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정안국 수도 랴오위안시 비정에 대한 비판
감방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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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통하여 논설 게시자 히스토리님께 수차례 비판을 하며 근거를 제시해 달라 요청하였으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태도의 무시와 조롱으로 일관하기에 히스토리님이 정안국을 랴오위안시와 동요하 범주에 비정한 근거로 제시한 사료의 실제 기록을 통하여 히스토리님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지 거듭 비판하고 나아가 여러 역사탐문자 분들께 관련 역사에 있어서 유익한 정보로 삼으시라 글을 게시합니다.
가. 히스토리님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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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遼史)에는 발해의 서경 압록부가 고구려 때의 고국성(고구려의 국내성)으로 성의 높이가 3장이고 동서 및 남북 너비가 20리에 이른다는 기록이 있다.
서경 압록부는 발해가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이 세운 정안국의 수도였다.
즉, 정안국의 수도를 찾는다는 의미는 고구려의 국내성을 찾는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속주(屬州)로서는 신(神)·환(桓)·풍(豊)·정(正)의 4주가 있었다.
속주인 신주찾기
1)거란(요)의 신주의 기록: 요사에 의하면 성종이 설치했는데, 고려와 인접해 있다.
2)흠정만주원류고: 개원의 동쪽이 신주이다.
3)성경강역고: 창도부 팔면성이 신주이다
신주는 요동에 있었던 고려의 강동8주에 인접해 있고, 개원과 팔면성의 위치를 찾으면 된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6751&sca=&sfl=mb_id%2C1&stx=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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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실제 사서의 기록(위 주장에 대한 저의 비판으로서)
1. 성경강역고(盛京疆域考)
1) 신주(信州)
信州 今懷德縣西四十里 統縣二原志彰聖軍下節度渤海置懷遠府
신주(信州) 발해가 회원부를 두었다
今昌圖府東北之八面城蓋即遼信州故城
지금 창도부 동북쪽 팔면성이 아마도 곧 요나라 신주의 옛 성으로 보인다
2) 신주(神州)
神州 西京鴨淥府 今通化縣東並下神州見遼志淥州
신주(神州) 서경압록부(발해)로 지금의 통화현 동쪽으로 나란히 있는 신주(神州)가 요사 지리지에서 말한 녹주로 보인다
唐誌賈耽曰自鴨淥江口舟行百餘里乃小舫泝流東北三十里至泊汋口得渤海之境又泝流五百里至丸都縣城故高麗王都又東北泝流二百里至神州
신당서 지리지 가탐 도리기에 따르면, 환도현에서 동북쪽으로 (압록강을) 이백 리 (거슬러) 가면 신주(神州)에 이른다
淥州 今通化縣東境 統州四縣二原志鴨淥軍節度本高驪故國渤海號西京鴨淥府都督神桓豐正四州事故縣三神鹿神化劍門皆廢大延琳叛遷餘黨於上京置易俗縣居之
녹주(淥州) 지금의 통화현 동쪽( 경계)에 있다.
발해는 서경압록부라 하였다.
대연림이 반란을 일으켜 잔당을 상경 역속현으로 옮겨 거주케 했다.
2.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1) 신주 (信州)
遼史地理志東京信州本粵喜故城地鄰髙麗按此即渤海懐逺府治所據元一統志在濱州之西今開原之東葢遼時渤海衰而髙麗復興故與髙麗相近也
요사 지리지에 따르면 본래 월희국 땅으로 고려와 이 땅이 접했다 하였는데 발해의 회원부 치소가 있던곳이다.
명일통지에 따르면 (요나라) 빈주의 서쪽, 지금의 개원 동쪽에 있었다.
아마도 요나라 시기에 발해가 쇠하(여 그 땅을 잃)고 고려가 흥하여 옛 땅을 회복하였으므로 신주가 고려와 더불어 서로 가깝다 한 것으로 보인다.
自開原東北至信州三百十里是也今有古城周一里門八土人猶呼信州城
개원으로부터 동북쪽으로 310 리에 신주(信州)가 있는데 여기에 둘레가 1리, 문이 8개인 옛 성이 있어서 토인(토착민)들이 가히 신주성이라 부른다.
2) 신주(神州)
淥州 遼史淥州鴨綠軍本髙麗故國渤海西京鴨綠府
녹주 (淥州) 요사에서 말한 녹주 압록군이며 고구려의 옛 땅이자 발해의 서경 압록부 자리이다.
唐賈耽道里紀自鴨綠江口舟行百餘里又小舫溯流東北三十里至泊汋口得渤海之境又溯流五百里至丸都縣見後城故髙麗王都又東北溯流二百里至神州
신당서 지리지 가탐 도리기에 따르면, 환도현에서 동북쪽으로 (압록강을) 이백 리 (거슬러) 가면 신주(神州)에 이른다.
3. 요사 지리지 (遼史 地理誌)
1) 신주 (信州)
信州 彰聖軍 下 節度 本 越喜故城 渤海 置 懐逺府 今廢 聖宗 以地隣髙麗 開泰 初 置州 以所俘漢民實之
신주(信州) 창성군 본래 월희국 땅으로 발해가 회원부를 두었는데 지금(요나라)은 폐지하였다.
성종이 고려와 인접하다 하여 개태 초에 주를 설치하고 중국인 포로들을 데려다 인호수를 채웠다.
2) 신주(神州)
渌州 鴨渌軍 節度 本 髙麗 故國 渤海 號 西京 鴨渌府, 城髙 三丈 廣輪 二十里 都督 神桓豐正 四州事 大延琳 叛 遷 餘黨於上京 置易俗縣居之
녹주 압록군. 본래 고려의 옛 땅이자 발해가 서경압록부라 한 곳이다.
신주(神州), 환주, 풍주, 정주를 관할한다.
4. 신당서(新唐書 地理誌 賈耽道里記)
신주(神州)
自鴨渌江口舟行百餘里乃小舫泝流東北三十里 至泊汋口得渤海之境 又泝流五百里至九都縣城 故髙麗王都 又東北泝流二百里至神州
압록강 어귀로부터 배를 타고 100여리를 가고, 이내 작은 배로 물길을 거슬러 동북쪽으로 30리를 가면 박작구에 도달하는데 발해의 경내이다. 또한 물길을 거슬러 500리를 가면 환도현의 성에 도달하는데 옛 고구려의 왕도이다. 또한 동북쪽으로 물길을 거슬러 200리를 가면 신주(神州)에 도달한다.
다. 요약
1. 히스토리님의 주장
정안국 = 발해 서경압록부 = 요나라 녹주 압록군 속주 신주(神州) = 요나라 신주(信州) 창성군
2. 실제 사서에 기록된 내용
1) 대연림 흥요국 관련 인근 지역, 정안국 추정지, 986 여진 지역 = 압록강 중상류 = 발해 서경압록부 = 요나라 녹주
2) 고려와 거란이 국경을 맞댄 지역 = 철령ㆍ개원 동(북)쪽, 장춘
(남)서쪽 = 발해 회원부 = 요나라 신주 = 동요하
3) 요나라 주의 위치
신주 아래에 함주, 함주 아래에 은주(현 철령시)
가. 히스토리님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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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遼史)에는 발해의 서경 압록부가 고구려 때의 고국성(고구려의 국내성)으로 성의 높이가 3장이고 동서 및 남북 너비가 20리에 이른다는 기록이 있다.
서경 압록부는 발해가 멸망한 뒤 그 유민들이 세운 정안국의 수도였다.
즉, 정안국의 수도를 찾는다는 의미는 고구려의 국내성을 찾는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속주(屬州)로서는 신(神)·환(桓)·풍(豊)·정(正)의 4주가 있었다.
속주인 신주찾기
1)거란(요)의 신주의 기록: 요사에 의하면 성종이 설치했는데, 고려와 인접해 있다.
2)흠정만주원류고: 개원의 동쪽이 신주이다.
3)성경강역고: 창도부 팔면성이 신주이다
신주는 요동에 있었던 고려의 강동8주에 인접해 있고, 개원과 팔면성의 위치를 찾으면 된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6751&sca=&sfl=mb_id%2C1&stx=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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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실제 사서의 기록(위 주장에 대한 저의 비판으로서)
1. 성경강역고(盛京疆域考)
1) 신주(信州)
信州 今懷德縣西四十里 統縣二原志彰聖軍下節度渤海置懷遠府
신주(信州) 발해가 회원부를 두었다
今昌圖府東北之八面城蓋即遼信州故城
지금 창도부 동북쪽 팔면성이 아마도 곧 요나라 신주의 옛 성으로 보인다
2) 신주(神州)
神州 西京鴨淥府 今通化縣東並下神州見遼志淥州
신주(神州) 서경압록부(발해)로 지금의 통화현 동쪽으로 나란히 있는 신주(神州)가 요사 지리지에서 말한 녹주로 보인다
唐誌賈耽曰自鴨淥江口舟行百餘里乃小舫泝流東北三十里至泊汋口得渤海之境又泝流五百里至丸都縣城故高麗王都又東北泝流二百里至神州
신당서 지리지 가탐 도리기에 따르면, 환도현에서 동북쪽으로 (압록강을) 이백 리 (거슬러) 가면 신주(神州)에 이른다
淥州 今通化縣東境 統州四縣二原志鴨淥軍節度本高驪故國渤海號西京鴨淥府都督神桓豐正四州事故縣三神鹿神化劍門皆廢大延琳叛遷餘黨於上京置易俗縣居之
녹주(淥州) 지금의 통화현 동쪽( 경계)에 있다.
발해는 서경압록부라 하였다.
대연림이 반란을 일으켜 잔당을 상경 역속현으로 옮겨 거주케 했다.
2.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1) 신주 (信州)
遼史地理志東京信州本粵喜故城地鄰髙麗按此即渤海懐逺府治所據元一統志在濱州之西今開原之東葢遼時渤海衰而髙麗復興故與髙麗相近也
요사 지리지에 따르면 본래 월희국 땅으로 고려와 이 땅이 접했다 하였는데 발해의 회원부 치소가 있던곳이다.
명일통지에 따르면 (요나라) 빈주의 서쪽, 지금의 개원 동쪽에 있었다.
아마도 요나라 시기에 발해가 쇠하(여 그 땅을 잃)고 고려가 흥하여 옛 땅을 회복하였으므로 신주가 고려와 더불어 서로 가깝다 한 것으로 보인다.
自開原東北至信州三百十里是也今有古城周一里門八土人猶呼信州城
개원으로부터 동북쪽으로 310 리에 신주(信州)가 있는데 여기에 둘레가 1리, 문이 8개인 옛 성이 있어서 토인(토착민)들이 가히 신주성이라 부른다.
2) 신주(神州)
淥州 遼史淥州鴨綠軍本髙麗故國渤海西京鴨綠府
녹주 (淥州) 요사에서 말한 녹주 압록군이며 고구려의 옛 땅이자 발해의 서경 압록부 자리이다.
唐賈耽道里紀自鴨綠江口舟行百餘里又小舫溯流東北三十里至泊汋口得渤海之境又溯流五百里至丸都縣見後城故髙麗王都又東北溯流二百里至神州
신당서 지리지 가탐 도리기에 따르면, 환도현에서 동북쪽으로 (압록강을) 이백 리 (거슬러) 가면 신주(神州)에 이른다.
3. 요사 지리지 (遼史 地理誌)
1) 신주 (信州)
信州 彰聖軍 下 節度 本 越喜故城 渤海 置 懐逺府 今廢 聖宗 以地隣髙麗 開泰 初 置州 以所俘漢民實之
신주(信州) 창성군 본래 월희국 땅으로 발해가 회원부를 두었는데 지금(요나라)은 폐지하였다.
성종이 고려와 인접하다 하여 개태 초에 주를 설치하고 중국인 포로들을 데려다 인호수를 채웠다.
2) 신주(神州)
渌州 鴨渌軍 節度 本 髙麗 故國 渤海 號 西京 鴨渌府, 城髙 三丈 廣輪 二十里 都督 神桓豐正 四州事 大延琳 叛 遷 餘黨於上京 置易俗縣居之
녹주 압록군. 본래 고려의 옛 땅이자 발해가 서경압록부라 한 곳이다.
신주(神州), 환주, 풍주, 정주를 관할한다.
4. 신당서(新唐書 地理誌 賈耽道里記)
신주(神州)
自鴨渌江口舟行百餘里乃小舫泝流東北三十里 至泊汋口得渤海之境 又泝流五百里至九都縣城 故髙麗王都 又東北泝流二百里至神州
압록강 어귀로부터 배를 타고 100여리를 가고, 이내 작은 배로 물길을 거슬러 동북쪽으로 30리를 가면 박작구에 도달하는데 발해의 경내이다. 또한 물길을 거슬러 500리를 가면 환도현의 성에 도달하는데 옛 고구려의 왕도이다. 또한 동북쪽으로 물길을 거슬러 200리를 가면 신주(神州)에 도달한다.
다. 요약
1. 히스토리님의 주장
정안국 = 발해 서경압록부 = 요나라 녹주 압록군 속주 신주(神州) = 요나라 신주(信州) 창성군
2. 실제 사서에 기록된 내용
1) 대연림 흥요국 관련 인근 지역, 정안국 추정지, 986 여진 지역 = 압록강 중상류 = 발해 서경압록부 = 요나라 녹주
2) 고려와 거란이 국경을 맞댄 지역 = 철령ㆍ개원 동(북)쪽, 장춘
(남)서쪽 = 발해 회원부 = 요나라 신주 = 동요하
3) 요나라 주의 위치
신주 아래에 함주, 함주 아래에 은주(현 철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