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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월 29일 (금)

[한국사] 한국인이 민감해하는 '족보'.. 99%는 가짜??

샤넬코코 조회 : 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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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씨전문가를 보니까 한국인의 성씨들중 김/이/박/최/정 (?) 이렇게 주요 5개성씨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김해 김+전주 이 씨만 합쳐도 50%가 된다나 뭐라나...

더군다나 전 인구의 30%정도는 '왕손' 이라던데...하긴 뭐 저만해도 이천서씨라서 기자조선의 왕손(?)이긴하지만..(이천서씨 검색해보시면 백과사전 기자조선의 마지막왕 기준왕의 40대손이 누구고 나오는데...저희 시조는 통일신라 말기분이고 성씨와 족보가 그쯤 일반화 되었잖아요? 그런데 족보없는 그이전까지 어떻게 거슬러올라갔는지 참 의문) 

우습죠.. 양반첩 사고팔던 조선말기에도 단 인구의 2%(?)정도의 극소수만이 양반이었다던데...더 거슬러 올라가면 얼마나 적었을까요. 거기다가 왕족이라면 !! 그런데도 세명중 한명꼴로 다들 왕손이니 족보를 누가 믿겠어요?

단지 김이박처럼 흔해빠져서 아무나 막 가졌을법한 성씨는 아니라는 점에 다소 위안거릴삼지만, 요즘시대에 족보가 무슨의미가 있겠습니까.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사회인데요.


아스카라… 17-12-15 12:29
흔치않은 성씨가 진퉁양반 후손이죠.
그중에서도 방씨가 특이한 게 시조가 정말 까마득합니다.
알려지기로 통일신라 때 중국 유학자가 귀화한 게 시조인데,
그 시조가
염제신농의 11대손의 134대손의 6대손입니다.
도합 염제신농의 151대손.
그중에서도 11대손은 또 고조선 건국시기보다 더 오래된 사람입니다...ㄷㄷ
방씨 족보를 보면 첫장부터 염제신농의 후손이라 언급한다합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삼황오제를 뿌리로 둔다니 참 재밌지요.
샤넬코코 17-12-15 12:44
방씨이신가보네요 ㅎㅎㅎ;
하지만 염제신농이니 삼황오제니 다 전설일뿐이잖아요 ..정사에서는 인정하지도 않는.
밥밥c 17-12-15 13:30
기자조선이 40여대까지 있었다는 것은 사마천의 사기에 나옵니다.

 이 부분까지도 전설은 아니죠.

 오늘날의 모든사람이 왕족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족보에 적혀있는 고대의 기록은 이전부터

 내려온 기록이기는 합니다.

 이전으로 올라간다고 쳐도 다들 옮겨 적은 것이지 개인의 상상력으로 새로 적거나 조작하기는 힘들죠.
샤넬코코 17-12-15 13:48
기준왕이 기자의 40대손이라고 나오는거같긴한데...기준왕이 위만에게 쫒겨간 마지막 임금인건 역사적 사실이긴 하지만.. '기자의 40대손' 이라는건 글쎄요.....?? 근거가 있을까몰라요.

우리가 흔히 사기나 삼국지 위지같은 중국서를 인용하긴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상고서들이 전멸하다시피 없기때문이고.. 저는 중국사서들 솔직히 한4할정도는 뻥!!!! 같아서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보다는 포장하는데 민감한 습성을 가진게 중국인들이기도 하구요. 그들이 기록한거다보니까... 아무래도 신뢰가 가지않는게 사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사마천 사기같은건 얼마나 신뢰도가 있나요?
밥밥c 17-12-15 14:12
사마천의 사기는 일종의 정사죠.

역사에서 정사는 기록으로서 하나의 기준입니다.

 이 기준을 무시하면 이미 역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국사학계가 일종의 식민사학이라고 불리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기준을 어떠한 일관된 목적을

가지고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원칙은 '기록은 기록끼리 검증한다'는 사서비교의 교차검증으로 합니다.

즉 , 교차검증으로서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는 기록이 더 일반적일 경우만이 아닌 것이죠.

임의대로 무시할 경우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창조역사죠.
페닐 17-12-15 15:30
구한말 매매로 족보는 솔직히 못믿긴 하지만

애초에 양반은 족보가 있어야 양반이 아니라 문반, 무반...그러니까 과거 봐서 벼슬한 사람을 양반이라했고
나중에 의미가 변질됏어도 최소한 과거 급제자가 3대 이내에 한명은 있어야 양반으로 인정 받았음
족보 사서 나도 양반입네...하는 이들은 많았어도 실제 인정 받는 양반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음
그리고 양반은 귀족이라기 보다는 ..서양으로 치면 부르주아지 계층으로 봐야 함
게다가 조선시대 평민은 신분적 제약이 그리 많지 않았고 신분 이동도 많았음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의 60%가 양인 이였다 함..

자~ 3대이내에 과거 급제자가 있어야 양반으로 인정하는데....대부분이 그렇듯이 나도 대한제국시절 벼슬하신 증조부로 부터 4대째니 그 기준으로 치면 양반 유지 못한것임...
80대이신 울 아버지께서나 간신히 양반이지...- -a

 족보에는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있어 역사적으로 시대상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임,.\

지금 족보도 없는 아랍이나 유럽애들중에도 조상 달달 외우는 애들 허다하고(이름을 그렇게 짓기도 하고..)
얼마전 러샤 시베리아 어떤 마을 족보보니 수백년전 조상부터 달달 외우고 있음....그선조는 모피 사냥꾼임
고려시대에 생겼다 해도 그전 세대 정보가 일부 들어있음은 부인하기 어려움..


애초에 지금 시대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조선시대 소잡던 백정이 대기업 세우고 회장님 되면 조선시대 왕족 적통도 가서 머리조아리는 시대잖어..
캐쉰 17-12-15 17:29
김이박최정 거의 경상도,신라 본이네요.전주이씨도 경주이씨에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으니...
우리나라 족보,성씨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 역사의 정통성 확립을 가로막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는 것이죠.
족보,성씨(본관)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죠.그러나 성씨에 따른 현재의 인구분포, 대부분의 족보가 만들어진 것은  조선 후기죠.신라정통론에 입각한 조선시대때 그쪽 성씨로 끼어들어야 어깨에 힘을 줄 수 있었으니....
족보학자들이 인정하는 거 잖아요. 90%이상이 짜가라고...고조선,고구려 얘기하다 성씨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바로 말이 바뀌는 사람 수다하게 많죠.신라 오리진, 무슨 할아버지 하며 "신라만세" 그러죠. 잠 재미있죠.
그게 우리나라죠.그런데 성씨는 고려때 가장 많이 생긴 걸로 알고 있어요.고려인들의 역사인식은 그냥 고구려죠.신라 백제는 병합내지 복속시킨 존재로만 생각하죠. 그 때도 성씨가 정통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겠어요?
성씨,족보에 대해 객관적으로 연구되고 그 연구결과가 국민에게 널리 공유됐으면 좋겠어요.
우리역사에 대한 연구도 그런 기초연구위에서 더 깊은 연구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캐쉰 17-12-16 09:28
고려도경(송나라 서긍)
고려인종시기 당대 고려인들의 의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책.
강단사학계는 "고구려와 고려를 혼동, 이 자료 이용시 엄밀한 검토와 비판이 요구됨"
이라고 말하나 자기나라 황제에게 바치는 책을  그리 엉망으로 기록했을리가...
이책의 내용으로 알 수 있는 것
-고려는 고구려이며 그것이 고려인의 당연한 생각으로 보인다
-계림궁이란는 별궁이름은 신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고구려궁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음은 고려가 곧 고구려이기 때문이다.
 별궁은 본궁이 거느리는 존재로서 강한  주인의식을 나타냈다는 설도 있다.
구르미그… 17-12-15 18:30
당연히 99퍼센트 이상 가짜입니다.

7세기~8세기 고구려, 백제, 발해의 인구가 신라보다 많았을 텐데,

족보상의 시조를 보면,

고구려, 백제, 발해인이 시조로 나오는 족보는 극히 드물고,

다 신라인, 고려인, 외국인이 시조로 나오는 것만 봐도
비좀와라 17-12-15 18:44
당연히 한국인은 신라인이 맞다고 봅니다.

여기서 문제는 신라인이 과연 우리가 알고 있는 신라인이냐는 것이죠.

동명성왕이 동성왕이란 의미인데 동성이 샛별 즉 금성을 말하는 것 이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동명성왕이란 샛별왕 이면서 금성왕이란 말이죠.

신라의 수도가 금성 입니다. 물론 금성에서 뒤 성자가 다른 자이긴 하지만 이 걸 서울의 원 의미인 서라벌로 보면 금성金星과 금성金城이 같은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알수 있단 말이죠.

서라벌에서 벌은 성星의 우리말인 별과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보여주죠.

경기도 주요 민요인 성주풀이를 (단 여기서 말하는 성주풀이는 경기민요의 성주풀이 입니다) 보더라도 같은 의미로 사용 되었을 거라는 거지요.

결국 서라벌이 금성 / 동경 그리고 동명이란 의미로 쓰였고 동명성왕은 신라의 왕이란 소리가 되는 것 입니다.

실제로 수서 신라는 북부여라 하는 것을 보면 신라가 부여의 적통 이었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샛별은 금성을 부르는 두개의 이름인 태백과 계명중에서 계명을 말하는 것인데 근세조선은 계명성의 후손을 자처 했습니다.
샤넬코코 17-12-15 19:48
제가 부족해서 그런가요...
고구려의 동명왕이 신라사람이란 소린 처음듣습니다.

신라인이 한국인인건 맞다고해야하지만, 모든 한국인은 신라인이다라는 명제는 좀
그많던 백제사람들은 다 일본으로 건너가고 씨도 안남았고
고구려계는 다 말갈이나 북방민족 중국인들과 융화해서 씨도 안남은건 아니잖아요?

'당연히 한국인은 신라인' 이라는 명제는 동북공정을 생각하면 매우 위험한 명제.
중국사관에 악용되고 본의아닌 부역하게될 소지가 다분해보이네요.
타이치맨 17-12-16 08:45
저기 머릿속 망상을 사실이라고 쓰시는 건 좀 아니네요. 근거라도 들어주시든지....
주몽을 활 잘쏘는 사람이라고 했죠. 동명성왕은 죽은 뒤에 추존된 왕호입니다. 이름이 아니고요.
타이치맨 17-12-16 08:48
광개토대왕비에 동명성왕이란 이름 자체가 전혀 없습니다. 부여의 건국설화를 훔쳐오면서도 동명성왕이란 이름은 안 썼습니다. 나중에 후인들이 첨가했을 가능성이 클 겁니다.
제발 역사를 하나도 모르면서 뇌내 망상을 인터넷에 배설 좀 하지 마세요.....
캐쉰 17-12-15 20:08
비좀와라님의 특유의 어원론은...
제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성씨관념,신라의 삼국통일로 모든 것이 신라화 했으리라는 선입관
이런 것들이 진실된 역사를 찾는데 엄청난 방해물이 된다는 거예요.
일례로 고려를 든 건데 우린 이렇게 배웠거든요. 이름만 고구려지 속은 신라...
그런데  연구해보면 해볼수록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거든요. 이름도 고구려 속도 고구려....
삼국통일도 신라가 아니라 고려가 했다는 학설을 펴는 이도 많은데....
이게 맞다면 현대의 한국인은 고구려의 후예인가요? 신라의 후예인가요?
잘못된 사실에 입각한 선입견, 생각들 다 내려놓고 진짜 어떠한 것이 사실인지  어떠한 것이 진실인지
추구해 봤으면 해요.
금연중 17-12-15 21:12
90%확율로, 지금 쓰는 성씨는 자기 조상 것이 아니라, 노비 조상이 모시던 대감님 성씨죠.
타이치맨 17-12-16 08:43
맞습니다. 노비 해방되면서 김씨 집 노비들은 다 김씨 성 쓰고, 박씨 성 노비들은 박씨 성 쓰고, 이씨 성 노비들은 이씨 성 쓰고 그랬습니다.
새끼사자 17-12-15 21:36
우리나라는 노비도 성씨 있었습니다.
샤넬코코 17-12-16 00:32
노비는 성씨가 없습니다.
성씨는 고려떄부터 귀족들 위주로 쓰이기 시작했고 조선조때 일반화되었죠.
하지만 조선때도 천인 노비들은 성씨가 없었습니다.
구한말까지도 그랬지요..
원전이 17-12-16 14:30
만약 자신들의 조상들이 그 지역에서 100년이상 살은 역사가 없다 그러면  뭔가 흘러들어왔을 가능성이 높고 대부분 그 지역에서 출신들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살음 지금 70 80대 분들은 알고있죠
6시내고… 17-12-16 17:50
ㅋㅋㅋ아직도 족보따지는 사람이 있나요?
관심병자 17-12-16 18:18
족보 성씨가 현대와 같은 개념으로 자리잡은건 고려시대 부터입니다.
삼국시대의 성씨는 지금과 같은 '혈족' 개념이 아닌 집단, 세력 개념으로 봐야하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삼국말 신라의 왕의 성씨는 김씨 였습니다.
우리나라에 김씨가 많은 근본적인 이유는 삼한통일후 신라 왕궁에서 김씨 성씨를 엄청나게 뿌려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고구려의 연개소문의 후손중 한명이 신라에 귀화해 김씨성을 사성받고,
당에 저항하고 있던 고구려 왕족도 신라 공주와 혼인후 김씨성을 받고 신라왕실에 포함시켰죠.
이런 귀화한 세력가들뿐 아니라,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도 사성하기도 하구요.
이렇게 삼국시대때 성씨는 혈연집단 보다 넓은 의미를 뜻하는것으로 사용됐습니다.
샤넬코코 17-12-16 22:20
어쨌든 그럼 고려 잏전에도 성씨는 사용이 되고있었단 거군요?
'박혁거세'는 당시에 박혁거세라고 불리진 않았겠지만...
김유신은 당시도 김유신이라고 불리운건가요?

세력개념이라...지식이 부족해서 살짝 이해가 갈듯말듯해요 ..;
김유신가문도 신라에 귀화해서 김씨성을 받았다고 아는데, 그럼 그 이전의 성씨는 뭐였나요?

연개소문도 그 아들중 연남생이잇는걸 봐서는 '연'씨라는 성으로 통용됐었나보네요. 그 후손이 '김'씨성으로 바뀌게 된거구요.. 그럼 연개소문은 이름이 '개소문' 인가요? 그시절에는 조선조치럼 아호랑 성인되서 이름이 따로있던게 아니라 태어나서부터 이름이 '개소문'인건가요?

흔히 아는 '부여'씨는 주몽도 그렇고 부여장 부여주처럼 백제왕족들에게도 프라이드가 강한 성이었던만큼, 삼한일통후에도 이어져올법한데 백제망하면서 후손들 성씨가 바뀌어 사라진건가요?

질문이 너무 정신없어서 죄송합니다 궁금한게 너무 많아서 ㅠㅠ
닥생 17-12-16 23:36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나라가 (삼국 중) 신라이기 때문데 신라 성씨가 널리 (저마다) 쓰인 것이고,
백제가 마지막으로 살아남았다면 두 글자 짜리 성씨가 현재에 대세를 이루고 있을 지도 모르지요
샤넬코코 17-12-17 00:37
그렇겠네요.. 삼국들의 유민이 신라의 성씨로 많이 개명했다는걸 알게됐어요.
하지만 다른글 보니까 백제의 복성도 후대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단성이 유행으로 변했다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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