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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21일 (화)

한반도 삼국시대 언어...

케이윈드 조회 : 1,655
목록
고구려
 
백제
 
신라
 
그들이 과연 지금과 같은 한국어를 사용했을까요??
 
같은 알타이어 계통이라고는 하나 아무래도 언어차이가 있겠죠??
 
아마 서로 못알아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던데..

흑룡야구 14-11-16 00:19
국어 학회에서는 방언차 정도 였다고 본답니다.
ㅁㄴㄴㅁ… 14-11-16 00:19
저도 궁금하긴하네요.
눈틩 14-11-16 00:20
삼국 간 방언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
그래도 서수사나 어떤 용어들은 다른게 꽤 있는거같아요
흑룡야구 14-11-16 00:21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확연히 구별되고 평안도 지역 사투리가 확연히 구분 되는 것은 과거 다른 나라였다는 증거라던데 특유의 정서와 말투는 좀 다르지만 소통이 불가한 정도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일단 고구려, 백제 모두 북방계이며 이미 건국부터 남방어와 섞이면서 변화를 겪었고, 4세기까지 고구려와 교류했던 신라, 그리고 통일 이후 고려 건국으로 이어지며 한국의 중심지가 여럿 변하면서 그 차도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덜덜덜 14-11-16 00:21
후한서 보시면 삼국 모두 같은 어휘는 사용했다고 봅니다.

일단 무령왕릉 보면 중국과 완전히 다른 한문어법을 구사했음.

하지만 신라의 경우 중국과 대화시 백제인 통역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지역마나 어느정도 방언은 존재했겠죠.

극과 극 제주도나 함경도 방언 보면 아무도 모르는 단어가 막 튀어 나오죠.
도리키 14-11-16 00:21
영화 황산벌 정도보다 조금더 심하지않았을까 싶네요.
fininish 14-11-16 00:24
걍 고려때 가요인가 그거 교과서에 있으니 함 보시죠.
삼국시대까지 갈것도 없습니다.
흑룡야구 14-11-16 00:28
고려 가요는 고려 시대의 노래로 조선 건국이 후에 채록된 것이기 때문에 고려 시대 언어 전체를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고려 후기 정도의 즉, 몽골어의 영향으로 우리 말이 변한 시기 이후의 말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것보다 향가를 연구해 보면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국어 학계의 의문이

한글 창제 당시에 있던 반치음이나 순경음 같은 것들이 과연 창제 후 바로 소실 된 것인지 아니면 그전에도 잘 없던 것인지 의문인데 여튼 그렇네요.
아비요 14-11-16 00:25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대만인가 중국인가에 각국 사신들 온것을 그린 그림이 남아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 사신이 신발이나 의복등이 거의 동일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그대로 한 민족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정도로 의복이 비슷하더군요. 다만 신라 사신은 모자를 안쓰고 긴 머리를 내리고 있다던지 색깔이라던지 하는 세부 차이만 있죠.

그에 반해서 왜의 사신이나 다른 국가들의 삼국 사신들과 사신들은 완전히 틀립니다.
아비요 14-11-16 00:26
양직공도입니다. 물론 언어에 대한 직접적인 근거는 아니지만 단지 옷만 같았겠느냐 하는 점을 생각해볼수 있다고 봅니다.
참치 14-11-16 00:25
방언 정도겠지만... 제주말 수준은 아니었을 듯...
ㅁㄴㄴㅁ… 14-11-16 00:27
제주도야 워낙 육지에서 멀고 또 고려말기까지
탐라국이라는 나라도 있었으니
흑룡야구 14-11-16 00:30
제주도 말은 중세 국어가 가장 많이 남은 지역이랍니다.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들고, 처음에 들어가 가기도 힘들고. 뭐 여튼 그렇데요.
ㅁㄴㄴㅁ… 14-11-16 00:32
지금이야 비행기로 장흥에서 배로 금방이지만
옛날에는 나룻배로 한달은 걸렸는데 가기힘들죠
ㅁㄴㄴㅁ… 14-11-16 00:29
근데 이거는 동아시아 게시판에 가는게 맞을듯 싶은데.
강산 14-11-16 00:31
정말 궁금한것은, 발해가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가 정말 중요함.
흑룡야구 14-11-16 00:33
고구려 어를 모어로 알타이 어족들이 대부분 북방계니 그 쪽도 알아 듣기 힘든 사투리 정도가 아니었을까요?
Novus 14-11-16 00:41
옛날에 누가 올려주셨던 글인데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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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의 언어와 풍습에 대한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의 언어에 차이가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단학계에서는 고대삼국의 언어가 개별언어였으며 특히 고구려의 언어는 백제와 신라하고는 차이를 가진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에 면밀한 분석과 연구로 삼국의 언어가 방언적 차이는 있지만 단일어였다고 인식합니다.
 
삼국언어의 연구결과 한(韓)민족의 고대삼국에 계통을 달리하는 근본적인 언어차이는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자들은 삼국의 언어차이뿐 아니라 방언차이도 부정하고 있다.
 
고대어가 개음절(열린음절)로 이루어져서 국명과 지명어휘를 몇개의 기원어의 범주로 묶어 고찰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확대되어 비교언어학적인 연구를 통해 고대삼국의 언어가 동일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자료를 통해 삼국의 언어를 서로 다른 개별언어로 볼 수 있는지 검토했는데 고구려어휘 자료들에는 중세국어와 이어진다고 본 어휘가 각각 44%, 68% 였는데 이는 오히려 삼국의 언어가 모두가 중세국어에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되고 단일어라는 전제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기문- 고구려어 76개중 31개를 중세국어와 대응 발견
*박병채- 고구려어 63개중 41개를 중세국어와 연관 발견
 
<후한서> 
東夷相傳以爲夫餘別種故言語法則多同
[고구려는 동이족들이 서로 전하기를 부여의 별종인 까닭에 언어와 법제가 많이 같다고 한다]
 
言語諸事多與夫餘同其性氣衣服有異
[고구려는 언어와 여러일들이 부여와 많이 같은데 그 성질과 의복은 다른데가 있다]
 
言語食飮居處衣服有似句驪
[동옥저는 언어, 음식, 거처, 의복이 고구려와 비슷하다]
 
耆舊自謂與句驪同種言語法俗大抵相類 言語法俗大抵與句麗同
[예의 늙은이들이 스스로 이르기를 고구려와 같은 종족이라 한다. 언어와 법속이 대개 서로 유사하고 고구려와 같다]
 
이렇게 화하족 사서의 기록에서 고구려와 부여 그리고 예(濊)의 언어와 풍습이 같았음을 증언합니다.
 
<후한서>권85
弁辰與辰韓雜居城郭衣服皆同言語風俗有異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산다 성곽과 의복은 다 같은데 언어와 풍속은 다른 점이 있다]
 
<삼국지>'위지'
弁辰與辰韓雜居亦有城郭衣服居處與辰韓同言語法俗相似
[변진과 진한은 섞여 사는데 또한 성곽이 있다 의복과 거처는 진한과 더불어 같고 언어와 법속이 서로 비슷하다]
 
한(韓)에 대한 화하족 사서의 기록이며 여기서 [다른점이 있다]와 [서로 비슷하다]의 상반되는 기록에서 두 가지를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두 사서의 기록자가 실제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어느 한 책이 다른 한 책을 가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후한서>의 기록자가 이 지역의 방언차이를 목격하고 [다른데가 있다]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느쪽이든 변진과 진한의 언어차이를 증명하는 기록으로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서라벌신라지역에 대한 기록에서 한반도 남부에 존재한 언어는 단일어였음이 실증된다.
 
<양서>
語言待百濟而後通焉
[신라의 언어는 백제의 통역이 있어야 중국과 통한다]
 
이 기록은 당시에 화하족과 신라가 의사소통을 하려면 백제가 통역을 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하면 백제어와 신라어는 같았음을 확인하게 되고 백제어에 대한 기록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다.
 
<양서>
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行不張拱拜不申足則異
[백제의 지금에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은데 다닐 때 두손을 맞잡지 않고 절할 때 다리를 펴지 않는 점이 다르다]
 
<남사>권79
言語服章略與高麗同
[언어와 복장은 대략 고구려와 같다]
 
<위략>
百濟高麗新羅基三國全朝鮮裔裳也用同語
[백제, 고구려, 신라 삼국 모두 조선의 후예들로 같은 언어를 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와 부여, 옥저, 예의 언어가 같았고 한(韓)의 언어 즉 백제와 서라벌신라의 언어가 같았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같았으므로 결국 고대 한(韓)민족의 언어는 단일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서>의 기록에 백제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언어가 달랐다고 하는데 왕을 ‘어라하’ 또는 ‘건길지’라고 불렀는데 ‘어라하’는 지배층인 왕족과 귀족들이 사용하고 ‘건길지’는 평민들이 사용한 호칭이었다.
 
그렇다고 언어가 다른것은 아니고 관료들은 '주상' 또는 '전하'라고 부르고 백성들은 '상감마마' 또는 '임금님'으로 부른 차이로 봐야 하는 것이다.
 
비류와 온조가 주도한 초기백제가 건국한 곳은 대륙의 발해만인데 고구려의 공격으로 남하하여 산동성과 한반도로 이동하므로 백제는 마한과는 별도의 국가로 존재했으며 후대에 마한을 통합한다.
콜라코카 14-11-16 00:43
백제, 신라 사신이 왜국에 갔는데 백제사신이 일본말을 신라 사신에게 통역해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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