 3기 음식을 차렸다. '기(器)'라는 그릇의 수인데, 장(醬)은 그릇수로 치지 않았다.

자궁의 수라상에는 원반에는 반(飯), 갱(羹), 조치(助致), 구이[炙伊], 좌반(佐飯), 숙육(熟肉), 해(醢), 채(菜), 침채(沈菜), 담침채(淡沈菜), 장(醬) 등이 오른다. 협반에는 탕(湯), 적(炙), 증(蒸), 만두(饅頭), 회(膾), 전(煎), 각색어육 등 동물성 식품을 주로 사용한 음식류가 차려졌다. 

같은 날 같은 시각의 왕의 수라는 자궁과 달리 협반을 따로 차리지 않았으며, 흑칠족반(黑漆足盤) 하나의 상에 7기 음식을 유기그릇에 담았다. 조치나 침채, 찬수를 줄여 차렸다.

미음(米飮)상은 각 참(站)에 들르거나 중로(中路)에서 혜경궁 홍씨와 두 군주에게만 올렸는데, 미음 1그릇, 고음 1그릇, 정과 1그릇을 차렸다.

다소반과에는 면(麵), 만두(饅頭), 탕(湯), 적(炙), 전유화(煎油花), 어채(魚菜), 편육(片肉), 증(蒸), 회(膾), 다식(茶食), 각색당(各色糖), 떡[餠], 유밀과(油密果), 강정(強精), 율란(栗卵)·조란(棗卵), 정과(正果), 생과(生果), 수정과(水正果), 청(淸:꿀), 장(醬) 등을 사기그릇에 담았는데, 국물이 없는 음식들은 3-5촌(9-15cm 정도)으로 고여 상화(床花)로 장식하였다. 대전 및 군주의 반과상은 자궁상 보다 7-11그릇으로 적게 차리며, 고임의 높이도 2-5촌이었다. 대전의 반과상에는 고임음식에 상화가 없었고, 군주의 경우 상화는 있지만 자궁의 반과상 보다는 적었다.


https://m.blog.naver.com/gkgkghgh8900/10183749825
턀챔피언 21-02-17 20:07
수랏상은 기본적으로 상이 3개 임...
기성용닷… 21-02-17 19:43
조선시대는 알면 알수록 흔히 상상하는 것보다 더 잘살았고
지금 봐도 잘 정비된 제도나 시스템들이 많이 있었던 나라인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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