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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01일 (화)

[한국사] 발해와 고려의 강역 변화

감방친구 조회 :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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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강역 변천도는 저에게 권리와 책임이 있습니다
강역변천을 시각화 하는 작업은
대단히 어렵고 위험한 일입니다

저는 제 그동안의 연구와 연구에 따른 확신을 가지고
가시화하여 본 것으로
어느 정도의 추정치가 가입돼 있습니다

100% 신뢰하지 마시고
어느 정도 사료적 근거와 가능성이 있는 시각화 작업물이라고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발해
ㅡ 발해는 거란과 해를 거수국이자 당나라에 대한 완충지대로 삼았습니다
ㅡ 9세기 말부터는 현 압록강 이남과 눈강 서쪽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 또는 상실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ㅡ 야율아보기가 혁명을 통해 거란을 일인천하로 통합한 후부터 발해의 서부지역인 눈강 서쪽, 요하 서쪽에 대한 공격을 집요하게 합니다
ㅡ 이로 인하여 10세기 초에는 눈강 서쪽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하고, 요하 서쪽의 땅을 빼앗기며 국제적으로 고립됩니다



2) 고려
ㅡ 고려는 궁예시절부터 평안남도를 비롯한 발해 남부 지역을 확보하였고
ㅡ 왕건은 지속적 북방정책을 펴는 한편 현 서북한 평양을 호경(서경 # 주나라가 장안을 호경이자 서경으로 삼은 것을 고사로 삼아)으로 승격해 성역화합니다
ㅡ 왕건의 이러한 프로파간다는 동아시아 지식인 사회에 압록강, 요수 등에 대한 오인을 야기합니다
ㅡ 광종은 현 요하까지 진출하였으며
ㅡ 성종은 압록강(현 요하) 정지작업을 완료합니다
ㅡ 10세기 후반에는 거란과 여진(정안국)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ㅡ 거란 1차 침략으로 현 무순ㆍ요원ㆍ매하구시 일대에 해당하는 이른 바 강동6주를 보장 받습니다
ㅡ 그러나 이는 거란의 이이제이 정책으로 고려를 통해서 정안국 잔존세력을 소탕하고자 한 것이었는데 고려는 거란의 예상보다 여진족을 잘 진압하고 오히려 땅을 더 넓혔습니다
ㅡ 거란이 강동6주를 빼앗기 위해 감행한 2~3차 침략에서 고려는 서부 강역을 잃습니다
ㅡ 고려는 점차 만주의 여진족 세력을 흡수하면서 문종 대에 이르면 목단강시와 연해주 남부까지 진출합니다
ㅡ 이 시기의 연해주 진출은 연해주 지역의 모든 여진족이 자청하여 고려 백성이 된 것으로 실제 영향권은 연해주 전체에 미쳤습니다




- - -

관련 연구는 이곳 동아게와 제 블로그에 일부 공개돼 있습니다

비좀와라 20-08-27 01:25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발해의 영역에 관한 의문점이 있습니다.

당나라는 백제를 멸하고 의자왕을 데리고 가서 부여국을 건설하고 부여국의 왕으로 임명 하잖아요?

의자왕을 부여국의 왕으로 임명 함으로써 백제 부흥군은 의자왕을 추종하는 편과 부여융을 추종하는 무리로 나뉘고 흑치상치 등은 의자왕을 추종해서 부여국의 대신으로 가서 나중에 송첸캄포의 티벳과 싸워서 큰 공을 세우고 당나라의 높은 벼슬에 오른단 말이죠.

그리고 고구려 유민인 고선지도 티벳과의 싸움에서 공을 세워 높은 벼슬에 오르고요.

문제는 이 부여국이 발해와 신라의 합공으로 허덕거리다가 결국은 발해에게 멸망한다고 기록에 나온단 말이죠.

부여국의 위치도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적어도 이 부여국은 하남이거나 북경 근처 이었을 가능성이 높죠. 그리고 이 부여국은 결국은 발해에 멸망 했으니 최소한 발해의 영토는 북경 근처 까지는 와야 정상이거든요.

또한 신라의 영토도 산동성의 신라방이 즉 당산지역이 당나라의 영토가 아니라 신라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는 지역 이어야 의자왕의 부여국을 공격 할 수 있죠.

아마도 발해와 신라는 준 동맹관계로 부여국을 공략 하다가 무왕때 발해가 신라를 공격하는 것을 등주 공격으로 표현 했을 거고 흑수 말갈은 신라를 말하는 거라는 거죠.

흑黑과 청靑은 같은 말로 쓰이고 당시 산동성을 청주라고 불렀으니 흑수말갈은 청수말갈이고 이들을 나중에 여진이라고 부른단 말이죠

더군다나 이 번에 발견된 부여태비(의자왕의 손녀로 당시 부여국 여왕)의 묘석의 내용을 보면 부여태비는 당나라의 황족과 결혼했고 이 당나라의 황족은 숙종의 직계는 아니라 숙종시기 유력한 황족이었고 더군다나 위태후의 동생과 결혼 하였다가 위태후 일파가 숙청 당하자 위태후의 동생이자 자신의 아내를 참수하고 그 머리를 바침으로써 살아남았다고 하거든요. 그리고 부여태비와 결혼하고 자식을 얻었다고요.

이 황족의 영지가 황하 수로의 시작점에 위치 해서 부여국의 인접지역 이에요. 당연히 왕건은 이 부여태비의 후손일 확률이 높고요.

그리고 요하와 요수 같은 경우 요동의 뜻은 영어로 Far east 이고 이걸 극동이라고 부르고 러시아는 원동遠東 이라고 하고요. 원나라의 원도 같은 뜻일 거라 봅니다. 그리고 북쪽의 강은 수水라 부르고 황하와 같이 중간은 하河라 부르고 강은 남쪽의 강을 부른다고 하거든요.

따라서 요하와 요수는 다른 강이고 요하는 남쪽의 북경과 천지을 흐르는 강이고 요수는 지금의 요동반도에 흐르는 강이고요. 그런데 요하와 요수 둘다 황하의 하류라 많은 사람들이 헷갈려 하죠.

다시 원래의 내용으로 돌아가서 요하는 지금의 북경지역에 흐르는 강이고 발해는 요수지역이 아니라 요하지역을 점유했기에 감방친구 님이 그리신 발해의 강역에서 좀더 내려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거죠.
TALENT 20-08-27 01:28
역사를 논할 때 기본으로 장착해야 되는게 몇가지 있을 겁니다

1-천문학
2-언어학
3-기후학
4-인류학
5-지질학
그리고 political sociology(정치 사회학) social politics(사회 정치학)

우리는 불과 수 년도 안된 사건들도 진실이 뭔지 알 수 없습니다
천안함
세월호
노무현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라고 논박할 수 없는 자료 가져와서 설명하기 어렵지요

하물며 수 백년, 수천년 전의 사료가 진실과 사실을 기반으로 전해져 왔을리 없다는 것은 인간의 본질적 의문인 것입니다
당대 기후와 지형,인구밀도,언어의 범위,인종(또는 부족)의 활동 반경, 문물 이동경로,지구의 전체적 환경...



레벨2 신세라 여까지만 댓글로 답니다
위구르 20-08-27 11:25
발해가 고구려의 땅이었던 고대 요동, 즉 지금의 난하 동부지역을 처음부터 차지하지 못했다는 점이 고증이 잘 된 것 같습니다. 고구려 부흥군이 당군을 섬멸한 천문령이 만주원류고의 고증에 따르면 지금의 심양 부근에 있었는데 그 천문령에서 나중에 안록산이 이끄는 당군을 역시 거란군이 전멸시킨걸로 보면 거기는 거란의 땅이었고 결국 그 지역도 장악하지 못한 마당에 그 서쪽인 요동을 차지했을리 없기 때문이니 이로 보면 발해는 고구려의 부활이긴 하지만 고구려에 비하면 반쪽짜리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왕지인 20-08-27 13:10
발해 영토가 왜 저래 커요??
발해 유물 나오는곳이 모두 발해 영역?
컹도리 20-08-27 18:33
동아게 들리며 가끔 봅니다. 고대 강역사에 대한 열정에 늘 지지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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