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바다에서의 거리 감각과 고구려 강역
감방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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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탐 도리기에서
등주에서 오호도까지 300리,
오호해를 건너 도리진까지 200리,
도리진에서 오골강까지 800리라 했다
그런데
후대의 독사방여기요에서는
천진에서 현 진저우까지 200 리라 했다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북직 4)
河間府東至海豐縣三百里,南至山東德州二百五十里,西南至真定府冀州二百三十里,西至真定府定州二百有八里,西北至保定府安州百二十里。自府治至京師四百十里,至南京二千一百四十里。
靜海縣(河間)府東北百八十里。
海在縣東北百五十里,與山東、遼東接境。古名勃海。應劭曰:海之橫出者,曰勃。元行海運,以天津海道為咽喉要地。前朝亦嘗通運於此。嘉靖三十八年,遼撫侯汝翼,以遼東大饑,議移粟天津。其入遼之路,自海口發舟,至廣寧右屯河通堡,不及二百里,中間若曹泊店、月沱、桑沱、姜女墳、桃花島、咸可灣泊,各相去四五十里,無風濤、盜賊之虞。從之。尋復罷。《志》云:天津一隅,東南漕舶鱗集,其下去海不過百里,風帆馳驟,遠自閩浙,近自登、遼,皆旬日可達。控扼噤要,誠京師第一形勝處也。
ㅡ 하간부 정해현 동북 150리는 산동 및 요동과 접경이다(즉 오늘날 이 지역 동쪽부터 요동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음)
ㅡ 요동에 대기근이 들어서 나눠줄 곡식을 천진에서 운반할 일을 의논했다
ㅡ 천진은 요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길목이다)
ㅡ 천진에서 배를 타고 광녕위(현 진저우) 우둔하까지 200 리가 안 된다
ㅡ 천진과 광녕 우둔하 중간에 조박점, 월타, 상타, 강녀분, 도화도가 있는데 모두 정박할 수 있으며 각각 서로 간의 거리가 4~50 리 된다
ㅡ 명일통지에 따르면 천진은 한쪽 모퉁이에 있어서 동남쪽에 선박이 비늘처럼 밀집돼 있으며 그 아래 바다까지 불과 100리밖에 안 되고, 돛에 바람을 받아 빠르게 달리니 멀게는 민저(현 저장, 광둥 일대)로부터, 가깝게는 등주, 요동으로부터 모두 열흘이면 도달한다.]
실제 육지에서 본 천진~금주 거리는 200리는 커녕 1,000리 가량은 족히 될 거리이다
따라서 이러한 바다에서의 거리 수치는
실측 거리가 아니라 바다에서 소요되는 시간을 육지의 경우에 대입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등주에서 오호도까지 300리,
오호해를 건너 도리진까지 200리,
도리진에서 오골강까지 800리라 했다
그런데
후대의 독사방여기요에서는
천진에서 현 진저우까지 200 리라 했다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북직 4)
河間府東至海豐縣三百里,南至山東德州二百五十里,西南至真定府冀州二百三十里,西至真定府定州二百有八里,西北至保定府安州百二十里。自府治至京師四百十里,至南京二千一百四十里。
靜海縣(河間)府東北百八十里。
海在縣東北百五十里,與山東、遼東接境。古名勃海。應劭曰:海之橫出者,曰勃。元行海運,以天津海道為咽喉要地。前朝亦嘗通運於此。嘉靖三十八年,遼撫侯汝翼,以遼東大饑,議移粟天津。其入遼之路,自海口發舟,至廣寧右屯河通堡,不及二百里,中間若曹泊店、月沱、桑沱、姜女墳、桃花島、咸可灣泊,各相去四五十里,無風濤、盜賊之虞。從之。尋復罷。《志》云:天津一隅,東南漕舶鱗集,其下去海不過百里,風帆馳驟,遠自閩浙,近自登、遼,皆旬日可達。控扼噤要,誠京師第一形勝處也。
ㅡ 하간부 정해현 동북 150리는 산동 및 요동과 접경이다(즉 오늘날 이 지역 동쪽부터 요동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음)
ㅡ 요동에 대기근이 들어서 나눠줄 곡식을 천진에서 운반할 일을 의논했다
ㅡ 천진은 요동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길목이다)
ㅡ 천진에서 배를 타고 광녕위(현 진저우) 우둔하까지 200 리가 안 된다
ㅡ 천진과 광녕 우둔하 중간에 조박점, 월타, 상타, 강녀분, 도화도가 있는데 모두 정박할 수 있으며 각각 서로 간의 거리가 4~50 리 된다
ㅡ 명일통지에 따르면 천진은 한쪽 모퉁이에 있어서 동남쪽에 선박이 비늘처럼 밀집돼 있으며 그 아래 바다까지 불과 100리밖에 안 되고, 돛에 바람을 받아 빠르게 달리니 멀게는 민저(현 저장, 광둥 일대)로부터, 가깝게는 등주, 요동으로부터 모두 열흘이면 도달한다.]
실제 육지에서 본 천진~금주 거리는 200리는 커녕 1,000리 가량은 족히 될 거리이다
따라서 이러한 바다에서의 거리 수치는
실측 거리가 아니라 바다에서 소요되는 시간을 육지의 경우에 대입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