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생이닷컴-해외 네티즌 반응 커뮤니티


HOME

 - 커뮤니티>동아시아 게시판
메뉴보기
  • 해외반응 -
  • 뉴스 -
  • 영상자료 -
  • 유머/엽기 -
  • 커뮤니티 -
  • 팬빌리지 -

회원

로그인

03월 29일 (금)

[한국사] 학계 통설에서의 가탐도리기 해로 경유지 비정

감방친구 조회 : 1,373
검색목록 목록
학계 통설에서의 가탐 도리기 동북해행 항로의 경유지

당나라 賈耽(730∼805)이 저술한≪道里記≫0773)에 보면, 중국에서 신라로 가는 해로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북방해로인 것이다. 이에 의하면 登州(山東省 蓬萊)를 출발하여 동북으로 大謝島(長山島)·鼉欽島(砣磯島)·末島(大·小欽島)·烏湖島(南隍城島)를 거쳐 300리를 나아간다. 그리고 북으로 烏湖海(黃詳川 海面, 老鐵山水道)를 지나 馬石山(老鐵山)의 都里鎭(旅順口)까지 200리를 가서 동쪽으로 靑泥浦(大連 부근)·桃花浦(金縣 淸水河口)·杏花浦(莊河縣 花園口)·石人汪(石城島)·橐駝灣(小洋河口)을 지나 烏骨江(鴨綠江口)까지 800리 길을 간다. 다시 남쪽 해안, 즉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烏牧島(平北 宣川郡)·浿江口(大同江口)·椒島를 지나 長口鎭(黃海 豊川郡)에 이른다. 다시 鵠島(白翎島)·秦王石橋와 麻田島·古寺島(江華島)·得物島(德積島)를 거쳐 唐恩浦(京畿 南陽灣)에 이른다. 이곳은≪도리기≫의 종점으로 신라시대에 대중국대륙 교통의 요지 가운데의 하나였다. 당은포에서 육로로 700리 길을 가서 신라의 서울 경주에 도달한다.

출처 : 신편 한국사

<학계 통설의 견해 정리>

1. 상기 비정된 항로와 그 경유지는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침략할 때에도 이용된 항로라고 설한다

2. 상기 비정된 항로와 그 경유지는 수ㆍ당의 고구려 침략 때에도 이용된 항로라고 설한다

3. 상기 비정된 항로와 그 경유지는 고ㆍ백ㆍ신뿐만 아니라 발해 역시 이용한 항로라고 설한다

4. 복기대 팀 역시 이 비정을 거의 따르고 있다

<학계 통설 비정의 문제점>

1. 오골강을 현 압록강에 비정하면서 가탐 도리기 상에 분명히 있는 압록강을 공중에 증발시켜 버리는 모순에 스스로 봉착한다

2. 위만조선을 현 서북한에, 고구려 수도로서의 평양을 현 평양에 비정한 학계 통설에 철저히 봉사하고 있다

3. 가탐 도리기와 장황의 도서편의 항로와 그 경유지가 일치함을 무시하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제외하고 있다

4. 명나라 때에 편찬된 주해도편과 이에 첨부된 중국 연안의 상세지도 상에 나타나는, 분명히 일치하는, 명확한 정보를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제외하고 있다

5. 송사에도 사문도는 등주에 있다고 나옴에도 청나라 시대의 사료 근거에 치중하여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제외하고 있다

6. 17세기 독사방여기요의 "오호도가 등주에서 동북쪽으로 200리에 있다'는 기록은 가탐의 '동북해행'을 당시 지리지형 현실에 맞추어 오해함으로써 잘못 적힌 것이다  묘도열도는 등주 앞 바다가 아니라 래주 앞바다에 있으며 요동반도 끝 여순 근처에 오호도로 비정된 섬은 등주에서 6~700 여리를 상회하여 떨어져 있다 오히려 등주에서 래주까지의 거리가 200 여리에 근접한다

7. 가탐 도리기의 항로와 같은 경유지를 따라가는 장황 도서편의 등주에서 요동 북안으로 가는 바닷길은 도리진을 중간 기착지로 하고 하북성 노룡, 창려를 지나고 있으며 그 거리 수치도 가탐 도리기의 거리 수치와 일치한다

8. 도리진은 명나라 연안 상세지도인 주해도편 수록 지도에 현 산동 빈주 소청하(Xiaoqing river) 연안에 분명히 표시돼 있다 뿐만 아니라 가탐 도리기와 장황 도서편에 등장하는 여러 섬의 이름이 적시돼 있다

9. 장황의 도서편 항로에는 아예 도리진을 산동 포대현에 있다고 적시해 놓았고 가탐 도리기에서는 마석산의 동쪽에 있다고 명기하고 있는데 마석산과 산동 포대현은 현 중국 산동 빈주 소속의 옛 지명들이다

10. 이들 항로의 경유지 가운데 한 곳인 도화포는 성경통지에 청 영원주 서남쪽이라 설명돼 있는데 이곳은 현 호로도시 서남쪽에 해당하며 역시 주해도편 지도에 이곳 이 자리에 도화포가 적시돼 있다

11. 주해도편 수록 지도에는 오골강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경유지 역시 요하만 일대에 분명히 표시하고 있다

12. 묘도 열도는 대해류가 들어와서 요하만과 발해만을 돌며 요하, 황하 등의 무수한 강줄기가 흘려보내는 수량을 안고 다시 빠져 나가는 곳이다 또 서해 자체가 조류가 세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바다이다 한반도 남해 연안이나 강화도 앞의 울돌목과 다름 없는 곳이 바로 요동반도와 산동반도 사이의 묘도군도 바다이다

13. 뿐만 아니라 서해는 봄부터 여름 시기에 남쪽으로 밀고 올라오는 해류의 힘이 거세지는 때이고 태풍이 무수히 출현하는 시기이다

14. 북위와 남송의 사신선도 연안항해가 아닌 직접도해를 시도하다 난파된 바 있다

15. 서해는 해류를 타고 중국 쪽에서는 중국 남부에서 한반도 남부로 오기 쉽고 반대로 한반도에서는 역풍을 받으며 이 항로를 따라가거나 해류를 타고 연안을 따라 요동 발해를 돌아 항해하기 쉬우나 중국 쪽에서 산동ㅡ여순 직접 도해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16. 만약 당 태종의 수군이 묘도군도를 타고 여순 등지에 도달하는 방식으로 고구려를 침공했다면 왜 국경지대에서 백 회가 넘는 전투를 벌였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적지 한복판이나 다름 없는 요동반도 최남단에 도착해 다시 연안을 따라 북쪽으로 수백 리 이상을 항해하여 고구려 국경지대를 타격하는 게 말이 되는가?

17. 당 태종 2차 원정의 1차 침공 때는 국경지대에서 100회 가량 전투가 있었으며 2차 침공 때 오호진 수장 고신감의 병력이 고구려군과 싸운 역산은 고구려 국경지대라고 적고 있다 산동 래주ㅡ요동 여순 직도해 경로라면 이게 설명이 되는가?

18. 19 세기 말 청나라 지방지인 등주부지에 수록된 소위 타기도 석각의 경우 2차 원정의 고신감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1차 원정과 관계된 것이다 1차 원정에서 래주ㅡ여순의 묘도군도를 경유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2차 원정 때에도 오호도 뿐만 아니라 대사도에도 진/수 등 병영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들 묘도군도에도 수군영을 설치했을 가능성 또한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묘도군도의 제일 끝섬, 그러니까 여순에 가까운 섬을 오호도에 비정하면 등주에서 200리가 아니라 그 너댓 배 이상의 거리이다

감방친구 18-03-15 11:03
1. 신당서 가탐도리기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

登州東北海行 過 大謝島 龜歆島 淤島 烏湖島 三百里, 北渡烏湖海 至馬石山東之都里鎮 二百里.

東傍海壖. 過 青泥浦 桃花浦 杏花浦 石人汪 橐駝灣 烏骨江 八百里, 乃南傍海壖.

2. 장황의 圖書編

沙門島爲解宋寨界 單山爲黃縣界 桑島爲馬停寨界 龜島爲昌邑縣界 歆末島爲壽光界 都里鎭爲蒲臺界 靑島爲利津界 黃島爲賓州界 直沽口爲寶低縣界 塔山爲盧龍衛寨界 南半洋山爲昌黎縣界 計一千二百里,抵遼東北半.

3. 성경통지

桃花島

新唐書地理志登州東北海行過大謝島龜歆島烏湖島三百里至都里鎮二百里東傍海壖過青泥浦桃花浦杏花浦

金史地理志興城縣有桃花島 按桃花島即桃花浦明初海運泊船于此今在寧逺州城南

목록 PC버전 위로

Copyright © gasen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