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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9일 (월)

더 킹 오프닝의 열도 동대사의 당파풍이 왜색?? 실상은?.JPG

굿잡스 조회 :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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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더 킹에서 오프닝으로 나온 열도의 동대사를 두고 왜색 어쩌고 논란이 있어
한 글 올리군요.

현존 즉 실제 복원된 최대 목조 건축물이 열도에 있는 동대사라는 절인데
이 동대사는 8세기 우리나라 할때 나라시대에 건립되었다 이후 두번의 소실을 통해
가마쿠라시대와 에도시대에 거듭 복원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일반 분들이 저기 보이는 동대사의 곡선형 모양을 보고
(정식 명칭은 당파풍(唐破風))
왜색적인 쨉의 고유 문양이라고 착각을 하는데 이건 이름에서 보듯 서토의 당,송시절 유행하던
짱국풍이군요.

도리어 동대사의 저 중심 최대 목조 건축물인 대불전을 만들 에도시대에
지금의 오키나와 당시 류큐왕국의 수리성등에서 유행하던 짱개풍을 가져와
이부분을 가미하면서 상당한 욕을 먹던 양식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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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8세기 나라시대에 세워졌던 동대사 원형 모형.

동대사 크기는 높이 48m, 가로 57m, 세로 50m라오. 안의 대불은 15미터  보다
훨씬 컸던 규모입니다.

동대사 창건의 기술자들은 다름 아닌

고구려 고려복신(高麗福信) 총지휘.

대불- 백제의 국공마려(國公麻呂) 주조

대불전 금당 -신라의 저명부백세(猪名部百世) 건축.

동대사를 대화엄사라고도 하는데 일본 화엄시조가 신라의 심상스님(이분이 그 유명한 원효대사의 제자로 초청되어 직접 설파)

동대사- 한마디로 우리 한국인 선조(고,백,신)의 합작품으로 탄생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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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시대 동대사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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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8세기 세계 4대 대도시의 위용을 가진 신라 서라벌의 일부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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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인도의 타지마할의 기단 크기 94m, 건물 크기 57m 

아래는 해동성국으로 불린 남북국 시대
우리 발해의 상경용천부 제2궁전 기단 크기 120m, 건물 크기 93.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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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세기에 세워지고 확장된 당나라의 최대궁전인 대명궁의 정전인 함원전의
 
정면 길이가 67.33m
 
북경  자금성에서 가장 큰 건물 태화전 정면 6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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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의 5경중 하나인 상경용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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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구려의  5세기
 
<평양의 안학궁 남삼문(南三門) 중 남중문(南中門) 38m 앞면 7칸

안학궁 남궁 1궁전(정전) 62m 앞면 11칸

안학궁 중궁 1궁전(편전) 87m.  앞면 19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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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복궁의 근정전과 삼국시대 평양의 고구려 안학궁 궁전.

굿잡스 20-04-27 22:21
현존 세계 최고 '最古' 일본기업, 뿌리는 '백제'

사찰 건축 전문 '곤고구미'의 1천441년 역사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어에 '구다라나이'(下らない)라는 단어가 있다. 하찮거나 시시하다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이 말의 어원은 한반도 삼국시대의 한축을 이루던 '백제'다. 백제를 일본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구다라(くだら)라고 부르는데, '구다라나이'는 결국 '백제답지 않다'는 뜻인 셈이다.

'백제답지 않은 것'이 하찮다는 뜻으로 발전할 정도로 일본 사람들이 백제를 높게 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이 고대 국가의 기틀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백제인의 기여가 컸던 것이다.

이는 여러 분야에서 역사적 사실로 남아있는데, 그중 하나가 건축이다.

일본의 고도(古都) 오사카 중부 사카이(堺)시에는 불교사찰과 신사(神社) 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곤고구미(金鋼組) 간사이(關西) 가공센터가 있다.

https://news.v.daum.net/v/20190323073104162?rcmd=rn



우리나라 할때 열도의 나라 헤이안 시대를 극소수 귀족시대라고 부릅니다(우리의 귀족시대와는

그 향유 계층의 폭이 상당히 얕은게 특징)

그 당시에 왕성내 문화와 기술력을 향유, 이해할 수준의 문명인은 우리 한국인 일부 도래인 선조 이외에는 논 할 가치도 없을 만큼 주변 열도 토인들은 미개.

이렇다보니 무슨 이집트의 파라오 마냥 천황이니 모니 광오한  신적 어쩌고 이게 나머지 미개인들에게 딱 먹히기 쉽고 집권하기 딱 좋은 정치 방식이였군요(천황이니 이게 당시 열도가 잘나서라기 보다는 그만큼 열도의
문명수준과 사회상이 동북아에서 상당히 낙후되어 있던 단계임을 반증)

21세기 아베도 쨉의 우매한 신민들 상대로 조삼모사식 개돼지 취급하는게 다 역사를 보면 이후 막부 전국 에도고 전범시절 천황제고 그 연원의 종특적 흐름이 역사의  관성처럼 그리고 갈라파고스화된 섬 기질과 맞물려 지속되어온 속성이군요.
굿잡스 20-04-27 22:23
남북국시대 발해 이후 등장하는 북방의 패자 거란의 요나 

이후 발해후예 부흥국 세력과 신라계 황제 결합의 대금등이 

우리쪽 고구려나 신라등과 지속 언급 얽혀 있는 것도 
(실위 후대 몽골등도 고구려 휘하 부용세력) 

유럽으로 치면 천년 로마제국의 역사와 영향력에 바탕한 주변 봉신 부족 세력들이 이후 국가를 세워도(부족 개념이던 폴란드의 본격 왕국개념의 틀이 되는 피아스트 왕조도 10세기에서야 등장) 그 역사의 직간접적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처럼 

이들 동북방의 거란, 말갈(여진)등과 열도의 왜 역시
수천년 동방문명권을 구축 군림해온
우리 고조선 고구려문명권의 영향력 때문임을
우리 역사에 대해 스스로 자각할 필요가 새삼 있군요.

고구려의 토대가 되는 초기 토착재지 5부는 이후 신성한 태왕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을 점하며 천하를 지배하는 5부 행정  대도시 문명으로 발전 이후

 발해 5경과 신라 5소경에 이런 발해의 5경 체계는 다시 북방의 패자가 되는 요의 5경 체계로 금  역시 고구려계 국무총리가 송을 멸망시키고 북경에 중도 건설을 총지휘. 이후 쿠빌라이는 이런 요,금이 닦아놓은 강북을 기반으로 몽골 내부 분열시기에 물자를 통제하면서 대칸에 오를 수 있는 실질적 힘이 되군요.(이를 바탕으로 남송 정벌)
굿잡스 20-04-27 22:24
고구려 VS 수나라 ㅡ 동아시아의 세계대전급 전쟁사.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commu&wr_id=1553119&sca=&sfl=wr_subject%7C%7Cwr


왜 여직(진)발해본동일가(女直渤海本同一家)라고 했을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8992&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95%9C%EA%B7%9C%EC%B2%A0&sop=and

금나라 황실 조정내의 고구려계(발해인) 파워   

http://blog.naver.com/knightblack/10106493129

금나라 황릉의 모델은 고려 황릉(왕릉)이었다.’ 12세기 북중국을 장악했던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 황릉이 고려 황릉과 형제처럼 꼭 닮았다는 비교 연구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금 태조 완안아골타(1068∼1123)가 10세기에 건국한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불렀던 것을 감안하면, 당대 사회적 문화적 역량을 총집결시켰던 국책사업인 황릉 조성을 한반도에서 벤치마킹했던 것이다     
       
장경희 한서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최근 학술지 ‘동방학’에 게재한 논문 ‘12세기 고려·북송·금 황제릉의 비교 연구’에서 “고려와 금 황릉은 양식적으로 매우 유사하며 같은 시기 북송 황릉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http://news.donga.com/3/all/20140313/61666261/1

女真酋長乃新羅人 (송막기문- 남송기록)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이다")     
"其初酋長本新羅人" (몽골  금지(金志))     
(여진의  초기지도자는 신라인이다.)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금사 (金史))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에서왔을 때  60세였다.)     


  "만주족은 신라로부터 나와..."     
  因滿族自新羅、     
  "신라성씨 김(金)이 금(金)나라의 원류이다."     
  新羅王金姓則金之遠派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로부터 왔다."     
  金之始祖諱哈富(舊作函普)初從髙麗來     

-청황제 칙령의 만주원류고 중
아발란세 20-04-27 22:27
크~ 자료 감사합니당~
촐라롱콘 20-04-27 22:37
위 이미지에 보이는 동대사 대불전은 에도시기에 마지막으로 복원될 당시에

이전보다 2/3 규모로 축소되어 복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준으로 자금성 태화전보다도 규모가 더 큰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목조건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촐라롱콘 20-04-27 22:46
[[동대사 창건의 기술자들은 다름 아닌
고구려 고려복신(高麗福信) 총지휘.
대불- 백제의 국공마려(國公麻呂) 주조
대불전 금당 -신라의 저명부백세(猪名部百世) 건축]].......????
.
.
동대사가 처음 창건된 시기는 745년으로 백제, 고구려가 멸망한지

70~8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나던 시점인데... 고려복신, 국공마려, 저명부백세를

고구려, 백제, 신라인으로 언급한 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로 표기하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이라 봅니다~~~

또한 저 인물들의 조상들은 비록 삼국출신이라 하더라도

당사자들은 엄연히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할 것입니다....!!!
굿잡스 20-04-27 22:50
하니하라 가주로(埴原和郞) ... 나라시대(奈良時代- 제50대 칸무(桓武) 왕이 784년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기 이전)까지도 한복을 입고 한국음식을 먹었으며 심지어는 한국말까지 사용했는데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 만엽집(万葉集) 등에 아직 조작되지 않은 부분은 한국어의 한국식 한자용어가 남아있다”고 말해 전체적으로 일본고사기들이 조작되었음을 밝혔다. 


일본에는 8세기 초에 간행된 4가지 고전이 있다.   

고대사 책인 일본서기(日本書紀), 고사기(古事記), 풍토기(風土記), 만엽집(萬葉集)이 있다.   

8세기에 편찬된 이들 책들은 7세기 요동치는 한국의 정세판도에 따라   

가야계, 백제계, 신라계, 고구려계의 황족, 귀족 등   

엘리트 집단들이 대거 신천지 열도로 건너가   

서로 정권을 다투는 우리 한국인들끼리의 피 튀기는 정권 각축전을 담은 역사책이다.   

http://cafe.daum.net/sisa-1/f8lD/714?q=%B8%B8%BF%B1%C1%FD



"일본 가타카나 기원은 신라 향찰·이두" 

히로시마대 교수 

http://blog.daum.net/damule/8881879

남북국시대에도 동북아에서

왜의 대신라견문은 가장 빈번에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천년 신국 신라의 문화 정치적 영향력 아래 관계 유지.
뚜리뚜바 20-04-27 22:40
와;;;  굿잡스님 이거 블로그에 좀 퍼날라도 되겠습니까; 사람들 인식바꾸는데 일조좀 하고 싶은데 ㅜ.ㅠ
넘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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