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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18일 (목)

고구려 VS 수나라 그리고 베트남.

굿잡스 조회 : 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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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백제는 전성시에 강병이 100만이고 남으로는 오(吳), 월(越)의 나라를   
침입하였고, 북으로는 유주,연,제,노나라를 휘어잡아 중국의 커다란 위협이 되었다.   
수(隨) 왕조의 멸망도 요동 정벌에 의한 것입니다."   

高麗百濟 全盛之時 强兵百萬 南侵吳越 北撓幽燕齊魯 爲中國巨 隋皇失馭 由於征遼   

-삼국사기 <최치원전>


'요동에서 헛되이 죽지 않으리(无向辽东浪死歌)'

http://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commu&wr_id=190581


사람들이 통일왕조 수나라가 고구려와의 거듭된 4차의 세계대전급 전쟁에 패하면서

결국 멸망하다보니 언뜻 허약한 왕조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수나라는 남조 까지 단숨에 멸망시켜 버리면서

선비족의 기병 전투력과 서토 하한족을 노예로 한 풍부한 토지등 물량빨까지 얻으면서 거의

오늘날로 치면

2차 대전 시기 신생 미국 국력급의 서토왕조 역사상 그리고 전근대시기에 세계사적으로도

쇼 미 더 머니가 뭔지를 보여준 왕조군요.


무엇보다 수문제 시대에 단순히 혈통이 아닌 능력 위주의 과거제라는 혁신적 제도를 마련

함으로써 군주의 중앙집권화를 가속화. 이런 실전에 바탕한 전투력과 통치력으로

남으로는 베트남 중부의 임읍국에서 말레이반도로 북으로는 호전적 돌궐까지 제압한

글자 그대로 동아시아 최강대국의 막강한 나라였습니다(보통 서토사는 이런 북방 이민 왕조에서

능력 위주의 유연하고 혁신적 정책들이 많이 나오는 상황)


이런 나라가 동방의 전통적 천자로 군림하고 있던 천년 사직 우리 고구려와의 연이은 대전에서 대패를 거듭 당하면서 결국 멸망하게 되군요.


그리고 사람들이 베트남전을 보고 베트남의 전통적

역사가 상당히 독립적 역사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는데(남월(최초의 베트남 봉건국가) 

100 여년 정도 이어지다 전한 시기에 멸망 복속된 후 5대 10국 시대까지(10세기경)에서야 독립.

이때문에 짱국식 도교 사원과 신앙 역시 민간 신앙으로 자리)


베트남전도 미국과의 전투로 얻은 승리로 단순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데 

사실은 전쟁의 판도는 미국의 거의 물량과 화력에 의한 일방적 펀치 전황이였군요.


북베트콩의 투쟁심도 분명 작용했고 정치적으로 미국내의 반전 유도 여론전과 게릴라전을

바탕으로 지속적 피로감을 주는 등에 당시 오랜 프랑스 식민시절을 지낸 베트콩 일반 주민들

입장에서는 공산세력의 확장을 막고자 참전한 미국의 전쟁 참여가

일종의 또다른 점령군식으로 접근하다 보니 현지 주민들의 민심을

제대로 얻지 못한 부분등 정치적 전략적 부분에서 문제를 드러낸 전쟁이였군요.


결국 미국내에서 반전 여론등으로 인해 미국은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전략적 전쟁에서는 물러날수 밖에 없었던게 당시 베트남전의 양상.






이름귀찮… 20-03-18 23:59
음... 저당시에 강병 100만이라...
수나라가 100만 끌고와서 전쟁할때도 치중대 포함해서 100만인데 흠.......
러키가이 20-03-19 00:05
중국 25사 (이젠 동아시아25사라고 불러야;;;)

에서 즉 중국측 사서에서 나오는 내용;;; 고구려 100만 + 백제 100만 / 단 전성기때;;;

아마도 중국 일부를 차지해서 그랬을거라는 의견들이 있음;;;

국내 서울대 사학파 즉 왜색 사학파들은 인정안해서 현재 보류중임;;;
이름귀찮… 20-03-19 00:08
중국 일부를 차지해요???

수나라가 100만 동원할려고 빡빡 긁어 모아서 털려서 나라가 휘청했는데

일부 차지했다고 고구려/백제가 100만씩 군사 운영할 농업 생산성이 안나오는데 ;;;
이름귀찮… 20-03-19 00:08
300만???

지금은 거의 100만으로 보는걸로 압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숫자도 대부분 0하나는 빼야되요
굿잡스 20-03-19 00:16
링크 정독 바라군요.

 <隋書卷四 帝紀第四 煬帝下>


總一百一十三萬三千八百,號二百萬,其餽運者倍之

 수서 양제하편에 보면 마지막 구절에서 '기궤운자배지'라는 문구는

 이 113만대군 그기에 두배에 이르는 운반 보급부대를 말하는 것임. 즉 이 113만은 따로 보

급부대가 섞인 숫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호이백만이라고 113만을 과장해서 200

만까지 그기에 보급부대의 숫자까지 합쳐 과장해서 400만  과장하지 않고 300만이라고 서

두에서부터 못을 박고 있군요.

실제 수나라의 대대적 침공에 그 군사의 행렬이 수십리에 달할 정도로 기록되어

있군요.

여기에 고대에는 지금같은 20세이상의 일정 나이대 징집이 아니라

20세 이하에서 60세까지.

그리고 당시 특히나 산둥일대의 물적 인적 징발이 극에 다할 정도였군요.(이런 것도

수나라 당시 과거제등을 통해 신생 절정기 강력한 통치력과 중앙집권화의 가속화로

가능)
이름귀찮… 20-03-19 00:21
그정도 대군을 먹일 보급하는게 지금 현대 시스템으로도 쉬운게 아닌데요

중국땅이 아무리 넓어도 저정도 군세를 운영할 생산성이 나온다 치더라도

각지에서 나오는 농업 생산물은 어떻게 수송할건데요?

머 원소 80만 조조의 100만 200만 대군 그런걸 진짜라고 믿는건 아니시조?

수나라 100만 이후로 머 그런 군세를 앞뒤로 몇차례씩 중국이 운영한 역사가 있었다면

님 의견이 신빙성 있겠조 하물며 중국도 저 100만 이후로 한번에 그렇게 많은 군대를 모으기 까지 역사가 많이 지나서 가능했어요
굿잡스 20-03-19 00:23
내용 정독.

결국 수나라의 가장 큰 강점이 막강한 물량빨의 대군이였지만

또한 가장 큰 약점이 님이 말한

이런 보급 문제로 인해 대패를 당한 것임.(제대로된 고수 전쟁에 대한 사전 기초가

없는 듯 하군요. 그리고 올려준 내용도 차분한 정독도 없이 계속된 질문만)
이름귀찮… 20-03-19 00:28
그냥 글자에 써있다고 그대로 곧이 믿는게 황당하다는겁니다

그당시 농업 생산력이랄지 그런걸 봐야지 님이 주장하는대 중국의 그당시 경제가

그런식으로 추가 생산물이 많았다면 그 이후에도 님이 말씀하신 숫자의 병력 싸움이 빈번했어야 정상이에요 머 영혼의 한타 싸움도 아니고 딱 그시기에만 그 정도 병력을 모은다??
굿잡스 20-03-19 00:32
고구려 영양태왕은 수나라가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이런 정보가 지속적으로 전해지자

주변 돌궐등과는 달리 도리어 먼저 요서 임유관의 보급기지를 선제 타격

이때문에 수나라의 보급로는 상당히 길어지게 됨.

그리고 이후 요동성 방어에서 고구려가 지속적으로 성공하면서 수나라가 고구려

밀집 방어벽에 막히고 뒤쪽으로도 고구려가 우회 보급 공격이 가해지자 수나라의

보급 상태는 더욱 엉망이 되었고 그 유명한 을지문덕 장군이 직접 수나라

전세를  파악하고 돌아가는 길에 여수우중문이라는 유명한 시를 남기며

무리하고 다급해진 수나라는 30만의 전투 별동대를 내지로 깊숙히 전진 시키다

결국 살수대첩에서 대패를 당하게 되는게 2차 고수전쟁이군요.

그리고 구체적인 수나라 군사 편제의 기록이나 여러 정황등


본인이 그에 대한 반론을 하려면 나름의 근거를 가져 와서 해야 토론이 가능하겠군요.

그리고 송나라 역시 비록 북방 요, 금, 몽에 돌아가면서 따구리를 당하는 신세였지만

군사수는 수나라 못지 않는 상비 예비병력을 운용한 예가 있음.
굿잡스 20-03-19 00:22
http://mlbpark.donga.com/mlbpark/b.php?&b=bullpen2&id=259930

삼국지 시절 실제 영토.

이당시는 통일 왕조도 제대로된 중앙집권적 제도 마련도 되지 않았고

삼국으로 나뉘는 전란과 혼란의 시대다 보니 제대로된 인구 조사나 안정적 부양력이

되지 않는 시절로 통일 왕조 수나라와는 질적 양적 부분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군요.
이름귀찮… 20-03-19 00:25
한나라 이후인데 제대로된 중앙집권적 제도가 없다는건 억측이구요

중국의 삼국 시대때도 군대를 운용하기 가장 힘들었던 이유중에 하나가 보급이에요

군사만 뽑아놓는다고 군인들이 풀을 먹고 사는게 아니잖아요
굿잡스 20-03-19 00:35
한나라 이후인데 제대로된 중앙집권적 제도가 없다는건 억측이구요

>

?? ㅋㅋ

삼국지가 몬 뜻인지 모름?? 이님은 너무 기초적인 부분에서 그냥 생각없이

툭툭 던지기식을 하니 쯧.
국산아몬… 20-03-19 00:22
누가 100만으로 주장을 하나요?
이름을 대시죠

평양으로 보낸 30만 별동 부대는 전투부대로만 편성했습니다
사서에 치중대가 전투병의 2배라고 되었있으니 요동성을 보급부대만
남아서 포위 했다는 건가요?

황제 근위군도 보급부대로만 구성되었고?
말이 되요? ㅎㅎㅎ
이름귀찮… 20-03-19 00:26
그게 실제 전투부대만 탈탈 털어가 갔으니 30만인거고 나머지는 거의 치중대라고 하는거조

님이 마지막 영혼의 한타를 치러 가는데 100만의 전투병이 있으면 다끌고 가지 30만만 끌고가여?
굿잡스 20-03-19 05:09
좌우 24군. 매일 1군씩 출정. 서로 40리 떨어져 진영을 이어가도록 해서 앞뒤로 군영 깃발이 무려 960리. 그 뒤를 수양제가 직접 거느리는 어영군 6개 군이 출진, 이 행렬 또한 80리. 이렇게 하여 40일 만에야 발진이 다 끝날 정도. 총 113만3800명. 여기에 군량을 나르는 자는 그 배의 숫자 외 수군 및 기타 사료 외에서 확인되는 수성도군, 증지도군등.


본인이 보급 운운하더만 무슨 전투병 100만이 움직이는게 애들 이름도 아니고 30만도 이미 상당한 보급의 어려움을 감수한 내지 돌격 별동대구만. 쯧.

그리고 황제가 사로 잡히거나 죽으면 게임 오버되는 왕조시절에 적지에서 측근에 정예병 다 보내고 보급 성격의 병력으로 호위??

위 94만호 촉 28만호 오 52만호.

통일 후 기반을 안정시키고 파악한 수나라 인구 900여만호.
상식4 20-03-19 00:27
삼국지 시대는 잦은 전쟁으로 이전 한나라 보다 인구가 퐉 쭈그러든 시대입니다.
인구가 워낙에 적어져서 실제 사람들이 살고 실지배하는 지역도 작습니다.

역사에서 실제 100만대군 넘는 거 증명되는 경우 몇 잇는데
그 중 하나가 고수전쟁임. 이거 학계에서도 인정받는 겁니다.

그리고 수도로 식량 직접 들고 직행한 순수 전투병력만 30만이고 살수대첩에서 거의 전멸했죠. 전투병력만 100만 넘는 거 맞습니다.
그 병력이 출발하는데만 한달? 이상이 걸리고 지나가는 지방, 도시 하나가 없어져 버릴 정도였죠. 경제적으로 쏙 빨려서요.

과거 중국이란 건 전성기 때, 세계 지디피의 절반을 차지하는 규모구요.
특히나 수나라 문제 때는 정말 제정을 어마어마하게 싸놓은 때구요.
양제 때는 대운하까지 만들어 전쟁 자원이 넘쳤죠.
굿잡스 20-03-19 00:05
참고로 부여의 위치는

전기와 후기로 나뉘고 시기별로 북부여 부여 동부여로 위치에 대한 여러 학설이 있지만

기본 송화강과 흑룡강 및 두만강과 연해주 일대 북방 지역의 패자였던게 부여였군요.

魏略曰:其國殷富,自先世以來,未嘗破壞。 

위략 왈 그 나라는 매우 부유하며, 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한번도 파괴당한 적이 없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 


고조선 말기 청동의 독점적 지배가 끝나고 흔하고 강력한 본격적 철기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 고조선 동방문명권에선

위만조선부터 만주의 강자 부여 동예 옥저 삼한등 본격 열국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고

이후 부여에서 내려온 주몽이 5부 재지세력과 연합 옛 영토를 회복한다는 다물의 정신을 바탕으로

초기부터 서토 한제국과 맨땅에서 헤딩하며 전투적으로 싸우면서

태조대왕시기에 주변 소국들을 거듭 통폐합 대국의 위치에 오르고 5세기에는 난립하는

호전적 전투 종족을 제압 휘하 부용세력으로 거닐면서 만주일대를 석권 동아시아 최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달빛총사… 20-03-19 00:06
남베트남이 너무 부패해서 전폭적으로 지원했는데도 졌죠.
스랑똘 20-03-19 00:11
수천년 역사동안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전쟁에서 한번도 진적이 없다던데....

실제로 북방민족에게 점령당한 중국에게는 졌었지만 순수한 중국인인 한족과의 전쟁에서는 진적이 없다죠?
카라반 20-03-19 00:13
월남은 친중 간첩들이 몰락의 주축이었죠
한국도 친중 간첩들이 눈에 보이는 세상
하시바 20-03-19 01:32
제가 생각하기로는 한나라가 망해서 삼국지가 펼쳐지는것도

고구려 때문이었다고 추정합니다.

172년 명림답부의 좌원대첩이후 184년부터 삼국지란 난세가 시작되거든요.

추정컨대 당시 한나라 총병력이 50만쯤 되는데 10만쯤 되는 병력이 좌원에서 몰살당한후 민생파탄으로 황건의난이 펼쳐지고 중앙병력분산후

각지에서 군벌이 일어나서 망하게되는..
수나라 멸망하고 매우 흡사하지요.

많은사람들이 인지하지는 못하고 있는 내용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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