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구려 비사성의 위치(시각화 지도)
1. 비사성의 위치에 대한 역대 중요 사서의 기록
<요사 지리지 동경도>
海州,南海軍,節度。本沃沮國地。高麗為沙卑城,唐李世勑嘗攻焉。渤海號南京南海府。疊石為城,幅員九里,都督沃、晴、椒三州。
- 해주 남해군, 본래 옥저국의 땅, 고구려 사비성이 있던 곳, 발해가 남경남해부로 삼은 곳.
- (사비성은) 바위로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9리(현대 기준 약 3.5km)이다.
<금사 지리지>
澄州,南海軍刺史,下。本遼海州,天德三年改州名。
- 징주 남해군, 본래 요(거란) 해주.
<독사방여기요 산동8>
海州衛司西南百二十里。
沙卑城即(海州)衛城。亦曰卑沙城,高麗所築,疊石為城,幅員九里,或訛為卑奢城。自登、萊海道趣高麗之平壤,必先出此。
- 해주위는 요양(요동도사) 서남쪽 120리에 있다.
- 사비성이 곧 해주위 성인데 비사성이라고도 한다.
- 고구려가 쌓은 곳으로 바위로 돼 있으며 둘레가 9리이다.
- 등주/래주로부터 바닷길로 고구려 평양으로 올 때에 가장 먼저 거치는 곳이 이곳이다.
2. 징주(澄州)
1)
澄州,中国古代的州。
金朝天德三年(1151年)以海州改名,治所在临溟县(今辽宁省海城市)。约辖今辽宁省海城市一带。元朝大德年间废为巡检司。
출처 : 중국 위키
https://zh.m.wikipedia.org/wiki/%E6%BE%84%E5%B7%9E_(%E9%87%91%E6%9C%9D)
2)
澄州(ちょう-しゅう)は中華人民共和国遼寧省にかつて存在した州。現在の海城市を中心とする遼河下流地域一帯に相当する。
された海州を前身とする。州治は臨溟県に設置された。金代になると1151年(天徳3年)に澄州と改称されたが、元代大徳年間に廃止となり巡検司とされた。
출처 : 일본 위키
https://ja.m.wikipedia.org/wiki/%E6%BE%84%E5%B7%9E
3)
3. 고구려 비사성에 대한 학계 통설에서의 설명
1) 한민족문화대백과 '비사성'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59197&cid=46618&categoryId=46618
2) 한민족문화대백과 '대흑산산성'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43252&cid=46656&categoryId=46656
4. 비사성 위치에 대한 역대 사서 기록 추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 상, 645년>
- 이 기록은 자치통감, 신당서 등의 기록과 공통한다
- 삼국사기 수당 침략 기사는 대개가 중국 사서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張亮兵在沙城 召之 信宿可至
: 장량의 병사가 사성(沙城)에 있으니, 그를 부르면 이틀이면 올 수 있습니다.
- 이틀이라는 얘기는 부르러 가는 시간과 오늘 시간을 합산한 것으로, 이 대화는 안시성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나온 대화로 비사성이 매우 가깝다는 맥락으로서의 발언이다
<독사방여기요 산동8>
蓋州衛司西南二百四十里。
: 개주위는 요양 서남쪽 240리에 있다(해주위는 요양 서남쪽 120리)
安市城(蓋州)衛東北七十里。
: 안사성은 개주위 동북쪽 70리에 있다(즉 안시성과 비사성은 방위 오차를 제하고 본다면 50여 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烏骨城,在安市東南,近大海。
: 오골성은 안시성 동남쪽에 있는데 바다와 가깝다(당태종 고구려 침략 기사를 보면 안시성과 압록강 사이에 오골성이 있는 것으로 돼 있다)
5. 비사성 위치의 이해를 위한 부가적 기록
<자치통감 주>
張亮帥舟師自東萊渡海,襲卑沙城,〔帥,讀曰率。〕其城四面懸絕,惟西門可上。〔上,時掌翻。〕程名振引兵夜至,副總管王大度先登,五月,己巳,拔之,獲男女八千口。分遣總管丘孝忠等曜兵於鴨綠水。〔杜佑曰:鴨綠水,在平壤城西北四百五十里,源出靺鞨長白山,漢書謂之馬訾水,今謂之混同江。李心傳曰:鴨綠水發源契丹東北長白山。鴨綠水之源,蓋古肅慎氏之地,今女真居之。〕
1) 分遣總管丘孝忠等曜兵於鴨綠水。
: 총관 구효충 등을 시켜 압록수에 시위병(曜兵)을 배치하였다
- 이 상황은 당군이 요동성을 공격하는 상황으로서 고구려군으로 하여금 당군이 압록강을 도하하여 평양을 직접 타격하는 것으로 오해하게끔 만들기 위한 작전이다
- 비사성과 압록수가 매우 가깝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2) 杜佑曰:鴨綠水,在平壤城西北四百五十里,源出靺鞨長白山,漢書謂之馬訾水,今謂之混同江。
: 두우(통전의 편찬자)가 말하길 아복수는 평양성 서북쪽 450리에 있는데 말갈장백산에서 발원하며 한서에서 말한 마자수가 이 강으로 지금은 혼동강이라 한다
- 두우는 북만주의 혼동강을 압록강이라 말하고 있다.
3) 李心傳曰:鴨綠水發源契丹東北長白山。鴨綠水之源,蓋古肅慎氏之地,今女真居之
: 이심전(12~13세기에 활동한 남송 학자)이 말하기를 압록수는 거란 동북쪽 장백산에서 발원한다고 했다. 압록수의 발원지는 옛 숙신의 땅으로 지금 여진족이 살고 있다(이 문장은 호삼성의 견해)
- 장백산은 지금의 백두산이 아니라 길림합달령이라는 말이다
<독사방여기요 산동8>
勃錯水在(海州)衛西北。唐貞觀十九年,親征高麗,攻安市城,不克,引還。至遼東,渡遼水,遼澤泥淖,車馬不通,命長孫無忌剪草填道。至蒲溝,駐馬督填道,諸軍渡勃錯水,暴風雪,士卒沾濕多死者。胡氏曰:蒲溝、勃錯水,皆在遼澤中也。
- 해주위는 주해도편 수록 지도에 정확히 현 요하 동쪽에 바로 붙어 있다
- 요하의 물줄기는 현재 쌍태자하와 대요하로 두 개인데 과거로 올라갈수록 쌍태자하와 대요하 사이는 말그대로 늪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해주위의 위치는 본인으로 하여금 혼하 압록강 비정을 계속 보유하는 이유가 된다
- 즉 현 요하의 고대의 모습은 요녕성 안산시뿐만 아니라 판진-안산-잉커우에 이르는 쌍태자하와 대요하 사이의 삼각주가 바다 또는 뻘이었을 것이고 요하와 혼하, 태자하의 물줄기가 어떤 모습으로 합수되었을지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데다 현 요하, 혼하, 태자하의 하류를 뭉뚱그려 압록수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6. 결론 : 학계 통설에 대한 비판
고구려 평양을 현 서북한 평양에,
고구려 압록강을 현 서북한 압록강에 고정해 놓고서
등주와 래주에서 수나라 내호아와 당나라 장량의 수군이 현 요동반도 끝 대련으로 직접 월해한 것으로 보고(가탐 도리기 항로를 오독하여)
대련 금주구의 대흑산산성의 모양새가 산에 의지해 서쪽 면이 가파른 것에서 공통점을 겨우 찾아 끼워 맞춘 것이다
이것이 학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