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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7일 (토)

중국은 한국의 식민지였다??

가을연가 조회 : 2,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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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16&aid=0001782771


“중국은 한국의 식민지였다?” 묻지마 ‘국뽕’ 유튜버 때아닌 폭발적 호응


국뽕 콘텐츠로 자문화 자긍심을 높인다는 반응도 있으나, 지나친 확대해석과 과장으로 국격을 오히려 떨어트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너굴맨1 21-01-23 17:52
와 오랜만에 왔는데 이형 아직도 이러고있네ㅉㅉㅉ
모르겠수 21-01-23 17:53
중국은 역사가 70년뿐인디요
이름귀찮… 21-01-23 17:53
어그로 관종 게시물
당진사람 21-01-23 17:55
주변국이 또라이인데 우리도 또라이가 되어야지 ~
booms 21-01-23 17:57
뭐 아직도 단오니 공자니 한국꺼라고 주장해대니

그에 호흥해주는 놈도 나올만도 하지 ㅋㅋㅋ
Dionysos 21-01-23 18:01
우리나라 대한민국해봐~
역번역 각보는 Three Meals.
태양속으… 21-01-23 18:02
중국의 주장과 중국의 역사적 사실들을  나열해 봅시다.

고구려는 중국의 역사 또는 영토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함 써보자)
최초의 중국 통일 국가는 진나라다. (그러나, 고구려가 건재해 있었다. 즉, 중국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두 주장 중 하나는 포기해야 앞뒤가 맞는다. 그래도 함 써보자)

진나라는 이민족 수나라에 망했다.
수나라는 고구려에 망했다.
즉, 중국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인다면 중국을 구한 것은 고구려가 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구려는 언어와 문화를 한반도에 뿌리는 둔 국가이며
한국의 원조가 되는 국가라는 것은 확실하다.

일부 중국의 주장과 역사적 사실을 섞어서 본다면,
중국은 한국의 구원으로 살아난 것이며,
따라서, 중국은 한국의 영토이거나 또는 식민지가 맞다.
다만 지금은 한족의 거짓 탈을 쓴 이민족들이 일시적으로 점거하고 있을 뿐이다.

이 인간 일뽕인데, 일본이 한국의 영토였다는 사진을 왜 가져온거지.....뭐지?
앞 분 말씀대로 역번역 할려는 것 같습니다.
너도 참 돈벌이 힘들게 한다.
이궁놀레… 21-01-23 18:02
고대사는 자료가 많지가 않아서.

광개토 대왕릉비도 한,중.일 해석이 조금씩 다르다던데요
확대해석 하는 사람도 있어야죠 ㅋ
바나냐 21-01-23 18:04
환뽕들은 불치병이던데 건드리면 안됩니다
검은마음 21-01-23 18:08
그래도 일뽕보단 환뽕이 조금은 낫습니다.
과부 21-01-23 18:11
얼마전만해도 이런 얘기하면 또 쓸데없는 국뽕 비난나왔는데 지금 보니 신선하네요.
우리도 이런 주장이 나오는게 정상이죠.
대마도 얘기도 나올때 되었는데 그건 언제쯤 나오려나.
워해머 21-01-23 18:16
모든 뽕은 다 극혐.
계엄하자 21-01-23 18:24
일뽕이 한뽕가지고 중뽕일 까네  싱기방기
칼까마귀 21-01-23 18:24
남북조 시절이네요.
스타 21-01-23 18:33
6시 넘었다

자라
굿잡스 21-01-23 18:35
단체로 환뽕에 빠진 불치의 짱개국 사서 ㅋ

진나라 시대, 구려가 앞서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晉世 句驪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ㅡ《양서》 54권 동이열전 백제


진나라 시대, 구려가 앞서 요동을 경략하여 차지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의 땅을 점거하여 차지하고 스스로 백제군을 설치하였다.

晉世 句麗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ㅡ《남사》 79권 동이열전 백제


위나라가 병사를 보내 백제를 공격했지만, 백제에게 패배하였다.

魏遣兵擊百濟, 爲百濟所敗. 陳壽曰: 三韓凡七十八國, 百濟其一也. 據李延壽 史, 其先以百家濟海, 後浸强盛以立國, 故曰百濟. 晉世 句麗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

ㅡ자치통감 권136


이해 위나라 오랑캐가 다시 기병 수십만을 보내어 백제를 쳐서 그 경계에 들어가니, 모대가 장수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를 보내어 무리를 거느리고 오랑캐 군대를 습격하여 크게 깨뜨렸다.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牟大遣將沙法名贊首流解禮昆木干那率衆襲擊虜軍 大破之

ㅡ남제서 58권 동남이열전 백제



건무 2년에 모대가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말하기를……지난 경오년에는 험윤이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깊숙히 쳐들어 왔습니다. 신이 사법명 등을 보내어 군사를 거느리고 거꾸로 쳐서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니, 흉리가 당황하여 마치 바닷물이 들끓듯 붕괴되었습니다.

建武二年 牟大遣使上表曰……去庚午年 獫狁弗悛 擧兵深逼 臣遣沙法名等領軍逆討 宵襲霆擊 匈梨張惶 崩若海蕩

ㅡ남제서 58권 동남이열전 백제
텅빈하늘 21-01-23 18:44
아따, 근사하네~
굿잡스 21-01-23 18:45
해양대국 백제의 요서 산둥 경략은 우리 교과서에서도

이전부터 다루던 바

그리고 마냥 무시 할 수 없는게 정작 짱국 여러 사서에 백제와 남제 연합의 북조 북위와의 전쟁이나 여러 기록들이 지속적으로 엄연히 등장.

여기에 서토는 수시로 여러 왕조와 이민족의 각축장으로 흥망성쇄가 왔다갔다 하다보니 여러 변수와 세력 공백지대등

백제의 이런 서토 관련 진출이나 지배 경략 거점설등 여러 성격의 설들이 난무하나 어떤식의 발판이 있었다는걸 완전 부정하기는 힘들군요(이후 신라방도 이런 이전 백제 거점 활용 어쩌고나 당시 시대상이 근세 조선과는 달리 그만큼 직접적  빈번한 진출 왕래가 있었다는 반증등)


칠지도 : 백제(Baekje) 어라하((Eolaha)=Emperor)가 제후 왜왕에 하사[(下賜 ; Grant)한 보검.


<앞> 泰○四年 ○月十六日 丙午正陽 造百鍊[銅] 七支刀 生辟百兵 宜供供侯王○○○○作
태○사년 ○월십육일 병오정양 조백련[동] 칠지도 생벽백병 의공공후왕○○○○작

<뒤>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濟王世○ 奇生聖音 故爲倭王旨造 傳示後世
선세이래 미유차도 백제왕세○ 기생성음 고위왜왕지련 전시후세

(국립부여박물관 전시 내용)

태화 4년 5월 16일 병오일의 한낮에 백 번이나 단련한 철로 된 칠지도를 ○○○○가 만들었다. 온갖 적병을 물리칠 수 있으니 제후국의 왕(侯王)에게 주기에 알맞다. 지금까지 이런 칼이 없었는데 백제 왕세자 기생성음이 일부러 왜왕을 위하여 정교하게 만들었으니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

“이나리야마”에 새겨진 백제의 열도 지배

이두로 이 글을 다시 풀어보니 놀랍게도 이것은 고구려가 남침한 369년 당시 백제 땅이던 하동에서 후왕으로 있던 장수 집안이 동경까지 망명온 뒤 이곳에서 다시 백제 후왕으로 책봉된 내용을 담은 집안 이야기 였던 것이다.
 
이두로 풀이한 칼 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기 471년에 “고” 확고는 조상이름을 적어 둔다. “오호 비꼬”어르신, 그 아들 “다가리 쪽니”어르신, 그 아들 “고리 확고”, 그 아들 “다사기 확고”. 그 아들 “바라 고비”, 그 아들 “가사 비리”, 그리고 그 아들은 “고 확고”이다. 오늘날까지 우리는 장수로서 대대로 섬긴바 그 임금님은 사기궁에 마실을 차리고 천하를 다스리시는 크신 확가 개로 대왕이시니라. 온 번 불리고 달구어 만든 이 칼에 우리 집안 내력과 뿌리를 적어두는 바이다

...................


이렇듯이 이나리야마 쇠칼의 글은 5세기 가운데 즈음에 옛 일본의 관동, 관서, 규슈 등 세 곳에 백제가 다무로를 다스리고 있었으며, 왜 왕실은 백제 왕실에서 갈라져 나왔음을 밝혀주는 귀중한 역사자료인 것이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39110&sca=


USA 캘리포니아 대학.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discover誌“1998년 6월호「일본인의 뿌리」         

”고대 한국인의 선조가 일본의 원주민인 조몬인.아이누족을 정복하므로서 일본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켰다.”
moim 21-01-23 19:15
식민지랑 맨날 전쟁하냐?
바나냐 21-01-23 19:16
헐 위에 환뽕있네... 진짜 존재하고 활동하고 있구나 소름..
굿잡스 21-01-23 19:28
??ㅋ

반박할 수준도 못되는 주제에
어그로 토왜 똥퍼유랑 위안부 관련 무식한 소리나 쳐하는 수준이니 알만하군 ㅋ(대만 관련해서도 ㅂㄷㅂㄷ 잡소리나 쳐하더만 쯧)

똥퍼유 이슈게에서 정지 먹더만 주거니 받거니 헛소리 시전하던 다중 아디로 잡게질인감? ㅋ


허접 잡소리는

본인 나라 본인 일기장에나 할것.


바나냐 21-01-18 19:12

답변

솔직히 위안부합의는 공식합의라고 인정할거면 왜 100억 안받았는지... 그거 무르고 강제로 12억 받겠다고 이리 싸우는지 모르겠네요 결국 12억 받아도 사과는 못받는거 아닙니까?

 밀푀유 21-01-18 19:16

답변

그러니까요?
다 뒤집을 것 처럼 난리를 치더니
왜 이제와서 공식합의는 맞고 인정해야 된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이런 말을 하다니.....

바나냐 21-01-18 19:21

답변

펙트로 따져보면 박그네는 "일본정부"로부터 100억을 받아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회사"로 부터 12억 받아내려고 쌩고생하는걸로 밖게 안보이네요 물론 과정은 안그랬겠지만 머 어쩌겠어요 우리가 평가하는건 결론인데 180석 차지하고 야당이 방해했다 이런건 정말 말이 안됩니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commu06&wr_id=1331710#c_1331714
굿잡스 21-01-23 19:21
서토 북조사를 연 북위도

고구려의 준식민지급이라 말해도 할 말 없던 것이

북위가 고구려와 동맹 강화를 위해 당시 고구려 귀족 가문과 혼인을 하는데 이 문소황후의 아들이 8대 북위 선무제로 등극하군요.

이후 지지 기반이 약했던 고구려계 선무제는

자신의 외삼촌인 고조와 고현을 불러 들이고 아예 고구려인만 따로 추대하는 고려국대중정(高麗國大中正)이라는 벼슬까지 만들어 북위 조정내에 고구려파벌 붕당을 만들어 장악해버림.


북위의 권력을 쥔 고구려인    

http://blog.naver.com/csred7/80130397982������


(이때문에 고(구)려(KOREA)의 장수태왕이나 문자명태왕이 서거를 하면 북위의 황제나 최고 권력자가 애도를 거행하는 기록들이 그래서 나오게 되는 역사적 배경)


겨울 12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그때 그의 나이는 98세였다. 임금의 호를 장수왕(長壽王)이라 하였다. 위나라의 효문(孝文)이 이 소식을 듣고, 흰색의 위모관(委貌冠)과 베로 만든 심의(深衣)를 지어 입고 동쪽 교외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하였다. 
  
七十九年 夏五月 遣使入魏朝貢 秋九月 遣使入魏朝貢 冬十二月 王薨 年九十八歲 號長壽王 魏孝文聞之 制素委貌布深衣 擧哀於東郊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장수왕 79년(서기 491) 


28년(서기 519), 임금이 돌아가셨다. 호를 문자명왕(文咨明王)이라 하였다. 위나라의 영태후(靈太后)가 동당(東堂)에서 애도의 의식을 거행했다. 
  
二十八年 王薨 號爲文咨明王 魏靈太后擧哀於東堂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문자명왕 28년(서기 519)
바나냐 21-01-23 19:33
으 제글에 무슨 문제라도?있나요? 으 환뽕이랑 말섞기도 싫어요 이제 서로 모른척하죠 욕하던지 환뽕들모아서 마녀사냥 하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굿잡스 21-01-23 19:36
하긴

토왜 어그로들은

할 줄 아는게 ㅂㄷㅂㄷ 뿐. ㅋ
버벅이010 21-01-24 02:10
잡스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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