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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월 29일 (금)

[한국사] 고구려의 도읍 변천

감방친구 조회 : 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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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동명성왕
ㅡ  졸본(卒本)/흘승골성(紇升骨城)/비류수(沸流水)

B 유리왕 22년 (서기 3)
ㅡ 국내성(國內城)/위나암성(尉那巖城)

C 산상왕 13년(서기 209)
ㅡ 환도성(丸都城)

D 동천왕 21년(서기 247)
ㅡ 평양성(平壤城)

E 고국원왕 12년(서기 342)
ㅡ 환도성(丸都城)

F 고국원왕 13년(서기 343)
ㅡ 평양 동쪽 황성(平壤東黃城)

G 장수왕 15년(서기 427)
ㅡ 평양성(平壤城)

H 평원왕 28년(서기 586)
ㅡ 장안성(長安城)

ㅡㅡㅡㅡㅡㅡㅡ 출전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정리 가생이닷컴 감방친구

감방친구 17-12-04 19:03
A
학계 통설에서 지금의 중국 요령성(遼寧省) 환인(桓仁)지역에 비정하고 있다. 흘승골성은 오녀산성에 비정됐으나 고고연구 결과 서기 3세기 이전의 유물/유적이 발견되지 않아 이 비정은 재고 되었다.

삼국사기 편찬자들의 견해(13 세기 고려)에서는 요나라 동경, 즉 현 요녕성 요양시 서쪽 지역에 비정한 바 있다.
감방친구 17-12-04 19:09
B
학계 통설에서는 현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輯安縣) 통구성(通溝城)에 비정하고 있다

삼국사기 편찬자들의 견해(13 세기 고려)에서는 국내성(國內城)을 위나암성(尉那巖城), 또는 불이성(不而城)이라 한 데에서 낙랑군 불이현을 국내성지로 비정하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고구려가 현도군, 낙랑군 등 위만조선의 옛땅, 즉 한군현에서 개국했다고 삼국사기 편찬자들은 보고 있다
감방친구 17-12-04 19:11
B와 C
학계 통설에서는 국내성과 환도성이 가까운 거리 (집안과 환인)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삼국사기 편찬자들 역시 두 성이 가까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감방친구 17-12-04 19:15
D
위 관구검의 침입으로 환도성이 무너져서 평양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E와 F
평양성을 증축하다가 환도성으로 옮겼으나 모용선비의 침입으로 다시 평양의 동쪽 황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학계 통설과 삼국사기 편찬자 모두 '평양의 동쪽 황성'이 아니라 '평양의 동황성'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지금의 평양으로 비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양 서북한 고정론'은 역시 학계 통설인 '낙랑군 서북한설'과 부딪혀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다
감방친구 17-12-04 19:21
F
平壤東黃城은
ㅡ 평양의 동황성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게 아니라
ㅡ 평양의 동쪽 황성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서 다음의 두 기사를 비교해 보면 이는 여실하다

고국원왕 13년(서기 343)
移居平壤東黃城
1) 평양의 동황성으로 거처(도읍)를 옮겼다
2) 평양의 동쪽 황성으로 거처(도읍)를 옮겼다

안장왕 11년(서기 529)
王畋於黃城之東
ㅡ 왕이 황성의 동쪽에서 사냥하였다
감방친구 17-12-04 19:27
G
학계 통설에서는 지금의 북한 평양에 비정하고 있으며 삼국사기 편찬자들(13세기 고려)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그 지역을 200여 년 통치한 요나라의 요사 지리지에서는
요나라 동경, 즉 현 중국 요녕성 요양시가 장수왕의 평양성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위(元魏 ; 북위) 태무제(太武帝)가 그들이 거주하는 평양성(平壤城)에 사신을 보냈으니, 요(遼)나라 동경(東京)이 바로 이곳이다." ㅡ 요사 지리지 동경요양부
감방친구 17-12-04 19:33
G와 H

학계 통설과 삼국사기 편찬자들(13세기 고려), 그리고 요사 지리지는 두 곳을 같은 곳으로 보고 있다

요사 지리지에서는

"원위(元魏 ; 북위) 태무제(太武帝)가 그들이 거주하는 평양성(平壤城)에 사신을 보냈으니, 요(遼)나라 동경(東京)이 바로 이곳이다. 당(唐)나라 고종(高宗)이 고구려를 평정하고 여기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였지만, 나중에 발해(渤海)의 대씨(大氏)가 차지하였다." 라고 하였으며

학계 통설에서는
장수왕의 평양성은 현 북한 평양의 동북쪽에
있는 대성산 밑의 안학궁 (安鶴宮) 터로, 장안성은 현 평양시로 비정하고 있다.

그밖의 주서, 수서, 신당서, 삼국사기(보장왕/문무왕) 등의 여러 사서에서 장안성을 평양성의 이칭으로 보거나 당시 고구려 도읍을 평양/평양성으로 칭하고 있어서

평원왕~보장왕의 장안성이 평양/평양성으로 불리웠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평양이라는 지명은 여러곳에 등장하는 바 평평하고 넓은 땅(난벌)을 이르는 보통명사일 가능성이 충분하여 장수왕의 평양성이 평원왕의 장안성과 그 위치가 같음을 단정할 수 없다
감방친구 17-12-04 19:49
평양은 이밖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1. 고구려 북한산군
ㅡ 한산
ㅡ 한성
ㅡ 한양군
ㅡ 남평양
이상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진흥왕 창녕비 등

2. 신라 평양
ㅡ 실성왕 , 의희(義熙) 9년 계축(서기 413)에 평양주(平壤州)의 큰 다리가 완성되었다 (삼국유사)
ㅡ 실성이사금 12 년 (413) 새로 평양주(平壤州)에 큰 다리를 세웠다 (삼국사기)

3. 발해 중경현덕부
ㅡ 홀한주는 바로 옛 평양성으로, 중경현덕부 (中京顯德府)라고도 한다. (요사 지리지 동경요양부)

4. 한나라 우북평군 평명현
ㅡ 우북평군(右北平郡) 평명현(平明縣)을 왕망은 평양(平陽)이라 했다. (한서 지리지)


1과 2의 경우 같은 지역인 것으로 보인다 2의 삼국유사 기록에 단 일연의 주석에는 恐南平壤也 今楊州, 즉 "아마도 남평양인데 지금의 양주이다"라고 돼 있으니

실성왕 시기에 지금의 한양/광주 지역에 신라가 진출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1의 기록은 2의 사실이 1의 일부 사실에 간섭해 1의 기록으로 하여금 '평양/남평양'이라는 지명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한 한산/한성을 평양이라 하는 것에서 두 이름의 뜻이 통함을 볼 수 있다

큰 강을 뜻하는 아리수가 한수를 거쳐 한강으로 정착된 예에서 보듯 한산/한강은 큰 땅, 넓은 땅을 뜻하며 이것이 평양의 뜻과 통함을 보인다

한편 3의 경우 학계 통설에서는 현 중국 길림성(吉林省)화룡현(和龍縣) 북고성촌(北古城村) 남동쪽으로 비정하고 있다.
감방친구 17-12-04 20:14
한 나라의 도읍지는
ㅡ 교통이 사통팔달 하고
ㅡ 물산과 인구가 풍부하게 모여 번성한 지역의 중심에 있어서 그 이득을 세금으로 거두어 들이기 수월하고
ㅡ 외적의 방어에 유리한, 넓은 땅으로 삼았다

고구려의 도읍은 한군현을 몰아내고
중국계 왕조 및 선비족과 투쟁하며 저들을 제압한 고구려 성장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요수, 압록수, 살수, 패수 및 험준한 산악에 자리한 산성으로 겹겹이 보호된 곳이 바로 고구려 평양이었다

지금의 요동은 요나라 때까지 번성한 곳이며
철광, 금광 등이 산재해 요나라의 국부를 풍족케 해주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감방친구 17-12-04 20:38
또한 고구려의 역대 왕들은 졸본에 수시로 행차해 동명성왕 신사에 참배하였으므로

평양을 비롯한 여러  도읍의 위치는 졸본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감방친구 17-12-04 20:45
고구려의 평양을 그 멸망 후에 신라가 차지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거니와

애초 당나라와의 협상에서 평양 이남의 백제 땅을 신라가 갖는 것으로 약속하였고

평양은 당나라 차지가 되었다가 나중에 발해 차지가 되었으며

신라가 복속한 한주, 삭주, 하슬라주에 북한산군은 있으나 고구려 수도였던 평양에 대한 언급은, 또 지명은 그 비슷한 것도
없다는 사실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왕건의 평양이 애초에 고구려 수도 평양이었으면 그렇게 버려진 것도 이상하거니와 신라가 차지한 고구려 남쪽 영토인 3개의 주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는 것은 괴상할 정도이다

즉 이러한 사실 정황으로 볼 때에
왕건의 서경은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이 아닌 것이다
도배시러 17-12-04 20:53
형사 하셔요 ㅋ
감방친구 17-12-04 20:55
ㅎㅎㅎ 설마 비웃는 거임?
쥐똥 17-12-05 18:47
그럼 왕건이 북방정책 한다고 서경을 중시했고 이후 묘청같이 북벌론자들이 서경을 중시했는데 걔네는 잘못 짚었다는 거임?
청춘시대 17-12-05 20:37
신라가 통일하고 멸망한 고구려의 수도가 어떻게 되었는지 기사가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 했었는데.........
감방친구 17-12-05 21:26
고구려 북한산군을 한양군으로 명칭을 고쳤는데 이를 평양이라고도 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지금의 서울/광주, 또는 황해도 재령 지역으로 비정되며 현재의 북한 평양과는 방향도 위치도 무관합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개성 북쪽에 고구려 수도 평양을 거론한 기록이 없으며 그 비슷한 것도 없습니다

고려사 지리지에서 신라가 고구려 평양을 영토에 편입했다고 하나 정작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감방친구 17-12-05 21:32
즉 원사 지리지 동녕로의 이 기록

 晉義熙後, 其王高璉始居平瓖城. 唐征高麗, 拔平壤, 其國東徙, 在鴨綠水之東南千餘里, 非平壤之舊. 至王建, 以平壤爲西京.



왕건이 고구려 수도 평양이 아니었던 곳을 서경이라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교차증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ㅡ 신라 실성왕 대에도 평양이라는 지명이 나오고
ㅡ 기타 여러곳(그러니까 현 북한 평양이 아닌 곳)에서 평양이라는 지명이 나타나므로

1) 고려 서경 땅이 평양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웠을 가능성은 있으나
2) 삼국사기 지리지, 고려사 지리지, 원사 지리지, 요사 지리지의 교차 검증을 통해
3) 고려 서경은 장수왕의 평양도 고구려 멸망기의 수도였던 장안성도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딩요앞니 18-02-06 03:44
근데 위성사진으로 보면 현재 북한의 평양 대성산 아래 우리가 알고있는 안학궁성 터가 있는데 그럼 이건 무엇인가요? 평양성은 대동강에 접해있고 궁성에 산성까지 평양에 존재할수 있는 시기는 고구려뿐이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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