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거란(요) 동경의 교치상 추정
거란의 동경은 본래 남경에 있었습니다
동단국이 남경으로 옮겨오면서 남경을 동단국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 때에 발해인들을 현 태자하/혼하 지대에 대거 사민하는데
이들은 훗날 숙여진을 형성합니다
거란은 송으로부터 연운 16주를 얻어내면서 이 지역을 남경으로 삼고 본래의 남경은 동경으로 삼습니다
거란의 동경이 본래 남경 자리에서 훗날의 동경 자리로 그 중심이 옮겨 간 때는
동단국이 남경으로 옮겨진 거란 태종(926~947)가 1차,
여진과 고려 정벌 전쟁을 활발히 벌이며 폐지 되었던 여러 주와 군을 재설치하거나 교치하는 작업을 많이 한
거란 성종(982~1031)가 2차로 생각됩니다
특히 거란 성종 때에 본래의 남경 관할의 행정구역을 요심 지역으로 다수 교치해 기존 동단국의 영토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꾀하였다 생각됩니다
거란의 본래 남경 자리, 즉 제가 지도상에 남경1/동경1로 표시한 지역은 발해 동평부 지역으로,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가 요주 동평군, 태종이 요주 시평군으로 삼았던 곳입니다
이 지역은 발해가 멸망하기 이전에 이미 거란의 땅이 되었던 곳으로 요사에 따르면 발해 영토 가운데에 야율아보기가 가장 먼저 빼앗은 곳이 이곳입니다
거란 태조 야율아보기의 장남, 즉 태자이자 동단국의 왕이었던 야율배는 의무려산에서 신선놀음을 즐겼습니다
이 말은 본래 동단국이 옮겨진 남경 지역이 의무려산 근처에 있었다는 방증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