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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8일 (일)

[한국사] (6-3) 후한서 군국지 검토

감방친구 조회 :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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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한(後漢) 중심 양한(兩漢) 시대 오환(烏桓)의 활동


시대순

내용

BC 119, 한 무제가 곽거병(霍去病)을 막북으로 보내서 흉노의 동쪽을 격파하였는데, 당시 흉노에 복속돼 있던 오환을 上谷郡, 漁陽郡, 右北平郡, 遼西郡, 遼東郡塞外로 이주시켜 흉노를 감시하고 변방을 지키게 했다.

왕망(王莽)이 제위(帝位)를 찬탈한 후 흉노를 공격하고자 하여 12()의 군대를 일으켜 동역장(東域將) 엄우(嚴尤)에게 오환과 정령의 병사들을 지휘하여 대군(代郡)에 주둔하도록 하고 오환과 정령 병사들의 처자를 군현(郡縣)에 인질로 남겨두도록 하였는데 오환 사람들은 대군의 풍토에 적응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주둔하고 쉬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여러 차례 되돌아가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런데 왕망이 그들을 보내주려 하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스스로 달아나거나 반란을 일으켰고, 원래 살던 곳에 돌아와서는 약탈하고 도적질하였다. 그래서 여러 군()에서는 그들이 억류해 놓았던 인질들을 모두 다 죽여 버렸다.

후한 광무제(光武帝) 초에 오환과 흉노는 연합하여 변경을 노략질하였으니, 대군 동쪽은 더욱 그 피해를 입었다. 5(상곡, 어양, 우북평, 요서, 요동)의 민서(民庶)들은 고통을 당하였고, 군현이 손상되고 파괴되었으며 백성들은 유망(流亡)하기에 이르렀다.

광무제 건무(建武) 21(45)에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 에게 3천 명의 기병을 이끌고 대군(代郡)의 오완관(五阮關)을 나가서 오환을 급습하도록 했으나 백여 급을 벤 후에 후퇴하다가 패배.

광무제 건무 22(46)에 오환이 흉노를 공격하여 격파하자 흉노는 북쪽으로 수천 리 떨어진 곳으로 이주하였고, 막남(漠南)의 땅은 비게 되었다. 이에 광무제는 폐백(幣帛)을 오환에게 뇌물로 주었다.

광무제 건무 25(49)上谷郡, 漁陽郡, 右北平郡, 遼西郡, 遼東屬國, 廣陽郡, 代郡, 雁門郡, 太原郡, 朔方郡 등지로 이주하여 거주.

후한 안제(安帝) 영초(永初) 3(109)에 어양오환(漁陽烏桓)과 우북평호(右北平胡) 천여 기()가 대군과 상곡군을 침입하여 노략질.

가을에 안문오환(鴈門烏桓) 의 솔중왕(率衆王) 무하(無何) 가 선비의 대인 구륜(丘倫) , 남흉노(南匈奴) 골도후(骨都侯)와 함께 모두 합하여 7천 기를 이끌고 오원군(五原郡)을 침입하여 약탈.

후한 순제(順帝) 양가(陽嘉) 4(135) 겨울에 오환이 운중군(雲中郡)에 침입하여 상인들의 우마차 천여 량()을 약탈.

후한 순제 영화(永和) 5(140)에 오환의 대인 아견(阿堅)과 강거(羌渠) 등이 남흉노(南匈奴) 좌부(左部)의 구룡왕(句龍王) 오사(吾斯)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도망가자, 중랑장(中郞將) 장탐(張耽)이 이들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참하니 나머지 무리들이 모두 항복.

후한 환제(桓帝) 영수(永壽) 년간(155~157)에 삭방오환(朔方烏桓)과 휴저도각(休著屠各)이 함께 반란을 일으키자 중랑장 장환(張奐)이 공격하여 평정.

후한 환제 연희(延熹) 9(166) 여름에 오환은 다시 선비 및 남흉노와 함께 변방의 9개 군을 침입하여 모두 반란을 일으켰다. 장환이 이들을 토벌하자 모두 새외(塞外)로 달아났다.

후한 영제(靈帝) 중평(中平) 4(187)에 전직 중산 태수(中山太守) 장순(張純)이 배반하여 구력거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미천안정왕(彌天安定王)이라 칭하며 마침내 여러 군에 있던 오환 무리들의 우두머리[元帥]가 되었고, 청주(靑州), 서주(徐州), 유주, 기주(冀州) 4()를 침입하여 노략질.

후한 영제 중평 5(188) 에 유우(劉虞)를 유주목(幽州牧) 으로 임명하여 오환의 침입을 막도록 하였는데 유우는 현상금을 걸어 장순의 목을 베니 북방의 변경(北州)이 안정됨.

후한 헌제(獻帝) 건안(建安 12(207), 조조의 오환(답돈) 정벌

                                          # 후한서(後漢書) 오환전(烏桓傳)/동북아역사넷 국역본 발췌 정리   



ⓒ 무쿠리

감방친구 21-06-24 04:25
오환과 선비의 활동영역과 성격은 훗날 해(고막해)와 거란의 그것과 유사합니다.

오환과 선비에게 흉노와 후한이 있었다면
해와 거란에게는 돌궐과 당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 거주 영역을 보자면

오환은 지금의 시린궈런맹의 동남부, 커스커덩기, 장자커우시, 승덕시, 적봉시 일대였는데
이는 훗날 해(고막해)의 영역과 거의 일치하며,

선비는 그 초기에는 지금의 시라무룬허 북쪽에서 활동하다가
오환이 장성의 안쪽으로 옮겨가자 남쪽으로 이동하여 활동하여
훗날의 거란과 그 영역 및 활동 양상이 거의 일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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