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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6일 (금)

[한국사] 지형도로 본 고려 전기 북방의 이해

감방친구 조회 :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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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지형도와 고려북방강역.jpg


거란 성종은 고려를 여진(발해유민)을 제압하기 위한 이이제이로서 활용하기 위해 986 여진(정안국 추정)정벌 이후에도 여전히 활동하는 장춘, 요원, 개원 일대의 여진족 출몰지인 압록강 동쪽(혼하 상류)을 고려에 할양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세력이 다투고 싸우며 세력이 약화되길 바랐으나 고려는 거란의 기대와는 달리 아주 손쉽게 여진족을 몰아내고 훨씬 더 큰 영역을 개척합니다

거란의 2차와 3차 침략, 그리고 거란 멸망 이전까지 고려를 계속 도발한 이유는 고려가 개척하여 차지한 이 지역을 빼앗아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고려가 개척한 소위 강동 6주 지역은 말그대로 북만주와 동만주로 통하는 길목에 해당하는 곳으로 고려의 허락이 없으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그런 지역입니다

실제 거란은 동북여진으로 가기 위해 고려에 길을 터줄 것을 요청하지만 고려는 허락하지 않았다 하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타납니다

11세기 들어서 여진족은 거의 대부분 고려에 직간접적으로 복속돼 고려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특히 문종 대에는 흑룡강과 연해주 일대의 여진족들이 모두 고려에 행정구역으로 편입할 것을 요청하여 고려의 땅으로 삼는데 고려로서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광대하였습니다

문종 당시의 이들 지역에 대한 학계의 진지하고 성실한 연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감방친구 18-04-21 16:40
본인의 강동 6주 소처 비정은 지난 해 11월에 게시한 본인의 연구에 근거합니다
당시 사서 원문이 아니라 국역 DB를 샅샅이 뒤져서 관련 기록을 찾아 강동 6주 위치의 근거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려 전기 서북계 연구를 계속하여 진행하며 사서 원문을 직접 찾아 고찰하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58438&sca=&sfl=mb_id%2C1&stx=cellmate&page=8
감방친구 18-04-21 16:42
김위현 박사가 1985년에 낸 요금사연구 논문집의 해당 논설이 현 학계 통설의 근거가 되었는데
저는 이 논리를 역으로 이용하여 김위현 박사의 주장을 논박한 것입니다
감방친구 18-04-21 16:44
우리 학계의 문제는 일단 고구려 평양을 현 북한 평양에 고정해 두고 그 위에서 모든 논리를 개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계에 있어서 '고구려 평향=현 북한 평양'론은 거의 성경과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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