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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월 29일 (금)

[한국사] (4) 당 수군 침공로와 가탐 도리기 경로 고찰

감방친구 조회 :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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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도를 묘도군도 끝 남황성도에 비정하고, 도리진을 요동반도에 비정했을 시의 상식적 문제점

1. 당 태종은 2차 침략에서 래주를 수군 본진으로 삼고 오호도, 대사도 등의 섬에 수를 설치하고 특히 오호도에는 군량을 비축케 하였다. 통상 당 태종 3차 침략으로 거론하는 2-3차 침략에서는 오호도에 무려 30만 대군의 군량을 비축케 하였다

2. 지도를 보라. 학계 통설에서도 광개토대왕 말기 후연을 격파한 후로 현 요서 지역에 진출하고 장수왕 대부터는 고구려 강역이 대릉하 일대까지 이르렀다

3. 오호도로 비정된 묘도군도의 남황성도는 요동 남단, 즉 고구려 본진의 코 앞이다 그 요동 반도 일대에는 학계 통설에서도 비정한 안시, 건안, 비사성 등이 포진해 있다

4. 학계 통설에서 도리진으로 비정한 여순/대련 지역은 통설에서 비사성을 비정한 곳이다 그곳이 고구려 후방인가 아니면 국경지대인가?

5. 고구려와 백제는 4 세기에 환서해 해상권을 두고 다투었고 광개토대왕은 강력한 수군을 동원하여 백제의 수십 성을 공파하고 백제를 멸망 직전까지 만들며 해상권을 장악했고 장수왕 대에는 고구려 주도로 중국 남조와 북조 사이에서 삼각외교를 벌이며 북위와 송/남제도 고구려를 어찌하지 못 했다

6. 왜가 송에 보낸 표에도 고구려가 방해하여 사신을 보내지 못 했다 하였고 백제 역시 가로 막혔으며 북위가 백제에 사신을 보내고자 했으나 고구려가 바닷길과 뭍길을 열어주지 않아 무리하게 원양항해를 시도하다 사신선이 난파되기도 했다

7. 수ㆍ당의 잇따른 침략에 고구려의 경비가 삼엄해진 상황에서 고구려가 해상을 장악한 그 지역인 요동 근해인 오호도에, 고구려 본진 코 앞에, 그것도 당나라 연안도 아닌 육지에서 260리니 300리 떨어진 남황성도에 당 태종이 무려 30 만 명 분의 군량을 비축케 했다는 게 납득이 가는가?

8. 더욱이 고구려 본진인, 학계 통설에서도 비사성이 비정된 요동반도 끝에서 가까운 오호도에서 출군한 당 수군이 당 태종 2-1차의 100여 회, 오호진 수장 고신감이 싸운 역산까지 모두 고구려 국경지대였다고 삼국사기, 그리고 독사방여기요는 적고 있다

9. 비사성이 있는 요동반도 남단의 연안인 남황성도가 오호도고 이 오호도에 고구려 원정의 엄청난 량의 군량을 비축케 했다는 것도 납득이 안 가는데 거기서부터 다시 연안을 따라 현 학계 통설에서 말하는 고구려 서쪽 국경지대인 대릉하~현 요하 지역까지 적진을 수백 리 거슬러 가서 그곳을 공격한다는 게 납득이 가는가?

도배시러 18-03-17 15:53
주류의 통설 2파가 전투할듯요.

비사성-파 : 여순/대련의 대흑산성은 고구려 비사성이다. 내가 주류다.
도리진-파 : 여순/대련 은 비사성이 아니라 도리진이다. 아니다 내가 주류다.

둘중에 누가 먼저 ㅋㅋㅋ or ㅄ야~ 를 외칠까요 ?

여순 비사성 주장한 놈은 재야다. 아니다. 여순 도리진 주장한 놈이 재야다.
감방친구 18-03-17 15:58
각설이 품바 타령을 하는 것이죠
도배시러 18-03-17 16:01
여순/대련 비사성, 대흑산성 관련 연구자
『遼寧文物古蹟大觀』(遼寧省文物管理委員會, 遼寧大學出版社, 1994)
『高句麗の歷史と遺蹟』(田中俊明, 中央公論社, 1995)
도배시러 18-03-17 16:03
여순 [도리진] 학파는 *재야*로 몰릴 가능성이 높아보이네요. ㅋㅋㅋ
그런데도 상식이 어쩌구 저쩌구...

도리진 학파가 이기면 田中俊明을 극일 하게 되는건가 ... ㅎㅎㅎ
칼리S 18-03-17 17:21
님의 우매한 분석에 기가 막힐 뿐입니다.

일단 당태종 당시의 고구려는 광개토왕이나 장수왕 시기가 아닙니다. 반대로 중국 역사상 위대한 황제로 손꼽히는 당태종시대로 당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왜 언급을 하시죠? 아마 고구려의 서쪽 방어선이 현 요하 동쪽이 아니라 되도록이면 서쪽으로 서쪽으로 앞 당기고 싶은 욕망이 있으시겠죠. 그러니깐 가탐 도리기상 멀쩡한 항로를 바보같은 연안항로식으로 해석해 버리셨죠.

자 당태종 당시의 고당전쟁으로 돌아가서 당나라는 수나라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군수보급에 신경을 씁니다. 그래서 묘도군도에 수(해군기지)를 설치하고 오호도(현 황성도)에 군량을 비축하겠죠. 그리고 이는 묘도군도에 대한 고구려 수군의 영향력이 사라졌다는 의미고, 이는 당나라 수군에 고구려 수군이 패했다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는 비사성의 함락과도 이어지죠.

당태종은 수나라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요동성에 집중하지 않고, 요하 동쪽의 고구려 성들을 다발적으로 공략합니다. 요동성도 무너지고요.

당태종은 애당초 수군을 수나라때와는 다르게 철저하게 군수보급을 위한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수군의 진군은 육군의 진군에 맞췄죠. 수나라때 수군이 단독적으로 행동하다 궤멸된 걸 교훈 삼은거죠.

당태종의 요동공격시 비사성이 당나라 수군에 함락될 정도로 고구려 수군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왜 황성도에 군량기지를 설치했다는게 이상하죠? 오히려 당연한 이치죠.

중국 세력이 고구려 침공때 가장 어려웠던 점이 바로 군수문제이고, 이를 육군이 아닌 수군 위주로 가는게 지금 봐도 군사적으로 아주 현명한 방법인데요?

중국의 군수물자는 산동으로 이동시키고, 이를 고구려 전선에 가장 가까운 황성도로 이동시켜 요동에 있는 당나라 육군에 맞춰 물자는 수군으로 보급하는게 얼마나 합리적인가요? 그리고 그 전에 당연히 제해권 장악은 필수고요.

님의 문제는 고구려의 서쪽 방어선을 현 요하 동쪽이 아니라 가능한 한 중국쪽으로 옮겨서 현 평양성의 위치를 요동으로 옮기고 싶다라는 속내가 보이는데 아닌가요? ㅋㅋㅋ
감방친구 18-03-17 17:34
댁의 그 졸렬함에 욕 한 마디 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네요
(1) 회부터 찬찬히 성의 있게 읽고서 탐구해 보고 여기에 이런 똥글을 남기는 겁니까
감방친구 18-03-17 17:38
이 사람은 이거 삼국사기, 신당서, 자치통감 등을 전혀 안 읽은 사람이네
남북통일 18-03-17 17:40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반박하는게 아니라 비방하는 표현을 쓰며
합리적인 근거를 들지 않고 반박을 하는 사람들은 쿨하게 무시하세요.
살면서 경험했는데, 그게 제일로 좋더라고요.
감방친구 18-03-17 17:42
정말 가생이에도 공작하는 인간들 많은 거 같아요
칼리S 18-03-17 17:47
합리적으로 반박했지. 제 글에 문제 있나요?

님이나 제 글에 문제가 있으면 반박하세요.
남북통일 18-03-17 17:49
일단 글면 님이 가탐도리기 항로를 분석해 주실래요?
일단 저도 가탐도리기를 수박 겉 핡기 식으로는 본 적이 잇는데,
제가 생각해도 연안항로로 생각되던데여.
님이 제발 무지한 제 뇌를 깨어주세요!!
칼리S 18-03-17 17:48
뭘 안 읽어요?

님이나 제 글에 문제가 있으면 반박이나 하슈. 저번처럼 고려사 장성관련해서 개발리지 마시고.
도배시러 18-03-17 17:49
일제사학자의 주류이론을 이길려고 노력하는 당신은 재야사학쪽이라 보여집니다.
칼리S 18-03-17 17:58
당신은 저번에 넓이랑 길이도 구분 못하는 바보면서 깝치지 좀 마라. 빈정되는 꼬락서니도 수준이 낮으니 원 ㅋㅋㅋ
도배시러 18-03-17 18:06
대체 뭐가 불만이냐 ?
일제사학자의 여순 비사성 이론을 이겨보라구.... 힘내라.

여순 도리진으로 주류를 이겨봐라 ㅋㅋㅋ
신수무량 18-03-17 21:25
아이구..사돈남말하네가 생각나네요ㅡ.165km를 34시간만에  갈 수 있다는 댓글을 다신 분은 누구시더라.
얼마전에 연개머시기 킹이라는 적발이가 잠깐설치던데...설마 동료는 아니시지겠죠?...상식이라는 걸 역사해석에 접목시키는 부류들은 역사를 연구하면 안됩니다.. 관심 뚝!
남북통일 18-03-17 22:21
165km를 34시간만에 주파한다고요?
허경영같이 축지법 쓰나보죠?
칼리S 18-03-18 10:10
수나라의 별동대는 애당초 보병이 주류가 아니고, 군수보급은 무시한채 1인당 지급한 식량만 따져도 기병위주의 군대인데? 이게 불가능하다고?

그리고, 도망쳐간 수가 얼마 되지 못했다는건 그나마 양호한 기마병들만 도망쳐 갔으니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게 바보 아닌가?

수나라 역시 선비족 출신의 국가라는 걸 착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ㅋㅋㅋ
남북통일 18-03-18 10:35
일단 그 당시의 이동로를 모르겠지만, 구글맵을 이용해서 안주와 의주사이를 도보로 이동하기 해보면 167키로 36시간으로 나오는데, 전력을 다해 도주했으니 충분히 하루면 가능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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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당신이 쓴 댓임.
이게 말을 타고 도망쳤다고?
남북통일 18-03-17 17:50
其地,東至新羅,西渡遼水二千里,南接百濟,北鄰靺鞨千餘裏。治平壤城。其城,東西六裏,南臨浿水。-북주서
일단 수당시절 고구려 영토가 요하에 한정되었다면 이 북주서 내용부터 반박해주실래요?
물길 18-03-17 23:29
이 사람은 일단 우리 조상들의 영토를 크게 보는 데 대해서  안 좋은 선입관을 가지고 있네요.

그러니 현 우리가 알고있는 영토보다 더 크게 보려고 하면 부정적인 시각이 되니 객관적이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선입관이나 편견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선입관이나 편견을 정당화할려면 반대쪽얘기도 귀를 귀울려야죠.

편견이나 선입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고 그 결론에 이러는 과정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지가 중요한 겁니다. 내가 볼때 님이야 말로 편견,선입관에 사로잡혀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 객관적이지 못한것 같습니다.
history2 18-03-19 02:51
선입관이 문제가 아니라,,,논리성이나 지형에서 이 이론의 적합성을 봐야 하는데, 저는 특별한 흠결이 발견이 되질 않습니다....다만, 북경과 요서의 점유권을 누가 가지고 있었냐는 선입관 그 부분인데...그 부분을 제하고 봐도,,,딱히 (감방)친구님의 고찰에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연안항로냐 원양항로냐는 당시 상황논리 인데,,,두 가지 다 가능했다고 생각이 들지만, (감방)친구님의 연안항로가 특별한 흠결도 없고, 논리적인 비약이 아니라면,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원양항로를 주장하시는 분의 말씀도 다 이해는  합니다만, 그것이 친구님의 고찰이 틀렸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원양항로 주장하시는 분도 선입관이 자리 잡았고, 친구님도 그럴수는 있지만, 항로의 진행이 비합리적이지 않은데, 비판만 할 수는 없고 또 아름다운 시도라 생각을 합니다. 괜찮은 시도같구요,,,전 홧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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