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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월 20일 (토)

[한국사] 우리 고대사에 있어 열국 및 한사군 지리적 위치 설정에 대한 내 나름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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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과학이라고 주장하니...저 역시 과학적으로 역사를 한 번 본다면...그건 역사지리 정도일 듯...

내가 생각하는 우리 고대사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한사군이나 열국들의 위치선정

너무 문헌에 의존하다 보니 실제 지리적 요소는 그냥 무시하고 유사 지명 내지 유사 지역을 기준으로 선긋기로 그 위치를 그리지 않았나 하는데...

1. 가장 큰 문제가...중원의 행정단위인 군(郡)을 엄청 크게 상정한다는 것인데, 특히 일개 태수가 다스리는 요동군은 정말 크게 그림...근세의 요동과 고대의 요동군은 엄연히 다른 것인데...요동군은 십여개 이상의 군으로 구성되는 州 보다도 크게 그림...세상에 배보다 배꼽이 큰 경우도 있는지...유주에 속하는 요동군이 요동군을 포함하기 전 유주보다도 훨씬 크게 그리고 있다는 점

2. 한사군의 4개 군 역시 그 크기는 중원에 위치하는 군의 크기를 훨씬 상회하여 그렸는데...그러다 보니 한반도 북부 대부분이 일개 군 4개가 다 차지할 정도...한반도 북부 지역 크기라고 한다면...이 역시 州보다 큰 크기...아무리 점령지라고 하더라도 그렇지 사막지역도 아닌 한반도 북부를 달랑 4개 郡 크기로 그릴 수 있는 크기로 봤는지...어쨌든 郡에게 있어  州는 넘사벽...아무리 군이 크더라도 州의 크기만하게 군을 설정할 수는 없는 것임... 한사군의 4개군의 크기는 중원의 웬만한 州보다도 크게 그리는 것은 말이 안 됨 (이 것은 우리 나라 행정구역인 일개 郡을 두 세걔의 道 를 합친 크기로 그린 것과 마찬가지)

3. 역사 상 한사군을 비정할 때 산맥이나 강은 고려하지 않고들 그리는데, 평안도와 함경도를 나누는 '낭림산맥'은 태백산맥과 함께 한반도를 동서로 나누는 아주 큰 산맥....그냥 큰 정도가 아니라 인적 교류를 막을 정도로 큰 산맥...거기에다...강 같은 것은 경계로 고려하지도 않고 그리는 것은 거의 공통적...어쨌든 고조선도 그렇고 한사군도 그렇고 도로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여러 개 강을 건너 낭림산맥을 넘어 함경도 지역까지 정치적으로 통제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

고조선이 함흥지역을 통치했다고 하더라도 직할지는 아니었을 것임...더욱이 도로도 없는데 한나라가 그 쪽에 郡을 설정한다는 것도 넌센스...사실 조선시대 때도 강릉으로 가는 길은 중부지역에 하나 밖에 없었을 정도로 산맥을 넘기 힘든데...평안도랑 함경도 역시 마찬가지일 듯...구글어스로 보면 태백산맥보다는 샛길이 좀더 많기는 하지만...그래도

4. 2천년전의 요동을 현재의 요동반도나 요하를 기준으로 잡고 당연히 요동군도 요동반도로 비정하는데...요동은 말 그대로 요의 동쪽 지역 모두...요동은 행정구역 상의 요동군과는 다른 것...요의 위치는 현 북경 아래 지역이고 요동은 그 동쪽 지역 모두...

요동군은 요동의 지극히 일부...역사학자들은 요동군과 요동을 동일 시 하고 요동지역 전체를 요동군으로 표시하는 짓을 하는데...현재도 지나 애들의 행정구역은 우리 역사부도에 요동군이라고 그린 곳이 郡이 아니라 州의 크기인 省..즉, 요녕성...어떻게 省급의 지역을 郡이라고 그렸는지...왜정시대 때 역사학자라는 자들의 지리감각을 보면 어이없음 그 자체

5. 동예 역시 말 그대로 동쪽에 있는 예...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선양 주변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나만의 추정일지도 모름)되는 예가 산넘어 물건너 동해 안까지 갔는데...그 이유는 모르겠지만...동예는 예와 멀리 떨어진 동 쪽 위치는 맞는 듯...즉, 함흥에서 동해안으로 내려오는 것 같기도 함...하지만...동예가 아닌 예는 동해 쪽에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움...거의 같은 지역이었던 예나 창해군, 현도군의 위치는 동해 쪽이 아니고 선양 외곽지역

6. 현도군의 적절한 위치 비정의 기준은 예의 남려가 고조선(위만조선인 듯)을 배신하고 한에 복속하면서 한이 여기에 잠시 창해군이 설치되고...한나라가 사군을 둘 때는 그 자리에 현도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을 기준으로 볼 필요가 있음...그렇다면 북한 학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선양 쪽 주변이 예든 창해군이든 현도군의 위치로 타당할 듯

7. 창해가 과연 동해인지는 불분명한데...내 개인적으로는 창해가 동해같지는 않음...그 옛날 만리장성 넘어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지나 애들이 만주 넘어, 한반도 북단을 넘어 동해까지 인식하고 이름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고...위만조선이 아무리 약해졌어도 그렇지...어떻게 한 나라 얘들이 위만조선 넘고, 개마고원이나 낭림산맥까지 넘어 함흥까지 와서 군(창해군)을 설치할 수 있을지...이 건 말이 안 되는 것임

8. 창해와 관련해서는 진시황을 습격했다는 창해역사 얘기가 있는데...우리 나라 야사에는 창해역사가 강릉지역 출신이라고...아니 소설도 좀 그럴듯 해야하는데...강원도 강릉에 살던 사람이 무슨 원한이 사무치길래 산 넘어 넘어 만주도 넘어 만리장성 아래 지역까지 가서 진시황을 습격? 그런 점에서 창해역사의 출신지인 창해를 동해로 비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될 듯...결국 창해군이나 현도군이 위치하는 요하 하류 지역 정도일 것으로 보는게 맞지 않을까 함

8. 낙랑군의 위치를 설정할 때 중요한 것은 중원왕조가 망해도 굿건하게 버틸 수 있고 교통적으로 연계되어 계속 교류할 수 있는 위치여야 한다는 점...즉, 중원과 지리적으로 붙어 있으면 그대로 중원에 흡수되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원왕조가 바뀌어도 계속 교류가 가능한 위치를 찾아야 함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평양은 적절한 위치가 못됨 ...중원과는 떨어져 있지만, 교통적으로 중원과 연계되지 못하기 때문...물론 산동 반도에서 배타고 바다를 가로 질러 평양까지 올 수도 있다고 하지만...그건 후대 얘기이고, 고대의 해로는 연안을 따라 항해하였음.

당시 바다를 건너는 유일한 해로가 산동반도 북단에서 요동반도 끝단으로 이어지는 몇 개의 열도(발해만과 황해를 나누는 열도)를 징검다리식으로 넘어오는 방법 밖에 없었고, 그 다음에는 연안을 따라 가는 방식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낙랑군의 위치는 산동반도 북단 쪽의 열도와 연계되는 요동반도 서쪽 곶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 낙랑군으로 타당 (북한 학설도 이 쪽으로 설정하고 있는 듯한데...우리는 북한 쪽 연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듯)

참고로...심청전에 나오는 임당수만 하여도 험한 바다라서 인신공양을 해야 할 정도였음...즉, 대청도 주변 바다인 임당수를 통해 황해를 횡단하여 중국 산동지역과 황해도로 오는 해로는 나중 얘기...나침반이 발명되기 전인 서기 전후 싯점에는 이 쪽 항로를 통해 중원과 교류하였다고 보기는 부적절...그리고 백제, 신라 시대 때 되서야 경기만에서 산동이나 상해 쪽으로 해로가 뚫린 것으로 아는데...그 곳이 현재 당진...당으로 가는 포구라서 당항포라고 했다는데...여기서 대청바다 쪽을 거쳐 산동으로 가는 해로였다고 함

이 해로가 일찍 개발되었다면...고조선 시대 때 임둔과 진번이 황해도 쪽에 있었을 수도...그래서 한의 사군이 여기까지도 내려온다는 주장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이건 좀 비약일 듯


감방친구 17-11-29 00:55
1번은 전에도 말씀을 잠시 나눴는데 헷갈리더라구요
중국 사서 지리지를 몇 번씩 쭉 읽었는데 혼동이 와요
행정단위가 통폐합 되거나 교치 되거나 하면서 꼬인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도 그렇더라구요
최근에 구월산을 다루면서 보니 문화현이 처음에는 유주에 속했는데 그 유주가 나중에 평주에 속해버려요
주 속에 주가 들어가버린 것이죠

그래서 변하지 않을 위치를 하나 중심에 박아놓고 비정을 하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더군요
이를테면 류성현
감방친구 17-11-29 00:59
4 번 같은 경우 그 허점을 주류와 비주류가 모두 아전인수로 이용하는 꼴을 보이구요

제가 보기에 고대의 요동군은 진ㆍ한 시기에 대릉하에서 요동 북안 언저리까지가 아니었나 추측이 되고요

물론 진나라는 이 지역을 실제 통치하지 못 했구요
감방친구 17-11-29 01:07
8 번은 제가 중국사서와 지리지를 몇 번이고 본 결론은 대릉하에서 지금의 요동반도로 요동군을 북이나 북서로 끼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

님이나 다른 분들도 그렇게 보시는 것 같고

제가 보기에는 요동반도가 아닐까 생각이 되는데 뭐라고 말하기에 제 지식이 짧고

그러나 후한 말기부터 이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급격히 상실하며 3 세기에는 이미 요서군 지역으로 교치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태강지리지, 진서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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