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려 공민왕의 지용수
...
압록강鴨綠江에 서너 마리의 말이 함께 통과할 수 있는 부교를 설치하게 했다. 우리 태조와 임견미가 먼저 건너고 여러 부대들이 차례로 건넜는데, 군사들이 차례를 다투다가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발생했으며 사흘 만에 도강을 완료했다.
...
“요심遼瀋은 우리나라의 국경이니, 그 거주민은 우리 백성이다. 지금 의로운 군대를 동원해 이곳을 안정시키고자 하는데 만약 산채(山寨)로 달아나 숨으면 개별 부대로부터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으니 즉시 부대로 출두해 상황을 알리라.”
...
또 금주(金州 : 지금의 랴오닝성 진쩌우구[金州區], 여순-다렌)와 복주(復州 : 지금의 랴오닝성 푸쩌우성[復州城]?, 잉커우시 부근) 등지에도 다음과 같은 방을 붙였다.
“본국은 요임금 때 세워졌고, 주(周)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면서 영토를 내렸으니 서쪽으로 요하(遼河)에 이르는 국토를 대대로 지켜왔다. 원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 공주를 시집보내고 요심(遼瀋)지역을 탕목읍(湯沐邑)으로 삼고 분성(分省)을 두었다. 말엽에 덕을 잃어 천자가 수도를 떠나 피신하였는데도, 요심의 두목관(頭目官)들은 영문을 모른 채 천자께로 가지도 않았고 본국에 예를 차리지도 않았다. 또한 본국의 죄인인 기샤인테무르와 결탁하여 무리를 불러 모으고 백성을 학대하였으니 불충한 죄를 모면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죄를 묻는데도 기샤인테무르 등은 동녕성에 웅거한 채 힘을 믿고 명을 어기고 있다. 대군이 공격하면 가림 없이 모조리 분쇄될 터인 즉 그 때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요하 동쪽의 거주민은 우리 국토 안의 백성들이니 높고 낮은 두목(頭目)들은 빠른 시일 내 자발적으로 귀부해 벼슬과 녹봉을 받는 혜택을 누리라. 만약 귀부하지 않는다면 동경의 전례에 따라 처벌할 것이다.”
다음날 부대가 성 서쪽 40리에 진을 쳤는데, 이날 밤에 붉은 기운이 군영으로 닥쳐오더니 불처럼 피어올랐다. 일관(日官) 노을준(盧乙俊)이, 이상한 기운이 군영에 닥쳐왔으니 진지를 옮기면 크게 길할 것이라고 건의했다. 당시 만호 배언(裴彦) 등이 석성(石城 : 지금의 션양시[瀋陽市] 부근)으로 고가노(高家奴)를 공격하러 갔다가 귀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로 머물러 기다리려고 했으나 노을준의 건의에 따라 군사를 돌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용수 [池龍壽] (국역 고려사: 열전, 2006. 11. 20., 경인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