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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5일 (목)

[한국사] 압록강과 평양 추적

감방친구 조회 : 1,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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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압록강과 평양을 추적한 지 1 년이 되었습니다

학계 통설 쪽도 학계 비주류설 쪽도 참고하지 않고
오직 사서만 교차 분석하여 고찰하자는 고집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제 견해는 제 견해가 아니라 사서에 적힌 그대로입니다

고구려, 발해, 고려 전기까지 압록강은 현 요하였고
고려 최초기 왕건이 현 평양을 고구려 평양이라 천명하면서
송대 사서부터 현 압록강의 지리정보와 현 요하의 지리정보가 섞이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현 평양과 고구려 평양의 지리정보가 섞이게 됩니다

이러한 결론은 어느 누구라도 중학교 이상의 공교육 과정을 준수하게 마친, 상식적, 일반적 사고력을 지닌 이라면 조선/명ㆍ청 시대 사서부터 거꾸로 차근차근 거슬러 올라가며 사서를 고찰하게 되면

특출 난 두뇌의 소유자가 아니라도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탁의 말씀은 부디 십대, 이십 대 분들이 양심과 소신, 의지를 가지고 역사 연구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젊은 여러분이 아니면 누가 이 나라의 대안이요 미래가 돼주겠습니까

저는 가난하지는 않지만 윤택하지도 않은 사람으로
늘 생업에 시달리며 살고 있습니다

하여 향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압록과 평양을 중심한 제반 문제를 차근차근 재고찰하겠습니다

캐쉰 18-05-17 14:33
'친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앞으로도 게속된 연구를 통한, 활발한 발표 부탁드립니다.
하나 질문사항 있어 글을 씁니다.
왕건이 현 평양을 고구려 평양이라고 천명했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사서에
나오는 내용인지요?제가 님의 글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고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감방친구 18-05-17 15:46
천명했다는 기록과 표현은 사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고찰을 통하여 도달한 결과입니다
저는 "현 평양이 과연 고려 서경이 맞는가?"를 추적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조선시대 문헌과 고려시대를 다룬 고려사 등의 사서,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까지를 다룬 삼국사기를 분석하였습니다
결론은 "맞다"입니다

이어서 저는 "그렇다면 현 평양이자 고려 서경인 곳이 고구려 수도로서의 평양이 맞는가?"를 추적했습니다

하여
1)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수도인 평양 지역을 흡수한 기록이 전혀 없으며
2) 애초 나당 연합시 약속한 신라 몫은 패수 이남이며
3) 신라는 이 패수 이남의 땅도 고구려 멸망 후 제대로 차지하지 못 했고
4) 다만 8세기 발해ㆍ당 전쟁에 동맹국으로서 참전하면서 당으로부터 패수 이남을 재공인 받았으나 역시 그곳을 신라가 확보했는지 검증할 기록이 없으며 그 패수를 대동강으로 보더라도 어디까지나 대동강 이남이지 현 평양이 아니며
5) 발해는 대인수 때에 강력하고도 활발한 남정을 실시하여 특히 수나라 요주이자 발해 동평부이자 요나라 요주 지역을 확고히 하고 특히 남계인 신라와의 접경지역을 학계에서 함경남도, 또는 강원도 북부로 보는 니하(니하의 이칭 또한 패수)로 정했으며 만약 대인수의 남정 과정에서 고구려의 적통국을 자처하는 발해가 고구려 수도로서의 평양을 신라가 기웃거리는 것을 그냥 지켜봤다 보기 어려우며
6) 삼국사기에 현 평양으로 보이는 곳이 비로소 등장하는 것은 후고구려 (태봉)에 자진항복한 평양성인데 이 기사에서 평양성이 항복할 때에 같이 항복한 것으로 거명되는 지역이 현 울산, 경북 지역의 토호들이어서, 또한 서울/경기도 광주/남양주 일원이 역시 평양으로 일컬어진 기록에서 후고구려에 자진항복하여 흡수된 평양성이 현 북한 평양인지 단언할 수 없으며
7) 학계에서 현 평양을 고구려 평양으로 보는 중요 근거인 소위 평양석각에는 실상 평양이 아니라 한성이라 적혀 있으며
8) 아무것도 없던 현 평양지역에 성을 짓고 도시를 건설하는 대대적 토목공사와 대규모 사민을 실시한 것은 고려 왕건 때부터로 거의 1세기에 걸쳐 개발되었으며
9) 소위 기자신사 등의 유적은 고려시대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이며
10) 황해도 구월산 등의 단군 관련 명칭 역시 동음이의어가 단군신화와 결부된 경우이며 (구월산 지역은 고구려 궐구현, 즉 골말)
11) 고려는 발해 멸망 후 광종 대에 이르러 현 요동지역까지 북방영토를 개척(고려사 서희 열전)
12) 압록강이 비로소 등장하여 본격 거론되는 것이 고려 성종 때로 970년대
13) 고려 성종은 압록강 안팎지역을 개척하며 상류까지 나아가 991년에 정지작업 완료
14) 고려와 거란의 경계는 현 쌍태자하 지역(판진시)의 보주(무경총요, 요사, 독산방여기요 등), 학야현(거란 동경 서남쪽 70리/요사, 독사방여기요), 신주(현 사평시/요사, 독사방여기요, 만주원류고, 성경강역고 등)
15) 거란이 2~3차 침입에서 퇴각한 곳은 철령시 남쪽의 현 무순시(거란 동경도 귀덕주/귀주)
16) 귀주대첩의 살수를 대명일통지/독사방여기요 등의 사서는 현 평양 서북쪽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실상 요사와 요사 지리지에는 다하ㅡ타하 지간에서 물에 빠져 죽으며 패했다고 기록하고 또 타하가 귀덕주/귀주에 있다고 기록
17) 송대 사서부터 압록강의 위치와 그 발원지가 두 곳이 섞여서 기술되기 시작하는데 현 압록강과 현 동요하~쌍태자하/대요하, 현 길림합달령과 현 백두산

등등의 여러 사서 상의 교차 정황을 통하여
왕건의 평양은
1) 고구려에서 평양(난벌 : 너른 벌판)으로 불린 여러 동명이처 가운데에 한 곳이거나 왕건 당시에 평양으로 칭해졌거나 평양이라 일컬을 만한 땅 형태로서 고구려의 땅이었던 곳으로
2) 후고구려가 태봉/마진의 궁예 시절 국호에서 왕건에 이르러 고려로 정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기획적이고 계획적으로 현 평양을 고구려 평양으로 개발ㆍ선전하였다는 결론에 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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