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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월 20일 (월)

[한국사] 수경주에서의 형 (山 + 刑)산

감방친구 조회 :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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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에 대한 중국고전DB에서의 비교 확인을 거친 후, 원문과 국역을, 한 지사적이며 나아가 영웅적인 개인이 조성한, 공개된, 중국역대지리서 국역사이트인 '다시 쓰는 유기'에서 가져와 아래에 보인다.

# 본인이 원서 스캔본(永樂大典本水經注)을 확인한 결과 원문 상의 형산에서 그 형은  '山 + 刑'의 형태를 띤 글자인데 현대에서는 쓰이지 않는 이체자로서 컴퓨터가 인식하지 못하여 표현되지 못 했다.

# 역대 중국사서에서 냉형과 송형의 형은 陘(형), 刑(형), 岍(견), 硎(형) 으로 혼용돼 나타난다. 따라서 岍(견)은 견이 아니라 형으로 읽어야 하며  '山 + 刑'자를 간소화한 것으로 이해해야 옳을 것이다.

# 포구수 = 대유하 = 현 조하

☆ 하기 수경주 포구수 편에 등장하는 형(山 + 刑)산과 향형산(香陘山)은 현 고북구 북쪽, 현 조하의 수계에 있는 산으로 장가구시 역성현과 백하, 조하, 난하 발원처 및 수계 사이에 있는 송형, 냉형, 염산, 형 등과 그 위치가 겹쳐진다.



<수경>
鮑丘水從塞外來, 南過漁陽縣東.

포구수(鮑丘水)는 새(塞) 밖으로부터 와서 남쪽으로 어양현 동쪽을 지난다.
 

<주>

鮑丘水出禦夷北塞中, 南流逕九莊嶺東, 俗謂之大榆河.

포구수(鮑丘水)는 어이진(禦夷鎭) 북쪽 새(塞) 가운데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흘러 구장령(九莊嶺) 동쪽을 지나는데 세간에서는 대유하(大榆河)라고 한다.
 
又南, 逕鎮東南九十里西密雲戍西. 又南, 左合道人溪水. 水出北川, 南流逕孔山西, 又厯密雲戍東, 左合孟廣○水. 水出○下, ○甚層峻, 峨峨冠衆山之表. 其水西逕孔山南, 上有洞穴開明, 故土俗以孔山流稱. ○水又西南至密雲戍東, 西注道人水, 亂流西南, 逕密雲戍城南, 右㑹大榆河. 有東密雲, 故是城言西矣. 大榆河又東南流, 白楊泉水注之. 北發白楊溪 望離, 右注大榆河, 又東南, 龍芻溪水自坎注之.

또 남으로 흘러 어이진(鎮) 동남쪽 90리의 서밀운(西密雲)의 수비성(戍) 서쪽을 지난다. 또한 남쪽으로 흐르다가 왼쪽에서 도인계수(道人溪水)와 합류한다.


도인계수(水)는 북천(北川)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흘러 공산(孔山) 서쪽을 지나고 나서, 또한 (서)밀운의 수비성 동쪽을 지나는데, 왼쪽에서 맹광형수(孟廣○水)가 합류한다.

맹광형수(水)는 형산(○)의 아래를 나오는데 형산(○)은 심히 험준하여 여러 산의 봉우리 중에 드러난다. 맹광형수(其水)는 서쪽으로 흘러 공산(孔山) 남쪽을 지나는데, 상류에는 굴로 된 통로(洞穴)가 열여 밝다. 그래서 토속에서는 공산(孔山)으로 맹광형수(流)를 칭한다.

맹광형수(○水)는 또한 서남쪽으로 흘러 (서)밀운의 수비성 동쪽에 이르러 서쪽으로 도인계수(道人水)로 들어간다. (이때) 난류가 일어 서남쪽으로 흘러 (서)밀운의 수비성 남쪽을 지나는데 오른쪽으로 대유하(大榆河)와 합하여진다.

동밀운(東密雲)이 있으므로 이 성을 서밀운이라 한 것이다.

대유하(大榆河)는 또한 동남쪽으로 흘러 백양천수(白楊泉水)가 (대유하)로 들어간다. 북쪽에서 백양계(白楊溪)와 망리(望離) 등의 강들이 발생(發)하여 오른쪽으로 대유하(大榆河)로 들어간다. 또한 동남쪽으로 흘러 용추계수(龍芻溪水)가 自坎하여 대유하(之)로 들어간다.
 
大榆河又東南出峽, 逕安州 舊漁陽郡之滑鹽縣南, 左合縣之北溪水. 水出縣北廣長塹南, 太和中, 掘此以防北狄. 其水南流逕滑鹽縣故城東, 王莽更名匡徳也. 漢明帝改曰鹽田. 右承治, 世謂之斛鹽城, 西北去禦夷鎮二百里, 南注鮑丘水.

대유하(大榆河)는 또한 동남으로 흘러 골짜기를 나와서 안주(安州) 즉 옛날 어양군(漁陽郡) 활염현(滑鹽縣)의 남쪽을 지나며, 왼쪽으로 활염현(縣)의 북계수(北溪水)와 합류한다.

북계수(水)는 활염현(縣)의 북쪽에 있는 광장참(廣長塹)의 남쪽을 나오는데, 태화(太和) 년간에 북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판 것이다.

북계수(其水)는 남쪽으로 흘러 활염현 옛 성의 동쪽을 지나는데 왕망이 광덕현(匡徳縣)으로 바꾸었고 한(漢)의 명제(明帝)는 염전현(鹽田縣)으로 바꾸었다. 오른쪽으로 승치(承治)가 있는데 세간에서는 곡염성(斛鹽城)이라고 하며 서북쪽으로 어이진까지 200리이다.
(북계수는) 남쪽으로 포구수로 들어간다.
 
又南逕傂奚縣故城東, 王莽更之曰敦徳也. 鮑丘水又西南, 逕獷平縣故城東, 王莽之所謂平獷也. 又南合三城水, 水出臼里山, 西逕三城, 謂之三城水, 又逕香陘山, 山上悉生槀本香, 世故名焉. 又西逕石窟南. 窟内寛廣, 行者依焉. 窟内有水, 淵而不流, 栖薄者取給焉. 又西北逕伏凌山南, 與石門水合. 水出伏凌山, 山髙峻, 巖鄣寒深, 隂崖積雪, 凝冰夏結, 事同《離騷》峨峨之詠, 故世人因以名山也. 一水西南流注之, 是水有桑谷之名, 盖沿出桑溪故也. 又西南逕獷平城東南, 而右注鮑丘水.

(포구수는) 또한 남쪽으로 흘러 어양군 치해현(傂奚縣) 옛 성의 동쪽을 지나는데 왕망은 이름을 돈덕현(敦徳縣)이라고 고쳤다. 포구수는 또한 서남쪽으로 흘러 어양군 광평현(獷平縣) 옛 성의 동쪽을 지나는데 왕망은 평광현(平獷縣)이라고 고쳤다. 또한 남쪽으로 흘러 (왼쪽에서?) 삼성수(三城水)가 합류한다.

삼성수(水)는 구리산(臼里山)에서 나오는데, 서쪽으로 흘러 삼성(三城)을 지나므로 삼성수(三城水)라고 한다. 또한 (삼성수)는 향형산(香陘山)을 지나는데 향형산 위에는 모두 고본(藁本)의 냄새가 나므로 세간에서는 이름을 향형산이라 한 것이다.

(삼성수는) 또한 서쪽으로 흘러 석굴(石窟) 남쪽을 지난다. 굴 아는 아주 넓은데 나그네가 의지하는 곳이다. 굴 안에 물이 있는데 연못이라서 흐르지 않는데 머무는 사람이 취하기에 넉넉하다. (삼성수는) 또한 서북쪽으로 흘러 복릉산(伏凌山) 남쪽을 거치는데 석문수(石門水)와 합하여진다.

(석문수는) 복릉산(伏凌山)을 나오는데 산이 높고 험하며 바위가 가로 막아 차고 깊으며 그늘진 낭떨어지는 눈이 쌓이고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 똑 같은 사실을 리소(離騷)에서도 읊었는데 따라서 세간에서는 이것으로 인하여 산을 이름 지은 것이다.

한 물줄기가 있어 서남쪽으로 흘러 석문수(之)로 들어가며 이 물은 상곡수(桑谷水)라는 이름이 있는데 모두 상계(桑溪)를 나와 따라 흐르므로 상곡수라 한 것이다(故也).

(삼성수는) 또한 서남쪽으로 흘러 광평성(獷平城) 동남쪽을 지나고, 오른쪽에서 포구수(鮑丘水)로 들어간다.

감방친구 19-02-28 01:10


감방친구 19-02-28 05:37


지금까지 고찰해 본 바와 같이
냉형과 송형은 크게 2곳에 나타난다
ㅡ 현 대흥안령 남부
ㅡ 현 장가구시 역성현과 난하, 조하, 백하 발원처 일대

또한
냉형과 송형과 염산은 모두 한 지역에서 나타난다
ㅡ 현 장가구시 역성현과 난하, 조하, 백하 발원처 일대

또한 형과 염산은 비슷한 지역에서 나타난다
ㅡ 현 장가구시 역성현 근방
감방친구 19-02-28 05:41
그밖에 현 시라무렌강 남쪽, 현 적봉시 서북쪽에 거란의 송산과 송산주가 있었고 현 시라무렌강은 평지송림에서 발원한다.

이 외에는 고북구에서 거란 중경 가는 길목에 존재한 송정관(松亭關), 송정령(松亭嶺)등이 나타날 뿐이다.
감방친구 19-02-28 05:53
가탐 제 1도 영주에서 안동도호부 가는 길(營州入安東道)

營州西北百里曰松陘嶺,其西奚,其東契丹。距營州北四百里至湟水。營州東百八十里至燕郡城。又經汝羅守捉,渡遼水至安東都護府五百里。府,故漢襄平城也。東南至平壤城八百里;西南至都里海口六百里;西至建安城三百里,故中郭縣也;南至鴨淥江北泊汋城七百里,故安平縣也。自都護府東北經古蓋牟、新城,又經渤海長嶺府,千五百里至渤海王城,城臨忽汗海,其西南三十里有古肅慎城,其北經德理鎮,至南黑水靺鞨千里。


영주(營州) 서북쪽 100리는 송형령(松陘嶺)이라고 하고 그 서쪽은 해(奚)이며 그 동쪽은 거란(契丹)이 떨어져 있다. 영주(營州)에서 북쪽으로 400리를 가면 황수(湟水)에 이르고 영주(營州)에서 동쪽으로 180리를 가면 연군성(燕郡城)에 이른다. 다시 여라수착(汝羅守捉)을 지나서 요수(遼水)를 건너 옛 한(漢)의 양평성(襄平城)이었던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에 이르기까지 500리이다. (안동도호부에서) 동남쪽으로 평양성(平壤城)까지 800리이고, (안동도호부에서) 서남쪽으로 도리해구(都里海口)까지 600리이며, (안동도호부에서) 서쪽으로 옛 중곽현(中郭縣)이었던 건안성(建安城)까지 300리이며, (안동도호부에서) 남쪽으로 압록강(鴨淥江) 북쪽에 있는 옛 안평현(安平縣)이었던 박작성(泊汋城)까지 700리이다. 안동도호부(都護府)로부터 동북쪽으로 옛 개모성(蓋牟城)과 신성(新城)을 지나 다시 발해(渤海)의 장령부(長嶺府)를 지나며 1500리(안동도호부에서 발해왕성까지)를 가면 발해의 왕성(王城)에 이르는데 발해의 왕성은 홀한해(忽汗海)를 내려다보고 있다. 발해왕성(其)의 서남쪽 30리는 옛 숙신성(肅慎城)이고 발해왕성(其)의 북쪽으로 덕리진(德理鎮)을 지나서 남흑수말갈(南黑水靺鞨)까지 1000리이다.
감방친구 19-02-28 05:57
거듭 말하지만
영주는 북위~당/오대에 이르기까지 여러번 교치됐고
안동도호부도 폐지되기 전까지 여러번 움직였다.


가탐 1도는 여러곳으로 움직여서 결국 여러곳에 그 이름을 남긴 영주와 안동도호부의 지리정보가 뒤섞인 것이라는 것이 본인의 가설인 것이다
감방친구 19-02-28 06:07
영주를 현 조양시에 비정한 현 한중학계 통설로 보자면
가탐 1도의 영주 북쪽 400 리에 황수(현 시라무렌강)이 있다는 기술은 절대 성립할 수 없다.

고대의 리수치는 직선거리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도로의 환경도 아니었다.

현 조양시에서 '시라무렌강~서요하'까지 목적지를 해랍소진으로 정할 경우 311km, 평안지진으로 삼을 경우 429km에 달하여 10리를 4km로 적용시 각각 800여 리, 10,70 리에 달한다. 물론 현대 도로 기준이다.
감방친구 19-02-28 06:21
거란 중경은 시라무렌강까지 무경총요 기준 480리, 요사 기준 370리

이 때문에 거란 중경의 실제 위치가 현 적봉지역으로 의심을 받는 것이다

현 적봉시에서 시라무렌강의 해랍소진까지 180 km 정도가 된다. 4km 십 리 적용시 450 리에 해당한다.

해랍소진으로 잡는 이유는 거란 상경 소재지인 파림좌기 정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무경총요는 중경에서 상경 가는 690 리 경로 상에서, 요사 지리지는 중경에서 상경 가는 580 리 경로 상에서 간접적으로 중경과 황수의 거리를 제시하고 있다.

본인은 현 적봉시 일대를 수와 당(고구려 멸망 전)의 영주가 있던 곳으로 보고 있다.

수의 영주는 현 밀운 고북구 근방에서 현 적봉시로 진행하는 일선상에 있었을 것이다

만약 적봉이 당 영주였다면 송형령은 적봉 서북쪽의 송산이 될 것이다.
감방친구 19-02-28 09:36
<중경과 황수(현 시라무렌강)의 거리>

1. 요사 지리지 상경도

송국(宋)의 대중상부(大中祥符, 1008~1016) 9년에 설영기(薛映記)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상경(上京)은 이러한데, 중경(中京)에서 정북쪽으로 80리를 가면 송산관(松山舘)에 이르고 70리를 가면 숭신관(崇信舘)에 이르고 90리를 가면 광녕관(廣寧舘)에 이르고 50리를 가면 요가채관(姚家寨舘)에 이르고 50리를 가면 함녕관(咸寧館)에 이르고 30리를 가서 황수(潢水)를 건너 석교(石橋)의 옆으로 요주(饒州)가 있는데 당국(唐)이 거란(契丹)에 일찍이 요악(饒樂)을 설치하였으며 지금은 발해(渤海) 사람들이 살고 있다. 50리를 가면 보화관(保和館)인데 흑수하(黒水河)를 건너 70리는 선화관(宣化舘)이고 50리는 장태관(長泰舘)이다. 장태관(舘) 서쪽 20리에 불사(佛舍)들이 있어 백성들이 사는데 즉 조주(祖州)이다. 또한 40리를 가면 림황부(臨潢府)에 이른다.


2. 무경총요

北至上京六百九十里,正北八十里至臨都館(80),又四十里至宮室館(40),又七十里至松山館(70),又七十里至崇信館(70),又九十里至廣寧館(90),又五十里至姚寨館(50),又五十里至咸寧館(50),又三十里渡漢石橋(30),旁有饒樂州,蓋唐常於契丹置饒樂府,又五十里至保和館(50),又七十里渡黑水河至宣化館(70),又五十里至長秦館(50),西二十里即祖州,又四十里至上京(40),東微北至木葉山五百一十里。
감방친구 19-02-28 09:49
무경총요와 요사 지리지 상경도를 비교하면
중경 ~ 황수(현 시라무렌강)의 거리가 각각 480리(무경총요), 370리(요사)로 차이가 있다

이는 경로의 차이에 있는데
다른 것은 다 일치하지만
중경에서 송산관까지에 해당하는 처음 부분이 불일치 한다.

무경총요(480리)는
중경 ㅡ> 임도관(80) ㅡ> 궁실관(40) ㅡ> 송산관(70)으로
중경에서 송산관까지 190 리를 가는 반면

요사 지리지 상경도 코스(11세기 송나라 사신의 거란 방문 기록인 설영기)는
중경 ㅡ> 송산관(80)으로
임도관과 궁실관 경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요사에는 본인이 찾아본 바로는 임도관과 궁실관, 또는 그 비슷한 것도 기술돼 있지 않다.

그런데 그 명칭을 보자면 임도는 도읍에 임했다(접했다), 궁실은 궁궐이라는 뜻이다.

즉 이로 미루어 보면
ㅡ 임도관은 중경의 입구
ㅡ 궁실관은 중경의 궁궐로 가는 입구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이 두 사서를 비교하면
요사에 수록된 설영기 상의 출발지는 무경총요에 등장하는 궁실관에서 송산관 방향으로 30리 지점으로

이 30리 지점을 중경의 위치로 말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추측하자면
ㅡ 거란 중경의 중심지가 움직였거나
ㅡ 무경총요보다 200여 년 후에 쓰여진 요사의 기록이 그때까지 남아있던 여러 자료를 보다 객관적으로 활용했다 보여지므로 타당하거나
ㅡ 반면 그 200여 년이 흐르고 그 사이에 정권주체가 금과 원으로 두 번이나 바뀐 상황에서 자료가 유실돼 부족하였을 수도 있다
감방친구 19-02-28 10:30
그런데 포인트는 거리뿐만이 아니다

요사와 무경총요 모두
중경에서 황수까지, 그리고 요(악)주까지 정북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무경총요에서

요주 기술조에서
상경은 요주 동북쪽 30리(東北至上京三十里),

상경 기술조에서
요주는 상경 서남쪽 300리(西南至饒州三百里)

라고 돼 있는데
일단 요악주는 황수 북쪽에 접해 있고
요사와 무경총요 모두 요주~상경 거리를 210리라 했으므로 요주 기술조에서의 30리는 300리의 오기임을 확인할 수 있다

상경은 현 파림좌기에 있었으므로 그 서남쪽에 요주가 있었고 그 요주에서 정남쪽으로 500(무경총요 기준)~400(요사 기준)에 중경이 있었다는 말인데 이는4km 십 리 기준 200~160km에 해당하는 거리이다
감방친구 19-02-28 10:38
거란 상경도 요(악)주는 본인이 지난 해 여름에 영주 위치 추적하며 이곳에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는데

학계에서는 현 적봉시 임서현에 비정하며 송나라 지리도에서도 그 근방(임서현 동쪽)에 표시하고 있다

임서현은 이곳이다

린시 현
중국 내몽골 자치구 츠펑 시
https://goo.gl/maps/ch1HfWyRyNG2

즉 이곳에서 정남쪽으로 160~200km 지점에 거란 중경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 지점은 정확히 현 적봉시와 일치한다
감방친구 19-02-28 10:44
사실 거란 중경 위치 고찰은 지난 해 봄에 준비를 해뒀는데 역대 사서를 교차하였을 시에

중경을 기준 서쪽, 북쪽 위치에서의 중경 위치는 현 적봉시에 부합하고 남쪽, 동쪽 위치에서는 현 학계 통설 비정지인 영성현(닝청현)에 부합한다

이는
ㅡ 현 조양을 거란 흥중부이자 역대 영주 위치로
ㅡ 현 요하를 요수로
고정하여 보는 역대 사가들의 오인과 곡필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감방친구 19-02-28 10:46
거란 중경 위치 문제는 '거란 중경 찾기'라는 제목으로 이 긴 추적인 영주와 고구려 서계 추적의 일환으로 다룰 것인데 이렇게 미리 이곳에 풀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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