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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월 29일 (금)

[한국사] 고구려 비사성의 위치(시각화 지도)

감방친구 조회 : 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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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성의 위치.jpg


해성시.jpg


1. 비사성의 위치에 대한 역대 중요 사서의 기록


<요사 지리지 동경도>

海州,南海軍,節度。本沃沮國地。高麗為沙卑城,唐李世勑嘗攻焉。渤海號南京南海府。疊石為城,幅員九里,都督沃、晴、椒三州。

- 해주 남해군, 본래 옥저국의 땅, 고구려 사비성이 있던 곳, 발해가 남경남해부로 삼은 곳.
- (사비성은) 바위로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9리(현대 기준 약 3.5km)이다.

<금사 지리지>

澄州,南海軍刺史,下。本遼海州,天德三年改州名。

- 징주 남해군, 본래 요(거란) 해주.


<독사방여기요 산동8>

海州衛司西南百二十里。
沙卑城即(海州)衛城。亦曰卑沙城,高麗所築,疊石為城,幅員九里,或訛為卑奢城。自登、萊海道趣高麗之平壤,必先出此。

- 해주위는 요양(요동도사) 서남쪽 120리에 있다.
- 사비성이 곧 해주위 성인데 비사성이라고도 한다.
- 고구려가 쌓은 곳으로 바위로 돼 있으며 둘레가 9리이다.
- 등주/래주로부터 바닷길로 고구려 평양으로 올 때에 가장 먼저 거치는 곳이 이곳이다.


2. 징주(澄州)

1)

澄州,中国古代的州。

金朝天德三年(1151年)以海州改名,治所在临溟县(今辽宁省海城市)。约辖今辽宁省海城市一带。元朝大德年间废为巡检司。

출처 : 중국 위키
https://zh.m.wikipedia.org/wiki/%E6%BE%84%E5%B7%9E_(%E9%87%91%E6%9C%9D)


2)

澄州(ちょう-しゅう)は中華人民共和国遼寧省にかつて存在した州。現在の海城市を中心とする遼河下流地域一帯に相当する。
された海州を前身とする。州治は臨溟県に設置された。金代になると1151年(天徳3年)に澄州と改称されたが、元代大徳年間に廃止となり巡検司とされた。

출처 : 일본 위키
https://ja.m.wikipedia.org/wiki/%E6%BE%84%E5%B7%9E


3)

요녕성 해성시 위치(구글 지도)
https://www.google.co.kr/maps/place/%EC%A4%91%EA%B5%AD+%EB%9E%B4%EC%98%A4%EB%8B%9D+%EC%84%B1+%EC%95%88%EC%82%B0+%EC%8B%9C+%ED%95%98%EC%9D%B4%EC%B2%AD+%EC%8B%9C/@40.8265939,122.174259,9z/data=!3m1!4b1!4m5!3m4!1s0x5e28ecfb275eb271:0x32c39e94581f01cb!8m2!3d40.882377!4d122.685217?hl=ko


3. 고구려 비사성에 대한 학계 통설에서의 설명

1) 한민족문화대백과 '비사성'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659197&cid=46618&categoryId=46618

2) 한민족문화대백과 '대흑산산성'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43252&cid=46656&categoryId=46656


4. 비사성 위치에 대한 역대 사서 기록 추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 상, 645년>

- 이 기록은 자치통감, 신당서 등의 기록과 공통한다
- 삼국사기 수당 침략 기사는 대개가 중국 사서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張亮兵在沙城 召之 信宿可至
: 장량의 병사가 사성(沙城)에 있으니, 그를 부르면 이틀이면 올 수 있습니다.

- 이틀이라는 얘기는 부르러 가는 시간과 오늘 시간을 합산한 것으로, 이 대화는 안시성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나온 대화로 비사성이 매우 가깝다는 맥락으로서의 발언이다


<독사방여기요 산동8>

蓋州衛司西南二百四十里。
: 개주위는 요양 서남쪽 240리에 있다(해주위는 요양 서남쪽 120리)

安市城(蓋州)衛東北七十里。
: 안사성은 개주위 동북쪽 70리에 있다(즉 안시성과 비사성은 방위 오차를 제하고 본다면 50여 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烏骨城,在安市東南,近大海。
: 오골성은 안시성 동남쪽에 있는데 바다와 가깝다(당태종 고구려 침략 기사를 보면 안시성과 압록강 사이에 오골성이 있는 것으로 돼 있다)


5. 비사성 위치의 이해를 위한 부가적 기록

<자치통감 주>

張亮帥舟師自東萊渡海,襲卑沙城,〔帥,讀曰率。〕其城四面懸絕,惟西門可上。〔上,時掌翻。〕程名振引兵夜至,副總管王大度先登,五月,己巳,拔之,獲男女八千口。分遣總管丘孝忠等曜兵於鴨綠水。〔杜佑曰:鴨綠水,在平壤城西北四百五十里,源出靺鞨長白山,漢書謂之馬訾水,今謂之混同江。李心傳曰:鴨綠水發源契丹東北長白山。鴨綠水之源,蓋古肅慎氏之地,今女真居之。〕

1) 分遣總管丘孝忠等曜兵於鴨綠水。
: 총관 구효충 등을 시켜 압록수에 시위병(曜兵)을 배치하였다
- 이 상황은 당군이 요동성을 공격하는 상황으로서 고구려군으로 하여금 당군이 압록강을 도하하여 평양을 직접 타격하는 것으로 오해하게끔 만들기 위한 작전이다
- 비사성과 압록수가 매우 가깝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2) 杜佑曰:鴨綠水,在平壤城西北四百五十里,源出靺鞨長白山,漢書謂之馬訾水,今謂之混同江。
: 두우(통전의 편찬자)가 말하길 아복수는 평양성 서북쪽 450리에 있는데 말갈장백산에서 발원하며 한서에서 말한 마자수가 이 강으로 지금은 혼동강이라 한다
- 두우는 북만주의 혼동강을 압록강이라 말하고 있다.

3) 李心傳曰:鴨綠水發源契丹東北長白山。鴨綠水之源,蓋古肅慎氏之地,今女真居之

: 이심전(12~13세기에 활동한 남송 학자)이 말하기를 압록수는 거란 동북쪽 장백산에서 발원한다고 했다. 압록수의 발원지는 옛 숙신의 땅으로 지금 여진족이 살고 있다(이 문장은 호삼성의 견해)
- 장백산은 지금의 백두산이 아니라 길림합달령이라는 말이다

<독사방여기요 산동8>

勃錯水在(海州)衛西北。唐貞觀十九年,親征高麗,攻安市城,不克,引還。至遼東,渡遼水,遼澤泥淖,車馬不通,命長孫無忌剪草填道。至蒲溝,駐馬督填道,諸軍渡勃錯水,暴風雪,士卒沾濕多死者。胡氏曰:蒲溝、勃錯水,皆在遼澤中也。

- 해주위는 주해도편 수록 지도에 정확히 현 요하 동쪽에 바로 붙어 있다
- 요하의 물줄기는 현재 쌍태자하와 대요하로 두 개인데 과거로 올라갈수록 쌍태자하와 대요하 사이는 말그대로 늪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 해주위의 위치는 본인으로 하여금 혼하 압록강 비정을 계속 보유하는 이유가 된다
- 즉 현 요하의 고대의 모습은 요녕성 안산시뿐만 아니라 판진-안산-잉커우에 이르는 쌍태자하와 대요하 사이의 삼각주가 바다 또는 뻘이었을 것이고 요하와 혼하, 태자하의 물줄기가 어떤 모습으로 합수되었을지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데다 현 요하, 혼하, 태자하의 하류를 뭉뚱그려 압록수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6. 결론 : 학계 통설에 대한 비판

고구려 평양을 현 서북한 평양에,
고구려 압록강을 현 서북한 압록강에 고정해 놓고서
등주와 래주에서 수나라 내호아와 당나라 장량의 수군이 현 요동반도 끝 대련으로 직접 월해한 것으로 보고(가탐 도리기 항로를 오독하여)
대련 금주구의 대흑산산성의 모양새가 산에 의지해 서쪽 면이 가파른 것에서 공통점을 겨우 찾아 끼워 맞춘 것이다
이것이 학문인가?



감방친구 18-04-18 12:08
아래의 사실을 고려하여야 한다
1. 현 판진ㅡ안산ㅡ잉커우 지역이 고대에 바다였다는 사실
2. 이 지역이 점차 뭍이 되면서 각 시대 왕조들의 행정구역이 재편되었을 충분한 가능성
3. 이 지역의 지배 왕조와 민족이 지난 2천 년 동안 수차례 바뀌면서 지명 재확정과 행정구역 재설치가 수차례 있었을 충분한 가능성
4. 각 시대 왕조와 민족에 의해 행정구역이 이리저리 교치되었을 충분한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적어도 바다였다가 뭍이 된 판진ㅡ안산ㅡ잉커우 삼각지의 땅 크기만큼 현 요하 중류 방향으로, 즉 서북 방향으로 올려붙이면 올바른 위치가 될 것이다
감방친구 18-04-18 12:11
뻔히 요녕성 해성시가 비사성이 있던 곳이라고 여러 사서가 적고 있음에도 이러한 사서 기록을 싸그리 무시하고 갑툭튀로 대련시에 비사성을 비정하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만행에 가깝다
감방친구 18-04-18 12:26
군시절(육군 특공) 지리산을 2번 종주 했고 작계(우리 부대는 지리산이 작계지역)훈련으로 3번을 더 다녀왔다

화엄사에서 노고단 거리는 거기 적힌 팻말 숫자로는 5km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말그대로 지도상 거리인 것이다

5km가 도로면 완전군장에 뛰어서도 30분 안쪽으로 가는 거리인데 점심을 주먹밥으로 먹고 출발했는데 저녁에 도착해서 노고단에 텐트를 쳤다

계곡을 타고 올랐는데 길도 없을 뿐더러 경사가 60도, 70도였다
쌀, 부식 등을 추가적으로 많이 넣어 군장을 꾸렸기에 소총 무게 빼고 순수하게 군장 무게만 30kg이 넘었다

한 시간에 1km를 조금 더 걸은 것이다

1400 년 전을 생각해보라

빌어먹을 학계 통설에서 비정한 안시성과 오골성 사이는 죄 험준한 산악이다 단동과 요양 사이는 다 산이다, 산
감방친구 18-04-18 13:44
태자하를 패수로 본다면
비사성은 태자하 입구에 있는 것이고
이 때문에 평양으로 가는 필수 길목이라는 말이 가능하다

그러나 안시성과 오골성은 분명 압록강 바깥에 위치했으므로
안시성과 오골성의 위치는 사서 기록과 달리 서북쪽에서 교치됐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더구나 가탐 도리기에서 오골강은 현 요하인 당시 압록강 이전의 경유지였다

따라서
안시성은 최소한 현 쌍태자하 근방으로 대릉하와 쌍태자하 사이일 것이다
감방친구 18-04-18 13:57
정정한다
비사성은 패수가 아니라 압록강 근방의 성이다
감방친구 18-04-18 13:55
주해도편 수록 지도에서 해주위는 광녕위 바로 옆으로 현 요하를 경계로 광녕위와 나뉘어 있었다

지금의 해안선과 뭍의 면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광녕위든 해주위든 어느 한 쪽은 지나치게 넓은 구역을 맡고 있었던 게 된다

판진ㅡ안산ㅡ잉커우가 바다거나 뻘이었고 요하가 본류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지류로 바다로 흘러드는 모습을 상정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1.안시성은
1) 압록강 바깥에 있다
2) 비사성과 하루 또는 이틀 거리이다 (장량의 군대가 육로가 아닌 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라면 육로보다 빠르므로 두 성의 거리가 기록보다 더 멀 수 있다는 것 또한 상정해야 한다)

2. 오골성은
1) 안시성과 압록강 사이에 있다
2) 오골강과 인접하였다

3.오골강은
가탐 도리기 상에서 현 요하 이전에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어지럽게 얽히거나 맞선다

또한 안시성이 신성, 평양성 등과 같이 동명다처일 가능성도 염두할 필요가 있다
감방친구 18-04-18 13:56
그러나 어찌됐든 분명한 것은
고구려 비사성은 현 대련시 금주구 대흑산산성에 있지 않았다
감방친구 18-04-18 13:58
고구려 압록강 하류를 중심으로
비사성, 박작성, 안시성, 건안성, 오골성이 크게 모여 있다
감방친구 18-04-18 15:38
그러나 한편 가탐 도리기 항로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당시의 요하, 즉 현 요하의 본류가 현 대요하이고 지금처럼 쌍태자하가 생기기 전이라면ㅡ쌍태자하와 대요하가 지금과 같이 크게 나뉜 것은 삼각주가 크게 형성되면서이니까ㅡ그리고 현 해성시가 바닷가였고 여기가 압록강 입구라면

또 물길의 방향이 지금처럼 흐르는 게 아니라 사서에서 말하는 개주위 동북쪽 70리 안시성 안쪽으로 흐르는 것이었고

오골강은 안시성과 요하, 즉 압록강 사이에 흐르는 작은 지류라 한다면

가탐 도리기 항로는 오골강에서 진왕석교로 갔다가 다시 돌아서 하구 앞에 있는  3 개의 섬을 거꾸로 경유해 압록강으로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감방친구 18-04-18 15:41
즉 오골강 ~ 진왕석교 ~ 마전도 ~ 고사도 ~ 득물도 ~ 압록강 당은포구로 말이다

이러한 코스는 강의 하류의 힘과 섬들이 부딪히는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코스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위구르 18-04-18 20:49
적어도 학계가 지껄여대는 위치 비정은 거르고 보는게 답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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