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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17일 (수)

[한국사] 무경총요로 본 안시성과 거란 동경의 위치

감방친구 조회 : 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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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서 지금까지 밥도 안 먹고, 씻지도 않고 이러고 앉았습니다

이게 쉬는 건지 일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보통 이렇게 사서 분석하면서 담배를 많이 태우기 때문에 더 피곤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경총요는 송나라 인종이 1040년에 명하여 1044년에 완성한 관찬 병법서이자 군사용 지리서입니다

당시 송나라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정밀히 만들고자 했는지 짐작할 수 있으며 내용도 단순 병법서라 하기보다는 종합서라 하는 편이 옳을 정도입니다

무경총요는 요사 지리지보다 훨씬 먼저 나온 것이고 송나라 자체가 거란을 적대국으로 상대하는 당사자로서 현실 정보를 잘 담고 있다고 보이며 특히 거란의 동경도 지역의 교치와 사민에 따른 혼잡이 발생하기 전의 정보를 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본 내용은 본인이 오늘 사서 원문을 읽으며 직접 분석하여 시각화한 것입니다


무경총요기술동경.jpg


무경총요《武經總要》원문(본문 지리정보 시각화의 근거)

契丹,其先與奚異種同類,俱為慕容氏所破,竄於松漠之地,後居黃龍之北遼澤間。遼澤去榆關一千一百里,榆關去幽州七百里,其地南接海,東際遼河,西包泠陘,北界松陘,山川東西三千里。唐置契丹王兼松漠府都督。光啟中,中原多故,北邊無備,其王欽德稍蠶食,達靼、奚、室韋之屬咸被驅役,族帳寢盛。

遼州,古遼西北之地,臨渝關在州東北五里。先是平渤海,遷其民置州以居之,仍名其邑曰遷民。東至來州七十里,西至閏州四十里,南至海州三十里,北至利州四百五十里。

潤州,盧龍塞,東北接遼東澤,唐光啟中,契丹有營平之地,因渤海之叛,既討平,遷其部落,置州以居之,取潤水為名。東至遼州四十里,西至渝關四十里,南至海三十里,北至中京五百五十里。

中京四面諸州澤州,松亭關北,遼澤之地。東至利州百里,北至中京百里,西至北安州二百里,南至平州二百五十里,西南至松亭關二百里。

利州,虜承天后所建,東至建州百二十里,東北至建州百一十里,西南至蘭州六十里,南小凌河路至平州五十里,西北至中京百五十里。建州,胡中地,今號保靜軍節度,本遼西之地,德光立為州。

興中府,營州地,漢末烏桓鮮卑所居,唐平盧軍節度使泊所,今號興中府。

東至遼河三百里,西至中京三百里,西南至建州六十里,北至湟水四百里(舊契丹界),西北至松陘嶺百里,東南至安東都護府二百七十里,號平壤城,東北至白川州七十里。

宜州,按《皇華四達記》:營州東北八十里,凡九遞至燕郡城,自燕郡東經汝羅守捉,渡遼州十七驛,至安東都護府,約五百里。今以契丹地圖校,至東京五百二十里。
東京,即安東都護治所,州城即古之燕郡城是也。本遼之西地,漢魏間烏桓鮮卑所據,在營州之東,契丹置崇儀軍節度。舊有江南水軍,號通吳軍,置營居之。東至醫巫閭山,西至霸州二百里,南至錦州九十里。

北白川州,遼州遼隧縣故地,宋天禧中契丹建為州,仍曰始平軍。東至乾州百二十里,西北至宜州四十里,南至海二百里,北至中京五百五十里,北至醫巫閭山八十里。

海北州,古城也,在遼河之西,滄海之北,阿保機建為州。東至錦州八十里,南至海百二十里,西北至中京五百三十里。

穆州,東至醫巫閭山,西至中京四百里,南至醫巫閭山寨,北至酒糟河。

東京,遼東安市城也。城之東即大遼河,城之西即小遼河。秦屬遼東郡,漢屬幽州,唐太宗平高麗,因名所幸山為駐蹕山,山在東北。後為渤海國,契丹建為遼州,得其地為東京。巖州在其東,即李所平白巖州也。《皇華四達記》曰:自安東府東南至平壤城八百里,西南至都里海口約六百里,西北至建安城約三百里,正南微東至鴨綠江北泊約七百里。今以契丹地形圖參校,惟達安城不知處所,其他地形遠近率同也。東至熟女真界約五百里,西至遼河百五十里,又八百八十里至中京,西六十里至鶴柱館,又九十里至遼水館,又七十里至閭山館,在醫巫閭山中,又九十里至獨山館,又六十里至唐葉館,又五十里至乾州;微北六十里至楊家寨館,又五十里至遼州;北六十里至宜州,又百里至牛心山館,在牛心山北中,又六十里至霸州,又七十里至建安館,又五十里至富水、會安至中京三驛程,各去七十里;南至平州五十里,自平州至幽州五百五十里;北至沈州百二十里;東南至鴨綠水九百里;西南至錦州四百里;東北至黃龍府七百里;西北至顯州三百里。

東京四面諸州沈州,德光所建,仍曰昭德軍,契丹舊地也。東至大遼水,水東即女真界,西南至東京百三十里,北至雙州八十里。

長白山,在女真故會寧府南六十里,橫亙千里,高二百里。草木烏獸盡白,故名其顛。有潭,周八十里,南流為鴨綠江,北流為混同江,東流為阿也苦河。

醫巫閭山,《周禮》曰:東北曰幽州。其山鎮曰醫巫閭山,其川曰奚養,即遼東山也。唐築巫閭守捉城,契丹改為閭州,又置乾州、顯州,在山之南,二州相去七里。

十三山,北醫巫閭山,南距大海,東至東京,西小遼水。

狠山,北黑山,東祖州。

駐蹕山,在東京之東,唐太宗駐蹕之所。

鴨綠水,高麗國西,源出靺鞨白山,水色似鴨頭,去遼東五百里。高麗之中也,此水最大,波瀾清澈,恃之以為天塹,水闊三百步,在平壤城西北四百五十里。水東南二十里分界,至新羅國興化鎮;自黃土巖二十里西北至東京八百五十里,南至海六十里。

遼水,在漢樂浪玄荒之地,東西四百八十里。《水經》云:大遼水源出靺鞨國西南山,南流會白槍水,至安市城。今號東京小遼水,源出遼山西南。流與天梁水會,在國西也。

潢水,出西北塞外,不知發源之所,水北即紫蒙川,有石橋,本契丹國舊地。

紫蒙川,秦制三十六郡,北沙漠,即紫蒙北白馬澱是也。偽燕慕容世居北夷,邑於紫蒙之野,元康中定都大棘城,在大漠之南。唐營州節度張守破契丹,出師次於紫川,大閱軍實。


감방친구 18-04-22 14:09
3의 안동도호부는 요서의 옛 고성에 있다가 마지막으로 폐지된 안동도호부로 보이며 이곳을 평양성이라 한 이유는
1) 한 때 이곳이 평양성이었거나 (여러 평양성 가운데 하나였거나)
2) 안동도호부가 최초 평양성에 설치됐으므로 평양성 명칭이 따라가 붙거나
등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감방친구 18-04-22 14:21
5의 안시성이 거란 동경성이라 무경총요는 적고 있는데
이는 거란 동경도가 발해 동평부 자리였던 현 요하 중류 좌우 지역에서 현 요심지역으로 교치됐다 하는 본인의 추정을 사실에 가깝게 근거해 줍니다

동단국 왕인 야율배는 의무려산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신선놀음을 합니다
당시 동단국 수도인 남경이 의무려산 근처라는 방증이죠

동단국이 의무려 산 동쪽으로 옮겨가 남경이라 불리우게 된 것은
발해 각지에서의 발해부흥운동 때문이었습니다
거란은 동단국 발해인들을 현 요심 지역에 끌어다 놓는데
이들이 말을 안 듣고 계속 반란을 일으킵니다

거란이 986 년 여진 정벌 전에 먼저 고려를 정벌하고자 대대적 준비를 하는데 요택에 물이 차서 출정을 포기합니다

출정지가 거란 중경지역이었던 것이죠

이 말은 현 요심 지역이 당시에 거란의 직접지배력이 약했다는 의미입니다

거란은 고려 정벌하려고 준비한 병력과 물자로 현 무순 일대의 여진을 정벌하여 10만여의 포로와 20만 두의 말을 빼앗는 대승을 거둡니다

그리고 이어서 993에 쳐들어오지요

이 거란 성종의 여진과 고려에 대한 정벌&침략은 단기 전이 아니었습니다

거의 성종 재위 기간인 40~50 년 동안 계속된 것입니다

거란 성종은 이러한 정벌전을 통하여 주군현을 새로 설치하거나 교치하는 작업 또한 활발히 합니다

따라서 거란 동경도 중심지가 현 요심 지역으로 옮겨 온 때는 거란 성종 때로 봄이 타당하다 보입니다
감방친구 18-04-22 14:25
9와 10의 경우는 당시 고려가 건국 초부터 현 평양을 서경/호경으로 삼아서 고구려 평양으로 선전하였으므로 현 평양을 고구려 평양으로, 평양의 서북계에 위치한 압록수를 현 압록수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보여집니다

그러나 이는 원사 지리지의 "왕건의 평양은 장수왕의 평양이 아니다"하는 기술로 논파가 됩니다

그러나 또한 이러한 이유로 고려 전기 서북계에는 지금의 압록강을 포함한 2개의 압록강이 공존하게 되었던 것이죠
감방친구 18-04-22 14:32
요사 지리지는 안시성의 위치를 동경요양 서남쪽 60리라 기술하고 있는데
동경이 현 요양으로 교치되면서 함께 옮겨왔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무경총요에서 기술한 동경의 위치는 저 위치에서 60리 동북쪽에 위치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발해 요주는 수가 설치한 요주, 또는 당 태종 당시 고구려 요동성과 관련이 있다 보여지므로
무경총요에서 기술한 요주의 위치가 요동성, 즉 양평성의 위치와 관련된다 보여집니다
감방친구 18-04-22 15:18
한원에서 인용한 고려기의 안시성 동북 은산을 이 무경총요에 대입한다면 지도상 3이 고려기에서 말하는 안시성일 가능성이 있네요
감방친구 18-04-22 16:52
가탐 도리기

(營州入安東道)
營州西北百里曰松陘嶺,其西奚,其東契丹。距營州北四百里至湟水。營州東百八十里至燕郡城。又經汝羅守捉,渡遼水至安東都護府五百里。府,故漢襄平城也。東南至平壤城八百里;西南至都里海口六百里;西至建安城三百里,故中郭縣也;南至鴨淥江北泊汋城七百里,故安平縣也。自都護府東北經古蓋牟、新城,又經渤海長嶺府,千五百里至渤海王城,城臨忽汗海,其西南三十里有古肅慎城,其北經德理鎮,至南黑水靺鞨千里。


영주(營州) 서북쪽 100리는 송형령(松陘嶺)이라고 하고 그 서쪽은 해(奚)이며 그 동쪽은 거란(契丹)이 떨어져 있다. 영주(營州)에서 북쪽으로 400리를 가면 황수(湟水)에 이르고 영주(營州)에서 동쪽으로 180리를 가면 연군성(燕郡城)에 이른다. 다시 여라수착(汝羅守捉)을 지나서 요수(遼水)를 건너 옛 한(漢)의 양평성(襄平城)이었던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에 이르기까지 500리이다. (안동도호부에서) 동남쪽으로 평양성(平壤城)까지 800리이고, (안동도호부에서) 서남쪽으로 도리해구(都里海口)까지 600리이며, (안동도호부에서) 서쪽으로 옛 중곽현(中郭縣)이었던 건안성(建安城)까지 300리이며, (안동도호부에서) 남쪽으로 압록강(鴨淥江) 북쪽에 있는 옛 안평현(安平縣)이었던 박작성(泊汋城)까지 700리이다. 안동도호부(都護府)로부터 동북쪽으로 옛 개모성(蓋牟城)과 신성(新城)을 지나 다시 발해(渤海)의 장령부(長嶺府)를 지나며 1500리(안동도호부에서 발해왕성까지)를 가면 발해의 왕성(王城)에 이르는데 발해의 왕성은 홀한해(忽汗海)를 내려다보고 있다. 발해왕성(其)의 서남쪽 30리는 옛 숙신성(肅慎城)이고 발해왕성(其)의 북쪽으로 덕리진(德理鎮)을 지나서 남흑수말갈(南黑水靺鞨)까지 1000리이다.
감방친구 18-04-22 16:56
놀라운 것은
皇華四達記는 가탐 도리기를 가리키는 것인데
신당서 전 가탐 도리기와 이 황화사달기의 내용이 다릅니다

營州東北八十里,凡九遞至燕郡城,自燕郡東經汝羅守捉,渡遼州十七驛,至安東都護府,約五百里。

가탐 도리기에서는 연군성이 영주 동북 180리에 있다고 기술돼 있으나 황화사달기에서는 동북 80리에 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 "연군성 동쪽 여라수착을 경유해 요주 17역을 건너면(지나면) 안동도호부까지 약 500리이다"라고 돼 있어서

"요수를 건너"라고 표현된 가탐 도리기 내용과 다릅니다
도배시러 18-04-22 17:06
수고하셨어요
감방친구 18-04-22 17:07
가탐 도리기가 수록된 신당서는 무경총요가 완성된 해인 1044년에 착수해 1060에 완성하였습니다

즉 무경총요보다 뒤에 쓰여졌다는 말이죠

이것은 다음의 추정을 가능케 합니다
1) 중화주의에 입각하여 거리와 위치를 조작했다
2) 거란 동경도의 교치 후의 상황정보에 맞춰서 내용을 수정 했다

황화사달기가 수록된 무경총요는 당시 송이 처한 상황의 절실함이 반영된 병법총서이자 지리서입니다
뿐만 아니라 무경총요의 사저기자는 황화사달기와 거란지도를 대조해 황화사달기의 기록이 거의 맞다는 것을 확인까지 해줍니다

今以契丹地圖校,至東京五百二十里。
감방친구 18-04-22 17:09
무경총요 해당 기사에는 안동도호부가 2곳 나옵니다

1) 당나라 영주처소인 흥중부 동남쪽 270리(백천주는 요주 요대현입니다, 발해 동평부 지역에 해당합니다)

東南至安東都護府二百七十里,號平壤城,東北至白川州七十里。

2) 영주에서 520리 떨어진 거란 동경

今以契丹地圖校,至東京五百二十里。
東京,即安東都護治所,州城即古之燕郡城是也。

게다가 이렇게 되면 동경도 2곳입니다

1) 흥중부 (영주)에서 520리 떨어진 동경

今以契丹地圖校,至東京五百二十里。
東京,即安東都護治所,州城即古之燕郡城是也。

2) 요하와 150리 떨어져 있고, 대요하와 소요하 사이에 있으면서 거란 중경과 880리 떨어져 있는 동경

東京,遼東安市城也。城之東即大遼河,城之西即小遼河。

요하가 현 요하가 아니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西至遼河百五十里,又八百八十里至中京,西六十里至鶴柱館,又九十里至遼水館,又七十里至閭山館,在醫巫閭山中,又九十里至獨山館,又六十里至唐葉館,又五十里至乾州;微北六十里至楊家寨館,又五十里至遼州;北六十里至宜州,

서쪽으로 요하까지 150리 = 서쪽으로 60리 학주관+거기서 다시 90리 요수관

게다가 연군성이 있는 의주는 북쪽 60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주~안동도호부 거리는 다음과 같은 추정이 가능합니다
1) 직선 거리가 아니라 중간의 여러 역을 거쳐가는 경로로 조선시대 연행길 경로처럼 이리저리 구부러지는 경로이다
2) 안시성은 동경 직속지 일대에 포함돼 있으며 실제 동경성인 천복성은 안시성의 동북쪽에 위치한다
3) 사서기자가 거란 동경도 지역 전체를 마치 수도인 동경인 것처럼 기술하면서 혼동을 주고 있다
4) 영주에서 안동도호부로 가는 길을 인용하면서 동경까지 거리를 거론하는 것으로 보아 안동도호부가 있는 곳을 옛 양평성, 거란 동경 사이에서 혼동하고 있다
5) 거란 동경은 양평성과 안시성 사이에 위치했다
감방친구 18-04-22 17:30
요약하자면
1)가탐 도리기보다 황화사달기가 신뢰할만 하다 보이며
2) 무경총요의 지리정보는 거란 동경이 교치되기 전의 정보이며
3) 무경총요에서 언급하는 거란지도는 교치 후의 지리정보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감방친구 18-04-22 17:35
무경총요는 말하자면 첩보작전에 따라 입수한 군사정보를 담고 있다 하겠는데
요사 지리지와 비교하여 대체로 맞아떨어지나 부정확한 정보 역시 담고 있으니(이는 거란 영토의 확장에 따른 잦은 행정구역 개편, 교치, 사민 등에 따른 것으로 사서기자 역시 이런 혼잡스러움을 언급하고 있다)

이를 테면 천주를 요주라 하고,
중경도 윤주를 뜬굼없이 천진ㅡ진황도 쪽의 노룡새에 가져다 붙이는 등의 오류가 있다

그러나 이 정도 뿐으로
타 사서와 교차가 대체로 됨으로 충분히 근거로 삼을 만 하다
감방친구 18-04-22 17:36
중요한 사실은
가탐 도리기의 원본은 황화사달기로
요수를 건넌 게 아니라 요주의 17개 역참을 지나 안동도호부에 이르는 게 영주입안동도라는 것이다
감방친구 18-04-22 18:17
무경총요는 오늘 처음으로 분석을 한 것인데
시간을 두고 차분히 연구해야 하겠습니다
비록 아주 구체적으로 거리 정보, 위치 정보를 제시하고 있으나
기술이 모순되거나 같은 곳을 두고 다르게 기술하는 것이 제법 있어서
쉽게 볼 사서가 아니네요
도배시러 18-04-23 18:19
東京,遼東安市城也。城之東即大遼河,城之西即小遼河。
거란 동경은 요동의 안시성이다.
안시성 동쪽은 대요하, 서쪽은 소요하가 있다.
도배시러 18-04-23 18:27
醫巫閭山,《周禮》曰:東北曰幽州。其山鎮曰醫巫閭山,其川曰奚養,即遼東山也。唐築巫閭守捉城,契丹改為閭州,又置乾州、顯州,在山之南,二州相去七里。
十三山,北醫巫閭山,南距大海,東至東京,西小遼水。
의무려산 동쪽에 동경, 서쪽에 소요수가 있다.
도배시러 18-04-24 04:32
무경총요... 요사지리지 보다 더 무서운 놈이 있었네요
지수신 18-04-25 09:51
고구려 마지막 수도 장안성의 위치에는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지리적 절대조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국, 그것도 고구려 정도 되는 국가의 수도가 아무 곳에나 들어서지 않으니까요.

1.당서에서 묘사하고 있는, 큰 강을 '천참'으로 삼는 곳이어야 한다.
(큰 배가 원활히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큰 강이어야 한다)
2.그 큰 강은 장안성의 서쪽으로 흘러야 한다.
(장안성보다 서쪽에서 접근하는, 중국세력의 침략에 대응하는 '천참'이기 때문이다)

이 '큰 강'이 대개 '압록수'로 표현되고 있는데.
강단주류에서는 자기들 관념으로 이해할 수 없으니 편의주의적으로 대동강이라 보는 것이죠.
대동강도 현재 평양의 서쪽으로 흐르며 '천참'의 역할을 하니 나름 어긋나지는 않긴 합니다.
뱅기랑 18-07-15 23:10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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