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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8일 (일)

[통일] 여말선초의 요동정벌

감방친구 조회 : 6,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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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고 고려를 접수
이후 조선을 창국한 후에도
정도전과 이성계는 계속적으로 요동정벌을 추진합니다
그러다 이방원에 의해 정도전을 위시한 여진족 창국 세력 등이 숙청되고
무산되었죠

국내정세, 국제정세, 군비, 전력, 전략전술, 전세 등의 측면에서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이유,
그러고도 그 집정 초기에 다시금 계속적으로 요동정벌을 하려한
당위적 요구는 무엇이었는지
설명해주실 분 안 계신가요?
부탁드립니다

태조 때까지는
명과 형제지국,
태종 때부터는
군신지국의 사대관계를 맺죠

전쟁도 아니면서
왜 이런 굴욕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던 걸까요?

파르라니 13-08-06 12:22
저도 그부분이 굉장히 궁금합니다
조선이나 명나라나 개국 초이고 조선은 그래도 내부의 지배세력 교체 정도 였지만
명나라는 몽골의 지배를 물리치고 개국 된건데 아무래도 군사적 정치적으로 그다지 명나라에
꿀리지 않았을것 같은데 왜 굳이 굴욕적인 외교 관계를 만든거지 ??
mymiky 13-08-06 14:21
물량차이
소고스 13-08-06 12:34
고려말 조선초의 명나라는 명실상부 세계최강입니다.

게다가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하지 않고 요동을 점령했다면
북원에 대비해 북경과 그일대를 관할하던 연왕 주체와 싸워야되는데
이사람이 후일 영락제가 되는 사람입니다.
그 밑에 북원과 매일같이 싸우던 수십만군대와 지휘관이 있는데
10만도 안되는 병력으로 전쟁은 불가합니다.
모든면에서 역부족이죠.
이성계가 한국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라고 하지만
장수의 지휘능력을 넘어선 규모의 차이니까요.

예초에 요동정벌개념자체가 이성계세력을 꺽으려는 음모라는 이야기도 있을정도니까요
shonny 13-08-06 13:34
위화도 회군땐 주체는 나이가 어릴때죠.. 연왕이 아니었슴..
shonny 13-08-06 14:05
위화도 회군은 당연한거였죠. 애초에 고려가 출병한 이유부터가 그전에 명나라 눈치보면서 달라는거 다주고 (제주도말) 그러다가 명이 북원과 싸움에서 유리해지구 요동도 장악하고난뒤에 고려에 철령위 세우겠다니까 그제서야 싸우겠다고 출병시킨건데.. 너무 늦은거였죠.
싸울려면 애초 명이 무리한 요구하면서 북원과 싸울때 그때 북원과 연대해 싸웠으면 몰라도.. 북원 다 멸망할때가서 출병한건데.. 위화도에 닿을때 들은 소식이 북원이 멸망했다는거 듣구서 이성계가 회군하겠다구 하던거였는데 못돌아오게하니 걍 명령거부한거죠.

그전에 이성계가 1차 요동정벌할때 요동성공략하구서도 후퇴한게 고려에서 보급제대로 안해줘서였죠.. 성점령했는데 그과정서 식량고가 불타고.. 고려에선 보급안해주니.. 아사자 늘어나면서 후퇴..
믿고싸울만한 형편도 안되구.. 요동치다가 북원멸망시킨 남옥의 대군이 돌아오면 양쪽으로 맞서 싸워야하는데.. 힘든싸움이될수밖에여..

게다가.. 당시 명나라가 북원 멸망시킨 배경은 화포때문이었는데 (북원이 야전에서 명나라 바르고 북경치다가 발린이유).. 고려에서 최무선이 화포개발한게 명나라에서 염초랑 유황얻어다가 염초만드는법 알아낸거였는데..유황은 당시 국내광산개발안된때라 명나라에 수입해서 의존하던때였슴..
즉 명과 싸울려면 화포에 그닥 의존못한단얘기죠.

.. 조선건국뒤엔.. 명이 조선에 계속 무리한 요구를 해와서 빡쳐서 요동정벌 계획까지 한거라고 봄..(왕자들과 정도전이 이방원에 죽은뒤엔 이방원은 수습하기 바빳지 누굴 칠만한 상황이 아니었구)
당시 농경사회의 노동력의 근간이 말 소인데.. 명나라는 조선에 대해 말하고 소 조공하라 계속 요구했었는데 이게.. 국력갈가먹는 요구인거였죠..
.결국  세종때까지 말하고 소 바친뒤... 조선에선 수레가 아니라.. 가마타고 다니게됐슴.. (바친 말만 7만필.. 세종떄는 말 없어서 대신 소바쳤슴)
소도 부족해서.. 법으로도 소 못잡아먹게했었고여..
땜남 13-08-06 15:35
베트남이 개기다가 영락제 한테 한큐에 발려서 수십년간 명의 지배를 받습니다.
태종이 이런 국제적 상황을 알고 있었다고 하네요. 상당한 충격을 준 사건이고 이후
정책에 큰 영향을 미첬습니다.
땜남 13-08-06 15:37
위화도 회군이야 당연한 거였지만 건문제와 영락제 내전기에 재추진
했다면 그나마 확률이 높았을 것 같네요. 물론 그래도 불리한 도박이지만요
shonny 13-08-06 15:41
비슷한 시기에.. 조선서두 왕자들끼리 싸우느라..
모래곰 13-08-07 03:33
당시 북원은 세력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요동공략을 할 시점에
당시 요동은 거의 텅 비어서 공격했으면 아마 수복했을겁니다.
이성계는 공민왕 시기에도 요동성을 두번이나 함락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1만~1만 5천명 정도로 함락시켰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유지하는데는 상당한 국력이 소비가 됩니다.
두번의 성공에도 유지를 못해서 스스로 철군했죠.
함락이 문제가 아니라 유지가 문제입니다.
이것을 이성계만큼 경험으로 아는 사람이 없었을겁니다.
그리고 당시 고려는 거의 무너지는 상태였고 왜구의 침략도 심각했습니다.
이때의 왜구는 소규모의 군단이 아니라 거의 전쟁수준으로 침략했고
고려군 5만명이 위화도에 간 순간 그 사실을 알고 더 침략했을 정도로 요동정벌군으로 인한
전력공백도 큰 상태였습니다.
그래도 요동정벌군에 놀란 주원장은 고려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합니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급격하게 나라는 부강해집니다.
군사적으로도 30만에 육박했지만 당시는 명나라도 주변정리가 어느 정도 됐고
왕자의 난, 조사의의 난 등으로 태종이 정신이 없었습니다.
대신 계속 요동과 만주를 두고 망할 때까지 신경전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포기한게 아니였던거죠. 실제로 당시 요동의 인구 대부분이 고려인입니다.

영락제는 팽창주의가 대단한 황제고 당시의 명나라는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습니다.
조선이 여진족을 손에 넣고 있는 것을 경계했고
(요동, 만주 수복할 경우 몽골과의 연계를 걱정, 고구려와 돌궐의 연계와 비슷)
여진족들도 점차 양측에서 줄타기를 함으로써 요동공략이 어려워졌습니다.

주원장은 책사 중 하나인 유기가 점을 잘 치고 선견지명이 있었는데
고려가 힘을 회복하면 반드시 요동을 수복하려고 할거라는 말을 했는데
이게 주원장의 경계를 강화시켰다는 글도 있더군요.
또 정도전이 예전에 중국을 갔다 오면서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산해관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발언을 주원장이 듣고는 그를 싫어해서 더욱 표전문에
시비를 걸고 위협을 느낀 정도전도 맞불을 놓아서 사이가 안좋아진거지 다른 이유는
별거 아니라고 압니다.

세종은 주원장이 함경도는 조선의 땅이라는 발언을 근거로 명나라의 간섭을
뿌리치고 4군 6진을 개척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요동, 만주 정벌은 상당히 많았습니다.
주로 우리 국경침략을 이유로 쳐들어갔는데 다 이겼죠.


영락제의 사후 명나라는 몽골에게 북경이 포위당하고 황제가 사로잡히는 등
망할 위기를 겪습니다. 한마디로 북방기마민족의 위협을 망할 때까지 겪게 되는데
북원은 아니지만 이쪽의 세력은 늘 막강했고 청나라 초기까지도 위협적이였습니다.
조선과 명나라의 무역에서 조선에 말을 요구했습니다.
상당수는 만주에서 구입하고 명에 팔았는데 비싸게 팔아 큰 이득을 얻었습니다.
명나라에 판 말이 6만필 정도가 됐다고 압니다.
명나라는 손실이 큰 이 무역을 보충하려고 소도 구입했는데
여기에서는 조선이 손실이 커서 서로 신경전이 대단했다고 합니다.
감방친구 13-08-07 16:09
좋은 말씀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파르라니 13-08-07 20:53
정말 좋은 댓글이 많아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실 요동수복은 어떻게 생각하면 발해이후 우리 민족의 숙원이라고 생각 합니다
물론 금 청사를 우리 역사에 넣자 하고 생각해도 만주족 ( 여진 . 말갈)은 발해이전엔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시대나 지금은 언어와 풍습이 분명하게 다르다고 생각 합니다
지금의 대한 민국과 언어와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소수의 만주족들을
우리 민족이라고 말할려면 아직은 많은 연구가 필요 하다고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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