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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 18일 (화)

거란어와 우리 옛말

감방친구 조회 : 2,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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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어와 우리말

동아게에서 과제를 수행하던 중 너무 피로하여 이 글을 여흥 삼아 씁니다.

말이 여흥이지 이 글 작성하는 데에도 5시간여의 시간이 들었습니다.

잘 보고 가세요




A.서랍목니하(西拉木伦河)의 경우


1. 효라개몰리

其居曰梟羅箇沒里. 沒里者, 河也. 是謂黃水之南, 黃龍之北, 得鮮卑之故地, 故又以爲鮮卑之遺種.《新五代史 卷七十二四夷附錄第一》

그들이 살던 곳을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라고 말한다. 몰리(沒里)는 강(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황수(黃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을 이르는 것으로 선비(鮮卑)의 옛 땅을 획득한 것이라 예로부터 또한 선비(鮮卑)의 남겨진 무리(遺種)라고 말했다.


2. 황수(潢水)와 시라무렌

1)위키백과

시라무룬허(몽골어: Šira Mören 시라무렌, 중국어: 西拉木倫河(서랍목륜하), 병음: Xilamulunhe)는 내몽골 자치구 동부를 흐르는 하천이다. 랴오허 수계에 속하고 라오하허(老哈河)와 합류한 후에 시랴오허가 된다.

시라무렌은 몽골어로 "누런 강"을 의미한다. 황하와 구별하기 위해 이전에는 황수(潢水)라고 쓰여졌다.

https://ko.m.wikipedia.org/wiki/%EC%8B%9C%EB%9D%BC%EB%AC%B4%EB%A3%AC%ED%97%88


2) 바이두백과

潢水,古水名。亦作潢河,黄水,饶乐水。即今内蒙古西拉木伦河。


3) 중경 ㅡ 무경총요

戎狄舊地中京,舊鮮卑之地,在饒樂府西南,本奚王國牙帳之地。奚部落南距古北口,北距漢水,東即營州千餘里,皆其境土,後為契丹所並。《武經總要 前集 邊防一下 北蕃地理》

융적의 옛 땅인 (거란의) 중경은 옛 선비족의 땅으로 요악부 서남쪽에 있는데 본래 해국 왕의 아장(행궁/궁궐)이 있던 곳이다. 해부락(이 살던 땅)은 남쪽으로 고북구와 떨어져 있고 북쪽으로는 한수와 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는 영주가 천여 리에 있었는데 훗날 거란이 그 영역을 병합하였다.


4) 요악주 ㅡ 무경총요

饒樂州
饒州,唐建饒樂府都督,以處奚人部落。契丹建為饒州,在潢水之北石橋旁,以渤海人居之。西南至平地松林百里,南至中京五百里,北至它河十里,東北至上京三十里,西北至祖州七十里。《武經總要 前集 邊防一下 北蕃地理》

요주는 당나라가 해부락이 거처하는 땅에 요악도독부를 세웠던(설치했던) 곳이다. 거란이 (그곳에) 요주를 세웠(설치했)는데 황수 북쪽의 석교 근처이며 발해인들을 데려다 거주하게 했다.


5) 해(奚)와 요락수 ㅡ 구당서

奚國, 蓋匈奴之別種也, 所居亦鮮卑故地, 卽東胡之界也, 在京師東北四千餘里. 東接契丹, 西至突厥, 南拒白狼河, 北至霫國. 自營州西北饒樂水以至其國.《舊唐書 卷二百一十二 鐵勒契丹奚室韋靺鞨渤海靺鞨霫烏羅渾》

해국(奚國)은 대개 흉노(匈奴)의 별종이고 (그들이) 살던 곳은 또한 선비(鮮卑)의 옛 땅이자 곧 동호(東胡)가 (살던 곳과) 접하고 있고, (당의) 경사(京師)에서는 동북쪽으로 4,000여 리에 있었다. (그들의 영역은) 동쪽으로는 거란(契丹)과 접했고 서쪽은 돌궐(突厥)에 도달했고 남쪽은 백랑하(白狼河)가 가로막고 있고 북쪽은 습국(霫國)에 도달했다. 영주(營州) 서북쪽의 요락수(饒樂水)로부터 그들 나라에 도달하게 된다.


6) 고막해(庫莫奚)와 약락수(弱洛水) ㅡ 위서(魏書)

庫莫奚國之先, 東部宇文之別種也. 初爲慕容元眞所破, 遺落者竄匿松漠之間.

登國三年, 太祖親自出討, 至弱洛水南, 大破之, 獲其四部落, 馬牛羊豕十餘萬.

《魏書 列傳第八十八 高句麗百濟勿吉失韋豆莫婁地豆於庫莫奚契丹烏洛侯》

고막해국(庫莫奚國)의 조상은 동부(東部)우문(宇文)의 별종(別種)이다. 일찍이 모용원진(慕容元眞)에게 격파되자 흩어져 남은 자들이 송막(松漠)의 사이로 달아나 숨었다.

등국(登國, 북위 도무제) 3년(388), 태조(太祖)가 친히 토벌하러 나가 약락수(弱洛水) 남쪽에 이르러 이들을 대파하고, 그 4개 부락과 말, 소, 양, 돼지 10여 만 마리를 얻었다.

대한민국 사학계 통설에 기반하는 동북아역사넷의 弱洛水 주석에 따르면 “弱洛水는 饒樂水, 澆洛水, 즉 시라무렌강이다.”라고 돼 있다

상기 여러 사서 기록 상의 황수(潢水)와 한수(漢水), 요락수(饒樂水)가 기록만을 놓고 보더라도 동일한 강을 가리킨다는 것을 합리적 사고력을 지닌 이라면 대번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황수는 황수(黃-), 또는 황하(黃- /潢- )로도 적는데 우리가 아는 그 황하와 구분하기 위해서 삼수 변을 붙여 潢水라 적은 것이다


3. 설명

결국 황수(潢水), 황수(黃水), 한수(漢水), 요락수(饒樂水),요락수(澆洛水),약락수(弱洛水)가 같은 강, 즉 대흥안령 산맥 남서쪽에서 발원해서 수백 키로미터를 동쪽으로 흘러 서요하로 흘러드는 시라무렌강을 달리 표기한 것이다.

이를 몽골어로 Šira Mören(시라무렌), 한자차자표기로 西拉木倫河(서랍목륜하),영문으로 Xilamulunhe, 또는 Xar Moron River라 한다


Sira 는 그 강물의 누런 흙빛을 나타내는 말인데

이를 소리값을 취하여 적은 것이
ㅡ 요락수(饒樂水)
ㅡ 요락수(澆洛水)
ㅡ 약락수(弱洛水)
이며

이를 뜻(물빛의 상태)을 취하여 적은 것이
ㅡ 황수(黃水)이고
이를 황하와 구분하기 위해 달리 표기한 것이
ㅡ 황수(潢水)이며
또 이들의 한자음을 따서 적은 것이
ㅡ 한수(漢水)
인 것이다

이 강의 물빛이 누런 이유는 대흥안령 서쪽의 건조한 지역에서 발원하기 때문에 흙이 섞여 들어서이다.

‘시라’와 우리말 ‘누런’은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흙이 섞인 물의 상태를 우리는 ‘흐리다’라고 표현한다.

거란은 현 적봉시와 파림좌기 사이의 시라무렌강을 사이에 두고 넓게 퍼져서 살았다.

위 신오대사의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는 시라무렌강, 즉 황수와 별개의 강처럼 보이나 “이것(효리개몰리, 즉 그들이 살던 곳)은 황수(黃水)의 남쪽, 황룡(黃龍)의 북쪽을 이르는 것으로 선비(鮮卑)의 옛 땅을 획득한 것”이라는 뒤의 설명은 북위가 북연을 멸망시킨 후 시라무렌강 북쪽, 현 파림좌우기 지역에 있던 거란의 일부가 고구려를 피해 남하해 북위에 복속한 사실에서 온 관용적 기술이다.

즉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는 시라무렌을 달리 적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본인의 판단이다

몰리는 물(강)이므로 무렌과 통하고
효리개는 시라와 같은 말이라고 본인은 본다.

즉 효리개는 ‘흐리다/흐린 곳’을 뜻하여 우리말과 그 어원을 같이 하는 말인 것이다.

ㅎ과 ㅅ은 서로 쉽게 전이되는 소리값이다. 고대로 오를 수록 중성, 즉 모음의 소리값은 부정형(불확정형/가변형)이었음을 상기할 때에

시라는 히라 ㅡ ㅅ(ㅎ)ㆍㄹㆍ +  ㅁㆍㄹ
흐리(다)는 ㅎㆍㄹㆍ +  ㅁㆍㄹ

그리고 시라무렌과 효라개몰리(梟羅箇沒里)



B. 로합하(老哈河)의 경우


1.북먀리몰리(北乜裡沒里)와 도외새몰리(陶猥思沒里)

本其風物,地有二水。曰北乜裡沒里,複名陶猥思沒里者,是其一也,其源流出自中京西馬盂山,東北流,華言所謂土河是也。曰裊羅個沒里,複名女古沒里者,又其一也,源出饒州西南平地松林,直東流,華言所謂潢河是也。至木葉山,合流為一。
《契丹國志 序》

본래 그(거란의) 풍물(자연환경)에 (그 사는) 땅에 강이 2 개가 있다.

하나는
북먀리(배먀리/북먀이)몰리인데 다른 말로 도외사(요외새/도외새/요외사)몰리라고도 하며 그 물은 중경 서쪽 마우산(본인은 마수산으로 추정)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흐르는데 중국(인들)이 일컫는 토하(土河)가 이 강이다.

다른 또 하나는
요나개(요라개/뇨라개/뇨나개)몰리로 다른 말로 여고(녀고)몰리라고도 하며 그 물은 요주 서남쪽 평지송림(대흥안령 남단 남서쪽, 연산산맥 북단 서북쪽의, 경상남북도 넓이에 필적하는 넓이의 고평원 지대)에서 발원하여 곧장 동쪽으로 흐르니 중국에서 일컫는 황하(潢河 : 시라무렌강)가 이 강이다. 이 두 강은 목엽산을 이르러 합쳐져 하나가 된다.


2. 설명

평지송림(平地松林)에서 발원하는 요나개몰리는 기록에서 직접 설명하였듯이

황하(潢河), 즉 오늘날의 시라무렌강이다.

북먀리몰리, 또는 도외새몰리라 하는 이 강은 동북쪽으로 흐르는 강이자 목엽산 근처에서 시라무렌강과 합수해 서요하로 들어가는 강으로

오늘날의 로합하이다.

그런데 우리 옛말에서 북(北)쪽을 되(뒤/ㄷㆍ)라고 했다. 

북쪽 오랑캐를 ‘되놈’이라 했고,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된바람’이라 했으며,
북동풍을 역시 동쪽을 뜻하는 ‘새(쇠/시/ㅅㆍ)’를 붙여 ‘되새바람’이라고 했다.

북먀리몰리와 도외새몰리는 같은 강을 달리 적고 부른 것인데

‘몰리(沒里)’는 몽골어의 ‘무렌/무룬’, 우리말의 ‘물’, 왜어의 ‘미즈’와 마찬가지로 물을 뜻함으로 제하고

북먀리와 도외새가 같다는 분석이 성립하는데 그 표기자를 보자면

北乜裡 = 陶猥思

北乜裡
북먀리/북먀이/배먀리/배먀이

陶猥思
도외사/도외새/요외사/요외새

이다.

북동쪽으로 흐르는 긴 강이 매우 드문 사례임을 상기하여 이 강의 이름이 그 흐르는 방향을 일컫는 것에서 왔다고 가정할 시에


이는 다시
ㅡ 북먀리/북먀이

ㅡ 도외사/도외새

추려지는데

결국
북먀리( -이) = 도외사( -새)
이므로

이 두 말은 같은 뜻을 지녔다는 판단은 성립한다.

北乜裡 = 陶猥思

北乜裡는 北쪽을 뜻하는 北과 거란어로 추정되는 먀리(먀이乜裡)가 겹한한 합성어(훈차 + 음차)이고

 陶猥思는 음차자로서 북쪽, 또는 북동쪽을 가리킴에
도외사, 또는 도외새는
되사, 또는 되새로 말을 새길 수 있는데

이는 우리 옛말 그대로 북동쪽을 뜻하는 ‘되새- ’와 그대로 통하는, 동일어인 것이다.



C. 거란어와 우리 옛말

거란어는 이미 사어로서 학자들은 몽골어와 유사하되 말갈/여진족 등의 어족과 어휘를 일부 공유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거란어(契丹語)
<국어국문학자료사전>
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694866&cid=60533&categoryId=60533

한편 거란의 순수 인구는 사서 등을 토대할 때에 수만 명 정도로서, 대략 3만 명에서 5만 명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이는 사서 기록이 성인 남성만을 기준으로 했다고 볼 수도 있으므로 이를 채택할 시에 전체 인구는 10 만 명 내외였다 추산할 수 있다.

북위와 수에 이르는 시대에 1만여 호가 중원왕조에 신속하였다가 다시 1만여 호가 고구려로 가 신속했던 사실 기록으로 볼 때에도 1호(가구) 당 5인~7인임을 감안하면 5만 ~ 7만으로 추산되고. 이들이 거란 인구의 총체라 보기 어려우므로

10 만 내외가 합당하다 판단한다.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신오대사를 편찬할 당시의 11세기로 볼 적에

요사를 근거하면

거란 상경도와 중경도 주현을 구성하는 인구의 상당수가 발해인이었으므로

거란의 언어에 발해, 즉 우리 고대어가 섞여들었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

'거란국지'는 1180 년에 남송의 섭융례가 편찬한 것이다.



D. 이 고찰의 경위

수당의 영주와 고구려 서계를 추적하면서 거란 관련 사서 기록을 모두 찾아 읽고, 또 분석하던 차에 우리말과 유사한 거란어를 몇 번 마주하게 되었다.

이에 그 이정표로서 이 글을 쓴다.

본인은 로합하를 참류수로 보고 있다.

1)전한 요서군 유성현

栁城, 馬首山在西南. 參栁水北入海. 西部都尉治.

유성현(柳城縣), 마수산(馬首山)이 현의 서남쪽에 있다. 참류수(參栁水)가 북쪽으로 海로 들어간다. 서부도위(西部都尉)가 다스린다.

<한서 지리지 유주 요서군>


2) 거란 중경

歸化縣. 本漢柳城縣地.

귀화현(중경 직속현 9 개 중의 한 곳), 본래 전한(漢)의 유성현(柳城縣) 땅이다.

<요사 지리지 중경도>

3) 마우산

曰北乜裡沒里,複名陶猥思沒里者,是其一也,其源流出自中京西馬盂山,東北流,華言所謂土河是也。

북먀리(도외새)몰리가 (즉 오늘날의 로합하가) 중경 서쪽 마우산에서 발원하여 동북쪽으로 흐르는데 중국(인들)이 일컫는 토하(土河)가 이 강이다.

<거란국지 서문>

본인은 마우산을 마수산으로 보고 있다.


4) 로수와 현수

盧水,一名大沮水,今名小濡水,北自營州柳城縣界流入,《水經注》云:「玄水出肥如縣北,一名玄子溪。」

로수는 일명 대저수로 지금은 소유수라 하는데 북쪽의 영주 유성현계로부터 (노룡현으로) 유입한다. 수경주에서 말하기를 현수는 비여현 북쪽 일명 현자계에서 나온다고 했다.

<태평환우기 평주 북평군 노룡현>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77011&page=0&sca=&sfl=mb_id%2C1&stx=cellmate&page=0

감방친구 18-11-30 10:50
신비루 18-11-30 10:51
어렵네요.
리루 18-11-30 10:58
흰 것은 웹페이지요 까만 것은 컨텐츤데 분명...
감방친구 18-11-30 11:01
아니~ 이런 반응을 예상했던 게 아닌데 ㅠㅠ
지난 번에 잡게에 어원 관련 글 쓰니까 반응이 좋길래 쫌 기대했는데

반응은 그때그때 다른 건가요? ;;
감방친구 18-11-30 11:03
아무튼 이런 거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들이라도 잘 보고 가세요
기성용닷… 18-11-30 11:18
와... 정말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발란세 18-11-30 11:38
존경스럽습니다. (__ )
바늘구멍 18-11-30 11:50
거란,선비,말갈 등 뭐라 불렸던 간에 특정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무리를 일컷는 말에는 분명 어떤 뜻이 있었을겁니다.
고구려,발해 등 지역적으로  일부 겹치거나 왕내가 자유로운 거리에 있는 것은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결합되었을거라 합리적 추측합니다.
고로 우리 한 민족을 이루는 다수의 부족,종족 들 중에 반드시 5-10 의 부족 , 종독들이 서로 섞였을겁니다.
ㅅㅏ실 만리장성 오른 쪽은 우리 한 민족을 구성하는 인자들이 대부분이라고 봅니다.
바늘구멍 18-11-30 11:50
감방친구 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지도 부탁드립니다.
감방친구 18-11-30 12:05
저는 동호와 부여가 본래 하가점 상층문화의 주역이었다고 봅니다

이들이 흉노로 인해 별리되어서 하나는 선비가 되고 만주로 이동한 게 부여라고 봅니다

부여가 만주의 진한(진조선/신한/신조선/애신조선)을 밀어내고 신한을 자처하였고

이 신한이 밀려 내려와 지금의 요심지역에 있다가(요사 지리지) 위만에 의한 남아있던 변한(불한/불조선/변조선/발조선)의 역성혁명과 그 세력 확장으로 마한지역으로 유입

이게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조선유민', 진한유민의 그 진한이 되었고

부여는 애초 변한, 즉 변조선에서 왔으므로 불/밝을 국호로 삼음과 동시에 만주의 신한 자리를 차지했으므로 스스로 예(쇠/애신ㅡ광명, 해라는 뜻)왕을 자처

마한도 변한과 진한 유민을 받아들였으므로 3조선의 적통을 이었다 하여 진왕(=예왕)을 자처

동아게에 몇 번 쓴 게 있는데
지금 밥 먹고 일을 해야 해서 이 정도로 씁니다
이해해주세요
바늘구멍 18-12-01 03:10
감방친구  님의  심도  깊은  연구  자료를  널리  활용하겠습니다.
너무나도  감사드립니다.
Attender 18-11-30 12:13
감방친구님,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사랑합니다 ♥
사르트카 18-11-30 12:28
동호족이고조선이라는 학설도있던데요...맞는주장일까요? 그리고거란족과만주족은
원래는 우리민족의 일파였다가 나중에 한민족의일원에서 덜어져나간것이아닐까라는
생각도드는데....어떻게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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