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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0일 (토)

[한국사] 거란 동경과 고구려 각 성의 위치 시각화(수정안 게시)

감방친구 조회 : 2,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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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각성비정최종.png


북송 무경총요(1044년)를 분석한 내용을 근거로 지도 위에 시각화 하였습니다

앞에 게시한 저의 무경총요 분석을 참고하여 이 지도를 보시길 바랍니다

거란 동경 비정지를 흐르는 추자하(錐子河)의 강줄기는 동쪽으로 조금 더 치우쳐야 하는데 마우스로 선을 긋다보니 정확도가 떨어졌습니다

물길은 중국역사지도집 요/북송 시대 지도를 근거로 하였습니다



## 거란 동경과 안시성, 건안성, 오골성 등의 위치를 상기 처음 게시한 지도에서 다소 수정하여 표시하였습니다. 기존 표시보다 남서쪽으로 이동시켰습니다 이렇게 하면 흥중부(영주/현 조양시)에서 동남쪽으로 270리에 안동도호부가 있고 평양성이라 부른다ㅡ라고 한 무경총요의 기록이 포섭이 되면서 각 소처 비정이 보다 무경총요의 기술 내용에 충실하게 됩니다 또한 이렇게 하면 금주 옆에 표시한 '전한 안시현'은 표시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초록색 반투명 온점이 상기 지도 위치에서 수정하여 새롭게 표시한 위치입니다.



동경안시수정안.jpg




뚜리뚜바 18-04-25 12:23
으헐 날로 실력이 느시는거 같습니다 확실히 감방님 자료는 지도를 좀 봐야 저같은넘이 이해가능한듯 ㅋㅋ
감방친구 18-04-25 12:33
ㅎㅎ고맙습니다
그림판에 마우스로 그리고 있습니다
포토샵과 일러 뭐시기는 깔아놓고는 아예 실행도 안 해 봤네요

지도 상의 거란 동경은
현주, 건주가 위치한 북진시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주는 동단국왕 야율배의 무덤인 현릉에서 유래했는데
아들인 거란 황제 세종이 만들었습니다
감방친구 18-04-25 12:30
거란 동경은 본래 발해 동평부 자리입니다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가 제일 먼저 차지한 곳이 바로 동평부입니다
이 동평부를 요주 동평군으로 삼았고
동단국이 이곳으로 옮겨와서 요주는 남경으로 승격되면서 명칭만 남습니다

10 세기 말 고려는 남쪽으로 현 판진시~잉커우시 일대까지 진출하여 차지합니다
이곳이 보주, 정주입니다
보주와 내원성은 거의 모든 사서가 현 판진시 일대로 제시하고있습니다
그러나 거란 성종의 3차례, 근 30년에 걸쳐 고려를 침략하면서
보주, 정주, 내원성을 빼앗아버리고 각장을 설치해서 물류를 장악하여 부를 축적합니다

요사 지리지 이하 여러 사서에서 귀덕주로 제시하는 현 무순 일대는 본래 발해 서경압록부 자리이자 거란 녹주 압록군 자리입니다

귀덕주가 무순으로 교치되면서 녹주는 녹성현이라는 껍데기로만 남게 됩니다

요사 지리지가 전하는 귀덕주 연혁은 본래 신성이 위치했던 곳(서북)과 본래 귀덕주가 위치했던 곳(강동 6주, 개원~요원)의 지리연혁이 혼입된 것입니다
지수신 18-04-25 12:34
결국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주장처럼 요양 근처라는 결론인가요?

근데 이렇게 찍어놓고 보면 한방에 이해가 되면서
이른바 고구려 요동방어선의 실체가 설명되는것 같긴 합니다.
주요 성들이 평양을 보위하는 형세로 포진해있네요.
감방친구 18-04-25 12:36
저는 인하대 고조선 연구소 주장은 전혀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원문 사서만 분석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제 주장이라기보다 사서에 적힌 내용 그대로라고 보시면 됩니다
감방친구 18-04-25 12:41
저는 가탐 도리기 2도의 오골강을 추자하에서 판진시 해구 방향으로 흐른, 훗날 쌍태자하 물길이 된 작은 물줄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감방친구 18-04-25 12:59
가탐 도리기 1도의 안동도호부는 지도상에 표시한 요동성으로 볼 수 있다

박작 남 700, 평양 남 800 은 고대 거리 수치가 거개 그러하듯 오늘날 같이 지표상 거리가 아니라 사람이 갈 수 있고 나 있는 길을 따라(연행길 코스처럼) 걷는 거리이다

지표상에서
요양~금주는
요양~현 압록강보다 훨씻 가깝게 보이지만
사서(독사)에 기록된 거리는 금주까지 600, 압록강까지 560이로 더 멀다

지도 상에서 요양과 현주까지 거리가 독사방여기요에서 400리였는데 금주까지는 600리였다
지표 상으로는 거의 같아 보이는 두 구간이 무려 200리나 차이 나는 것이다

이런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감방친구 18-04-25 13:30
광령위(현주)에서 광녕중둔위(금주)까지 200리고
요동도사(요양)에서 광녕위까지 400리므로
요양~금주 600리는 광녕위를 거쳐서 간 거리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각 지점을 거쳐서 이동하는 거리가 고대의 거리수치이다

소릉하부터 현 요하 사이는 다 늪지대였다
요택은 보통 소릉하ㅡ대릉하ㅡ의무려산 지역을 가리키나
아예 천진ㆍ창려부터 잉커우까지 바닷가가 다 늪이요 뻘이었다

그러니 가는 길이 복잡하고 긴 것이다
감방친구 18-04-25 13:12
지도 상의 요수는 무경총요에서 말하는 요수를 표시한 것이지 전한 요수를 나타낸 게 아니다

전한 안시현으로 표시한 곳은 무경총요에서 영주(거란 흥중부)에서 동남쪽 270리에 있는 평양성이자 안동도호부란 한 곳을 표시한 것인데 이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감방친구 18-04-25 13:35
무경총요의 동경ㅡ금주 300리, 동경ㅡ요하 150리, 조양ㅡ안동도호부/평양성 (안시성) 270 리를 고려한다면

지도 상에서 동경의 위치는 보다 남서쪽으로 이동시켜야 합니다
감방친구 18-04-25 13:37
제가 지도를 그리며 동경ㅡ현 압록강 900리에 집중하다 보니 저렇게 표시가 됐네요

그러나 요양ㅡ현주 (광녕위) 400 리를 고려한다면 거란 동경은 제가 표시한 위치보다 더 북진시(현주, 건주) 쪽으로 붙어야 합니다
스파게티 18-04-25 20:56
언젠가 정리가되어  확정적인  지명 지도로 보고싶네요

햇갈림 이렇게보면
감방친구 18-04-25 22:00
참 어이 없는 말을 하시네요
스파게티 18-04-25 22:08
지도에 현재 지명들 빼고  과거 지명으로 만 써있는 지도가 보고싶어서  한말임
감방친구 18-04-25 23:44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근거
612 년 수나라 육군의 침공 및 패퇴로 본 위치

A
요수 ㅣ 수나라 육군 ㅣ압록강 ㅣ살수 ㅣ 평양성
(서) ---------------------------------------------------> (동/동남)

B
압록강-----------------살수
(서) ----450 리----(동/동남)

※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영양왕 23년 기록
"가을 7월, 우문술의 군대가 살수에 이르러 강을 절반쯤 건널 때, 우리의 군사가 후방에서 그들의 후속 부대를 공격하였다. 적장 우둔위장군 신세웅이 여기에서 전사하였다. 그러자 여러 부대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걷잡을 수가 없었다. 장수와 군졸이 뛰어 도주하는데, 하루 걸려서 압록강까지 4백5십 리를 행군하였다.
(秋七月 至薩水 軍半濟 我軍自後擊其後軍 右屯衛將軍辛世雄戰死 於是 諸軍俱潰 不可禁止 將士奔還 一日一夜 至鴨綠水 行四百五十里)"

ㅡ 기록에는 수나라 패잔병들이 하루밤낮을 뛰어서 도망쳤다고 돼 있다 근 200km를 하루에 이동하는 게 가능한가?
ㅡ 이 기록은 무경총요에도 있는 내용이다
ㅡ 一日一夜는 수사라고 보는 편이 합당하다 그만큼 황급히 도망쳤다는 말이 되겠다
ㅡ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살수에서 압록강까지 450리라는 기록이다
감방친구 18-04-25 23:49
전근대 이동거리를 자꾸 현대 지도에서 지표상 거리와 비교를 하다 보니 문제이다

포인트는 혼하 상류에서 압록강 건너까지 450리라는 것이다
감방친구 18-04-26 00:30
요양에서 심양까지 120리, 요양에서 철령까지 240리,
심양에서 무순까지 90리이다
감방친구 18-04-26 02:22
동경이 동남으로 움직이고
압록강이 현 압록강으로 움직이면서
동경 근처와 압록강 근처 지명이 모두 움직였다
Attender 18-04-26 20:52
앗.....! 드디어 감방친구님의 결과가 나왔군요!!!!
드디어 대망의 시각화!!!!!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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