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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월 29일 (금)

[한국사] 음운학, 임나가라의 가라 질문

도배시러 조회 : 1,307
목록
■ 삼국사기 강수열전

强首 中原京 沙梁人也 父 昔諦奈麻 강수는 중원경(中原京, 충주?) 사량 사람으로 아버지는 석체나마이다.

問其姓名 對曰 臣本任那加良人 名牛頭 신은 본래 임나가량(任那加良) 사람이며 우두(牛頭)라 합니다.


■ 광개토호태왕 비문

400 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 往救新羅. 從男居城, 至新羅城, 倭滿其中. 官軍方至, 倭賊退.]

#□□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10년(400) 경자년에 보병과 기병 도합 5만명을 보내어 신라를 구하라 하교 하였다. 

남거성(男居城)을 따라 신라성(新羅城)에 이르니, 그 곳에 왜군이 가득하였다. 관군이 도착하니 왜적이 물러났다. 

그 뒤를 급히 추격하여 임나가라(任那加羅)의 종발성(從拔城)에 이르니 곧 항복하였다. 


************


신라 소리 : 任那加良, 沙梁 임나가량, 사량

고구려소리 : 任那加羅 임나가라

신라 발음 "가량"은 "사량"이나 같다고 할때, 고구려 발음은 받침없이 "가라" 가 되버리네요.

고구려는 받침 발음이 없다고 보나요 ?

신라 발음 "가" "사" 발음은 같은 것일가요 ?

임나가라 와 임나가량은 전혀 다른 발음인데, 억지로 엮는 것일까요 ?


.

타이치맨 17-12-14 15:25
사량=임라가라가 아닙니다. 신라가 임라가라를 합병하고 강수 일가를 사량부로 강제 이주시킵니다. 강수가 자신의 집안이 임라가라라고 하는 것은 집안이 그쪽 지배층이었다는 얘기고, 강수는 그뒤 사량부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량자는 이두에서 '라'를 차자 표기합니다. 삼국시대에는 우리말이 개음절 위주이기 때문에 받침있는 한자를 써서 받침을 제외한 우리말 음을 표기하는 일이 흔합니다.
그러니 사량부는 임나가라가 아닙니다. 임나가량이라고 현대음으로 써있지만, 임나가라와 같은 의미입니다.
도배시러 17-12-14 16:21
가량이 가라가 되는 이유를 설명해 보셔요.
설명을 빼고 말하니 어거지로 보이쟎아요 ?

신라는 가량이고, 고구려는 가라이고...
같은 의미라면 신라사람이 고구려 군사에게 "가량"이라 전달했는데...
고구려 군사는 상부에 "가라"라고 보고한것이 됩니다.
타이치맨 17-12-14 16:30
이두 공부하세요. 상고음도 공부하고요.... 인터넷 들어가면 학술지논문, 학위논문 넘치고 넘칩니다. 시간이 없지 자료가 없지 않아요.
삼국시대에 적힌 한자음은 현대 한자음과 층이 전혀 다릅니다. 상고음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이나마도 우리말 자음 체계가 전혀 다릅니다. 학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통일신라시기에 파찰음과 유기음이 발달하고, 중국 중고음을 받아들임으로써 현대 한자음의 체계가 만들어진 걸로 봅니다. 당장 생각나는게 김무림교수가 이런 방향으로 주장합니다.
 현대한자음으로 삼국시대 기록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착오가 생깁니다.
그리고 이두 얘기 쓴 거는 못 본 모양이네요. 이두가 삼국시대 향찰에서 성립된 후 변화가 많지 않고 전수되었기 때문에 삼국시대 형태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도배시러 17-12-14 16:37
문헌이 부족한데도 연구하는 자세는 인정하지만 신뢰는 하지 않습니다.
희박한 문헌자료 수준으로 고대어를 분석하는 행위는 검증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대부분 소설 위주로 진행하리라 보구요.

한번 들어서 이해가 되면 받아들이겠지만, 이런 저런 잡소리 섞어가며
열씨미 연구했다고 우기는 행위의 노력은 인정하겠지만, 신뢰성은 글쎄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사례를 제시하시면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런 생각과 이론을 제시한 문헌근거가 필요합니다.
열씨미 연구한척 잡소리 섞어서 소설 쓰는 것은 빼면 좋겟네요.
타이치맨 17-12-14 16:44
내가 귀하를 이해시킬 이유 전혀 없고, 이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도배시러 17-12-14 16:55
관련된 삼국시대 언어 관련 원문 문헌 사료 싹 끌어다가 게시물로 만들어도
몇줄 되지도 않을텐데... ㅋㅋㅋ

그런거는 기본으로 보유하면서 남들이 논문으로 만든 소설을 봐야죠.
소설이 너무 잼나서 사실관련 문헌은 보지도 않는듯...
도배시러 17-12-14 16:23
신라가 임라가라를 합병하고 강수 일가를 사량부로 강제 이주시킵니다.
===> 요거는 사서 원문을 제시해 주세요. 소설 빼고요.
타이치맨 17-12-14 16:45
나무위키 강수 항목만 검색해도 나온다.... 복잡한 논문 볼 성의는 없을 테니 인터넷 검색이라도 해라
도배시러 17-12-14 16:52
그런거보면 소설 밖에 더 나옴 ?
강수 집안을 대가야 출신으로 보는 (소)설. 근거는 없다....

나는 임나가 가야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길뿐이다.
임나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처럼 여기저기에 존재한다면... 아니면말고....
도배시러 17-12-14 16:26
신라 "가량" => 고구려 "가라"  : 받침 사라지고...
신라 " 이사금 " => 고구려 "매금(신라왕)" : 어라, 받침이 살아있고 길이가 짧아지네 ?
감방친구 17-12-14 18:06
가락, 가량, 가라, 가야 등의 표기로 봤을 때에
가라를 표기한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입니다

반절법과 이두 표기에서는
받침을 표시하지 않거나
받침은 한자 두 개 (앞의 것은 중성까지, 뒤의 것은 받침 ㅡ 예 : 밝 = 박고)
또 이음절 이상의 말은 첫음절만 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감방친구 17-12-14 18:06
이사금과 매금은 예전에 개인적으로 연구했는데
다 잊어서 다시 고찰해봐야겠네요
감방친구 17-12-14 17:57
야마토님, 량은 라를 표현한 게 아닙니다
들/달/돌을 표기한 것입니다

사량부는 고허부를 개명한 것입니다

이거 외에는 제가 알고 있는 것도 이 댓글에 한해서는 님 말씀과 일치합니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59497&sca=&sfl=mb_id%2C1&stx=cellmate&page=4
타이치맨 17-12-14 15:27
강수의 이름을 우두라 함은 '쇠머리'라는 뜻인데, 이때 '쇠'는 짐승을 뜻하는 게 아니라 금속인 쇠(金)를 훈가차 표기한 듯 합니다.
강수를 우리 말로 풀면 '단단한 머리'가 되지 않습니까? 의미상 서로 통하고 있습니다. 개인 생각입니다.
감방친구 17-12-14 18:01
해당 기록에 보면 강수의 두상이 쇠대가리처럼 컸다고 합니다
대가리가 왕대가리인 신체적 특징과
머리가 세다, 즉 두뇌가 명석했던 것을 뜻하는 중의적 이름이라고 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감방친구 17-12-14 18:18
개인적으로 육칠 년 전에 고찰해본 바가 있습니다
그 때의 기억을 되짚어 말씀 드리면

위에 이치빈타냐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ㅡ 임나가라에서 사량부로 사민된 것은 사실이고요

일본어로 임나를 미마나라 하는데
미마나를 표기하는 방식은
ㅡ 본국
ㅡ 임나
로 두 가지입니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상대와 하대에서 임나를 가리키거나 자처한 가라가 다릅니다

상대, 즉 전시기에서 임나는 아라가야(혹은 금관가라)를 중심한 세력이며
하대, 즉 후시기에 임나는 대가야를 중심한 세력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고구려가 가야 정벌 이후
기존의 가야 중심 세력이 괴멸되고
이를 대가야 (우가야, 상가야, 고령가야)가 주도권을 쥐고 재편하려 노력을 하는데
이 때에는 대가야가 임나, 즉 본국을 자처합니다

대가야가 가야를 대표해 중국에 사사인가 국서를 보내는데
거기서 본국을 자처합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으로
임나, 즉 본국은 미코토, 미마나의 예에서 가야연맹의 종주국을 뜻하거나 가야의 어떤 세력이 자신의 출자국을 이를 때에 이르던 말로 고찰한 경험이 있습니다
도배시러 17-12-14 19:47
(유)송서 이만전 왜를 보면
都督 倭 百濟 新羅 任那 加羅 秦韓 慕韓 七國諸軍事、安東大將軍、倭國王。
왜왕 武에게 7국 제군사의 호칭을 줍니다. 왜 백제 신라 임나 가라 진한 모한

[ 임나 = 가라 ] 라면 굳이 중복시킬 이유가 없지요. 가라는 "가라" 이고 임나는 "임나" 입니다.

그리고 가야도 중국 방문을 하지요 加羅國,三韓種也。國王 荷知 使來獻
그냥 가라加羅 라고 표기 합니다.
도배시러 17-12-14 19:55
478 昇明2年 十二月丙戌,皇后見于太廟。戊子,高麗國遣使獻方物。
五月戊午,倭國王 武 遣使獻方物,以武為安東大將軍。

송서 이만전은 都督 倭 百濟 新羅 任那 加羅 秦韓 慕韓 七國諸軍事의 호칭을 부여 했지만
본기를 보면 安東大將軍 이란 호칭만 부여 했다고 나옵니다.
즉 공식 직공은 安東大將軍 이고, 비공식으로  倭 百濟 新羅 任那 加羅 秦韓 慕韓 七國諸軍事 라는 호칭을 부여한거죠. 공식적으로 떠들고 다니지말고 니들끼리만 봐라~
감방친구 17-12-14 20:06
예, 그건 분명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임나를 남구 가야세력 가운데 대마도, 이키를 포함하여 북규슈에 근거를 둔 세력이라 추정합니다

즉 고구려에 의해 가야에서 거세, 축출된 세력이죠
버섹 17-12-14 19:47
광개토대왕비문에 신라 국경에 이르니 왜군이 가득하였다는 말은 없지요...

왜인이 가득하였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광개토대왕비문은 왜인, 왜적, 왜군을 정확히 구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라에 가득했던 사람들은 군인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었죠...
그들은 고구려군을 보자 싸울 생각도 않고 허급지급 도망가기 바쁩니다.
군인이라면 그런 식으로 싸우지도 않고 도망가지는 않죠.
도배시러 17-12-14 19:48
至新羅城, 倭滿其中 에서 왜를 왜인이라 해야 하나요 ?
버섹 17-12-14 20:09
영락 9년에
倭人滿其國境

국경에 왜인이 가득하니 도와달라고 고구려에 청했으니
그 요구를 듣고 이듬해 고구려군이 온 것이니 그들의 정체가 왜인인 것이죠...
도배시러 17-12-14 20:15
아하...위의 문헌은 영락10년 기사입니다.  님은 영락 9년 기사를 제시하고 계시네요.
감방친구 17-12-14 20:17
버섹님은 저 왜라는 표현이
꼭 왜인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백제, 왜, 가야 등을 총칭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 같아요
버섹 17-12-14 20:26
아신왕 8년
"계속되는 군역에 신라로 도망가는 사람이 많아져 인구가 쇠감하였다."

아신왕 8년이면 국경에 왜인이 가득했다는 영락 9년이죠.
인구가 쇠감할 정도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엄청난 백성들이 건너간 걸 알 수 있죠...

같은 시기 일본서기 응신왕 조에는
백제에서 궁월군이 120현민을 이끌고 일본으로 망명했다고 기록되어 있죠...

120현민이면 한 현에 천 명씩만 잡아도 12만명입니다.

영락 9년의 왜인만기 국경의 왜인은 다름아닌 가야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던 백제의 백성들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을 정벌해 다스리던 사람은 백제왕의 자손이었고,
백제인들은 전쟁을 피해 백제왕과 같은 핏줄이 다스리던 일본으로 대거 건너갔던 겁니다.
그리고 이들이 대거 건너온다는 것을 안 일본의 백제왕이 병사들을 보내 이들을 인솔해 오게 했는데,
이들 때문에 왜인, 왜군 등의 말이 나온 것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감방친구 17-12-14 20:32
예, 저도 그런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매우 흥미롭고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버섹 17-12-14 20:37
아, 그렇군요...^^
버섹 17-12-14 20:27
그러니까요...영락 9년에 왜인이 가득하니 도와달라고 했고, 이듬해인 영락 10년에 고구려인이 당도했으니 그 왜인이 이어지는 게 당연하지요...
도배시러 17-12-14 20:55
9년 倭人滿其國境  - 국경 상황, 나라 중심이 아닌 변경 國境
10년至新羅城, 倭滿其中 - 신라성의 상황, 신라성新羅城은 국경이 아닌 나라의 중심

의도는 이해가 되지만
9년은 신라의 변경에 가득한 왜인이고요.
10년은 신라 중심에 가득한 왜인이니 왜병으로 보는게 어떤지요 ?
버섹 17-12-14 21:13
9년의 왜인이 갑자기 왜병이나 왜군이 될 수는 없죠.

광개토대왕비문에 백제를 백잔이라고 표기한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대개 백잔이 백제를 멸시해 부른 말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잔은 나머지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백잔은 백제의 나머지라는 뜻이죠.

삼국지 위서 진한조에
"낙랑 사람들을 이름하여 아잔이라고 하는데, 동방의 사람들이 나를 말할 때 '아'라고 하므로 이는 낙랑사람들이 본래 자기 무리 중 남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와 같은 것이죠.

광개토대왕 비문은 장수왕 때 만들어진 것인데,
비문이 만들어질 당시에 백제의 인구가 쇠감해 질 정도로 줄어든 탓인지,
비문에는 단 한 번도 백제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백잔 혹은 잔국 등이라고 말하고 있죠. 멸칭이 아니라는 건 당시 이미 백제는 항복한 나라인데 항복 이후에도 공식 기록에 계속 멸칭을 사용한다는 건 말이 안되는 것이지요...
버섹 17-12-14 21:25
그리고 왜인만기국경의 국경이
상대방의 영토가 끝나는 곳만을 가리키는 것인지
영토를 포함하는 것인지,
그리고 기가 신라를 가리키는 것인지, 왜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아 논란이 되고있는 부분입니다.

실제 왜의 병사들이었다면 국가 존망의 위급한 상황일텐데, 비문엔 위급한 상황이라는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신라사신은 고구려에 가서 군사를 청하는 '걸사'라는 말 대신 '청명'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라는 지시를 청한 것이죠.
그리고 계책만을 듣고 귀환했는데, 실제 왜군이 국경을 압박하는 상황이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버섹 17-12-14 21:59
음운과 상관없는 글을 길게 쓰게 되었는데,

님이 적으 놓으신 것처럼 신라과 당시 왜군에게 압박받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려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저는 이 기록을 볼 때면
우두라는 이름과
일본신화에 하늘 나라에서 쫓겨나 신라땅에 첫 발을 딛게 되었다는 우두천왕과
이름이 겹치는 것이 흥미롭더군요.
타이치맨 17-12-14 21:35
량(良)은 중고음을 기반으로 한 한국한자음입니다. 상고음으로는 '랑'으로 읽습니다. 삼국시대 한자음의 대부분은 상고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도 받침은 반영하지 않고 음차한 것입니다.

'라'는 '나'와 같이 땅, 영역의 뜻이고 범주가 커지면 나라의 뜻입니다. 신라, 가라 등에 붙은 '라'가 다 이 뜻입니다.

량(良)으로 '라'를 음차한 다른 사례를 들어 보자면 강릉의 옛이름이 있습니다.
何瑟羅州 一云 河西良
羅와 良이 대응하고 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이처럼 음차할 때 밑에 받침이 있는 글자로 받침없는 우리말을 표기한 경우가 많습니다.
진정해진… 17-12-15 16:05
솔직히 저도 고대언어가 어떻게 발음되었을지 유추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그 신뢰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이런 역사 음운론적인 연구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는 단서를 달아주셔야 어느정도 납득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 같군요.
타이치맨 17-12-15 16:10
이건 김무림 교수나 최남희 교수 등 고대국어를 연구하시는 학자들이 논문 내용이지 개인적인 의견이 아닙니다. 개인의견이면 개인의견이라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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