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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6일 (금)

[한국사] 정안국 수도 랴오위안시 비정에 대한 비판

감방친구 조회 :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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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통하여 논설 게시자 히스토리님께 수차례 비판을 하며 근거를 제시해 달라 요청하였으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의 무시와 조롱으로 일관하기에 히스토리님이 정안국을 랴오위안시와 동요하 범주에 비정한 근거로 제시한 사료의 실제 기록을 통하여 히스토리님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지 거듭 비판하고 나아가 여러 역사탐문자 분들께 관련 역사에 있어서 유익한 정보로 삼으시라 글을 게시합니다.


가. 히스토리님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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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遼史)에는 발해의 서경 압록부가 고구려 때의 고국성(고구려의 국내성)으로 성의 높이가 3장이고 동서 및 남북 너비가 20리에 이른다는 기록이 있다.
서경 압록부는 발해가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이 세운 정안국의 수도였다.

즉, 정안국의 수도를 찾는다는 의미는 고구려의 국내성을 찾는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속주(屬州)로서는 신(神)·환(桓)·풍(豊)·정(正)의 4주가 있었다.

속주인 신주찾기

 1)거란(요)의 신주의 기록: 요사에 의하면 성종이 설치했는데, 고려와 인접해 있다.

 2)흠정만주원류고: 개원의 동쪽이 신주이다.

 3)성경강역고: 창도부 팔면성이 신주이다

 신주는 요동에 있었던 고려의 강동8주에 인접해 있고, 개원과 팔면성의 위치를 찾으면 된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6751&sca=&sfl=mb_id%2C1&stx=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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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실제 사서의 기록(위 주장에 대한 저의 비판으로서)


1. 성경강역고(盛京疆域考)

1) 신주(信州)

信州 今懷德縣西四十里 統縣二原志彰聖軍下節度渤海置懷遠府

신주(信州) 발해가 회원부를 두었다

今昌圖府東北之八面城蓋即遼信州故城

지금 창도부 동북쪽 팔면성이 아마도 곧 요나라 신주의 옛 성으로 보인다

2) 신주(神州)

神州 西京鴨淥府 今通化縣東並下神州見遼志淥州

신주(神州) 서경압록부(발해)로 지금의 통화현 동쪽으로 나란히 있는 신주(神州)가 요사 지리지에서 말한 녹주로 보인다

唐誌賈耽曰自鴨淥江口舟行百餘里乃小舫泝流東北三十里至泊汋口得渤海之境又泝流五百里至丸都縣城故高麗王都又東北泝流二百里至神州

신당서 지리지 가탐 도리기에 따르면, 환도현에서 동북쪽으로 (압록강을) 이백 리 (거슬러) 가면 신주(神州)에 이른다

淥州 今通化縣東境 統州四縣二原志鴨淥軍節度本高驪故國渤海號西京鴨淥府都督神桓豐正四州事故縣三神鹿神化劍門皆廢大延琳叛遷餘黨於上京置易俗縣居之

녹주(淥州) 지금의 통화현 동쪽( 경계)에 있다.
발해는 서경압록부라 하였다.
대연림이 반란을 일으켜 잔당을 상경 역속현으로 옮겨 거주케 했다.


2.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1) 신주 (信州)

遼史地理志東京信州本粵喜故城地鄰髙麗按此即渤海懐逺府治所據元一統志在濱州之西今開原之東葢遼時渤海衰而髙麗復興故與髙麗相近也


요사 지리지에 따르면 본래 월희국 땅으로 고려와 이 땅이 접했다 하였는데 발해의 회원부 치소가 있던곳이다.

명일통지에 따르면 (요나라) 빈주의 서쪽, 지금의 개원 동쪽에 있었다.

아마도 요나라 시기에 발해가 쇠하(여 그 땅을 잃)고 고려가 흥하여 옛 땅을 회복하였으므로 신주가 고려와 더불어 서로 가깝다 한 것으로 보인다.

自開原東北至信州三百十里是也今有古城周一里門八土人猶呼信州城

개원으로부터 동북쪽으로 310 리에 신주(信州)가 있는데 여기에 둘레가 1리, 문이 8개인 옛 성이 있어서 토인(토착민)들이 가히 신주성이라 부른다.


2) 신주(神州)


淥州 遼史淥州鴨綠軍本髙麗故國渤海西京鴨綠府

녹주 (淥州) 요사에서 말한 녹주 압록군이며 고구려의 옛 땅이자 발해의 서경 압록부 자리이다.

唐賈耽道里紀自鴨綠江口舟行百餘里又小舫溯流東北三十里至泊汋口得渤海之境又溯流五百里至丸都縣見後城故髙麗王都又東北溯流二百里至神州

신당서 지리지 가탐 도리기에 따르면, 환도현에서 동북쪽으로 (압록강을) 이백 리 (거슬러) 가면 신주(神州)에 이른다.


3. 요사 지리지 (遼史 地理誌)


1) 신주 (信州)

信州 彰聖軍 下 節度 本 越喜故城 渤海 置 懐逺府 今廢 聖宗 以地隣髙麗 開泰 初 置州 以所俘漢民實之

신주(信州) 창성군 본래 월희국 땅으로 발해가 회원부를 두었는데 지금(요나라)은 폐지하였다.

성종이 고려와 인접하다 하여 개태 초에 주를 설치하고 중국인 포로들을 데려다 인호수를 채웠다.

2) 신주(神州)

渌州 鴨渌軍 節度 本 髙麗 故國 渤海 號 西京 鴨渌府, 城髙 三丈 廣輪 二十里 都督 神桓豐正 四州事 大延琳 叛 遷 餘黨於上京 置易俗縣居之

녹주 압록군. 본래 고려의 옛 땅이자 발해가 서경압록부라 한 곳이다.

신주(神州), 환주, 풍주, 정주를 관할한다.


4. 신당서(新唐書 地理誌 賈耽道里記)

신주(神州)

自鴨渌江口舟行百餘里乃小舫泝流東北三十里 至泊汋口得渤海之境 又泝流五百里至九都縣城 故髙麗王都 又東北泝流二百里至神州

압록강 어귀로부터 배를 타고 100여리를 가고, 이내 작은 배로 물길을 거슬러 동북쪽으로 30리를 가면 박작구에 도달하는데 발해의 경내이다. 또한 물길을 거슬러 500리를 가면 환도현의 성에 도달하는데 옛 고구려의 왕도이다. 또한 동북쪽으로 물길을 거슬러 200리를 가면 신주(神州)에 도달한다.


다. 요약

1. 히스토리님의 주장

정안국 = 발해 서경압록부 = 요나라 녹주 압록군 속주 신주(神州) = 요나라 신주(信州) 창성군

2. 실제 사서에 기록된 내용

1) 대연림 흥요국 관련 인근 지역, 정안국 추정지, 986 여진 지역 = 압록강 중상류 = 발해 서경압록부 = 요나라 녹주

2) 고려와 거란이 국경을 맞댄 지역 = 철령ㆍ개원 동(북)쪽, 장춘
(남)서쪽 =  발해 회원부 = 요나라 신주 = 동요하

3) 요나라 주의 위치
신주 아래에 함주, 함주 아래에 은주(현 철령시)

history2 18-03-08 11:23
신주라는 용어에 대해 비판함을 수용한다고 해도(사실 인정은 안합니다. 신주라는 명칭에 대해 한자가 틀려지거나, 교치되는 등 사례가 많음은 님도 아십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지형적인 상황 상, 요하의 물 줄기 외에 서경압록부가 위치할 곳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전 지형 지물을 세밀히 관찰한 결과고, 님은 사서를 통한 고증입니다. 사서의 내용이 맞다한들, 요하를 제외라고는 태자하 나 혼하의 근처에 서경압록부가 있기 힘들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왜냐하면 태자하나 혼하는 원래 동서로 흐르는 강이고, 또한 대체로 건천이며, 주위가 방어가 너무 어렵더라고요....그러다 보니 님이 말씀하신 지역에 서경압록부가 있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서를 중시하시는 분이시니, 이런 말이 변명처럼 느껴지시겠지요... 국내성이라는 측면도, 원래 대무신왕 이 후 천도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 그때는 어느정도 부여를 통제할 수 있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곳을 서경 압록부라 생각을 한 것 입니다(이건 칼리님 의견이신데....이제야 적네요)
감방친구 18-03-08 11:25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감방친구 18-03-08 11:27
그러면서 왜 사서를 근거로 하셨어요?
히스토리님, 님 저 사서들 안 읽으셨죠?
요사, 성경강역고, 만주원류고를 왜 근거로 드셨어요?
그것도 엉터리로 마구잡이 뒤섞어서?
history2 18-03-08 11:26
님을 조금이라도 기분 나쁘게 하려는게 아니라, 저와 님이 바라보는 해석의 도구가 다르니 일치점을 못찾지 않을까 해서, 아무 말씀 안드렸는데, 그건 죄송합니다
감방친구 18-03-08 11:27
기분 나쁜 게 아니라
사실을 따지는 겁니다
history2 18-03-08 11:27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또 사과를 드리면 되는 겁니까? 저와 사회과 부도 들고, 중국가서 확인해야 하나요? 태자하 물길이 양재천 같은데 어떻게 합니까?
감방친구 18-03-08 11:28
사과가 아니라
어떻게 저 사서들 내용을 저런 식으로 사용하셨는지
설명을 하시면 됩니다
감방친구 18-03-08 11:30
설명을 못 하시면
본인의 논설을 파기하시면 됩니다

아니 대체 엄연히 발해 회원부가 있던 자리를 자꾸 발해 서경압록부라 우기십니까
정안국이 서경압록부지 회원부에 있었어요?
history2 18-03-08 11:29
님 정말 님의 연구과정과 결과물은 존경합니다...근대 태자하나 혼하 주위는 해자나 배가 다닐 수 있는 여건이 안됩니다...지금 선양과 요양의 그 강은 강이 아니라 저수지 입니다.....본류는 좀 심하게 작아요
감방친구 18-03-08 11:31
강을 떠나서
회원부 자리 신주를  압록부 자리 신주라 우기시는 그 사료 근거와 해석을 설명해보세요
비좀와라 18-03-08 11:43
황하의 수량이 과거와 비교해서 현저하게 줄어서 지금 태자하나 혼하가 저수지 같이 된것이지 원래부터 그런 것이 아닙니다.

황하가 본래 곤륜산에서 발원하는데 이 곤륜산에서 발원하는 황하의 물줄기를 개간한다고 바꾼것과 황하 상류 지역의 무분별한 벌목과 개간으로 황폐화 되면서 황하의 수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어서 지금은 저수지 같이 변한 것이지 원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장강도 현재와 같이 남벌이 진행 된다면 역시 황하와 같이 될 것 이고요.
history2 18-03-08 11:30
서경 압록부는 운송이 되는 위치어야 하고 가능하고,,,,, 방어도 되야 하는데 지도 상에는 좀 힘들어 보이네요
감방친구 18-03-08 11:35
님, 정안국이 압록강 하류까지 차지했습니까?
서경압록부에 있었다고 정안국이 서경압록부 땅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는 말입니까?
history2 18-03-08 11:31
서경압록부도 모르면서 회원부인지는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감방친구 18-03-08 11:32
대체 뭘 읽으신 겁니까?
대단하십니다 진짜
history2 18-03-08 11:31
제발 노이로제 걸리겠으니 그만 하시지요..사과하라면 하겠습니다
감방친구 18-03-08 11:32
아니 뭔 이런 경우가 다 있어
history2 18-03-08 11:34
님도 좀 심하신 것 같습니다....해석의 도구가 다른것을.....ㅠㅠ
감방친구 18-03-08 11:35
도구가 다른 게 아니죠
감방친구 18-03-08 11:36
이게 님이 쓴 글입니다
이거 님이 직접 쓰셨잖아요

ㅡㅡㅡㅡㅡㅡㅡ


《요사》(遼史)에는 발해의 서경 압록부가 고구려 때의 고국성(고구려의 국내성)으로 성의 높이가 3장이고 동서 및 남북 너비가 20리에 이른다는 기록이 있다.
서경 압록부는 발해가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이 세운 정안국의 수도였다.

즉, 정안국의 수도를 찾는다는 의미는 고구려의 국내성을 찾는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속주(屬州)로서는 신(神)·환(桓)·풍(豊)·정(正)의 4주가 있었다.

속주인 신주찾기

 1)거란(요)의 신주의 기록: 요사에 의하면 성종이 설치했는데, 고려와 인접해 있다.

 2)흠정만주원류고: 개원의 동쪽이 신주이다.

 3)성경강역고: 창도부 팔면성이 신주이다

 신주는 요동에 있었던 고려의 강동8주에 인접해 있고, 개원과 팔면성의 위치를 찾으면 된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6751&sca=&sfl=mb_id%2C1&stx=history
history2 18-03-08 11:38
전 진심 할만큼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제 의견에 대해 무조건 정답이라고 생각은 안하지만,  저도 아무런 생각없이 쓴 글은 아니구요...사서는 님이 이미 더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 인정을 했구요, 다만 정황-지리상 이해가 안간다는 말씀을 드립니다...님의 연구에 제 부족한 의견이 도움이 되기를 진심 바랍니다
감방친구 18-03-08 11:39
정말 기가 막힙니다
님 진짜 왜 그러세요?
나이도 저랑 비슷한 연배인데 대체 님 이러는 거 이해가 안 갑니다
history2 18-03-08 11:40
더이상의 의견은 없습니다. 좋은 나날 되세요.....전방후원분 공부하기도 바쁘네요 ...진심 죄송하고 이 쪽은 더이상 글을 올리지도 건들이지도 않겠습니다.(저도 제 블로그와 등등 이 있으니 나름의 가설은 더욱 노력하여 보완하겠습니다)
감방친구 18-03-08 11:43
아니 사서 잘못 인용하여 가정 자체가 오류인 것을 인정하고 가셔야죠
history2 18-03-08 11:45
네 인정할께요...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진심입니다. ^^ 홧팅!
감방친구 18-03-08 11:46
미치겠다 진짜 아이고
history2 18-03-08 11:53
태자하 나 혼하의 상태는 원래 그랬습니다....제가 고지도도 첨부 했지 않습니까? 확인 할 만큼 했는데...... 전 더 힘듭니다. 님의 주장을 무시하기도, 현재의 자연환경도 무시하기도 힘든,  정말 어려운 건 저 입니다. 님은 사서만 보면 되잖아요
history2 18-03-08 11:53
실수 .... 그만 적는다고 약속했는데,,
가난한서… 18-03-08 12:05
그냥 개인의 의견이니까요.. 우리가 전문가도 아닌데요 뭐, 전문가가 섞여있을수도 있겠죠
근데 이건 비판이 아니고 비난 같은데요 사람 몰아세우기 같아요 역사학자들도 생각이 다른데요 뭐..
지금도 우리 교과서에 요서 요동에 있다고 수차례 언급된곳이 고구려와 삼한땅에 들어와있잖아요
감방친구 18-03-08 12:09
글을 읽고 의견을 다세요
비난이 아니라 비판입니다
히스토리님과 저 사이에 오고 간 일들과 대화 내용을 다 보셨습니까?
감방친구 18-03-08 12:12
여기는 토론게시판입니다
주장을 하되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 근거가 합당해야 토론이 됩니다

이게 왜 몰아세우기입니까
근거가 이상하니 설명을 해달라, 저 신주는 서로 다른 것인데 어떻게 한 곳으로 보느냐 대답을 해달라 수차례 요청했으나 묵살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논설에 대한 비판글을 별도로 쓴 게 이 글입니다
그리고 히스토리님도 자기글에 댓글로 비판하지 말고 새로 글을 하나 게시하라고 요구한 바도 있습니다
감방친구 18-03-08 12:19
생각이 다른 게 아니라 히스토리님이 애초에 근거로서의 사서
기록을 잘못 인용한 겁니다
history2 18-03-08 12:56
오후에 다시한번 검토하겠습니다....태자하와 혼하의 수량 및 과거기록 다 검토해서, 조금이라도 님의 견해에 부합하는 내용을 찾으면, 모든 제 가설을 취소하구요....또 사과드리겠습니다...사실 이 과정도 하긴 했는데요... 다시 해보지요
감방친구 18-03-08 13:01
님, 혼하, 태자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왜 그러세요?
녹주의 신주와 신주는 다른 곳인데 같은 곳인 것처럼 쓰셨잖아요
그걸 문제 삼는 거 아닙니까

혼하냐 동요하냐 그거는 다른 문제고요
대체 왜 그러십니까

압록강이 동요하라면 저도 좋죠
저도 애초에 대릉하=요수, 동요하~대요=압록강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여전히 차안으로서 염두하고 있습니다
history2 18-03-08 13:06
저는 동요하에 서경 압록부가 있다고 생각을 해서 그럽니다...... 지리책을 한시간 동안 쳐다보았는데, 제 상식으로는 그래요....제가 무슨 감정이 있다고 님의 그 소중한 사서검증에 비판을 하겠습니까? 제가 인용한 문헌적 오류가 있다고 해도, 제 머릿속은 사실 지도가 더 꽉 차있습니다.... 저도 나름 지도와 강의 유량과 인접 도시의 상황,,,도시의 이름의 근원까지 조사를 했습니다...그런데 사실 지금은 이 문제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도 느낍니다...정작 중요한 것은 압록강이 일단 요동에 있다는 것만 확인하면 되고, 정안국 수도의 문제는 지금 어떻게 해도 밝혀지지 않고 그리고 제사업은 힘들고,,,또 전방후원분 문제로 저는 또 다른 쪽에 관심이 가 있고 그런 상황입니다.
지금 어떻게 하면, 님하고 관계개선이 가능할 지 말씀해 주시면,,,, 최대한 그 방향대로 움직이겠습니다
감방친구 18-03-08 13:34
님, 압록강을 동요하에 두면 풀어야 할 게 산더미입니다

이를 테면 동요하가 압록이면 보주성, 내원성은 어디에 두실 겁니까

목적론, 결과를 미리 정해놓고 사실을 끌어다 쓰면 안 되는 겁니다
history2 18-03-08 13:13
녹주의 신주, 그리고 신주가 다르다고 말씀하시고 인정하라 하시면,,,,,전 인정할 용의가 있습니다...원래 제게 그 문제가 큰 문제는 아니잖아요! 사실 정안국의 수도도 별로....실은 정안국의 연대가 더 고민스럽습니다....
저는 1018년 이 후 까지 존속했다 주장하는 사람이고,,,,,,또 삼별초의 오키나와 진출만 봐도 저는 정안국의 역사를 오래 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그래야 역사학계가 인정을 해 주고, 가르칠것 같아서요...사실 정안국을 여진족이라 칭하는 것이 매우 전 불쾌합니다...여기서 시작이 된 문제인데 사실 길이 어긋나 버렸어요
감방친구 18-03-08 13:23
인정할 용의가 있는 게 아니라 사서에, 그것도 여러 사서에 적혀 있는 걸 어떻게 하시려구요?

저기만 있는 게 아니라 원사, 금사, 독사방여기요, 명사, 명일통지 ...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러면 애초에
1) 사서를 인용하여 근거로 삼지 마시던가
2) 아니면 서경압록부 신주와 회원부 신주가 실은 같은 곳이다ㅡ하고 논증을 하시고 그 논증을 토대로 주장을 펴 가셨어야죠
history2 18-03-08 13:14
저는 정안국의 연대기가 이 문제에선 제 우선 사항 입니다. 그런데, 사서로는 증명이 안되니...겨우 골수가 정안국에서 왔다.... 해석의 여지만 분분한 그 내용이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감방친구 18-03-08 13:26
그 기분 저도 충분히 잘 압니다
그러나 억지로는 안 됩니다
도배시러님이 잘 쓰시는 표현으로 찬찬히 가셔야 합니다
논리가 엄정해야 합니다
이해한다 18-03-08 13:22
히스토리님의 주장의 요지는 정안국에 대한 탐문이내요. 정안국은 여진족이 아니다라는 것이며, 감방친구님의 주장은 일제 및 중국등에 의해 조작되었을 본래의 지명을 탐문하며 본래의 우리의 영토는 어느 정도 였는가에 대해 탐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명의 명칭은 감방친구님이 좀 더 전문성이 있을 것이며, 히스토리님은 정안국의 역사에 대해 계속 탐문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는 단계라도 생각됩니다. 그러니 정안국에 대해 도움을 주시면서 감방친구님의 주장하시면 문제가 줄어들 갓으로 생각합니다.
history2 18-03-08 13:23
제가 아무생각 없이 글을 쓰는것 같아도...결국 카테고리의 중심은 1)정안국 같은 나라도 있었고2)그 나라가 우리의 민족의 국가였고 3)무시할 정도의 국가가 아닌데, 우리가 너무 무시하고 있다를 근원으로.....오카나와나 정창원 등등의 글을 쓰는 것 입니다.  정창원 같은 곳이 있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정안국의 역사를 볼 수 있을 것이고, 사서에는 쫄딱 망했다고 하지만 혹시 삼별초 같이 살아남지 않았겠는냐....이런 식의 유치하지만 간절한 바람으로 글을 적는다는 말 입니다.....
감방친구 18-03-08 13:29
님의 동기나 진심 뭐 이런 걸 뭐라 하는 거겠읍니까
논증 과정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죠
이해한다 18-03-08 13:24
히스토리님은 감방친구님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정안국에 대해 탐문할려고 탐문하고 노력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감방친구님이 외롭게 분투하시던 그 때의 과정을 히스토리님은 겪고 있다고 생각되네요.
감방친구 18-03-08 13:28
반박하시는 게 아니라 사서를 잘못 인용하셨는데 너무 목적론에 사로잡혀 계셔서 저러는 겁니다

정안국 탐구는 제가 여기서 제일 먼저 응원해준 사람입니다
이해한다 18-03-08 13:38
넵. 저는 이분을 감방친구님과 같이 탐문심이 있는 분으로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감방친구님 처럼 불굴의 의지가 강하신 분은 아니라고 생각되기에 공격적으로 댓글을 다는 것을 좀더 순화시켜서 달아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사서에서 이러한 부분이 문제가 됨으로 이부분은 수정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게 좋다고 순화하셔서 말씀드리는 게 저는 좋다고 생각되네요. 물론 예민하게 나오는 것을 이해합니다. 다만 이분은 공격적인 어투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니 존중하는게 좋다고 생각되네요. 물론 감방친구님 또한 마찬가지로 주장하시면 됩니다.
신수무량 18-03-08 14:00
정안국의 수도가 어디냐인데...
그 내용의 핵심은 "신주(信州) = 신주(神州) 인가, 신주(信州) ≠ 신주(神州) 인가" 로 보입니다.
history2님은 "왜 신주(信州) = 신주(神州) 로 보는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해 주시면(그게 맞든 아니든-역사에 진짜가 무엇인지 알기는 어려움-) 될 거 같았는데 빙빙 도는 듯합니다.

지나애들(지나화된 북방민족포함하여)이 워낙 지명을 바꾸고 위치도 바꾸고 비슷한 지명도 많다보니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하셨지만 나름의 근거는(같은 지명으로 보는 근거) 무엇인가로 요약됩니다.

- 지명은(위치 비정) 매우 중요하지요. 특히 우리 역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지명들이 많죠...
  고구려의 평양은 말할 것도 없고, 핵심중의 핵심인 '낙랑'은 어디인가.
  온조 비류가 넘었다는 '한수'는 어디인가.
  고려시기 몽골을 피해 천도했던 '강도'는 어디인가. 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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