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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월 07일 (화)

[중국] 오원춘 사건을 보는 시차를 둔 몇 개의 다른 눈

감방친구 조회 : 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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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춘 사건을 보는 시차를 둔 몇 개의 다른 눈

 

최초의 보도

길에서, 보행 과정 중 우연히 어깨가 부딪혔는데 피해 여인이 사과를 하지 않아 다툼이 있었고, 이에 오원춘은 우발적으로 그 여인을 자신의 거처로 끌고 갔으며 성폭행을 시도한다.

그러나 여인이 완강히 거부하자 폭력을 행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여인이 숨졌고, 이에 사건을 은폐하고자 여인의 시신을 토막내어 훼손하였다.

오원춘이 피해 여인과 다투고 그 여인을 끌고 가던 도로 상에서, 그리고 자신의 거처에서 수 시간에 걸쳐 폭행하던 것을 보고, 들었던 거리의 시민들과 이웃 주민들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혹은 부부 싸움인 것으로 알고 무시 하였다.

사건 과정에서 오원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여인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112에 성폭행 신고를 하였으며, 이에 경찰은 발신처를 추적, 1박 2일에 걸쳐 수십 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수색하였으나 사건이 종료되어 여인이 숨지고, 그 여인의 시신이 토막-훼손된 후에 사건 현장을 접수할 수 있었다.


이차 후 보도

길에서, 보행 과정 중 우연히 어깨가 부딪혔는데 피해 여인이 사과를 하지 않아 다툼이 있었고, 이에 오원춘은 우발적으로 그 여인을 자신의 거처로 끌고 갔으며 성폭행을 시도한다.

그러나 여인이 완강히 거부하자 폭력을 행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여인이 숨졌고, 이에 사건을 은폐하고자 여인의 시신을 토막내어 유기하려 했다.

오원춘이 피해 여인과 다투고 그 여인을 끌고 가던 도로 상에서, 그리고 자신의 거처에서 수 시간에 걸쳐 폭행하던 것을 보고, 들었던 거리의 시민들과 이웃 주민들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혹은 부부 싸움인 것으로 알고 무시 하였다.

사건 과정에서 오원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여인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112에 성폭행 신고를 하였으나, 사건을 접수한 경찰이 여인의 신고를 묵살하고 진정성 없이 대했으며 중간에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발신처를 추적, 1박 2일에 걸쳐 수십 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수색하였으나 찾지 못했으며 이웃 주민의 ‘부부싸움’ 제보로 거처를 확인, 사건이 종료되어 여인이 숨지고, 그 여인의 시신이 토막-훼손된 후에 사건 현장을 접수할 수 있었다.


삼차 후 보도

오원춘은 길가에 숨어 계획적으로 피해 여인에게 접근하였다. 성폭행을 하고, 그 여인을 살해하는 과정에서 휴대 전화로 음란 영상을 보기도 했다. 사건을 은폐하고자 여인의 시신을 토막내어 훼손하였다.

오원춘이 피해 여인과 다투고 그 여인을 끌고 가던 도로 상에서, 그리고 자신의 거처에서 수 시간에 걸쳐 폭행하던 것을 보고, 들었던 거리의 시민들과 이웃 주민들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혹은 부부 싸움인 것으로 알고 무시 하였다.

사건 과정에서 오원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여인은 자신의 핸드폰으로 112에 성폭행 신고를 하였으나, 사건을 접수한 경찰이 여인의 신고를 묵살하고 진정성 없이 대했으며 중간에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기도 했다. 이후 경찰은 발신처를 추적, 1박 2일에 걸쳐 수십 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수색하였으나 찾지 못했으며 이웃 주민의 ‘부부싸움’ 제보로 거처를 확인, 사건이 종료되어 여인이 숨지고, 그 여인의 시신이 토막-훼손된 후에 사건 현장을 접수할 수 있었다.

사차 후 보도

오원춘은 한국 여성과 9 개월여 동거를 하였는데 점잖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그 동거녀에게 인식되었으며 그가 벌인 ‘성폭행 및 살인, 시신 훼손’ 사건과 거리가 있는 인물로 그간 관계인들에게 알려졌다.

중국 거주 시 탈북여성과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으나 그 여성이 북한에 압송되면서 징역을 살기도 했다. 이후 한족 여성과 결혼하여 11살 된 자녀가 있으며, 한국에 온 후 막노동 등으로 번 수입을 대부분 가족에게 송금하여 그 가족이 중국에서 비교적 원만하고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헌신적인 가장이자 성실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는 한국에 온 후 한 달 수입 200여 만 원 중 40여 만 원으로 매춘을 하였다. 휴대 전화를 이용해 수시로 음란물을 시청하였다.

현재 감호소에 있는 그는 침착하고 당당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차 후 보도까지 나타난 언론의 태도


‘사건의 정황’을 오원춘의 진술과 추론에 근거하였으며 범행이 우발적이었다는 데 초점을 둔 인상을 주고 있다. 


사차 후 보도에 나타난 언론의 태도


그가 지극히 정상적이며 성실한 가장이었다는 것을 알리는 과정에서 공간적 사태를 중국으로까지 확대했으며, 그만의 문제가 아니라 재한조선족의 문제로, 가족과 떨어져 이국에서 외롭게 생활하는 한 남성의 실존적 문제로 시각을 옮기거나 심화하는 인상을 준다.


보도 전 과정에 드러난 문제


길거리와 주택지에서 사건 과정을 목격한 시민과 이웃이 그 과정에 대한 아무런 제지와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 즉, 부작위(Omission/不作爲)적 태도를 취했다는 것.


경찰이 피해 여인의 신고를 접수과정에서 묵살, 무시했으며 및 사건 조사 과정에 집중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 이는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이 국가의 국민(정확히는 서민)은 누구나 똑 같은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언론이 사건의 상황과 맥락을 정확히 짚지 않고 경솔하게, 가해자의 진술에 근거해 추측성의 무책임한 보도, 자극적 보도를 했다는 것. 조사 과정에 대한 지속적 보도와 사건의 진지한 재구성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사건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집중 보도를 하지 않는다 것.

언론이 조선족 및 재한이주노동자 범죄에 대한 보도에 있어 ‘축소, 비보도, 감싸기, 일반 시민에게 전가하기, 일반 시민에게 훈계하기’ 등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인상을 준 것.


조선족 신분의 한 개인의 범행을 재한조선족 및 중국 거주 조선족 전체의 범죄성 및 비도덕성으로 확대하여 비방하는 것.


조선족의 유입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강성 범죄와 이로 인한 시민 대중의 자연스럽고 정당한 불안과 공포를 ‘조선족 신분의 한 개인의 범행을 재한조선족 및 중국 거주 조선족 전체의 범죄성 및 비도덕성으로 확대하여 비방’하는 것으로 호도하고 비난하는 것



ㅡ 오원춘 사건에 대해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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