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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7일 (토)

[한국사] 우리 고대사 #6 : 예족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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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토템의 예족은 단군조선 형성 초기에는 단군조선 변방에 살던 부족이었고, 이들 중 주류에서 밀려난 예족의 일부 그룹이 북만주로 일차로 이동하지만, 본격적인 이동은 고조선이 요서지역을 연나라에게 뺏기면서 어쩔 수 없이 예족의 다수가 이동한 것이고, 이 당시 예족의 다수가 송화강 부여 쪽으로, 그리고 부여 쪽에 합류하지 않은 다른 예족 지류는 함경도로 이동하여 동해안을 타고 옥저, 동예를 형성함. 

그리고 더 내려가 후대에 들어 진한 지역인 경상도까지 내려오면서 예족의 이동루트가 이루어지고 진한이 마한과 분리된 새로운 연맹체로 자리 잡으면서 한반도 남부의 남방계 족속인 왜(후대 명칭)를 밀어냄. 

그래서 한반도 남부 해안가 주민에 해당하는 왜는 신라와 원수가 되어 끈질기게 신라를 괴롭히게 되는 것인데 이 당시의 왜는 큐슈의 북단까지 진출하면서 초기 왜의 정치문화권을 형성. 하지만 이러한 왜는 현재 일본이 말하는 야마또 왜하고는 상관없는 왜.

어쨌든 예족의 종가는 부여. 그래서 부여왕의 예왕지인이 바로 예족 그룹의 상징이 됨. 신라의 남해 차차웅이 동예의 농부가 밭갈다가 발견하여 상납했다는 예왕지인을 받고 좋아 죽어라 했던 이유는 신라의 기층민 또한 예족이었기 때문이기도 함.

예족 중 고조선의 현 요동 반도 쪽으로 중심지가 이동할 때 부여 쪽으로 간 그룹과 달리 고조선 외곽 지역에 살던 사람이 예군남려 집단. 이들은 고조선과 함께 이동했지만 준왕의 손자인 우거왕에 반대하여 28만명의 엄청난 수(당시 진한이나 변한보다 훨씬 많은 인구)의 예족을 데리고 한나라에 귀부하게 되고, 한무제는 이들이 살던 곳에 창해군을 만듬. 그 위치는 요서 쪽 주장설도 있고, 요동 반도 쪽도 있고, 심지어는 함흥 쪽 동해안까지 다양. 

하지만 (내 생각은) 요동반도에 압록강까지 못미친 요동의 남부해안가가 예군남려가 갖다 받친 땅으로 생각드는데, 한나라는 이를 억지로 요동군에 편입하지만 길을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폐지함. 어쨌든 예족의 일부지만 상당수가 한나라로 넘어갔던 것도 사실. 어쩌면 예군 남려가 이끌고 가 한나라로 넘어간 예족 수가 다른 예족 수보다도 훨씬 더 많았기에 오히려 이들이 예족의 중심이었다고도 할 수 있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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