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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4일 (수)

[한국사] 고조선 왕검성의 위치는 어디인가 ?

도배시러 조회 : 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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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수의 동쪽에 뭐가 있었는지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패수 동쪽 부근에 있었던 것. 패수 동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던 것.

● 사기 조선열전 본문 
조선의 왕, 만(滿)은 연나라 사람이다.
연나라 전성기때에는 진번과 조선을 복속하고 장새를 구축하고 관리를 두었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한 후에는 요동의 변경이 되었다. 
한나라 때에는 지키기에 너무 멀어서 요동의 옛 장성을 수리하고 패수를 경계로 연(국,군)에 속하게 하였다.
연(군)왕 노관이 반란을 일으켜 흉노로 가고, 위만은 천여인의 무리를 모아 망명하였다.
추결(魋結, 서남이西南夷의 상투) 머리에 만이복(승마복)을 입고 장새의 동쪽으로 나가 패수(浿水)를 건너 
진나라(秦)의 상하장(上下鄣) 옛 공터에 거했다. 
진번과 조선을 복속시키고 옛 연-제 나라의 망명자를 모아 왕노릇 하였다. 도성은 왕험(王險)이다.

● 삼국지 위서 동이전 마한의 주석 위략
진시황이 천하를 병탄하고 몽염(蒙恬)에게 장성을 축성하여 요동에 이르게 하였다. 
이때에 조선왕 부(否)가 있었는데, 진시황의 공격을 두려워하여 진나라에 복속하였지만 조회(朝會)에 나가지는 않았다.  
부(否)가 죽고 그 아들 준(準) 이 왕이 되었다. 
이십여년 후에 진승(陳), 항우(項)가 일어나니 천하에 난리(亂)가 나서 연-제-조나라 백성들이 고통에 시름하였다. 
점점 (고조선) 준왕(準)에게 망명을 하니, 준왕이 그들을 서쪽 방면에 두었다. 
한나라가 노관(盧綰)을 연왕(燕王)이 되게하니, 조선과 연(燕, 한나라 행정구역)의 경계는 패수(浿水)가 되었다. 


■ 고조선의 도성 위치를 추적해 봅니다.

1. 진시황때 패수의 동쪽에 뭐가 있었죠 ? 진나라 상하장이 있었습니다.
2. 진나라 상하장이 있을때 조선왕 부(否)는 어디에 살았나요 ? 
 상하장 옆에 있었다면 공격을 받을테니 멀리 떨어져 있었을 겁니다. 패수에서 멀리~
3. 한나라때 위만의 도성 왕험(王險)은 패수의 동쪽에 있었습니다. 


◆ 무엇이 왕검성인가 ?

1. 패수의 동쪽 부근에 있던 위만조선의 왕험성 ? 진나라 상하장 ? 낙랑군 조선현 ?
2. 패수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조선왕 부(否)/준(準) 의 왕성 ?


■ 심화 과정

패수의 동쪽 진나라 상하장에 있던 위만의 왕험성, 그곳에 설치된 낙랑군 조선현
진나라 상하장이 대동강 평양에 있었다면... 조선왕 부(否)의 왕성은 어디에 있었을까 ?
낙랑군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조선왕 부(否)의 왕성이 왕검성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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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3_06380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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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9-07 03:22
X 사기 조선열전 본문 비판

1) 연나라 전성기때에는 진번과 조선을 복속하고 장새를 구축하고 관리를 두었다.

ㅡ "동호를 습격해 1천리를 빼앗고 동쪽으로 조선을 공격"했다는 기술이 "동호를 습격해 2천리를 빼앗았다"로 바뀌더니 "조선을 공격해 2천리를 빼앗았다" 바뀌고 나아가 "진번조선을 복속하고 장새를 두었다"로 바뀜

ㅡ 연은 진번조선을 복속한 사실이 없음
ㅡ 애초의 기록도 공격, 또는 서쪽 땅을 빼앗은 것

ㅡ 진번조선은 진번과 조선이 아니라 진번조선 또는 진조선과 번조선으로 해석해야 함
ㅡ 경상도의 변한과 진한은 마한으로 이주한 조선 유민들이었음
ㅡ 요사에 따르면 현 요양/심양 일대는 진한(진조선)이 있던 곳
ㅡ 즉 전국시대에 본래 진한이 있던 송화강 일대는 부여가 차지하고 진한은 남하해 요심 근방에 자리잡고 있었다 추정할 수있음

ㅡ 현 요심지역까지 있다는 연장성은 실제 유허, 유적이 없음. 그냥 우기는 것


2) 진나라가 연나라를 멸한 후에는 요동의 변경이 되었다.

ㅡ 여기서 말하는 요동은 황하 인근으로


        / 조선
요동
      ㅣ발해(또는 황하 하류)


ㅡ 연나라 때도 진나라 때도 같은 위치의 요동, 같은 위치의 조선

ㅡ 즉 이 시기 조선의 가장 소극적 서한계선은 연산산맥
도배시러 18-09-07 04:50
한무제의 위씨조선 침공 이전의 요동은 [어양군] 무종 입니다. : 동진 인물 서광의 주석
감방친구 18-09-07 05:20
그것은 당시 한나라가 삼은 요동이죠
즉 그 말은 당시 한나라와 조선의 경계가 결국
조백하ㅡ연산산맥/난하 일대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죠
감방친구 18-09-07 05:31
https://m.blog.naver.com/sky_drum/80199753184

한나라에서
연을 두 개로 쪼개서 각각 연과 요동으로 삼은 것


이 요동의 위치는 양평(창평)의 위치와 겹침


동시에 3개의 요동이 존재하게 됨
ㅡ 연과 제, 그리고 진의 요동(랑방ㅡ천진시 일대)
ㅡ 진장성의 요동(한단시 일대 추정)
ㅡ 상기 연을 쪼개 무종을 수도로 삼은 한의 요동(북경 동북 인근)
감방친구 18-09-07 03:47
진나라 몽염은 태행산맥 서쪽에서 흉노를 막고 있었음
몽염은 흉노를 공격하고 방어하며 하투(河套) 이남을 진나라 땅으로 만듦

이 때에 쌓은 것이 소위 만리장성

진나라 만리장성은 임조~요동인데
요동은 이 당시에도 한 곳이 아니었음

진나라의 국가의 존망을 건 과제는 흉노를 방비하는 것
ㅡ 그런데 미쳤다고 현 심양 지역까지 장성을 쌓고 자빠졌냐?

사기에는 임조~요동 진장성이 만리라고 적고 있는데
한서에는 진나라의 이 임조~요동 장성을 수천리라고 적고 있음

만 리 vs 수천 리

무슨 얘기냐
만 리든 수천 리든 수사표현에 불과한 것이고
실제 길이는 차라리 한서의 수천 리 표현이 가깝다는 말

하투(河套)는 현 오르도스 지역임
흉노의 남하를 막기 위해 쌓은 진장성의 동쪽 종말점인 요동은 기껏해야 현 한단시 인근으로 비정할 수 있음

그러면 연나라의 요동은 무엇이냐
화식열전에서는
연나라, 조나라, 제나라의 옛 영역에 모두 요동이 들어가 있음
감방친구 18-09-07 03:48
하투(河套)는 현 오르도스

어얼둬쓰 시
중국 내몽골 자치구

https://goo.gl/maps/iZB5awr5u232
감방친구 18-09-07 03:50
진장성의 동말점의 비정 기준지가 돼야 하는 곳은 한단시

한단 시
중국 허베이 성

https://goo.gl/maps/c3FQ7r58u3r
감방친구 18-09-07 04:00
조선의 서쪽에 연접해 있던 연/진의 요동은

창주시~랑방시~당산시 일대에서 찾아야 함

랑팡 시
중국 허베이 성

https://goo.gl/maps/h8qYjXBJRZB2
감방친구 18-09-07 04:40
위만이 건넜고 한나라가 연나라의 동쪽 경계로 삼은 패수는 북경의 북동쪽에서 동남쪽으로 흐르는 조백하일 가능성이 높음

Chaobai River
중국

https://goo.gl/maps/qyhzJcJ3vrT2
감방친구 18-09-07 04:48
사서를 면밀히 교차 분석하여
사서가 말하는 것을 사실의 기준으로 삼고 고고물질 상황을 분석해야지

지랄하고
현 북한 평양을 고조선ㅡ고구려 평양으로  못 박아 놓고
BC 4세기 이후 난하와 요심 사이에 현전히 파급한 중국계 물질 상을 분석하니

연진 장성이 서북한까지 내려오는 중국 동북공정에 앞장 서서 길잡이가 돼준 꼴

전국시대에 수많은 고조선계 중국인들이  번조선(변한, 불한)으로 망명해 왔고 위만조선은 아예 이들 유민들이 쿠테타를 일으켜 세운 나라

난하~요심의 물질상은 이러한 사실정황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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